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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이 32강 비재 선수권대회로 시청자들을 확 끌어당겼습니다. 이럴 때 역시 불쌍한 건 주인공입니다. 이미 이 대목에서 유신이 풍월주가 된다는 건 정해진 사실인데도, 역으로 유신이 너무 쉽게 우승하면 극의 흥미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개고생을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제작진이 던진 것은 비담이라는 새로운 변수. 그냥 유신과 보종이 각각 싱거운 4연승으로 결승에 올라 맞붙으면 너무 단순한 얘기가 되는 반면, 검술 실력만으로는 유신과 보종을 앞설 수 있는 비담의 등장이 새삼 긴장을 불어 넣는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비담이 시청자들에게도 널리 호응을 받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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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극중 인물들의 입장에서 보나, 시청자의 입장에서 보나 모두 해당되는 말입니다. 먼저 등장인물들의 입장에서 보겠습니다.

비담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갸웃거리는 반응을 보입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 소통에 문제를 겪습니다.

지금까지의 방송 내용으로 볼 때 비담의 문제 해결 방식은 참 독특합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갖고 있는 도덕관이나 예의범절에 전혀 얽매이지 않고 곧바로 결론으로 치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떼도둑들로부터 서책이 담긴 가방을 되찾으려면 그냥 그들을 죽이면 됩니다. 범죄나 살인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지독하게 단순하면서도 효율적이지만, 감히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이고, 상상한다 해도 실행에 옮길 수 없는 행동입니다. 이걸 사이코패스라고 불러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반인들과는 매우 다른, 초 효율적인 사고방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비담의 존재는 덕만이건 미실이건 진평왕이건, 심지어 그를 키운 스승 문노에게까지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됩니다. 이 인물들은 모두 동시대의 신라를 살아왔고, 당시 사회의 가치와 판단 기준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인물들입니다(엄밀히 따지면 덕만이야말로 이런 가치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어쨌든 지금은 공주라는 위치에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잘 적응하고 있으므로 따지지 맙시다).

하지만 비담은 다릅니다. 아직까지 비담의 마음 속에 있는 목표가 무엇인지, 시청자들은 알게 됐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가 무엇을 하려 할지도 모르는데다, 그 '무엇'을 하기 위해서 대체 무슨 짓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담은 다른 모든 캐릭터들을 긴장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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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에게도 이런 비담의 행보는 흥미를 북돋는 요소입니다. 신선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어린애같은 모습으로, 또 때로는 음험하고 속 깊은 음모가의 모습으로, 그야말로 수시로 변신하는 비담의 모습은 그의 앞에 펼쳐진 스토리조차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더구나 비담의 이런 모습은 유신과 덕만 등 '고지식 캐릭터'에 답답함을 느끼던 시청자들에게는 청신호입니다. 뻔히 돌파할 길이 있는데, 조금도 곁길이나 속임수를 쓰지 못하는 주인공들은 그저 정도를 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답답합니다. 이때 비담이 나타납니다. 대략 이런 상황이 펼쳐집니다.

비담: 니가 고민하던 문제, 내가 해결했어.
유신: 네 이놈, 이게 말이 되는 짓이냐! 누가 이런 짓을 하라고 했어!
비담: 왜? 안되나? 원래 이렇게 되길 바란거 아냐?
유신: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해주진 않아! 난 정당하게 해야 해! 이건 반칙이야!
비담: 그래? 할수 없지. 그럼 도로 원래대로 해 놓고 올게.
유신: (바짓단에 매달린다) 야, 잠깐만,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야지. 그게 아니고...

같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쉬운 승부는 상상도 할 수 없다는 유신과 알천의 대결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모두 '그래, 저게 진정한 승부지'라고 감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답답해하는 시청자들이 꽤 있을 겁니다. 이런 부분을 해소해 주는 것이 바로 비담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비담에게선 '전통 질서의 파괴에서 오는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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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강 비재에서도 비담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입니다. "난 엉덩이만 노려"나 엉덩이 춤 같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가 하면, 문노나 덕만과 함께 있을 때에는 자신도 신라 정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야망을 드러냅니다.

이런 비담의 행동은 이미 대략 정해져 있는 화랑들의 무공 서열에서 상당한 변수 역할을 합니다. 그것도 흥미의 요인이죠.


물론 비담의 문제 해결 방식이 때로는 더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절차와 관습, 규범이라는 것은 괜히 생긴게 아니죠. 우리 편이라면 이렇게 상대가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멤버가 하나쯤 있는 것도 좋겠지만, 문제는 비담 같은 캐릭터는 과연 언제까지 우리 편일지도 방심할 수 없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누구를 배신하는 데 있어 죄책감을 느낄 타입이 아니기 때문이죠.

'선덕여왕' 제작진의 가장 큰 성과는 현재까진 비담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그 정착입니다. 이런 캐릭터 활용이 다소 수준 낮은 역사 해석에서 오는 줄거리상의 문제점들을 잘 덮고 있습니다. 아무튼 비담의 활약은 춘추의 등장과 함께 이 드라마의 흥미를 끝까지 끌고 가는 데 큰 역할을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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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궁을 떠나 오래 생활한 춘추 역시 진평왕이나 미실이 볼 때 도저히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담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비담과 춘추가 대면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 또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춘추는 정말 저렇게 꽃미남이었을까요? 거기에 대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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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보너스 샷은 보종의 암바-^^  전국 화랑 이종격투대회가 돼 버렸군요.

맘에 드시면 팍팍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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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이 마지막 카드를 다 펼쳤습니다.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김춘추 역의 최종병기 유승호군이 예고편에 살짝 얼굴을 내밀었군요. 많은 분들이 지난주에서 이번주로 넘어오는 '삼한일통' 에피소드의 실망감을 씻으실 수 있을 듯 합니다.

김춘추는 신라는 물론 한국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엄친아 왕으로 거론됩니다. 미남 귀공자로 학식과 덕망, 그리고 현실 정치 능력을 고루 갖춘 인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승호라는 차세대 꽃미남이 청소년기의 김춘추 역으로 일찌감치 캐스팅되어 있었습니다.

그럼 김춘추는 정말 미남이었을까요? 혹시 요즘의 시각으로 볼 때 전혀 미남이 아니거나 오히려 특이한 용모는 아니었을까요? 의혹을 추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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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가 김춘추 역에 캐스팅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김춘추가 미남이라는 기록은 여기 저기 펼쳐져 있습니다. 일본서기의 기록에 따르면 김춘추가 일본을 방문한 것은 고모도쿠(孝德)왕 시대. '김춘추는 잘생기고 말을 아주 잘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봐도 그렇습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당나라 황제가 김춘추의 용모를 칭찬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왕위에 오르기 전 태자(동궁) 자격으로 고구려 정벌을 위해 청병차 당나라에 들어갔다. 당나라 임금이 그 풍채를 칭찬해 '신성한 사람'이라고 하고 굳이 자기 곁에 머물러 주기를 원했지만 애써 설득시켜 돌아왔다. (在東宮時 欲征高麗 因請兵入唐 唐帝賞其風彩 謂爲神聖之人 固留侍衛 力請乃還)

뭐 물론 다른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아무튼 대표적인 귀공자의 풍모를 가진 왕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사인 '삼국사기'도 짧지만 왕의 외모와 총명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왕은 의표가 뛰어나고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뜻을 지녔다(王儀表英偉, 幼有濟世志)

이런 기록들을 훑어볼 때 외모가 출중했던 것만은 분명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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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의문이 하나 떠오릅니다. 그것은 '삼국유사'에서 위에 서술한 '신성지인' 바로 앞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왕은 하루에 쌀 서말과 장끼 아홉마리씩을 먹었다. 백제가 망한 뒤에는 점심을 거르기 시작했지만 이때도 하루에 쌀 여섯말, 술 여섯말, 꿩 열마리를 먹었다. (王膳一日飯米三斗 雄雉九首 自庚申年滅百濟後 除晝膳 但朝暮而已 然計一日米六斗 酒六斗 雉十首)

그러니까 백제 멸망 이전까지는 한끼에 밥 한공기(한 말 크기)와 꿩 세마리 씩을 드시다가 백제 멸망 후에는 아침과 저녁만 먹는 대신 한끼에 쌀 세말과 꿩 다섯마리를 드신 모양입니다. 오히려 백제가 멸망하고 나서 한끼에 드시는 양은 더 많아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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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꿩의 크기를 닭과 비슷하다고 친다면,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덜 먹을 때 하루에 치킨 아홉마리(혹은 삼계탕 아홉 그릇), 좀 더 먹을 때에는 치킨 열 마리를 드시는 분은 과연 어떤 체형을 갖고 있을까요. 이건 일반인의 식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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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게 한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양은 절대 아닙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다른 숫자들(예를 들어 지철로왕의 체격이나 진평왕의 키 같은)에 비하면 대단히 현실적인 숫자입니다. 요즘도 웬만한 고등학교 씨름부 학생이라면 저 정도는 거뜬히 먹을 겁니다. 즉,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체형은, 요즘의 꽃미남들과는 상당히 달랐을 거란 점입니다. 저렇게 먹고 얼마나 운동을 했을 지 모르지만, 아마도 모델보다는 씨름 선수에 가까운 체형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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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냉정하게 보자면, '의표가 출중하고', '용모가 신성하다'는 것이 반드시 요즘의 시각에서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위에 나오는 마신 부우 같은 체형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비명을 지르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 시대엔 저런게 미의 상징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런 시대가 있다면 그때 태어났어야 했는데...)

물론 저 식사량 얘기가 아예 '왕을 신비롭게 그려내기 위한 조작'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보시는 분들은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얼굴을 강호동이나 개그맨 유민상에 맞추기보다는 유승호로 상상하시는 것이 여러 모로 정신건강에 좋겠죠. 뭐 누가 실제로 만나보고 온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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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져서 태종무열왕의 능력치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추천이 공짜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팍팍!

비담의 활약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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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세 개'가 무엇이냐는 넌센스 퀴즈가 있었습니다. 정답은 '아이템 세 개'. 이와 유사하게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물고기가 뭐냐'는 것도 있었죠. 정답은 아이디어(魚)였죠. 그만치 기획 회의라는게 지긋지긋했다는 뜻입니다.

요즘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아마도 '섭외'일 겁니다. 기자들뿐만이 아닙니다. 방송국에서도 구성작가의 역량으로 집필력 못잖게 섭외력이 중요한 기준이 된지 오랩니다. 연예인들의 지위가 급상승하면서 사회 전분야에서 연예인 섭외의 수요가 밀려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대학 축제는 물론 어지간한 고등학교 축제에도 연예인들이 필수라더군요.

QTV '열혈기자'에서도 출연자들을 자주 좌절시키는 것이 바로 이 섭외입니다. 요즘 '내가 만약 저런 미션을 받았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을 가끔 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일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친구들은 과연 어떻게 연예인들을 섭외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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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V에서 진행중인 '열혈기자'는 연예기자가 되기를 원하는 열두명의 도전자가 매주 미션을 수행하고 최종 승자 1명이 채용되는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입니다. 도전자들은 첫회부터 섭외의 무서움을 맛봐야 했습니다. 첫 미션이 각각 3명씩의 연예인 이름만을 받고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그들의 위치를 찾아가 사진을 찍어 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저렇게 '맨땅에 헤딩'을 하라면 잘들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잘들 해 내더군요. 내심 놀랐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최근 네번째 미션으로 주어진 것이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연예계 현상을 영상 뉴스로 만들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미션이 '사진만 찍어 오면 된다'는 것이었다면, 네번째 미션은 한 단계 더 어려워 진 셈입니다. 이번엔 최소한 인터뷰까지 따 와야 하기 때문이죠.

이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 지켜봤습니다. 팀마다 대응 방안이 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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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팀. 이 팀에는 삼촌이 방송국 간부인 K양이 있었습니다. K양에겐 정말 든든한 백그라운드인 셈이죠. K양은 첫번째 미션 때에도 삼촌의 도움을 적잖이 받았습니다.

이번에도 삼촌의 도움으로 K양은 웬만한 취재 공력으로는 가기 힘든 곳까지 출입하며 영상에 담았습니다. 물론 이들이 친척의 도움으로 앉아서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닙니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음악 페스티발을 취재하는 열의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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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앉아서 쉽게 떡먹기를 한 팀'은 두번째 팀이었습니다. 이 팀에는 모 기획사 사장님이 집안 어른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K군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이 팀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여성 5인조 카라 측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촬영 내용은 정말 영양가가 넘쳤습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연예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나갔어도 저렇게 협조가 잘 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죠.^^ 하지만 문제는 쉬운 떡을 그냥 먹었을 뿐, 참신한 구상이나 기획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문제점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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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팀. 이 팀 멤버들에게는 '방송국 삼촌'도, '기획사 사장님과 친한 삼촌'도 없었습니다. 결국 '일반인의 뼈저림'을 가장 심각하게 느낀 것도 이 팀이었죠.

이들은 (1) 연예인의 이름을 죽 적는다 (2) 인터넷을 이용해 기획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전화번호를 따낸다 (3) 기획사마다 전화를 한다는 단순 무식 돌파력의 3단계 노선을 채택했습니다. 오기 하나로 수백명의 기획사에 전화를 한 것이죠. '영상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으로.

그렇게 해서 딱 한명의 연예인을 섭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인맥 없는 섭외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영상 뉴스=연예인 인터뷰 섭외'라는 선입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여러 모로 아쉽습니다. 반드시 인터뷰만이 영상 뉴스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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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어려움 끝에 간신히 섭외에 성공하니 기쁨 두배.)

이렇게 세 팀의 미션 해결 과정을 살펴보다 보니 문득 궁금증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잘 아는 매니저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사람과의 대화를 편의상 한 사람으로 정리했습니다.)

- 혹시 요즘 일반인들로부터 섭외 요청이 있나?
"글쎄, 일반인이라니, 어떤 일반인들 말인지?"

- 이를테면 행사 섭외.
"뭐 행사전문업체를 통해서 올 때가 더 많다. 그냥 일반인들이 바로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 대학 총학생회 같은 곳은 자기네가 직접 연락을 하잖나.
"그런 데는 이미 프로고... 그 친구들은 자기네끼리 정보 교환도 하고 해서 이제 사정에 아주 빠삭하다. 몇군데 학교가 연결해서 가격 네고까지 들어온다."

- 고등학교는?
"고딩들은 아직 '아무개 방송사 누구 피디 아들 다니는 학교' 이런 식으로 오는 경우가 많지. 고딩들이 직접 전화해서 섭외하고 하는 일들은 드문 것 같다. 학부형들이 대신 전화한다."

- 드물다면 있긴 있단 말인가.
"있긴 있었다. 그런데 아직 애일텐데 너무 애 아닌 척 해서 좀 재수없었다. 지가 어른인줄 아는 것 같았다. 애들은 좀 애 같은 맛이 있어야지."

- 그래서 안 갔나.
"스케줄도 안 맞고 해서 안 갔다. 뭐 재수없어도 조건 맞으면 갈수 있었지."

- 일반인이 직접 연락하면 잘 해주나.
"학교 방송제에 축하 영상 따 달라는 연락은 엄청나게 많이 온다. 다 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런건 웬만하면 해주려고 한다. 사인 해 주는 거랑 비슷하고... 안해주면 요즘은 인터넷에서 씹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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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봉사, 자선 요청도 많을텐데.
"사실 이런게 더 부담스럽다. 시간 많이 뺏기고, 돈은 당연히 안 되고... 한군데 가면 거기는 가고 왜 우린 안 가냐는 말도 나오고. 거기다 가끔 사기도 있다. 분명 무료 행사라고 갔는데 가보면 사람들이 '돈내고 들어와서 이게 뭐냐'고 한적도 있다. 그렇다고 거기까지 가서 무대에 안 올라가면 욕은 우리가 먹는다. 웬만하면 검증된 곳만 하려고 한다."

- 결혼식 축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해달라면 사실 난감하다. 그래도 아는 사람의 축가라야 가수도 할 맛이 나지 않겠나. 가끔 아는 피디의 친구의 친구까지 해달라는 사람도 있는데 솔직히 이건 양심불량이다. 축가 해주고 돈 달라 할 수도 없고 - 물론 주면 받긴 하지만 - 가수한테 미안하다. 팬들 축가는 해준 적 있다."

- 일반인이 연예인 섭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달라.
"잘 알면서 왜 그러나? 일단 뭐니뭐니해도 인맥이 최고다. 기자도 있고 피디도 있지만, 매니저만큼 연예인 섭외 잘 하는 사람은 없다. 아는 매니저가 있으면 최고다. 같은 처지라서 한번 도와달라고 하면 다들 도와준다. 언제 입장이 바뀔지 모르니까."

- 그게 안되면?
"팬클럽 회원이라도 있어야지. 싸이 1촌이라도 아무 관계 없는 것보단 나을 거다. 물론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도 정성을 보이고, 세상 이치를 좀 알만한 사람이면 얘기 못할 사람 없다. 페이 문제도 있고, 사기도 많으니까 경계하는거지 우리가 무슨 사람을 가리거나 하는 건 아니다. 정성을 들이고 믿음이 가고 하면 도와줄 일은 도와주고 돈 받을 일은 돈 받고 한다. 그렇게하면 중간업체 안 끼고 할수도 있지. 뭣보다 정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평소 알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키워드는 결국 '정성'이었습니다.

'열혈기자' 멤버들이 만난 클릭비 오종혁의 말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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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오해하시면 곤란합니다. '미리 연락 안 하고 현장에 가서 몸으로 부딪히는게 낫다'는 말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땀에 범벅이 되어, 이 사람이 나를 진정 필요로 하고 있고, 이런 정성을 갖고 있다고 설복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뜻이죠. )

결론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 가장 중요한 건 정성과 진심이더군요. 여기에 인맥을 더하면 제목에서 말한 세가지 조건이 완성됩니다. 정성과 진심이 통할 때라면, 당장은 안 될 일이 있을 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안 될 일은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에 관여하면서 참 많은 걸 느끼게 됩니다.

물론 '맨땅'에 헤딩한다고 뭐든 그 자리에서 해피엔딩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해피엔딩은 먼 미래의 일까지 감안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정말 진심을 담아 노력하면 당장은 안 될지 몰라도 언젠가는 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가장 손쉬운 길인 '인맥'을 형성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바로 '정성'과 '진심'이기 때문이죠. 이건 반드시 연예인 섭외에서만 통하는 얘기는 아닐 겁니다.

P.S. '인맥이 중요하다'고 해서 저한테 부탁하진 마세요.^ 저 힘 없습니다. 그리고 그냥 가지 마시고 아래 추천을 좀 꾸욱.;;

P.S.2. QTV '열혈기자' 방송시간입니다.

화요일 오후 11시 (말하자면 '본방'은 이때입니다)
목요일 오전 1시
금요일 오후 6시
토요일 오후 9시
일요일 오전 11시
월요일 낮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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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idol) 그룹 멤버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동방신기 사태는 물밑에서 장기화되어 가는 듯 하고, 2PM의 리더 재범이 미국으로 돌아간데 이어 SS501의 김현중은 신종 플루로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공통점 없는 사건들이지만 이런 뉴스들이 일으키는 반향을 보면, 이들의 팬이 아닌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대체 아이들이 뭐길래'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거죠.

한국은 1996년 H.O.T의 출현과 함께 아이들 시대를 맞게 됩니다. 10년이 조금 넘은 역사죠. 아이들 그룹의 운영이나 결성에 있어 아직 한국은 초보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그룹이라는 존재와 사회적인 영향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경우를 참고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아이들 그룹을 만들고, 독특한 운영 노하우를 키워온 나라가 바로 일본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아이들 그룹 운영은 올해로 47년에 달합니다.

일본 아이들 그룹을 오래 전부터 좋아하고, 자니즈의 팬이었던 분들에게는 상식적인 내용일 겁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의 '아이들 입문'을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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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펑크라는 문학 장르를 세상에 알린 '뉴로맨서'의 작가 윌리엄 깁슨의 장편 소설 중에 '아이도루(Idoru)'라는 작품이 있다. 1997년작이다 보니 당시 인기를 얻고 있던 일본의 사이버 가수 교코에 착안한 미래 사회의 사이버 스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왜 책의 제목은 아이들(Idol)이 아니라 아이도루(Idoru)일까. 당연히 '아이도루'는 '아이들'의 일본식 발음이다(사실 한국에도 '아이들'보다는 '아이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훨씬 많다. 심지어 몇몇 언론사는 '아이돌'이 공식 표기 방침이기도 하다). 깁슨은 소위 '만들어진 아이들 스타'는 미국보다 일본이 원조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아이들 그룹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필요할 듯 하다. 보통 팝 아이들(pop idol)이라고 하면 십대들이 열광하는 인기 스타를 통칭하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그렇고 비틀즈도 그랬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들 그룹이라는 말은 특정한 형태의 뮤지션들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즉 ▲10대 초반, 늦어도 10대 중반부터 전문적인 기획자에 의해 발굴된 멤버들로 구성돼야 하고 ▲데뷔 전 상당기간의 트레이닝을 거쳐야 하며 ▲가사와 음악 역시 전문적인 기획자들에게 의존하며 ▲팬들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해가는 운명을 갖는다는 점이 아이들 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팀들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에 따라 볼 때 서태지와 아이들은 팝 아이들이긴 하지만 아이들 그룹은 될 수 없다.

영미권에서는 보이 밴드(boy band)라는 말이 좀 더 보편적으로 쓰인다. 이 말 역시 사용되면서 의미가 조금씩 변했다. 처음 쓰인 것은 마이클 잭슨과 형들로 이뤄진 잭슨5가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한 1968년 무렵이다. 이 시기의 보이 밴드라는 말은 그냥 나이 어린 멤버들로 이뤄진 그룹이라는 정도였지만, 1984년 뉴 키즈 온 더 블럭이 신화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보이 밴드=아이들 그룹'이라는 시각이 보편화됐다.

그런데 아이들 그룹의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마이클 잭슨과 잭슨 5가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인 1962년, 이미 오늘날의 형태와 거의 차이가 없는 아이들 그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바로 일본에서 결성된 사상 최초의 아이들 그룹 자니즈(Johnny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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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31세였던 자니 기타가와는 16세의 마이에 히로미와 이이노 오사미, 15세의 나카타니 료, 14세의 아오이 테루히코 등 네 미소년을 모아 10대 소녀들을 겨냥한 그룹을 만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태생인 기타가와는 주일 미국 대사관 직원으로 일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가 우연히 음반 기획자로 변신했다.

자니즈는 멤버들 개개인의 매력은 물론 쉽고 밝은 노래,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춤과 몸짓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또 멤버들은 청소년 대상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하며 다양한 재능을 뽐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기타가와는 아예 재능있는 소년들을 조기에 발굴해 제 2의 자니즈로 키워낼 수 있는 기획사를 창업한다. 이것이 바로 자니즈 사무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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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 자니즈라는 이름을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일본 연예계에 손톱만큼의 지식만 있다면 자니즈 출신 보이 밴드들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6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들 그룹이 자니즈라면 70년대에는 포 리브스(Four Leaves)가 있었고 80년대에는 본격적인 댄싱 아이들 그룹 쇼넨타이, 즉 소년대(少年隊)가 위력을 뽐냈다. 1984년 3인조로 구성된 쇼넨타이의 인기는 곧바로 국내에도 이어져 소방차라는 대체 그룹이 만들어졌다. 물론 자니즈의 최대 걸작은 1991년 데뷔한 SMAP다.

1988년, 기타가와는 당시 인기 아이들 그룹이던 히카루 겐지의 백댄서로 12명의 소년 댄싱 팀을 가동시켰다. 이미 스타가 되어 있는 팀과 함께 무대에 세움으로서 누가 실전에서 통할지를 검증하는 방법이었다(이런 시스템은 나중에 자니즈 주니어라는 '2군' 체제로 확립된다). 이 12명 중 기무라 타쿠야, 나카이 마사히로, 구사나기 츠요시(초난강), 이나가키 고로, 가토리 신고, 모리 가쓰유키의 6명이 SMAP이라는 새로운 팀으로 선택됐다. 1991년 이들이 정식 데뷔했을 때의 나이는 나카이와 기무라가 19세, 이나가키와 모리가 18세, 구사나기가 17세, 막내인 가토리는 14세였다.

일본 아이들 역사상 최고의 그룹으로 불리는 SMAP은 1993년 '캐릭터 부여'라는 새로운 전략과 함께 순항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략에 따라 나카이는 열정적인 리더, 이나가키는 시니컬한 귀공자, 구사나기는 배려심 강한 착한 친구 등의 이미지로 어필하기 시작했다. 기무라 다쿠야가 드라마에 데뷔하며 뒷날 일본 최고의 인기남으로 발돋움할 계기가 만들어진 것도 1993년의 일이다. 1996년 모리의 탈퇴로 5인조가 된 SMAP은 오늘날까지도 그룹을 유지하면서 멤버 개개인이 모두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들이 함께 진행하는 토크쇼 'SMAP X SMAP'에 게스트로도 초대되느냐 마느냐는 한류 스타들이 일본 내에서 스타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의 기준으로 통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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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P 이후에도 자니즈는 V6, 아라시, 캇툰(KAT-TUN) 등 최정상의 인기 그룹들을 배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여성 멤버가 단 한명이라도 있는 그룹은 배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니즈는 1980년대 오렌지 시스터즈라는 여성 그룹 프로젝트를 시도하다 실패한 것 외에는 아예 여자 연습생을 받지 않고 있다.

이런 운영은 곧바로 기타가와의 성적 취향에 대한 의혹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기타가와는 여러 차례 자기 휘하 아이들 멤버들에 대한 성희롱 혐의를 받았다.

1999년, 일본의 대표적인 시사주간지 슈칸분슈운(週刊文春)은 자니즈 내부의 성추행과 음주, 흡연 등 어두운 구석을 캐는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이로 인해 자니즈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됐고, 기타가와는 의회 청문회에도 나서야 했다. 혐의를 전면 부장한 기타가와는 곧 슈칸분슈운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재판은 5년 이상 진행되다가 결국 '슈칸분슈운 측의 취재에는 자니즈의 비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보도할만한 근거가 있었다. 단 음주와 흡연 부분에서 자니즈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다소 애매한 결론이 내려졌다. 물론 이런 내용 역시 주요 언론에 의해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고, 자니즈는 지금도 최고의 미소년 아이들 그룹들을 내놓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동성애나 성추행 부분을 제외하고 한국의 아이들 업계는 대동소이하게 자니즈 모델을 모방하고 있다. 90년대 초에도 잼이나 투투, 룰라 같은 댄스 그룹들이 인기를 얻었지만 최초의 한국형 아이들 그룹이라면 아무래도 1996년의 H.O.T를 꼽게 된다. 이후 SM이 S.E.S와 신화, 대성기획(현 DSP)가 젝스키스와 핑클을 내놔 성공을 이어가자 이들을 모방한 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급조된 아이들 그룹에는 역시 한계가 있었다. SM과 대성기획 이외의 기획사 소속 아이들 그룹 중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것은 소방차 멤버 출신 김태형이 제작한 NRG 정도일 뿐, 나머지는 대부분 단명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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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와 가요계의 경기 추락은 '신생 아이들 그룹'의 맥을 끊었다. 아이들 그룹은 고비용일 수밖에 없다. 연습생이건, 데뷔 초년생이건 백댄서와 스태프를 포함해 장정 10~20여명이 몰려다니면 밥값이나 교통비만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공백을 깬 건 역시 SM. 2004년 등장한 동방신기는 오랜만에 아이들 그룹에 목말랐던 10대 팬들에게 감로수 역할을 했다. 4~5팀을 만들 에이스들을 뽑아 한 팀에 몰아넣었으니 자질은 우수할 수밖에 없었고 동방신기는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아이들 그룹 비즈니스의 필연인 장기 계약과 처우 문제는 또다시 그룹의 장래에 암운을 던졌다.

일본이라면 어땠을까. 자니즈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기본적으로 모든 계약은 주기적으로 갱신되지만 사실상 종신 계약이라고 보는 게 좋다. 자니즈가 포기하지 않는 한, 스스로 자니즈를 벗어나 연예계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니 기타가와와 슈칸분슈운의 법정 분쟁이 진행중인 기간에도 분슈운(文藝春秋)계열의 매체를 제외하곤 어떤 방송이나 신문도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만치 자니즈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한류 스타들을 놓고 일본 매체 기자들이 가장 의아해 하던 것이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사무소(소속사)가 자주 바뀌냐"는 것이었다. 일본식 사고방식으로 보면 동방신기의 이익 배분 논란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자니즈는 물론 어떤 기획사에서도 한창 인기가 치솟는 20대 초반의 청춘 스타들은 돈을 벌지 못한다. 소속 연예인들은 연공 서열과 왕년의 활동 경력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 당장 인기 있는 최고 스타보다 10년 20년 '근속'한 왕년의 스타들이 훨씬 더 많은 돈을 가져간다. 이것이 일본의 '사무소' 시스템이다. 일본 연예인들에게 데뷔 5년째인 가수들이 1인당 20억원 넘게 돈을 벌었다고 하면 눈이 휘둥그레 질 것이다.

아이들 그룹이란 연예계의 냉혹함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학업과 학교생활로 보낼 10대 시기를 이른 직업훈련으로 보낸 아이들 그룹 멤버들은 춤과 노래, 그리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을 제외하면 성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요소들이 결핍되기 쉽다. 물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설사 아이들로 성공한다 해도 그 전성기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찬란한 시기를 되새김하며 범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함을 동경하는 10대들은 날로 늘어가는 추세다. 결국 이들에게 조언해줄 어른들의 현명함만이 비극을 줄일 수 있다.
(끝)



좀 더 길게 썼어야겠지만 주어진 지면의 한계로 이 정도에 끝냈습니다. 미국 아이들과 일본 아이들의 비교 등도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쇼넨타이가 활동하던 80년대만 해도 한국은 단순히 일본 대중문화의 모방국이었습니다. 쇼넨타이가 준 충격이 바로 이 분들을 만들어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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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한국 최초의 아이들 그룹(?)이라고 봐도 좋을 이 분들은 당시에는 초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분들이 성공을 거둔 이후로 차츰 댄스 그룹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룹들이 등장하기 시작햇죠. 일본과는 달리 혼성 그룹들이 두각을 보였습니다. 윤현숙의 잼을 비롯해 투투와 룰라의 전성기가 있었고, 노이즈도 이 시기를 빛낸 그룹이죠.

그런 시기를 지나 이제는 한국산 아이들이 일본 시장을 넘나들며 한류를 이끌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아이들 그룹이라고 해도 일본에서는 10대 시장을 공략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등의 문제는 있지만 절대적인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변모한 것만으로도 상황은 고무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 그룹의 육성과 운영은 꽤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겠습니다. 물론 그 멤버 개개인에게는 인생을 좌우하는 학교생활과 바꾼 배움의 장이라는 면에서 더더욱 그렇죠. 글 말미에 '어른들의 책임'을 강조한 것은 그런 부분들을 고려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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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아이들 그룹을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팬들입니다. 팬덤의 결집과 육성, 관리는 아이들 그룹의 생존과 지극히 밀접한 관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팬들의 사랑은 맹목적이라는 겁니다. 이들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애당초 정상적인 판단을 요구한다면 아이들 그룹이라는 현상 자체가 존재하지 못할 수도 있을테니 말입니다.

팬들의 이런 맹목적인 사랑은 가끔 아이들 아티스트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지나친 팬들의 사랑은 가끔 스토킹으로 변하기도 하고, 안티 팬들을 불러모으기도 합니다. 팬덤은 흔히 아이들의 기획사와 대립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그릇된 판단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가끔 팬들은 아픈 아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도 긴 주삿바늘이 아기를 찌르는 걸 볼 수 없다며 한사코 아기를 내려놓지 않는 엄마를 연상시킬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팬들의 사랑은 아이들 아티스트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때로 팬들은 그들의 우상을 죽인 것이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석기도 합니다. 요즘도 팬들의 바보같은 사랑때문에 완전히 재기불능이 될 지도 모르는 한 아이들 아티스트의 모습에 눈길이 갑니다. 과연 그 팬들은,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동이 바로 '오빠'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짧은 글에 많은 내용을 담느라 부실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연재를 하다가 > 여기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요즘은 스타 아나운서가 없을까  (52) 2009.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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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 제작진은 퀴즈놀이에 푹 빠진 듯 합니다. 저번에는 '사다함의 매화'로 낚시질을 하더니 이번에는 유신과 보종의 비재 대결에서 신라(新羅)라는 국호의 세번째 의미(?)를 묻는 문제로 다음주 월요일까지 시청자들을 붙잡아 놓기로 결심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 비밀이 다음주까지 지켜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답은 이미 8일 방송된 드라마 속에서 전부 나와 있었습니다. 너무 당연한 답이 있어서 설마 이게 답일까 했던 분들, 여러분의 생각이 맞습니다. 정답은 삼국통일입니다. 그 밖에 무슨 답이 또 있겠습니까.

특히 주인공들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동안 죽방 이문식은 혼자 정답을 말하기도 했죠.




문노가 화랑들에게 낸 문제는 '지증왕 때 생긴 신라라는 국호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으며, 그 세 가지 의미는 화랑의 존재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니 세 가지 의미를 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무력의 양성, 신흥 세력의 육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는 다들 알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번째 의미는 아무도 - 심지어 문제를 낸 문노까지도 -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낭도들이 답을 놓고 고민하는 장면. 죽방은 태연히 "신라면 새 그물이잖아. 화랑들이 그물이 돼 갖고, 그 그물에다 백제고 고구려고 다 쓸어 넣겠다는 거 아녀! 그물이 답이여!"라고 말합니다. 다른 낭도들이 "그렇게 쉬울 리가...?"하고 의심하자 "그래서 국선이시지, 그렇게 허를 찌르는거여"합니다.

죽방의 판단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답은 맞았습니다. 그리고 유신과 덕만이 거칠부가 숨겨 놓은 소엽도 표면의 미세한 글자를 들여다 보는 장면에서, 정답은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덟 자가 보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군요.

회전을 시켜 보면 좀 더 확실히 보입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 입니다. 해석하자면 '나라의 덕업을 새롭게 하여 천하를 받아들이다'라는 얘기가 됩니다. 즉, 나라를 잘 다스려 부강하게 하고 그를 통해 덕을 쌓아 사방으로 영토를 펼쳐 나가자는 얘기죠. 이 시기의 신라에서 다른 말로 바꾸면 삼한일통, 즉 삼국통일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개인적으로 '선덕여왕' 제작진에게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계속해서 그 궁금증을 증폭시키기 위해 이 감춰진(?) 의미를 '진흥왕의 불가능한 꿈'이라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이건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진흥왕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꿈꿨고, 거칠부가 편찬한 국사에 그 뜻을 담아 후세에 전하려 했으나 뒤를 이은 진지왕이 그 뜻을 잇기를 거부했고, 진지왕이 폐위된 뒤에도 미실과 세종이 짜고 그 뜻을 감추었기 때문에 지금(드라마 속의 시대)에 와서는 그 뜻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식으로 설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덕여왕' 제작진의 설정에 따르자면, 미실이 권력을 쥐고 있던 진평왕 때에는 왕도, 왕비도, 대신들도, 장군들도, 화랑들도, 아무도 '삼국 통일'이라는 대명제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아무도 이것이 국가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는 겁니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웃음이 나옵니다.

우선 당시 신라의 힘을 보겠습니다. 진흥왕 이후의 신라에게 있어 삼국통일이란 '불가능한 꿈'도 아니요, 어느 한 시대의 집권세력이 감추려 한다 해서 감춰질 정도로 불분명한 목표일 수도 없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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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봐도 금방 드러나지만 진흥왕대의 신라는 이미 한반도의 핵인 한강 하구를 손에 넣었고 함경남도 지역까지 깊숙히 고구려의 영토로 침투하는 등 삼국시대의 주도권을 잡아가기 시작한 나라입니다.

더구나 신라인의 스케일은 그저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해 통일을 이루는 정도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흔히 '삼국통일의 염원이 담긴 탑' 정도로 알려진 황룡사 9층탑은 한 층마다 한 나라씩, 모두 아홉 나라를 병탄하겠다는 엄청난 야망이 담긴 탑입니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 3층은 오월, 4층은 탁라, 5층은 응유, 6층 말갈, 7층 단원, 8층 여적, 9층은 예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9층의 예맥 속에 포함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동아시아 전체를 집어삼키겠다는 에너지를 뿜어내는 탑인 것입니다. 이 탑을 세운 것이 선덕여왕때라고 해서 이런 비전을 선덕여왕 혼자 갖고 있었다고 밀어붙이는 건 좀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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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미실은 "국가가 전쟁에 나서면 왕권은 강화되고 귀족들은 세력을 잃을텐데 무엇때문에 내가 세번째 의미(삼국통일)를 계승해야 하느냐"고 냉소하지만, 이것 역시 단순하기 짝이 없는 생각입니다. 그럼 대체 미실은 '삼국 통일', 다른 말로 '백제와 고구려의 정복'을 접어둔 채 어떤 주장으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굳히고, 화랑이라는 무장 집단의 발전을 정당화했을까요.  

요즘 같으면 '국방'과 '정복 전쟁'은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7세기에도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는, 그저 방어만을 위한 무력'이라는 개념이 존재했을까요. 어림없는 얘기입니다. 당시의 눈높이로 보자면 화랑과 상무정신의 존재는 정복 전쟁으로 이어질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진흥왕의 정신은 책 한권을 태우고 다시 쓰고 해서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흥왕의 의지를 표현하는 증표는 역사책 몇권보다 훨씬 선명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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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네 군데에 세워진 진흥왕 순수비입니다. 진흥왕이 스스로 개척한 국토를 돌아보며 세운 세 군데의 비석만큼 팽창해가는 신라의 에너지를 잘 상징해주는 유물은 없습니다. 순수비가 뻔히 서 있는데 책 몇권을 조작한다고 이만한 국가적인 목표가 잊혀질 거란 생각은 참 안이합니다.

이 드라마의 설정대로라면 미실 일파는 반 통일세력이고, 그 이유는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사리사욕에 빠져 국가적인 목표를 잃었다는 점이 미실 그룹이 타도되어야 하는 이유이고, 덕만은 이를 통해 자신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명분이란 바로 삼국 통일이라는 명제를 내걸고 온 나라의 힘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다음 주의 '선덕여왕' 내용일 듯 합니다.

반통일적인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 통일을 명분으로 내건 젊은 개혁세력 덕만. 용어는 그럴듯하지만 비유는 참 공허합니다. 용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끌어다 붙인 억지 춘향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걸 '작가의 메시지'라고 생각하겠죠.

저는 이미 몇달 전부터 '대체 미실과 덕만의 차이는 무엇인가, 덕만이 미실을 대신해야 한다면 그 명분은 무엇인가에 대해 드라마 제작진이 답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 드라마의 초점이 '대체 덕만이 미실에게서 권력을 빼앗아도 좋은 명분은 무엇일까' 쪽으로 옮아가고 있는 것을 보며 내심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작진이 내놓은 답은 참 실망스럽습니다. 그냥 판타지 드라마로 남아 있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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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의 문노가 마침내 솜씨를 과시했습니다. 칼 한번 뽑지 않고 비재를 위해 연무장에 모인 화랑들을 단번에 제압해 버리더군요. '내가 칼 뽑으면 니들은 다 죽어'라는 식의 위압감이 넘쳤습니다. 알천을 비롯한 10화랑들도 감히 손가락 하나 손댈 수 없었습니다.

문노가 검으로 단연 신라 최고라는 것은 이미 '선덕여왕'의 설정이자 '화랑세기'의 기본 이해 사항입니다. 문노 이후의 화랑들 중 문노의 제자가 아닌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화랑세기'에 문노의 검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문노 이외의 다른 화랑들은 어느 정도인지가 다뤄져 있지는 않습니다.

문노를 포함해 '선덕여왕'에 등장하는 화랑들의 칼솜씨에 순위를 매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랭킹을 좀 따져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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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는 당연히 문노.

'검술이 뛰어나고 의기가 빼어났다'는 것이 문노에 대한 기록입니다.

문노편에는 사다함의 어머니 옥진궁주가 '문노로 하여금 사다함의 스승이 되게 하였다'고 되어 있고, 하종편에도 '(하종이)15세때 화랑에 입문하여 역사는 토함공에게, 노래는 이화공에게, 검술은 문노에게, 춤은 미생에게 배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미생과 관련된 기록. 미생은 12세에 사다함의 문도로 화랑에 입문했으나 너무 어려서(혹은 운동신경이 떨어져서) 말을 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화랑에 들어올 수 없는 상태였지만 열혈 누나 미실이 나서 "왜 내 동생을 함부로 떨어뜨리느냐"고 반발해 그대로 눌러 앉게 됐다고 합니다. 이때 문노의 반응입니다.

...문노가 꾸짖어 "무릇 낭도가 말에 오르지 못하고 검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하루 아침에 일이 생기면 어디에 쓸 것인가"하였다. 사다함이 용서를 빌어 말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우입니다. 얼굴이 아름답고 춤을 잘 추어 또한 여러 사람을 위로할 수 있으니 받아들일 만 하지 않겠습니까"하여 문노가 다시 따지지 않았다.

아무튼 이런 배경을 기본으로 창조된 '선덕여왕'의 문노는 '고독한 최강의 사나이' 이미지를 굳히고 있습니다. 젊은 화랑들과는 이미 비교할 수 없는 수준차이가 나죠. 드라마상으로는 스카우터도 필요 없는 단연 최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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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는 칠숙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미 문노와 짧긴 하지만 그나마 1대1로 싸움을 펼쳤습니다. 또 미실도 '네가 문노에 비해 뒤질 것이 뭐가 있느냐'며 칠숙의 솜씨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죠.

검술도 검술이지만 터미네이터같은 집념과 사막의 폭풍우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은 랭킹 2위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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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는 비담.

문노의 제자로서 엄청난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졌지만 최근 미실에게 잡혔을 때 혼자 다수의 포위를 뚫고 탈출하는 것은 아직 무리라는 점도 드러났기 때문에 문노나 칠숙에 비교할 실력은 아닌 듯 합니다. 칠숙과는 한번 겨뤄 봤지만 당시 칠숙은 그의 검술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냥 치고 빠졌죠.

하지만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는 점이나, 물불 안 가리는 과감성 덕분에 동년배의 화랑들에 비해서는 이미 한 수 위의 실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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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위: 유신

죽방 이문식의 대사로 '백만스물 하나, 백만스물 둘'이 나온 것으로 보아 드라마 관계자가 이 블로그를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듭니다(물론 처음부터 작가진이 '백만 스물 하나'를 염두에 두고 썼을수도 있겠죠).

아무튼 그런 무식한(?) 타격 훈련의 힘 덕분에 유신은 이미 보종을 넘어서 기존 화랑 중에서는 최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덕만을 구하기 위해 비담과 함께 화랑들을 상대로 싸울 때, 문노가 '최근에 검을 겨룬 적이 없지?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잘 모르는구먼'이라면서 힌트를 준 적이 있죠. 그리고 실제로 보종과 석품을 단칼에 물리쳤습니다.

보종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이미 '선덕여왕' 드라마 상에서 유신의 검술은 보종을 넘어서 있습니다. 8일 방송일지 다음주일지 유신과 보종은 차대 풍월주 자리를 놓고 대결을 펼치겠지만 유신의 낙승이 예상됩니다.

(이미 시청자들이 유신의 우세를 점치는 상황이므로 예선에서 유신과 맞붙은 석품이나 기타 등등이 보종의 우승을 위해 유신에게 반칙으로 부상을 입힌다... 등등의 전개가 예상됩니다. 가능하면 이런 진부한 전개는 좀 피해 줬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물론 '화랑세기'상의 기록에도 14세 호림(호재)의 다음인 15세 풍월주는 유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유신의 승리는 역사적인 필연입니다.^^ 보종은 유신으로부터 풍월주의 자리를 물려 받을 운명이죠. 안타깝지만 조연의 팔자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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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위: 보종

설원과 미실도 당연히 비재를 하면 보종이 1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10화랑들도 이미 보종에게 모두 무릎을 꿇은 상태이니 그중 최강은 보종입니다. 알천과 석품도 "이미 유신 빼고는 모두 보종에게 굴복했다"고 이야기했죠. 보종의 낭도들도 "보종과 다른 사람들이 겨루면 재미가 없어서 못 본다(너무 쉽게 승부가 가려진다는 뜻)"고 할 정도로 보종의 검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미 어린 시절, 서라벌에 처음 올라온 유신은 보종에게 수준차를 느끼며 굴욕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보종은 비담과 유신에게 망신을 당한 적이 있죠.

생각해보면 '선덕여왕'에서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보종입니다. 문노를 찾으러 갔다가 임종의 화살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서현을 죽이려다 미실에게 죽음을 당할 뻔 하고, 힘든 일만 있으면 파견되고... 조연의 운명 치고는 참 가혹합니다. 일복을 타고 났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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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사실 별 의미도 없고, '선덕여왕' 제작진도 이 이상의 서열 매기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알천이 그리 검술로는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그나자나 뒷날 칠숙이 석품과 함께 난을 일으키려다 실패해 죽음을 당할 때(뭐 대략 미실파의 마지막 실질적 위해 시도라고 생각되지만) 혁혁한 공을 세워야 할 염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의문입니다. 염장은 17세 풍월주로 보종과 춘추 사이를 잇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뭐 드라마에서는 월야나 알천, 지금까지 전혀 활약이 없는 필탄 등이 그 역할을 대신 할 수도 있겠죠.

그러고 보니 궁금합니다. 칠숙이 덕만을 살해하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칠 때 칠숙을 제압하는 것은 문노일까요, 비담일까요, 유신일까요. 여기서 또 한번 순위 변동의 계기가 생길 듯 합니다.^




그동안 '선덕여왕'에 대해 썼던 글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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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V '열혈기자'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리얼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연예기자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12명의 도전자가 예선을 통과해 현재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고, 그중 한명이 최종 선발됩니다.

공식적으로 세번째 미션은 일간스포츠의 간판 상품 중 하나인 취중토크. 스타와의 '술 한잔' 을 통해 솔직한 진심을 들여다보는 특색있는 인터뷰입니다. 초기에는 '취중토크'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인터뷰어로 나서는 기자도 주당 기자가 나섰고, 인터뷰 대상도 연예계에서 소문난 주당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짜 인터뷰에서 누룩 냄새가 났죠. 하지만 영원히 그렇게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가끔씩 '기사에서 술 냄새가 안 난다'는 비판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나 건강상의 문제로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 주당 중의 주당이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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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석은 "사회에 나와서 한번도 나보다 술 센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다"고 공언하는 공식 인증된 주당입니다. 인기 연예인 중에는 참 술 센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30-30클럽(하룻밤에 양주 스트레이트 30잔과 폭탄주 30잔을 마셔야 가입할 수 있다는 클럽)'을 자랑하는 영화배우 정모씨^^를 비롯해 수많은 주당들을 만나봤지만 남희석만큼 위압감을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개그맨과 MC로 10년이 넘게 발군의 활약을 하고 있는 남희석은 현재 일간스포츠 지면에 '남희석의 아무거나'를 연재하고 있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합니다. 글쓰는 일로 10년 넘게 먹고 살고 있지만, 사실 남희석의 글을 보다 보면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물론 전문인력이 아니기 때문에 문장을 쓰는 세세한 스킬이나 맞춤법, 어법에서는 걸리는 부분이 있지만 발상의 자유로움이나 전개 방식, 글을 시작하고 끝맺는 방식 등은 천부적인 소질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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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열혈기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스타와의 술자리 인터뷰는 제작진이나 저희나 꼭 한번 넣어 보고 싶은 아이템이었고, 이 코너를 넣는다면 최고의 적임자는 남희석일 거라고 생각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이 코너에 출연 요청을 했고, 장난기 넘치는 그는 "그거 재미있겠다"며 흔쾌히 응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해 인터뷰는 현장에서 인터뷰 대상을 만나기 전에 승부가 60% 이상 결정돼 있다는 것이 정론입니다. 얼마나 사전에 꼼꼼하게 준비를 해 갔느냐가 인터뷰의 성패를 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죠. 현장에서의 순발력이나 친화력도 매우 중요한 요소지만, 사전 준비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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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개인적으로는 도전자들이 남희석에 대해 많은 준비를 해 오기를 기대했지만 제작진은 '깜짝 인터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출연자들이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남희석이 갑자기 출현하는게 가장 효과적일 거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선 양보를 해야 했죠.

설정은 이랬습니다. 남희석과의 취중토크를 앞두고 출연자들은 하루 종일 힘든 미션을 수행하느라 분주했습니다. 도전자들은 '1차 미션 수행 뒤에 선배와의 술자리가 있고, 거기서 환담하는 내용을 촬영한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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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의 의도대로 도전자들은 힘든 미션을 마쳐 홀가분한 심정으로 술자리에 모였습니다. 소주로 만든 폭탄주가 몇잔 돌았고, 다들 마음이 풀어진 상태에서 '남희석이 술집 바깥에 도착했다'는 사인이 왔습니다. 도전자들과 함께 술자리에 앉아 있던 저도 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습니다.

"...기자라면 항상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지.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다가도 주변에 연예인이 나타나면 주목할 줄 알아야 해. 이를테면 지금처럼 저렇게 스타가 갑자기 나타날 수도 있단 말이야."

'저렇게'하고 가리킨 순간 남희석이 술집 안에 등장하자 출연자들은 바로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출연자 A양은 나중에 "어? 정말 술을 마시다가 연예인을 만날 때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이것이 새로운 미션이라는 걸 알고 다들 바짝 긴장했죠.

남희석에게는 이미 "까칠하고 날카롭게 대해 달라"고 요청을 해 놓은 상태였고, 그는 역시 자기 역할을 120% 해냈습니다. 처음 술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폭탄주 제조자의 임무를 차지한 그는 "난 술 안 마시는 기자와는 친해지고 싶지가 않아요"로 시작해 출연자들의 기를 팍팍 눌렀습니다.

10대1이지만 대한민국 정상급 MC의 노련함과 기세 앞에서 도전자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더군요. '질문이 재미없어' '지금 기자회견하나?' '어디 술자리에서 필기를 하고 그래' 등등의 코멘트에 도전자들은 우왕좌왕하기 바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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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남희석은 몇가지 인터뷰에 대한 팁을 주고 있었습니다. "'요즘 방송 뭐 뭐 하세요'라는 질문이 가장 기분나쁘다. 그정도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인터뷰하러 나온 사람의 자세 아닌가", "'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나요?'라는 질문도 수준 이하다. 정상적으로 질문을 하면서 에피소드가 흘러나올 수 있게 해야지." "특히 술자리에서는 술자리 분위기에 걸맞게 질문을 해야지. 허허 하하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면 분위기가 뭐가 되겠나."

하프타임. 남희석이 바깥에서 취재진에게 "너무 재미있다. 이런 건 매일 해도 되겠다"며 신나하고 있을 무렵 저는 짐짓 도전자들을 혼냈습니다. 남희석의 기에 눌려 다들 기사 한 줄 쓸 게 없는 질문만 하거나 아예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는 결의를 다지더군요. 하지만 후반전에도 이런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워낙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기량차(?)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혼자 질문을 독점했다' '알맹이 없는 질문만 많이 하면 뭘 하나'라는 식으로 비판을 받은 도전자 B양은 화장실에서 혼자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또 가장 술이 약한 C양은 남희석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세라 따라 마시다가 장렬하게 첫 전사자로 기록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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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도전자들도 지리멸렬. 남희석의 팬클럽 회원이었다는 D군은 친분을 과시하긴 했지만 기사로 쓸 거리는 그닥 뽑아내질 못했고 E군은 "질문이 재미없다"는 이유로 몇 차례 커트당한 뒤 좌절했습니다. F군은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말문을 열지 못할 정도더군요. G군은 의욕은 돋보였지만 "예의가 없다"는 면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계란 기자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던 듯 남희석은 예상 시간을 훨씬 넘긴 3시간의 술자리가 끝난 뒤 "해장 겸 매운 짬뽕을 먹으러 가자"며 그때까지 살아남은 열혈기자들을 인솔하고 밤거리로 사라졌습니다. 이미 구도는 '형님과 동생들'로 짜여진 상태였습니다.

다음날 남희석은 남자 도전자 세명을 점찍었습니다. "연예인 입장에서 기자를 만나더라도, 어딘가 관심이 가고 끌리는 사람인 경우가 있어. 그런 게 좋은 자질인 것 같아. 아무개는 웬만한 연예인들이면 만나서 대화를 하더라도 '이 사람 봐라?'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 있어. 또 다른 아무개는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자세가 탄탄하다는 생각이 들고, 또 아무개는 왠지 친근감이 느껴지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 제작진이나 저희 쪽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흥미로운 시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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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도전자들은 영화배우 장진영의 빈소와 이영애의 동선을 체크하는 '단순작업'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일명 '뻗치기'라고 불리는 작업입니다. 하염없이 시간을 낚시질하며 현장에서 기다리는 작업이죠. 법조 기자들은 검찰청이나 법원 앞에서 죽치고, 사회부 기자들은 경찰서에서 죽치듯 연예 기자들도 이렇게 시간과의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됐습니다.

두세시간씩 멍하니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납니다. '내가 과연 이런 일이나 하려고 여기까지 왔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죠. 하지만 이들에겐 그것마저도 새로운 자극이고 신기한 현장 경험으로 여겨졌던 듯 합니다.

처음에는 '과연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기자를 뽑을 수 있을까'하는 비관적인 생각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시작한 뒤에는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이 퍽 행운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말 현장에서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열정이란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전염성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P.S. 그나자나 회를 거듭할 수록 누군가를 떨어뜨리고 누군가를 남겨야 한다는 건, 점점 힘들어진다는 게 고민입니다. 생각같아선 다 데리고 있고 싶은데 말이죠.

남희석이 등장하는 '열혈기자'는 이번주와 다음주에 걸쳐 QTV에서 방송됩니다.

방송시간입니다.

화요일 오후 11시 (말하자면 '본방'은 이때입니다)
목요일 오전 1시
금요일 오후 6시
토요일 오후 9시
일요일 오전 11시
월요일 낮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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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일수록 이상하게 정작 보게 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외국 뮤지컬깨나 보셨다는 분들 가운데서도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입니다. 2007년 토니상에서 8개 부문을 수상했고, 올해에야 브로드웨이를 벗어나 영국과 일본 등지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질 정도로 '새로운'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근래 몇년 사이 나온 작품 가운데서 '빌리 엘리엇'이나 '위키드' 못잖게 입소문이 났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뮤지컬의 주제가 역할을 하고 있는 'I Believe'는 뮤지컬 '렌트'의 'Seasons of Love'나 '헤어'의 'Let the Sun Shine in'에 해당하는 히트 넘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 뒤의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 강렬함이 며칠이 지나도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시간과 자본의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꼭 보셔야 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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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부터 - 19세기 말 독일의 한 소도시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은 활화산처럼 뿜어나오는 젊음의 호기심과 욕구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여전히 18세기의 방법으로 청소년들을 통제하려 합니다. 15세 소녀 벤둘라 역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어른들에 대한 갈증에 시달립니다.

체벌이 당연히 허용되는 학교. 우등생이며 머리가 일찍 깬 멜키어와 낙제 위기의 열등생에다 겁보인 모리츠는 절친한 친구 사이. 특히 멜키어는 억압 일변도의 세상을 냉소할 수 있을 정도의 지성을 갖추지만, 15세라는 나이 때문에 역시 어른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어린 시절의 소꼽친구였던 멜키어와 벤둘라가 다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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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인만 놓고 보면 철지난 성장 드라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뮤지컬. 귀가 뻥 뚫리는 음악이 처음 보는 작품인데도 관객의 심장 박동을 두배로 빨라지게 합니다.

위에서는 'I Believe'를 다른 의미로 '렌트'와 '헤어'에 비교했지만 사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작품 전체를 볼 때에도 그 두 뮤지컬과 상당히 많은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당연히 '세상을 향한 강렬한 반항의 외침'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흔히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은 '아가씨와 건달들'같은 소극이나 본격적으로 오페라를 모방하기 시작한 '팬텀 오브 오페라'나 '레미제라블'같은 대작들을 연상하지만 뮤지컬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이나 반역의 목소리를 한껏 높이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줄거리의 흐름은 다소 유치하고 뻔할 수도 있지만 거기 들어간 노래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긋지긋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 역할을 해 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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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나오는 노래들은 '헤어' 풍의 사이키델릭에서 시애틀 출신 얼터너티브 밴드들을 연상시키는 그런지 록까지, 배우들은 마지막 한 호흡까지 무대에 쏟아 부으라는, '부르다 쓰러질' 노래들의 연속입니다. 현재 공연이 이뤄지고 있는 연강 홀은 500석 정도 규모. 무대의 에너지가 그대로 객석에 전해집니다. 그야말로 후끈 달아오릅니다.

백번 얘기하는 것보다 노래를 한번 들어보는게 빠를 겁니다. I Believe. 특이하게도 2007년 11월, 극장 파업으로 공연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 '스프링 어웨이크닝'의 브로드웨이 출연진이 거리에서 I Believe를 부르는 모습이 담긴 영상입니다.




다음은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2007년 토니상 시상식장 축하 공연.




그리고 UCLA에서 열린 시연회장에서의 'Totally Fuck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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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배우들의 역량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려 해도 이 공연의 제작사 뮤지컬헤븐이 만든 홈페이지는 어떤 배우가 어떤 역할을 연기하는지조차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최소한의 정보도 주지 않는 홈페이지는 도대체 왜 만들어 놓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다른 모든 사람들을 고려해도 가장 놀라운 모습을 보여준 건 벤둘라 역의 김유영입니다. 무대에 처음 올라왔을 때부터 '아, 이 역할은 딱 쟤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유난히 센 벤둘라 역할을 그 깔끔하게 해낸 걸 보면 김유영은 올시즌의 가장 빛나는 신인 중 하나로 꼽을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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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국내 배우들의 연기가 브로드웨이판에 비해 겉모습만 따랐을 뿐이라는 의견을 보이고 있지만 최소한 김유영만 보더라도 감히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P.S.2 그러고 보니 '헤어'도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됐군요. 한국에서는 언제쯤 '헤어'를 볼 수 있을지... 누군가 한번 가져와야 할 작품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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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가 소리소문 없이 귀국하려다 길목을 지키던 취재진에게 '적발'됐습니다. 느닷없이 카메라를 발견했으니 놀랐을 법도 한데 찍힌 사진을 보면 우아하기만 합니다. 역시 월드스타답게 취재진을 발견한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얼굴을 가리거나 어설픈 달리기로 '못볼 꼴'을 찍히는 우를 범하지 않았더군요.

사진들을 보니 입국검사장보다 훨씬 안쪽인 방역검색대 앞에까지 진출해서 찍은 사진도 있던데 이 지점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같은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속사정을 알고 보니 취재진의 치밀함이 참 놀랍습니다. 경쟁매체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스타들을 추적하는 취재진도 고생이지만, 문득 소위 신비주의 노선을 가고 있는 스타들도 참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렇게까지 대중과의 접촉을 피하는 데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문득, 거의 80년 전부터 신비주의를 몸소 실천했던 한 스타의 일생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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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비주의

1936년 11월 23일, 미국의 사진 전문 주간지 라이프(Life)는 창간 특집으로 그레타 가르보의 화보를 실었다. 인터뷰는 없었다.

당시 최고의 톱스타로 군림했던 가르보는 화면 밖에서는 철저하게 은둔자의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 초기를 제외하면 어떤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았고, 팬들의 사인 요청도 거절했으며 자기가 주연한 영화의 시사회에도 참석을 거부했다. 41년 은퇴 후 90년 사망할 때까지 어떤 공식 석상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마디로 신비주의의 원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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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신비주의(mysticism)란 ‘자연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방법을 통해 절대자와 소통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신비주의라는 말은 ‘대중과의 소통을 극도로 기피해 자신을 신비로운 존재로 남겨두려는 연예인들의 전략’을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의미의 ‘한국적 신비주의’는 마땅히 영어로 옮길 말이 없다. 간혹 비유적인 의미로 쓰이는 가르보이즘(Garbo-ism)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평소 이런 신비주의의 화신으로 꼽히던 이영애가 결혼까지도 극비리에 치러 화제다. 남편의 신원을 일절 공개하지 않은 채 해외에서 식을 올리고, 결혼 이튿날 법무법인을 통해 사실 통보만을 한 결과 온갖 억측과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쏟아지고 있다. 이영애의 행동에 대해서도 국민적인 스타로서 팬들에 대한 예의를 잊은 행동이라는 비판론과 아무리 스타라 해도 스스로 사생활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는 옹호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분위기다.

사실 이영애에 대한 이런 큰 관심은 본인이 자초한 것으로 보인다. 가르보의 전기 작가인 존 베인브리지는 “결국 언론 보도에 대한 지나친 공포가 그녀를 역사상 가장 파헤쳐 보고 싶은 존재로 만들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신비화한 결과가 필요 이상의 궁금증으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일부 팬이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결혼으로 인한 논란이 장기적으로 이영애에게 해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정작 걱정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마땅히 내세울 출연작도 없이 그저 이영애풍의 신비주의를 추종하며 30초짜리 CF를 대표작으로 삼고 있는 일부 스타들이다. 이영애야 10년 뒤에도 ‘대장금의 이영애’로 기억되겠지만, 과연 그들은 무엇으로 기억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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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위에서 말했듯, '대중과의 직접 접촉이나 매체를 통한 접촉을 모두 극도로 기피하는 경향'을 과연 '신비주의'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약간 복잡한 문제입니다. 제1감으로는 누군가의 무신경한 오용이 굳어진 경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신비'와 '소통'이라는 키워드 때문에 아주 얼토당토 않은 적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한국어로 연예인들의 '신비주의'라고 쓰고서 그걸 mysticism이라고 옮겼다간 큰일 난다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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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우면서도 차가운 미모로 근 20년간 톱스타의 자리를 지킨 가르보의 은둔생활은 여러 모로 특이합니다. 가르보는 신분을 감추고 어디 적막산골로 간 것이 아니라 센트럴 파크가 내려다 보이는 맨하탄 한복판의 고급 아파트에서 만년을 보냈습니다. 라이프는 만년에도 가르보를 몇번 더 괴롭힌 적이 있지만, 가르보는 입을 꼭 다물고 취재진을 뿌리쳤을 뿐입니다. (위 사진은 사망 4일 전 '라이프'가 포착한 1990년의 가르보입니다. 지팡이를 들어 사진기자에게 반감을 표현하고 있죠. ...노인을 이렇게까지 괴롭히다니.)

아무튼 신비주의의 요체는 분명합니다. '가릴 수록 더 궁금하다'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전략이죠.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개인적인 성향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스타덤에 높이 오를수록 사생활이라는 것은 사라져가기 때문이죠. 소위 유명세라는 것도 날이 갈수록 비싸집니다.

(가끔 신문 등에서도 '유명세를 타다'와 같은 표현을 볼 수 있는데 이건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실수입니다. '유명세'라는 말은 有名勢가 아니라 有名稅, 즉 유명해진 대가로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 세금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명세는 '타는' 것이 아니라 '치르는' 것이고, 부정적인 의미로만 쓸 수 있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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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신부 이영애는 이제 귀국을 했고, 결혼한 사람으로서 생활해 갈 겁니다. 당장은 취재 열기가 뜨겁겠지만 언젠가는 그 관심도 잦아들겠죠. 어쩌면 신비주의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직 연기생활을 계속할지, 하지 않을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연기를 계속 한다면 앞으로는 좀 더 자연스럽게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 상태에서 연기를 중단하고 '보통 사람'이 된다면 오히려 대중들의 관심은 더욱 커지겠죠.

결론은 이렇습니다. 이영애든 그레타 가르보든, 스타덤에서 멀어진 다음에 생각해 볼 때 신비주의는 매우 사소한 문제입니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 카메라를 피했건 안 피했건, 이건 한 배우의 일생을 돌이켜 볼 때 그냥 에피소드로나 기억될 문제죠. 그레타 가르보는 '안나 카레리나'나 '마타 하리'로 기억될 것이고, 이영애는 '장금이'나 '금자씨'로 기억될 겁니다.

하지만 그만한 업적도 없이 신비주의로만 인기를 유지하는 배우들은 과연 늘그막에 어떻게 될까요. 대체 무엇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요. 과연 몇십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왕년의 유명했던 핸드폰/샴푸 모델'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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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장진영이라는 배우는 어떤 배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인에 대한 예의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장진영은 단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 표현을 '였습니다'라고 써야 한다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연기력으로, 미모로 장진영과 경쟁할 만한 30대 여배우는 감히 '없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1997년쯤의 일이군요. 지금은 사라진 현대방송(HBS)의 '연예특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고인은 탤런트 김승환씨와 함께 MC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도 그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인을 처음 알게 된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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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장진영은 미스코리아 출신(1993년 충남 진)이었고 미모와 몸매로 주목을 끌었지만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장진영의 소속사는 스타들의 집결지였죠. 이승연 장동건 김지수가 한창 빛을 발하고 있었고 원빈과 윤손하가 발군의 신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뒤늦게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양정아와 장진영이 있었습니다.

스타군단의 막내...란 쉽게 스타들의 후광으로 떠오를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얼마나 욕심을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당시 소속사 대표의 말은 "갖출 건 다 갖췄지만 본인이 그리 열심히 하려는 의욕이 없는 것 같다. 스스로 하려는 뜻이 없으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쪽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미모와 몸매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지만 이 대표의 예상대로 장진영은 쉽게 스타덤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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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장진영의 첫 모습으로 기억하는 것이 1999년의 '순풍산부인과'지만 그 전에도 장진영의 출연작은 여러 편 있었습니다. 1997년 출연작인 '내안의 천사'때 OST 표지(위 사진)에서도 아랫줄 오른쪽 장진영을 못 알아 보실 분도 있을 겁니다. '마음이 고와야지'같은 드라마에선 극중 비중도 꽤 컸습니다. 단지 히트작이 없었을 뿐이죠.
 
농담처럼 베스트극장 '그와 함께 타이타닉을 보다'가 대표작이라고 말하던 무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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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장간호사 역할은 이미 연예계에서는 '유망주라기엔 너무 세월이 흘렀고,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엔 너무 지명도가 떨어지는' 장진영이 하기엔 좀 아슬아슬한 역이었습니다.

어쨌든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배우가 하기엔 너무 작은 역이었죠. 말하자면 백의종군인 셈입니다. 아마도 장진영이 '어디 한번 열심히 해 보자'고 각오를 다진 것이 '순풍산부인과'를 전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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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손짓에 응한 장진영은 '반칙왕'에서 송강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관장 딸(요즘 드라마 '드림'의 손담비 역에 가깝군요) 역으로, '싸이렌'에서 신현준의 애인 역으로 출연합니다. '반칙왕'은 좀 주목을 끌었지만 '싸이렌'에선 영화도, 장진영의 역할도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냥 '주인공도 애인이 있어야겠지?'라는 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캐릭터였죠.

하지만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은 채, 천연덕스럽게 "다음부턴 좀 비중이 큰 작품을 골라야겠다"고 말하던 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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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장진영은 마침내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지금껏 개인적으로 한국 공포영화 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윤종찬 감독의 '소름'에서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열연을 펼칩니다. '소름'은 철거 직전의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저주'라는 것의 본질을 파고드는 걸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걸작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장진영과 김명민이라는 두 주인공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고 생각지 않았던 장진영으로선 자신의 가능성을 이 한편으로 증명해 보인 셈이죠. 영화는 그리 히트하지 못했지만 김명민과 장진영, 두 배우의 이름은 한국 연예계에서 '더 비싸지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할' 명단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첫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습니다.

사실 그리 흥행작도 아닌 영화에서, 그리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배우에게 이런 상이 주어진다는 건 파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와 장진영이 던진 파문이 컸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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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가 조금 아쉬움을 남긴 화제작이었다면 '싱글즈'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자주인공으로도 장진영을 능가하는 배우는 없다는 확신을 주는 흥행작이었습니다.

김주혁과 장진영이라는 배우의 절묘한 호흡이 '한국에서도 이런 장르가 성공할 수 있다'는 모범사례를 만들었죠. 장진영은 이 작품으로 두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한손에 거머쥐었습니다. 장진영으로서는 '귀여운 여자'의 이미지로도 변신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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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5년 '청연'의 흥행 실패, 2006년 '연애,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의 부진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연애참'은 장진영이 자존심을 건 열연을 펼쳤지만 제작편수 증가와 한국영화 인플레이션의 틈바구니에서 관객 동원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자존심만 강한, 실속이라곤 없는 고참 호스테스 역을 맡은 장진영의 연기가 돋보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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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 수상 발표 때, "감독님에게 서운했고, (김)승우 오빠에게 서운했다"며 눈물을 흘리던 장진영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리고는 2007년작 '로비스트'가 있었고, 그 이후로 장진영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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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데뷔 연도에 비해 장진영이 실제로 주목받은 기간은 매우 짧은 편입니다. 관객 동원으로 봐도 장진영은 천만 관객은 커녕 3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도 갖지 못한 배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고인에 대한 인사치레가 아닙니다.

장진영은 대형 스크린을 혼자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였습니다. 또 활동기간이 훨씬 더 긴 배우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발군의 적응력을 보인 사례는 현역 여배우들 가운데선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까지 해낸 기록만으로도 대단한 배우임을 확인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고인이 조금만 더 일찍, 연기로 인생의 승부를 걸었더라면 아마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장진영보다 훨씬 더 큰 배우로 남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씩씩하고 밝은 성격에 두주불사의 친화력을 자랑하던 이 배우가 아직 한창 나이에 이렇게 팬들의 곁을 떠난 건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때 병세가 회복되어 바깥나들이도 할 수 있다던 그가 어느새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다니, 이렇게 글로 조상하는 일도, 참 부질없이 느껴집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도 더욱 빛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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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재'. 역시 이 노래겠죠.



P.S. 출생 연도가 최종 확인되어 1972년으로 정정합니다. 오해를 끼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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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이 잇달아 새로운 인물들의 활약으로 흥미를 더해 가고 있습니다. 서라벌 10화랑으로 부족해서 가야파의 1인자 월야(주상욱)에다 사라졌던 미실의 아들 비담(김남길), 그리고 다음엔 또 누가 등장할지 모르겠군요. 물론 춘추 유승호는 여전히 위력적입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어라 저기서 인물이 나와야 하는데 왜 안 나올까 할 때가 있습니다. 사극이라 특히 그렇죠. 진지-진평왕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반드시 나와야 할 인물들이 안 나옵니다. 김유신과 덕만의 로맨스를 강조하기 위해 천관녀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건 지난번에도 얘기했었지만 당대를 호령해야 할 유명한 화랑들이 다수 드라마에서 사라진 건 좀 아쉬운 구석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인물들이 안 보일까요.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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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광법사

사실 진흥-진지-진평왕 시대의 화랑 얘기를 하면서 원광법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반칙입니다. 화랑을 논하면서 세속오계를 빼놓을 수 없고, 오계를 부정하지 않는데 원광법사가 단역으로라도 등장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젭니다. (하지만 제작진은 전혀 생각이 없는 듯 합니다)

물론 지금 나오면 그것도 반칙입니다. 이유는 삼국사기 기록을 토대로 볼 때 원광법사의 입적 연도가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태어난 연도인 602년이기 때문입니다. 춘추가 수나라로 유학을 갔다 오는 마당에 원광법사가 살아 있다는 건 좀 심각한 왜곡이죠.

하지만 원광법사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이 화랑들은 세속오계를 모르는 족보 없는 화랑들이 돼 버렸습니다. 수나라에서 돌아온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항을 불러 오계를 내리고 화랑도의 근본으로 삼으라고 해야 할텐데, 그 대목이 빠지니 오계를 논할 시점을 놓친 것입니다.

사실 원광법사가 '선덕여왕'에서 사라진 뒤에는 더 복잡한 이유가 있습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따르고 있는 '화랑세기'의 기록을 신뢰한다면, 원광의 아버지는 4세 풍월주 이화랑이고 어머니는 세종(미실의 남편)의 누나인 숙명공주입니다. 세종의 외조카가 되어 버리니 세종-미실 측과 너무 가깝죠. 이화랑과 숙명공주는 원광과 동생 보리공(12세 풍월주)를 낳아 신라의 화랑 계보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화랑오계를 내리는 등 당시 신라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원광법사가 세종-미실의 측근이라는 건 드라마 속에서 미실에 대항하는 덕만 세력의 정통성을 지나치게 크게 해치는 구도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는 원광법사를 등장시킬 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게 역사 왜곡은 좀 작작 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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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산과 추항

마찬가지로 원광법사로부터 오계의 가르침을 받아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을 다른 화랑들에게 널리 퍼뜨리는 중책을 맡은 인물들인데 어디론가 실종돼 버렸습니다. 아마 원광법사의 생몰연대에서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이들은 이미 어디선가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를 해 버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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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형

사실 '선덕여왕'의 흐름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던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활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비형은 진지왕(사륜왕)이 죽은 뒤 그 혼령이 서라벌의 미녀 도화랑과 정을 맺어 태어난 아들입니다.

기록을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진지왕은 도화랑의 미모에 반해 궁으로 불러 범하려 합니다. 하지만 도화랑은 "남편이 있는 몸이 어찌 몸을 함부로 하겠느냐"며 왕명을 거역하죠. 기특하게 여긴 진지왕이 "그럼 남편이 없다면 되겠느냐"고 묻자 도화랑은 "그렇다면 허락하겠다"고 답합니다.

진지왕은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고('선덕여왕'에 따르면 미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죽죠), 도화랑의 남편 역시 3년 뒤 죽습니다. 남편이 죽은 어느날,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랑을 찾아와 동침을 요구하고, 열달 뒤 비형이 태어납니다.

왕가의 핏줄이라 소문이 나자 진평왕은 비형을 궁중으로 데려와 길렀는데, 이때에도 비형은 밤마다 몰래 혼자 빠져나가 귀신들을 거느리고 노는 비범한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때 진평왕은 비형에게 "귀신들 가운데 인간세상을 섬길만한 자가 있느냐"고 묻자 비형은 길달이라는 귀신을 추천합니다. 이에 진평왕은 길달을 각간 임종(네. 아래 사진에 나오는 10화랑 중의 바로 그 임종입니다)의 양자로 삼게 합니다.

이렇게 귀신을 거느릴 정도로 신통방통한 비형. 물론 과학 기술을 좋아하는 김영현 작가에겐 이런 비형의 사적이 공자님께서 꺼리라 하신 괴력난신에 해당할테니 '선덕여왕'에서 제거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뒷날 누군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드라마를 만든다면 그때는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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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륵선화 미시

진지왕때 흥륜사에서 진자대사가 기도해 맞아들인 미시(未尸)는 불교의 미래불인 미륵의 화신으로 인정받은 소년 화랑입니다. 홀연히 나타나 신라의 화랑, 국선이 되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는 전설의 화랑입니다.
물론 '화랑세기'의 역대 풍월주 명단에는 미시랑의 이름이나 사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삼국유사의 미시랑 관련 기록에는 최초의 화랑 이름이 설원이라고 되어 있죠. 물론 '화랑세기'에는 설원의 앞에 6명의 풍월주가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상충되는 기록들을 모두 살리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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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호세, 구참

진평왕때의 명승인 혜숙대사의 사적에 나오는 화랑들입니다. 특히 구참공이 사냥과 살생을 즐기는 것을 보고 혜숙대사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그렇게 고기가 좋으면 이 살을 드시오" 하고 권했다는 이야기는 꽤 유명합니다.
물론 '화랑세기'에도 이런 인물들은 아예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화랑세기'가 정교한 위서라면 이런 화랑들을 일부러라도 등장시켜서 삼국유사 기록과 맞아 떨어지는 부분을 늘려 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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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향가 '모죽지랑가'로 유명한 죽지랑이 등장해야 하겠으나 주요 활동 연대가 진덕여왕 이후이니 아직 태어났어도 어린 소년일 겁니다. 유신랑의 동생인 흠순이나 관창의 아버지 품일 같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충분히 등장할 여지가 있겠지만 그다지 큰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김유신을 중심으로 '족보 있는(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근거가 나오는)' 알천과 임종, 필탄이 중심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화랑세기에만 나오는 보종이나 그 계열의 '창작 화랑진'은 조역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게 되겠죠.

이런 구도는 '그들은 왜 역사에 등장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역사는 승자만을 기록한다'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매우 교묘한 배치입니다. 마야부인이 미실을 향해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은 것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미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설명 역할을 하듯, 드라마 속 화랑들의 운명 역시 미실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설명이 이뤄질 겁니다. 이런 인물 배치 속에도 제작진이 시청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봐야겠죠.

그나자나 비형랑이 '선덕여왕'에 나온다면 비담 못잖은 괴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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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드라마의 본격화가 곧 드라마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리 있는 얘깁니다. 왕년에는 의사 가운이건, 이발사 가운이건 어쨌든 흰 가운만 입고 나오면 의사라는 식의 드라마도 꽤 있었죠. 하지만 요즘은 명찰 하나까지 신경을 써서 만드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그만큼 '날림 제작'은 사라져가는 분위기인 듯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어떤 직업의 세계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나왔을 때 "실상은 저것과 전혀 달라!"라며 분개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불만이 나오지 않는 작품들이 매우 드물 지경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어느 쪽에 문제가 있는 걸까요?

그래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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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스타일'이 방송된 이후, 잡지사에 근무하는 여기자들(요즘은 주로 '에디터'라고 부르는 모양이다)의 반응이 이런 저런 방향에서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제작진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만족한다는 반응은 거의 없다. 99%가 "세상에 저런 잡지사가 어디 있냐"는 내용이다.

날마다 파티 의상인 김혜수를 두고 "어떻게 저렇게 입고 일을 하냐"는 반응이 기본이고 "남의 회사 어시(assistant, 즉 수습)를 돈 주고 빼간다는게 말이 되냐" "포토그래퍼가 기획회의에 들어오는 회사가 어디 있냐"는 등 디테일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스타일'만 그랬던 게 아니다. 직업의 세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치고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부터 '야, 정말 리얼하다. 실감난다'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는 당최 들어 보질 못했다. 신기할 정도다.

의사든 변호사든 예외가 없다. '종합병원' 이후 모든 메디컬 드라마, '애드버킷' 이후 모든 법정 드라마가 진짜 의사나 변호사들로부터는 "세상에 무슨 의사(혹은 변호사)가 그따위냐. 대체 병원(혹은 로펌)인지 놀이터인지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를 들어왔다. 최근의 '뉴하트'나 '파트너'에 이르기까지 주된 평가는 "저런 식으로 했다가는 당장 옷 벗어야 할 것"이란 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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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꼭 전문직만 그런 건 아니다. 농부든, 어부든, 간호사든, 항공사 여승무원이든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자신들의 직업에는 죄다 불만이다. 체크해 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재벌이나 조직폭력배들도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자신들의 역할이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재벌 2세들도 드라마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야, 저게 말이 되냐? 근데 너 혹시 니네 회사에 맘에 드는 여직원 있으면 저렇게 하냐?"하고 통화를 할까?)

물론 기자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연예 담당 기자들은 정상인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 지는 것 같다. 사실 '스타의 연인'에 나오던 얼띤 기자(정운택)나 영화 '과속 스캔들'에 나오던 봉필중 기자(임승대)를 마음에 들어 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다. 게다가 봉필중 기자처럼 기사를 썼다간 집이 몇 채 있어도 모자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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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되는 드라마 '드림'에 나오는 희한한 기자(정은표)는 사진 한 장의 댓가로 스포츠 백 하나에 가득 찬 현찰을 챙긴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하긴 그 정도 돈을 막 뿌려댈 수 있을 정도로 격투기 선수와 스포츠 에이전트들이 떼돈을 벌고 다니는 날이 오긴 했으면 좋겠다(이 친구들도 '드림'에 불만이 많더라는 얘기).

기자의 경우는 다른 직업들과 좀 다른 면도 있다. 다른 직업의 경우엔 좋은 변호사나 좋은 의사가 나오는 드라마도 '리얼리티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을 받곤 한다. 하지만 기자의 경우엔 아예 '좋은 기자'라는 것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다.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는 손예진이 주연했던 '스포트라이트' 정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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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경우에도 '정의를 지키는 신념에 찬 방송 기자'들과 '부패하고 타락하고 게으른 신문 기자'들이 드라마 속에서 아주 선명한 대조를 이뤘다(뭐 방송국에서 만든 거니까 이해한다. 신문사가 만들었다면 아마 반대가 됐겠지). 아무튼 일부나마 '좋은 기자'들을 다룬 죄로 이 드라마는 시청률에서 참패했다. 시청자들은 아마도 '좋은 기자'가 나오는 드라마를 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군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전문직 드라마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나 '온에어'를 두고 PD나 드라마 작가로부터 불평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연기자나 매니저들은 이들 드라마에 불만이 있었던 것 같지만, PD나 작가들이 이 드라마에 불만이 있었다면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을 거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혹시 작가협회에서는 '해당 직업을 가진 극중 인물들이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면 그 드라마는 망한다'고 가르치는 걸까? 그런데 이거 혹시 한국 드라마만 이런 걸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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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업은 모르지만 최소한 기자에 대한 한 한국드라마만 저런 건 아닌 듯 합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 더스틴 호프만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 1976)' 같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기자라는 종자들은 항상 무슨 일이 되게 하기보다는 안 되게 하는데 재능이 많은 존재들로 그려집니다.

아래 사진의 아저씨가 나오는 '다이 하드'가 대표적인 경우고, 대부분의 기자들은 하는 역할이란게 대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긴 이런 부분을 생각해보면 '스포트라이트'는 대단히 무모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 뭘 믿고 기자를 주인공으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제목에 대한 답은 나와 있는 셈입니다. '망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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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요즘 '스타일'을 본 잡지사 쪽의 반응이나 '드림'을 본 스포츠 에이전트, 혹은 이종격투계에서 나오는 반응들을 보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현실불감증'은 여전한 듯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현실보다 한심하게'가 아니라 '현실보다 너무 화려하게' 그려냈기 때문에 이 불만은 그냥 불만 수준으로 남아 있는게 다행일 듯 합니다. 만약 현실보다 나쁘게 그려졌다면 당장 소송이나 대대적인 항의를 받았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전에 간호사 단체나 항공사 여승무원 단체에서는 이런 일이 꽤 잦았죠. 바로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라는 항의 말입니다.

이런 항의를 고려한다면 역시 특정 직업을 나쁘게 그리는 것 보다는 좋게 그리는 것이 유리하겠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쁘게 그리는 것이 대세'인 이 직업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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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기대작 중 하나였던 마이클 만 감독의 '퍼블릭 에너미'를 보고 왔습니다. 조니 뎁과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하는 갱스터 무비라는데 안 보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죠. 이름 값으로 놓고 보면 왕년에 만 감독이 '히트'에서 이뤄냈던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경연 이후 최강의 진검 승부라고 부를 만 합니다.

이 영화는 1930년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로 잘 알려진 남녀 커플 강도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와 함께 가장 유명한 범죄자였던 존 딜린저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1930년대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대공황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이면서 미국의 FBI가 오늘날의 명성을 차지하기 시작한 시기, 그리고 제임스 캐그니 주연의 오리지널 영화 '퍼블릭 에너미'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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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강도 존 딜린저(조니 뎁)는 단정한 용모와 세련된 옷차림, 그리고 여자에겐 손을 대지 않고 은행을 털 때에도 저금하러 온 일반 고객의 지갑은 건드리지 않는 독특한 스타일로 팝스타 못잖은 명성을 누립니다. 그런 그는 어느날 클럽에서 미모의 빌리(마리옹 꼬띠야르)를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결국 딜린저와 빌리는 연인이 됩니다.

한편 쉴새없는 딜린저의 발호로 곤경에 몰린 FBI 국장 후버(존 크루덥)는 딜린저 못잖게 유명한 갱인 프리티보이를 사살한 명수사관 퍼기스(크리스찬 베일)를 FBI 시카고 지부장으로 임명하고 딜린저 체포의 전권을 맡깁니다. 일반 경찰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 낼 때 FBI라는 조직의 앞날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후버의 승부수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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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라는 새로운 스타를 내놓으며 70년대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예로 들었지만 딜린저를 소재로 한 영화도 한두편이 아닙니다. 한국에 비디오로 나왔던 영화만도 '델린저'와 '전설의 대도 딜린저' 등이 있습니다. 두 편 모두 딜린저와 퍼기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도 너무나 유명한 얘기지만, 혹시라도 이걸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테니 그 얘기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클 만은 1930년대 매스컴에 의해 '로빈 후드'로 묘사됐던 독특한 성격의 은행 강도를 다루는 데 있어, 역시 평소의 그답게, 다소 혼란스러운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만은 참 희한한, 극단에서 극단을 오가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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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뉴스 프로그램 PD 출신답게 냉정하면서도 관찰자의 시점에 남아 있는 연출을 즐기는 듯 하지만 어느 한 순간 격렬한 신파에 휘말리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결말은 산으로 가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스카 노미네이트작인 '인사이더'가 그의 작품 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공연'이라는 간판이 달린 '히트'일 겁니다.

그가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열정을 보여줄 때 '인사이더'나 윌 스미스 주연의 '알리'같은 영화가 나옵니다(단 '알리'는 너무 지루하기 때문에 비추). 하지만 그가 오우삼 못잖은 닭살 느와르 감독의 본색을 드러낼 때에는 '히트'나 '콜래트럴', 그리고 이번 '퍼블릭 에너미'같은 영화가 나오죠. 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최초의 작품인 '킵'이나 '라스트 모히칸' 같은 영화들은 갱들이 나오는 작품은 아니지만 후자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한때 그는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그가 갖고 있는 두 가지 세계의 화해를 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차기작에는 더욱 관심이 쏠렸지만 '퍼블릭 에너미'는 형식면에서의 높은 완성도에 비해 유난히 돋보이는 세계관의 부재 덕분에 불균형이 더욱 눈에 뜨는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단어가 좀 어렵다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좀 편안한 말로 풀어 설명하자면, 때깔과 만듦새는 매우 그럴 듯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좀 의아한 영화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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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가 그럴 듯하게 '있어 보이는' 것은 마이클 만이 깔아 놓은 알리바이가 꽤 그럴싸하기 때문입니다. 만은 딜린저를 시대를 잘못 태어난 낭만주의자이며, 그를 '퍼블릭 에너미'로 만든 것은 FBI 국장 에드가 후버라는 식의 서술 말입니다. 만은 영화 곳곳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인기 없는 인물인 에드가 후버가 진짜 악역이라는 식의 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조차도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은 듯 합니다.

게다가 관객들은 '퍼블릭 에너미'를 볼 때 '1930년대 미국 갱의 역사'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 속의 사건들은 그냥 만 감독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재배치되어 있습니다.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를 애인인 아나 프리셰트의 구출을 위해 목숨을 거는 순정남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많은 기록들은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그와 함께 있었던 폴리 해밀턴과도 연인 관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딜린저와 동시대의 갱들인 프리티보이 플로이드와 베이비페이스 넬슨은 모두 딜린저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 사소한 변동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 영화는 겉으로 포장된 것 만큼 '담담하고 감정을 배제한 채 묘사된 진짜 느와르의 시대'를 담고 있지 않다는 얘깁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겉멋에 치중해 알맹이는 하나 없는 화려한 한 폭의 그림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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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에서 남는 것은 상황 판단을 못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인 은행강도 존 딜린저와 한때 그의 치명적인 매력(...그런데 그것은 딜린저의 매력이라기보단 조니 뎁의 매력으로 보입니다)에 빠져 인생을 망친 아나 프레셰트의 덧없는 사랑 이야기 뿐입니다. 크리스찬 베일에겐 미안하지만 이 영화에서 '때로 자기 환멸에 빠지는 고독한 법의 집행자' 이미지는 그냥 겉돌다 사라질 뿐입니다.

너무나 캐스팅이 화려한 탓에 늘 실망하면서도 꼭 보게 되는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들.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게 되는 영화는 '인사이더'와 '마이애미 바이스' 정도입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부동심을 지켜 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길 기도해 봅니다. 아무튼 제 의견을 묻는다면, 보러 가시라고 추천하기 힘든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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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딜린저의 실제 얼굴과 영화 속 조니 뎁입니다. 뭐 그리 닮은 편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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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연예계를 돌이켜보면 참 굵직한 사건 사고가 한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자연 사건으로부터 최진실 유해 도난사건, 마이클 잭슨의 죽음까지 충격적인 일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나쁜 일만 있으라는 법은 없다는 걸 어제 깨달았습니다. 바로 휘트니 휴스턴의 복귀 소식입니다. 무려 7년만의 일이군요.

수많은 명가수들이 명멸하고 있고, '노래 잘 하는 여가수'에 대한 대명사도 어느새 "니가 무슨 휘트니 휴스턴이냐?"에서 "니가 무슨 머라이어 캐리냐?"로 바뀐지 오래지만 그래도 제 마음 속에는 진정한 이 시대 최고의 여가수는 휴스턴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셀린 디온도, 머라이어 캐리도, 알리샤 키스도 감히 거기에는 따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 복귀에 대한 생각(감격?)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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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휘트니 휴스턴, 누나가 돌아왔다

지난 2월 8일 그래미상 시상식장, 휘트니 휴스턴이 '올해의 R&B 앨범' 부문 수상자를 발표하기 위해 무대로 나서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수상자도 아닌 시상자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상을 받은 제니퍼 허드슨마저 "다른 사람도 아닌 휴스턴으로부터 상을 받다니"라며 감격을 감추지 않았다. 그 휴스턴이 최근 새 앨범을 내놓고 복귀를 선언했다. 7년만의 일이다.

'도대체 휘트니 휴스턴이 뭐길래 이 호들갑일까'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휴스턴이 판 음반의 수는 1억7000만장에 달한다.

전미 음반산업협회(RIAA)의 통계에 따르면 휘트니 휴스턴은 미국 내에서 지금까지 5400만장의 앨범을 팔아 역대 20위에 올라 있다. 여자 가수로는 네번째다. 특히 단 5장의 앨범으로 낸 성적이라는 게 경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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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 '휘트니 휴스턴'을 내놨을 때 그는 이미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머니 시씨 휴스턴은 그래미상을 수상한 관록의 가스펠 가수였고, 사촌인 디온 워윅은 이미 톱스타가 되어 있었다. 여기에 R&B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이 대모(代母)라면 그 성장 환경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이런 경우 주로 등장하는 것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격언이지만 휴스턴은 예외였다. 세번째 싱글 '세이빙 올 마이 러브 포 유(Saving All My Love for You)'가 빌보드 싱글 차트를 석권하는 등 5곡이 잇달아 히트했고 앨범은 14주 동안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전 세계에서 휴스턴의 추종자들이 등장할 정도로 그의 가창력은 여성 디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가끔 경쟁자로 꼽히는 머라이어 캐리조차도 "아레사 프랭클린과 휘트니 휴스턴이 없었다면, 그 후배들인 우리들 중 아무도 지금처럼 노래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높이 평가했다. 1992년 케빈 코스트너와 공연한 영화 '보디가드'도 주제가와 함께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고, 아이들 스타 출신인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도 화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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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지 않는 해는 없었다. 2001년, 앨범 6장에 1억 달러(약 1240억원)라는 초유의 계약에 성공했지만 가정 불화와 마약의 충격이 밀려왔다. 2007년 이혼이 성립되며 외신은 폐인이 된 휴스턴의 모습을 전송해왔다. 전 세계가 디바의 실종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마침내 6집 '아이 룩 투 유'의 발매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초 그래미 시상식 전야제에서 휴스턴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전성기의 힘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앨범도 마찬가지. 예전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편안해졌다는 느낌이다.

오는 9월 14일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는 휴스턴을 두고 외신은 "지난 10년간 가장 흥분되는 음악인의 복귀"라고 타전하고 있다. 올해 46세를 맞은 전설의 디바가 과연 "진짜 전설은 이제부터"라는 장담을 실현할지, 지켜보는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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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 휴스턴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과 머라이어 캐리가 처음 나타났을 때의 충격을 비교하자면 전자가 훨씬 큽니다. 이유는 당연히... 머라이어 캐리는 앞에 휴스턴이 있었기 때문이죠.

휴스턴 이전에도 많은 훌륭한 R&B 가수들이 있었지만 스타일은 다릅니다. 아레사 프랭클린의 후계자를 꼽자면 차라리 디온 워윅이 더 가까울 것이고, 다이애나 로스는 흑인이지만 흑인 본연의 창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흑인 여가수의 싱싱한 힘과 탄력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R&B의 틀을 넘어 보다 팝적인 사운드를 완벽하게 소화한 여가수는 아마도 휴스턴이 처음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에서 '디바의 시대를 열었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그리고 휴스턴의 등장은 많은 후배 여가수들에게 '아, 나도 저렇게 노래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줬다는 면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 면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코멘트는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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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가 휴스턴에 대해 한 말은 2005년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가끔 자신의 후배 여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듣다 보면 '흠, 이건 날 따라한 거잖아'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거죠. 하지만 자신도 분명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저 말을 한 것입니다.

원문은
http://www.usatoday.com/life/people/2005-04-10-mariah-carey-cover_x.htm 관련 부분을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She gives kudos to some of her successors, notably Keys, whom she praises as "talented and very much involved in everything she does musically."
And Carey doesn't pretend to be unaware of the influence that her ornate, technically dazzling vocal style has had on many of Idol's female contestants ? or a lot of their peers on the pop and R&B charts, for that matter.
"There are definitely moments when I hear things that I've done, very specifically, repeated on record," she says. "And I'm like, 'Hmmm, that's interesting ? did I get publishing (credit) on that?' "
But Carey quickly adds, "We've all been influenced by other people. None of us would sound the same if Aretha Franklin hadn't ever put out a record, or Whitney Houston had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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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의 감동적인 장면들은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첫 손에 꼽는 것은 오래 전에도 한번 소개했던 1989년 그래미상 시상식장에서 부른 One Moment in Time입니다. 이 노래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미국 중계방송 주제가로 사용됐습니다.

동영상 기준으로 3분대 후반에서 4분대 전반에 걸쳐 도달하는 클라이막스의 아름다움은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뭐라 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라이브에서 이런 가창이 가능하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죠.

예전에는 유명 가수들의 그래미상 시상식 라이브를 모은 Grammy's Greatest Moments라는 편집 음반에 이 라이브가 담겨 있었는데, CD 버전으로 들으면 그 장면에서 관객들이 터뜨리는 탄성도 생생하게 들립니다. 요즘은 워낙 CD 자체가 귀한 시대가 돼 놔서... 어디서 팔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느끼셨습니까? 다음은 1994년 버전의 I'm Every Woman.




이 노래를 안 들으면 들은 것 같지가 않겠죠. '웬다이아'입니다. 2000년 버전.



신곡은 퍼올 수가 없게 돼 있습니다. 여기선 광고로 만족하시고, 가서 들으세요.

I Look to you 링크: http://www.youtube.com/watch?v=dwlEkiiREFA

아무튼.... "돌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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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의 결혼을 놓고 화제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영애라는 스타의 위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비밀 유지를 위해 온 정성을 기울였는데 며칠 사이 결혼식장이라는 하와이의 한 호텔에서 이영애를 목격했다는 주장에서 남편의 신원에 대한 온갖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영애의 비밀 결혼은 몇가지 부분에서 초유의 사건입니다. 이영애 정도의 톱스타가 해외에서 몰래 결혼식을 올린 것도 처음일 뿐더러, 법무법인을 통해 보도자료로 결혼 사실을 알린 것도 처음입니다. 어찌 보면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연 셈입니다.

사실 2년 전, 또 다른 스타가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연 적이 있습니다. 바로 전도연입니다. 전도연의 결혼이 남긴 새로운 기록이라면 전도연은 그동안 몸담아온 연예계의 동료 배우나 관련자들을 일체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고, 남편의 신원에 대해 전혀 공개하지 않았으며, 결혼식장의 안팎에서 일체의 취재를 불허했습니다. 이런 결혼식은 대한민국 연예계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사이, 많은 것이 변한 듯 합니다. 여론의 방향이 정 반대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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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과 이영애의 결혼식은 대단히 닮아 있습니다. 이영애가 '대장금'으로 세계 만방에 한국 대중문화를 알린 스타라면 전도연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월드 스타입니다. 연기력이라면 전도연은 이영애는 물론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한 수를 접어주는 빅 스타죠.

전도연이나 이영애나, 결혼식을 비밀리에 치른 이유로 든 것은 똑같습니다. '여자로서 조용한 결혼식을 치르고 싶었고, 스타에게도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는 있다'는 것이죠. 사실 전도연의 비밀스러운 결혼과 이영애의 결혼은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전도연의 시도가 없었다면 그 뒤의 수많은 보안 철저했던 결혼식도 없었을 것이고, 이영애의 이런 결혼 발표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2년 전 전도연의 결혼식에 대해 '전도연씨, 왜 숨습니까'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온 국민의 관심을 받는 톱스타로서 이렇게 결혼에 대한 정보를 차단하는 것은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반응은 압도적으로 전도연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스타는 사생활을 누릴 권리도 없냐'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 는 주장이 대부분이었죠.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옛날 글과 댓글 보러 가기:
http://blog.joins.com/fivecard/7690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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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일이라 기억들이 희미하실지 모르지만 당시 전도연 측의 정보 관리는 철저했습니다. 신랑의 이름이나 직업, 나이 등 모든 것이 비밀에 부쳐져 있었죠. 하지만 결혼식 당일, 참석한 하객들에 의해 신원이 공개됐고, 신혼여행지 공항에서 두 사람이 발견되며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직접 알린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2년 뒤, 그리 다를 것 없는 이영애의 결혼을 놓고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영애의 비밀 유지에 대해 '팬들에 대한 톱스타로서의 예의'를 지적하고 있더군요.

불친절한 톱스타, 이영애 http://v.daum.net/link/4019144

이영애,결혼의 자유와 스타의 책임 사이에서 http://v.daum.net/link/4024824

스타와 팬의 관계를 생각하게 만든 이영애의 결혼 http://v.daum.net/link/4020262

이영애 결혼, 무시된 대중들 남편에게 집착하는 이유 http://v.daum.net/link/4023410

물론 그 반대 입장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조회수나 추천수에서 위쪽의 주장들이 훨씬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 한 느낌입니다.

이영애는 결혼도 궁민 허락받아야 하는거임??  http://v.daum.net/link/4025126
이영애 결혼, 사생활은 보호되어야 한다. http://v.daum.net/link/4033061
이영애의 결혼과 팬들의 빗나간 짝사랑 http://v.daum.net/link/4023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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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은 전도연에게 요구하지 않았던 '톱스타의 예의'를 이영애에게는 강경하게 요구하고 있을까요? 이영애가 전도연보다 훨씬 스타이기 때문입니까? 그건 아니겠죠.

스타를 가족처럼 느끼고, 스타의 결혼식에는 온 국민이 하객이 된 것처럼 느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전도연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스타가 아닌 한 여자로서의 결혼'이 이영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저는 참 궁금합니다. 물론 제 입장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전도연과 이영애에 대한 반응의 차이는 대중의 변덕일까요, 세상의 변화일까요?


P.S. 많은 분들의 의견 잘 들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겟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명예훼손의 가능성이 있는 댓글들이 많더군요. 이 글에 한해서 댓글 기능을 정지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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