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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에 뛰어든 비담 김남길은 단 2회 출연만에 온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았습니다. 축구로 치자면 아주 적절한 시기에 투입된 조커라고나 할까요.

사실 비담이 인기를 모으는 건 당연한 일로 보입니다. 그동안 미실 고현정, 덕만 이요원, 천명 박예진 등 여자 주인공들이 판을 치던 드라마에서 혼자 남자 주인공의 역할을 감당하던 유신 엄태웅은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답답한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목검으로 나무등걸을 천번 내리치다가도 한번 정신이 어긋났다고 다시 하나부터 시작하는 에너자이저 유신랑은 진지하고 진솔한 면은 높이 평가할 만 하지만 도대체 잔재미라고는 하나도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하지만 비담 김남길은 첫 등장부터 광기가 흐르는 눈빛으로 예사롭지 않은 앞날을 예고하더군요. 특히 약초 캐던 농민들이 비담의 미소를 보고 질겁하는 장면은 이미 비담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거슬렀다간 명을 부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라의 정예 10화랑과 혼자 붙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엄청나게 강한 무공과 선악의 구분이 모호한 텅 빈 머리 속, 때로 어린애같은 성정은 비담을 사뭇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는 처음이 아니죠. 분명 어디선가 본듯 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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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을 봤을 때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캐릭터는 바로 이 친구였습니다. 당연히 많은 분들에게 친숙할 겁니다. 바로 '슬램 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그린 '베가본드'의 무사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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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바와 같이 미야모토 무사시는 일본 전국시대의 지독하게 강한 검객입니다. 긴 검과 짧은 검을 함께 써서 니토류(二刀流)의 대가로 불리는 무사시는 일본의 역사소설가 요시카와 에이지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졌고, 1950년대 이나가키 히로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뒤 3편까지 시리즈가 이어지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베가본드' 역시 같은 원작을 취하고 있으므로 내용은 똑같습니다. 단지 '베가본드'의 무사시에게선 조금 더 강백호의 냄새가 난다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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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건 만화건 이 시리즈에 나오는 젊은 날의 무사시는 그야말로 야수같은 매력을 뿜어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베어야 한다는, 엄청나게 강하지만 선악이나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캐릭터죠. 아니, 아예 감정이란 요소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는 게 나을 겁니다. 어찌 보면 요즘 스릴러에 자주 등장하는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캐릭터의 원형은 중국 고전 '수호지'에 나옵니다. 바로 108영웅들 중 하나인 흑선풍 이규입니다. 쌍도끼를 휘두르는 천하장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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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더 원형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규의 원형은 삼국지의 장비입니다만, 장비는 어쨌든 배운 사람이고 정규군의 장수이므로 이규처럼 무차별 살인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살성(天煞星)을 타고 난 이규는 피를 보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살인을 즐기는 인물이죠. 그런데도 송강의 명이라면 절대 복종하는 어린이같은 면모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 뒤로 각종 무협지에 나오는 '천살성'이란 말은 하나의 캐릭터로 정립됐습니다. 선악이나 정사 따위는 가리지 않고 거스르는 자는 무조건 죽이고 보는 단순무식막강한 캐릭터를 가리키는 말이 됐죠.

얼마전에 한 분이 최근 한 일본 만화에 나오는 무겐이라는 캐릭터를 비담의 닮은꼴로 추천하셨는데, 무겐이 나오는 작품을 본 적은 없지만 대략 그림만 봐도 어떤 캐릭터인지 느낌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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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캐릭터가 아무리 좋아도 그걸 연기하는 배우가 엉망이라면 인기가 있을 리 없습니다. 비담이란 인물이 성공한 데에는 그 역할을 맡은 김남길이라는 배우의 역량이 절대적인 공헌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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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 IS 연예팀은 '올해의 유망주'로 15명의 각 부문 신인을 선정했습니다. 당시의 명단은 '고아라·민효린·이선호·유연지·정일우·최시원·지서윤·하정우·이한·한효주(이상 연기자)와 김현중·남규리·민선예(가수). 신봉선·정성호(개그맨)'입니다. 이때의 이한은 '굳세어라 금순이'의 금순이 남편과 '굿바이 솔로'의 냉정한 친구 유지안 역을 맡아 연기력보다는 외모로 주목을 끌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2008년 초, 연기자 이한에 대한 평가는 '좀 더 노력이 필요함'이었습니다.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870705) 3단계 평가에서 맨 아래 순위였죠(아, 물론 김현중과 하정우도 이때까진 '좀 더 노력이 필요함' 등급이었습니다^^). 영화 '후회하지 않아'와 드라마 '꽃피는 봄이 오면' 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동성애 소재의 '후회하지 않아'는 애당초 흥행이 될 영화는 아니었고, 이 영화에서의 이한은 장래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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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춤거리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김남길이라는 본명을 되찾은 뒤 이한은 특유의 '섬뜩한 눈빛'을 빛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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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역은 아니었지만 '공공의 적 1-1'을 본 사람은 김남길이라는 배우의 차가운 매력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김남길은 한 자루의 날선 칼날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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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던 보이'.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김남길은 친구 해명(박해일)을 싸늘하게 버리는 일본인 검사 신스케 역을 맡아 우아한 잔혹함을 연기해냅니다. 이 정도면 동년배 배우들 중에서는 연기력으로 단연 돋보이는 모습을 보인 셈이죠.

그리고 나서 이번 비담 역할은 김남길의 앞날에 어느 정도 길을 열어 주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려도 하나 떠오릅니다. 어떤 배우에게 쉽게 굴레를 씌우고 싶어 하는 한국의 영화/ 드라마 판의 속성상 김남길에게도 앞으로 계속 이와 유사한 역할만이 몰려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김남길이 잘생긴 얼굴에 머물지 않고 탁월한 성격 연기의 길을 개척한 것은 칭찬할 만 합니다. 하지만 연기를 잘 하는게 오히려 족쇄가 되어 '이상성격 전문배우'의 길을 걷게 되는 것도 걱정스럽습니다. '선덕여왕'이 끝난 뒤, 본인과 주변 사람들의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비담의 활약은 '선덕여왕'의 앞날을 더욱 탄탄대로로 만들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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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날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선덕여왕이 아직 감춰두고 있는 카드(혹은 떡밥, 혹은 비밀무기)'들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비담 김남길 떡밥을 빼먹었더군요. 비담 공개는 최상의 선택인 듯 합니다. 비담과 문노를 한방에 공개한 걸 보면 꽤 쏠쏠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는 '드림'을 초반부터 아예 밟아 버리겠다는 살의(?)가 번득입니다.

사실 비담 얘기로 포스팅 하나를 때우려는 건 아니고... 딴 얘깁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이 는 가운데 요즘 그 원작격인 '화랑세기'를 직접 읽어보겠다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그냥 읽는 분들은 아마 놀라실 일이 많을 겁니다. 사실 '선덕여왕'이 처음 시작할 때에는 미실의 복잡다단한 남자관계에 눈살을 찌푸리셨던 분도 많았겠지만, '화랑세기'를 직접 보신 분이라면 그게 얼마나 빙산의 일각인지도 아실만 합니다.

사실 '화랑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 차마 점잖은 자리에서 거론하기 힘든 얘기는 미실과 관련된 이야기뿐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화랑세기'가 진짜 역사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력한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걸 다 지어냈다고 치면 참 그 상상력도 대단한 상상력이란 생각도 듭니다.

드라마에서 다 볼 수 없었던 19금판 선덕여왕, 용어해설로 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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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덕여왕, 제대로 만들었으면 19금

MBC TV '선덕여왕'은 왜 인기일까. 타이틀 롤인 선덕여왕 이요원도 잘 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 드라마의 일등 공신은 미실 역의 고현정이다.

미실. 장희빈도 아니고 정난정도 아니고, 웬만한 시청자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까지 생전 듣도 보도 못했을 이 캐릭터가 어떻게 이렇게 시청자들을 빨아들이고 있을까. 더구나 이 미실이라는 인물은 한국 사극에서 전례를 보기 힘들 만큼 문란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남편 세종(독고영재)이 있으되 정부인 설원(전노민)도 버젓이 옆에 버티고 있고, 진흥왕(이순재)와의 관계가 암시되는가 하면 그 아들인 진지왕(임호)과는 아예 '왕위에 오르면 왕비로 삼겠다(아니, 남편이 뻔히 있는 여자가!)'는 보장을 받고 몸을 섞는다. 아무리 '천추태후'가 사극 여주인공의 사생활의 한계를 넓혔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늘 그렇듯 TV 드라마가 전부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이 드라마의 원작 격인 '화랑세기'를 보면 더욱 입이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진짜 역사라는 주장과 1930년대에 쓰여진 창작물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물려 있는 책이지만, 아무튼 '화랑세기'의 미실은 훨씬 과감하다.

진흥-진지왕에 이어 근 30세 연하인 진평왕과도 몸을 섞는다. 예를 들자면 이런 수준이다. 드라마 속에서 김유신(엄태웅)의 라이벌인 보종(백도빈)이 태어나게 된 계기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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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 8년(579년), 미실궁주가 옥새를 맡아보는 새주(璽主)가 되어 정사당에서 문서들을 보다가 낮 꿈을 꾸었는데 흰 양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길한 꿈임을 알고 급히 왕(진평왕)를 끌고 장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왕은 아직 어려서 궁주의 기분에 제대로 따라 주지 못했다. 이에 설원랑을 불러 들여 보종공을 낳았다. (따라서 누구의 아들인지 분명치 않았지만)보종은 자라면서 모습이 설원랑과 같았으므로 궁주가 설원에게 내려 아들로 삼게 하였다.' 이런 식이다.

사실 내용인 즉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홍판서가 길동이를 낳게 되는 대목 - 용꿈을 꾸고 부인에게 동침을 요구하지만 부인이 대낮부터 망측하다며 거절하자 여종 춘섬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 이나 '삼국유사'의 지철로왕 관련 기사(지철로왕은 지증왕의 다른 이름. 궁금하면 찾아 보시라)를 생각해보면 뭐 충격 받을 수준은 아니지만, 아무튼 '화랑세기'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런 얘기들의 연속이다. 이 책을 보고 나면 흔히 '화랑'이란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육사 생도들이나 보이스카우트의 이미지는 싹 사라질 지도 모른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역사책이다 보니 그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름하여 'TV에는 안 나오는 진짜 선덕여왕 용어 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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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공(色供) = 글자 그대로 색으로 윗사람을 섬기는 일, 즉 잠자리를 같이 하는 일을 말한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왕을 모실 수 있는 모계 혈통에는 진골 정통과 대원 신통이 있는데, 이들의 가문은 왕의 총애를 차지하기 위해 특별한 재능을 갖춘 여자들을 계속 배출했음이 암시되어 있다.
미실의 어머니인 묘도와 이모인 사도(진흥왕의 왕후)는 미실이 세종과 결혼할 때 "우리 가문은 대대로 색공을 바치는 집안"임을 강조하며 어찌 왕의 서자 뻘인 세종 따위(?)에게 시집을 가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미실은 태연히 "어찌 남편이 있다 하여 임금을 모시지 못하겠느냐"고 맞받아쳤다는 기록이 있다.

음사(陰事) = 군주와 잠자리에 드는 것. 즉 방사(房事)의 높임말이다. '선덕여왕'의 사실상의 주인공 미실은 음사에 특히 능해 그와 한번 잠자리를 같이 하면 군왕들도 헤어나지 못했다. 특히 진흥왕은 미실을 잊지 못해 남편 세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미실을 불러들였다. 심지어 임신중에도 미실을 입궁시킨 기록이 있다.

마복자(磨腹子) = 현대인의 시각으로 볼 때 가장 기이한 성풍속의 하나. 윗사람이 임신한 아랫사람의 아내를 받아들여 관계한 뒤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처럼 보살피는 것을 말한다. '화랑세기'는 시작부터 제 1대 풍월주인 위화랑이 비처왕의 일곱 마복자들인 이른바 '마복칠성' 중 하나임을 밝히고 있다. 그의 어머니 벽아부인이 그를 임신한 채로 비처왕의 후궁으로 들어가 낳은 아들이란 얘기다.

방외우(方外友) = 글자대로 풀면 그냥 '신분을 벗어나 사귀는 사이'라는 의미지만, '화랑세기'의 사이에서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여자들과 관계하면, 그 여자들 주변의 사람들과도 친구 뻘이 된다는 뉘앙스의 말로 사용됐다.
예를 들어 방탕했던 동륜태자(진평왕의 아버지)는 미실에게 혹하자 신분이 한참 아래인 설원이나 미실의 동생인 미생과도 친구가 된다. 이것이 바로 방외우의 기본 형태인 것이다.

유화(遊花) = 낭도들의 짝이 되는 신분이 낮은 여자들. 본래는 이들도 크게 볼 때 화랑도 조직의 일원인데 역할은 궂은 일에서 밤일에까지 넓게 걸쳐 있다. '화랑세기'의 진흥왕 대창 원년(568년) 기록엔 이런 대형 난교 파티의 기록이 있다.
'...이날 밤, 왕(진흥왕)과 미실은 남도의 정궁에서 합환을 하였다. 낭도와 유화들로 하여금 새벽까지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서로 예를 갖추지 않고 합방(奔)하게 하였다. 성중의 미녀로서 나온 자가 만여명이었다. 등불의 밝음이 천지에 이어졌고 환성이 사해의 물을 끓어오르게 하였다. (중략) 낭도들이 각기 한 명의 유화들을 이끌고 손뼉치고 춤추며 난간 아래를 지나갈때마다 만세 소리가 진동했다.'
이 광경을 바라보며 진흥왕과 미실은 군중들에게 돈을 던져주며 즐겼다고 한다. 이 땅에서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환락의 도가니였던 모양이다. 물론 이날의 기록 외에도 유화와 화랑 사이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태어난 기록이 전해진다.

용양신(龍陽臣) = 최측근. 항상 곁에 두는 총신의 의미이지만 '화랑세기'의 기록을 살펴 보면 이 단어에서 남색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미실의 첫사랑인 사다함의 가계를 살펴보면, 스페인 영화 '하몽하몽'을 연상시키는 난맥상을 발견하게 된다. 사다함은 구리지공과 금진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미남으로 유명했던 구리지공은 한 촌부와 정을 통했는데, 이 촌부는 이미 유화로 나가던 시절 이름도 모르는 화랑과의 사이에서 설성이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 설성은 어려서부터 '얼굴이 아름답고 교태를 잘 부려' 구리지공은 얼마 뒤 설성을 자신의 용양신으로 삼았다. 어머니와 아들을 모두 파트너로 삼은 셈이다.
그러나 구리지공이 전쟁터에 나가 자리를 비운 사이, 금진은 설성을 잠자리로 끌어들였고 그 사이에서 설원이 태어났다.
이렇게 어지러운 사연 속에서 태어난 아이가 요즘 '선덕여왕'에 나오는 설원랑이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뒷날 이 가문에서 원효대사와 설총이 나왔다.

신선골(新善骨) = 출세를 위해 낭도들 가운데 화랑에게 딸을 바치고 청탁을 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이렇게 딸을 바쳐 화랑과 연을 맺은 자들을 신선골이라고 불렀다. 물론 이때의 '골'은 골품(骨品)을 의미한다. 13세 풍월주 용춘 때 대남보라는 낭도가 신선골이 되기를 거부했다는 말을 듣고 용춘이 기특하게 여겨 승진을 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아내를 바쳐 그 아들을 마복자가 되게 하는 것과 딸을 바쳐 신선골이 되는 것, 과연 어느 것이 더 부도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삼서지제(三壻之制) = 한 여자에 대해 세 명의 남편을 허용할 수 있다는 제도. '화랑세기'에는 이에 따라 선덕여왕은 용춘과 흠반, 을제 등 세 남편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여왕의 경우 후사를 얻지 못할 때 세 명까지 남편을 둘 수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일반인 여성들의 경우에도 세 명의 남편을 둘 수 있다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불행히도 정사인 '삼국사기'에는 선덕여왕의 남편이 몇명이었는지는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러나 후대의 진성여왕이 자신의 숙부뻘인 각간 위홍을 연인으로 삼았다가 위홍이 죽자 수십명의 미남 청년들을 끌어들였다는 기사를 싣고 있어 여기에 비쳐 볼 때 선덕여왕의 세 남편 이야기도 그리 황당무계한 것은 아님을 보여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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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복자라는 희한한 풍습에서는 어쩐지 손님에게 아내를 주어 동침하게 하는 북방민족의 풍속이 연상됩니다. 사실 이 방법보다 더 손님-혹은 나그네-에게 '우리는 적이 아니다. 너와 나는 한 가족이다. 내게 무슨 일이 있으면 네가 내 아내와 자식을 보살피기 바란다' 는 뜻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방법은 없을 듯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복자 제도 역시 '뱃속의 아이는 네 아이지만 내 아이기도 하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아이 어머니와 관계를 하겠다. 너의 아내 역시 내 아내인 셈이다' 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한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정말 엽기적이지만, 일부 기마민족 사이에서는 이와 유사한 풍습들이 전해진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역사이건 위작이건, '화랑세기'는 오늘날의 잣대가 아닌 신라시대로 떠나는 시간여행의 느낌을 갖게 합니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현대적인 시각으로 짜여져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에 지치면 '화랑세기'를 한번 펼쳐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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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 캐릭터, 굳이 말하자면 천살성(天煞星)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상당히 낯익은 캐릭터이면서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공개되지는 않은 캐릭터입니다. 나중에 여기에 대해서도 좀 공을 들여 들여다 보겠습니다.

 




그나자나 이제 남은 떡밥은 김춘추-유승호 떡밥 하나인 셈이군요. 언제 나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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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와 SM의 설전이 한차례 오갔고, 이 초대형 아이들 그룹의 앞날이 온 사회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팬 수를 보나 앨범 판매량을 보내 국내 최고의 인기 그룹인 동방신기가 이대로 가다가 해체라도 되는 날이면 반향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도 가지각색입니다. 어떤 분들은 늘 하던대로 '악마같은 소속사의 농간'이라고 치부하고 있고, 어떤 분들은 장자연 사건 이후 늘 말썽이 되어 온 소위 '노예계약' 문제로 한방에 싸잡아 보려 하기도 합니다(상황을 잘 모르는 일부 기자들도 포함됩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있는데도 외면하거나, 정보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서툰 경우들이 대부분입니다.

과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핵심적인 논점 세가지를 챙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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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동방신기는 수입의 0.4%~1%만 가져간다?

현재 SM에 계약해지를 요구한 세 멤버의 주장 중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일부 팬들은 "동방신기에게 그동안 지급한 돈이 110억원에 달한다"는 SM의 주장을 보고 나서 "몇천억원씩 버는 아이들에게 고작 110억원(?) 주고서 생색이냐" "110억원을 다섯 멤버에게 5년으로 나누면 연간 4억원 정도다. 그걸 많이 줬다고 할 수 있느냐"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지 한번 보겠습니다.

일단 회사 쪽이 지급한 액수가 SM의 주장대로 110억원이라고 믿는 것을 전제로 하겠습니다. 아마도 상대방이 저렇게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이런 액수로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음 표는 네이버 증권정보가 제공하는 SM의 연간 매출액 규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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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가 데뷔한 2004년 199억원에서 2008년 434억원까지, 2004년 이후 5년간의 매출액 합계는 148723백만원, 즉 1487억여원이 됩니다. '1년에 천억원씩 버는 동방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매출 1487억원 가운데 얼마가 순익인지는 다음 표에 나옵니다. 역시 네이버 증권정보가 제공하는 SM의 손익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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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영업이익은 23, 37, 16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5년 12억원의 흑자를 낸 것을 포함하면 4년간의 영업수지는 64억원의 적자인 셈입니다. 이 4년간 동방신기에게 간 돈 110억원을 46억원 이하로 줄였다면 이 기간 내내 SM은 흑자를 낼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SM의 매출 규모로 볼 때 동방신기가 데뷔후 5년간 받았다는 돈의 총액 110억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 하나의 함정은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있는 세 멤버가 제시한 숫자의 함정입니다. 이들이 발표한 원문을 보겠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멤버들이 계약 기간 동안 SM으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계약금이 없음은 물론, 전속 계약상 음반 수익의 분배 조항을 보면, 최초 계약에서는 단일 앨범이 50만장 이상 판매될 경우에만 그 다음 앨범 발매시 멤버 1인당 1,000만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고, 50만장 이하로 판매될 경우 단 한 푼도 수익을 배분받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조항은 2009. 2. 6. 에 이르러서야 개정되었는데, 개정 후에도 멤버들이 앨범 판매로 분배받는 수익금은 앨범판매량에 따라 1인당 0.4%~1%에 불과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서 "아니, 0.4에서 1%라니, 이런 노예계약이 어디 있어!"라고 흥분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잘 보시면 이 조항은 '앨범 판매로 분배받는 수익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동방신기의 수입은 앨범 판매 외에도 공연, 행사, 사인회, 초상권, 방숭출연(물론 이건 무시해도 좋습니다) 등을 통해 나옵니다. 굳이 그 가운데서 앨범에 대한 수익금만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에 착시현상을 일으킨 것입니다.

만약 다른 부분의 수입에서도 0.4~1.0%의 수익 배분이라면, 과연 SM의 매출은 얼마가 되어야 할까요. 위에서 본 대로 동방신기 데뷔 후 SM의 총 매출이 1487억원 가량입니다. 이 매출이 모두 순익이라고 하더라도 1인당 1%면 약 15억원. 5를 곱해도 75억원 가량이 됩니다. 순익도 아니고 매출의 1%씩을 줘도 75억원인데 110억원을 줬다면 SM은 미친 회사입니다.

물론 이 매출이 모두 순익일 리는 만무합니다. 게다가 이 매출은 보아, 슈퍼주니어, 소녀시대가 기록한 매출을 모두 합한 것이죠. (설마 매출과 순익을 구별 못하는 분은 없겠죠?) 즉, 동방신기 멤버들은 다른 부분의 수입에 대해서는 1.0%보다 훨씬 높은 분배 비율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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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신기가 지금까지 판 앨범의 수는 이렇습니다. 이중 SM이 번 돈은 얼마일까요. 앨범과 싱글의 가격이 다르고, 제작사의 수입은 소매가가 아닌 공장도 가격에 달려 있고, 계약에 따라 수익률이 다르기 때문에(게다가 해외 판매 수입의 경우는 정하기 나름입니다. SM의 경우는 또 일본 수입은 AVEX와 나눠야죠) 딱 잘라 얼마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얼추 계산해볼 때 SM의 동방신기 앨범 수익은 100억원에서 200억원 사이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수입에서 동방신기가 나눠 받는 비율을 높였다면 다른 부문의 수입에서는 배분율이 나빠졌을 겁니다. 반대로 동방신기가 이 부분에서의 수익율을 포기했기 때문에(여러 차례에 걸쳐 계약 조건을 수정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수익 배분율에 대한 조정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상당히 큰 부분을 배분받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결론:
1. '0.4~1.0%'라는 것은 전체 수입 가운데 앨범 판매 수입에 대한 분배 비율이다.
2. 따라서 동방신기가 번 돈중 '0.4~1.0%밖에 못 받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3. 110억원은 회사의 규모나 전체 매출을 볼 때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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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13년간의 장기 계약은 사실상 종신계약이다?

이 부분은 사실 SM의 가장 큰 약점입니다. 처음 연예계에 입문하는 연습생들은 사실 이런 조건에 크게 얽매이지 않습니다. 일단은 데뷔가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는 이런 조건에 아무 불만 없이(혹시 불만이 있더라도 조용히) 동의합니다.

그나마 동방신기처럼 데뷔해서 스타가 되었다면 모를까, 정작 심각한 문제는 데뷔를 못 하고 세월만 흘러가고 있는 연습생들의 경우입니다. 다른 기획사에서는 충분히 데뷔를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췄더라도 SM의 내부 경쟁에 밀려 기회를 잡지 못하는 연습생들은 늘 논란의 대상입니다. SM이 이들의 계약을 해지해 주는 데 지독하게 인색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건 SM의 문제점이지만, 동방신기 부분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므로 여기선 이 정도로 합니다.)

그럼 관건은 동방신기의 13년 계약이 정당하냐...는 것인데,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고려해야 할 요소가 몇가지 있습니다. (1) 아이들 그룹의 경우는 육성기간이 5년에서 7년에 달한다는 것 (2) 그 육성기간에는 수입을 기대할 수 없으며, 이들이 데뷔하지 못하면 전액 회사의 적자가 된다는 것 (3) 설혹 데뷔한다 해도 히트하지 못하면 역시 순손실이 될 뿐이라는 것(SM도 천상지희나 트랙스처럼 수익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꽤 있죠) (4)따라서 회사 전체의 재정에서, 히트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이들의 수익을 통해 전체 회사의 수지가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4)에 이르러서 논란이 발생합니다. 동방신기를 예로 들자면, 이들의 가족이나 팬들은 당연히 "우리 **(혹은 우리 오빠)가 번 돈으로 온 직원 월급 주는 것도 아까운데, 왜 다른 '못 나가는' 애들의 뒷감당까지 해야 하느냐?"는 입장을 보입니다. 굳이 설명하려면 사실 간단합니다. 동방신기가 열심히 연습생으로 훈련할 때 쓴 비용은 굳이 설명하자면 H.O.T나 신화, 보아가 번 돈이기 때문입니다.

데뷔하는 족족 모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고 보면, 어떤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든 동방신기와의 수입 분배를 할 때에는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전체 아티스트들의 수입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이, 거의 모든 소속 연예인이 자기가 버는 수입과 무관하게 용돈(혹은 월급)을 받는 일본식의 매니지먼트 포맷입니다. 일본식에 따르면 한창 떼돈을 벌어 오는 아이들 스타보다 데뷔 15년 된 퇴물 가수가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제도를 들여온다면 당장 난리가 날 겁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된 기간, 계약 기간 부분은 바로 이런 이유로, '회사가 연예인 육성에 들어간 자금을 회수하고 순익을 낼 수 있을 때까지'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고 SM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솔직히 말해 동방신기처럼 황금 알을 낳는 그룹이 순 흑자로 돌아서는 데 13년이라는 세월이 걸린다고 볼 수는 없겠죠.

여기에 대한 SM의 주장은 "수차에 걸쳐 계약 조건을 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이탈 멤버들도 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조정' 기회 때 왜 계약기간에 대한 조정은 없었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쪽이든 설명을 해야 할 겁니다.

결론:
1. 아이들 그룹의 계약기간이 긴 것만으로 무조건 노예계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2. 장기계약은 정작 스타가 된 쪽보다는 무명 연습생의 경우에 더 심각한 문제다.
3.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13년은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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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과연 해체해도 손해날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굴까?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해체는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에서 '해체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할 바보는 아무도 없겠죠. 누구도 팬들의 심사를 거스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럼 거꾸로, 동방신기가 해체되면 가장 타격이 클 것은 누굴까요. 누가 봐도 그건 SM입니다. 동방신기같은 슈퍼 아이들을 다시 만들어내는 데에는 몇년이 걸릴 지 모릅니다. 엄청난 손해죠.

멤버 개개인도 절대 해체를 원할 리는 없다는 데 표를 던지겠습니다. 사소한 의견 충돌이나 분열이 있다 해도 그 오랜 세월, 동방신기라는 이름으로 함께 활동한 정과, 지금까지 어떤 슈퍼 그룹의 멤버들도 흩어졌을 때 원래 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1/N(멤버 수 나누기 1이라는 뜻입니다) 이상의 위력을 내지 못했다는 점(핑클의 이효리가 유일한 예외겠군요)을 감안할 때 어떤 경우에든 해체는 막대한 손해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예외는 '주변 사람들'입니다. 멤버들의 가족도 포함됩니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연예계의 생리도 잘 모르고, 안다 하더라도 '남의 100원보다는 내 10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멤버들의 가족들은 전통적으로 어떤 그룹이든 자신의 가족을 뺀 나머지 멤버들은 '우리 **이 때문에 먹고 사는 녀석들'이라고 생각함니다. 10년 이상 연예계를 지켜본 바에 따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이런 분들이 흔들기 시작하면 어떤 공고한 그룹도 깨질 수 있습니다. 회사는 버리고, 친구도 버릴 수 있지만 가족은 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1. SM은 해체를 원할 리가 없다.
2. 동방신기 멤버들도 해체를 원할 리가 없다.
3.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까짓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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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팬들은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요. 쉽게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경우든 팀이 깨지고 나면 팬들이 상처를 받을 것은 뻔합니다. 깨지고 나서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겠죠.

어쨌든 개인 팬이건 팀의 팬이건, 지금 취해야 할 입장은 분명합니다. '깨진 뒤의 동방신기는 의미가 없다'는 입장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늘까지 개인 멤버의 열렬한 팬이더라도 팀의 존속을 원한다면 '팀이 깨질 경우 단호하게 고개를 돌릴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하나된 동방신기를 믿습니다'가 아니라 '깨지면 알아서 해'라는 입장이 좀 더 도움이 될 때인 듯 합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 정말 해체가 현실이 된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똑바로 보려고 노력하기 바랍니다.


p.s. ...그런데 대개 이런 경우 '기자들 책임이다'라는 주장이 가끔 나오더군요. 이번엔 좀 아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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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스포츠 드라마 '국가대표'는 '이 영화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각색한 것'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영화는 스키 점프라는 비인기종목에서 어느날 갑자기 세계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한국 대표팀의 이야기를 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등록선수는 5명뿐이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 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는 점, 국내 유일의 스키점프대인 무주 스키점프대는 사실상 동계 시즌에는 가동된 적이 없다는 점 등등은 확실히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이 다른 부분도 꽤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의 속성상, 부분적으로 과장이 있을수밖에 없는 게 정상입니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사실과 같은 부분, 사실과 다른 부분들을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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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국가의 도움 없이 개인이 이뤄낸 성과'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선수들에게 '신성한 의무'와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을 강조하던 지나간 시대의 관념에 찬물을 끼얹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죠.

영화 리뷰는 이쪽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제작진이 무시하고 싶은 내용은 깔끔하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 스키점프 대표팀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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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한국 스키점프 대표팀은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가운데 1997년 창단돼 곧바로 1997년 12월 독일 오베르스트도르프 월드컵에 참가해 월드컵 출전권을 따내고, 이듬해 2월의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나가 아슬아슬하게 메달권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이야기처럼 봉고차 지붕에 스키 부츠를 매달고 훈련해서 1년만에 올림픽에 나가 세계 수준의 성적을 낸다는 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한마디로 '영화니까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죠.

실제로 한국에 스키점프가 도입된 것은 1991년. 그리고 1994년에는 이미 대표팀이 전지훈련을 간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스키점프의 대명사인 네 명의 선수들, 김흥수(현 코치) 최용직 최흥철 김현기 등은 이미 10대 시절부터 유망주로 발탁돼 육성된 선수들입니다. 한국 스키점프 선수 중 최초로 국제대회 개인성적을 낸 최용직은 1997년 오베르스트도르프 대회에 만 16세의 나이로 참가해 40위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기록은 확실치 않지만, 21세기 들어서는 매년 1-2차례씩 해외 전지훈련을 다녀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가 2003년 타르비시오 동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로 이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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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흥철, 최용직, 김현기, 강칠구 선수.   사진출처=세계일보

물론 해외 전지훈련을 간다고 해서 호화 훈련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하이원이 실업팀을 창단해 최흥철과 김현기가 입단하기 전까지 이들 국가대표 선수들의 공식 수입은 연봉 38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유니폼이 모자라 기워 입어야 하고, 선수들이 직접 스키 날에 왁스를 입혀야 하는 열악함도 사실입니다. 다만 영화에서 보듯, '국가가 스키점프라는 종목을 버리려 했는데 선수 개개인이 살려냈다'는 식의 기술은 사실과 꽤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선수들이 개인 생활 유지를 위해 각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는 얘기는 영화에서 생략되어 있더군요.)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체육회를 비롯한 국가 기관에서는 스키 점프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그래도 해외 전지훈련 등의 지원을 했고, 그 결과 도입 12년만에 동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이라는 성과가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에는 실업팀도 생겼습니다. 비인기 종목의 레벨로 따지면 이보다 못한 종목도 수두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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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보듯 황무지에서 어느날 뚝딱 대표팀이 만들어지고, 그해 겨울에 국제대회에 나가고, 그 이듬해에 올림픽에 나가고...하는 식의 황당무계한 스토리는 오히려 스키 점프 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선수-지도자 외에 측면에서 지원한 많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꽤나 서운한 얘기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열정만으로 되는 일은 꽤 제한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런 부분들은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스스로를 구제한 작은 영웅들 이야기'라는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생략된 것입니다. 물론 전에도 한번 강조했지만 이런 부분들이 오락 영화로서 걸작인 '국가대표'의 가치를 해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를 현실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현실은 현실, 영화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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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으로 하나 끼워넣는 얘기라면, 이들 스키 점프 대표팀 선수 가운데 해외 입양 후 귀국한 선수는 없습니다. 해외에 입양됐던 스키 선수의 뿌리 찾기 이야기는 토비 도슨의 실화에서 따온 것인 듯 합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스키 스타 도슨은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찾아 아버지와 동생을 만났고, 이어 약혼녀와 한국에서 전통 혼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도슨은 이후 골프 선수로 변신, 2007년 이후 각종 대회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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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 마지막에 봉구가 점프하기 직전, 키를 재고 방코치가 "키가 크니까 스키 더 긴거 타도 돼"라고 어필하는 장면은 시점의 착각입니다. 현재는 스키 점프 선수가 이용할 수 있는 스키의 길이가 자신의 키의 146%로 제한되어 있지만 이 규정이 생긴 것이 바로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이 3개중 2개의 금메달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선수들이 큰 스키를 쓰는 전법으로(영화에도 나오는 얘깁니다) 스키점프에서 강세를 차지했고, 나가노 올림픽 이후 유럽 각국이 이 전략을 차단하기 위해 신장 대비 스키 길이 규정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시에는 없던 규정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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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해운대'때 얘기했지만 예고편만 놓고 봤을 때 올 여름 한국영화 3총사의 기대 순위는 '국가대표', '해운대', '차우'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까놓고 보니 '해운대'와 '차우'가 전혀 나쁘지 않았습니다. 대체 왜 예고편을 그렇게밖에 못 만들었나 의아할 지경이더군요. 그리고 그와 함께, 그렇다면 과연 '국가대표'는 어떨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가끔씩, 예고편은 환상적인데 본편은 영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막상 본 영화.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막상 진짜 스키 점프 장면이 시작된 뒤로는 시계 볼 생각도, 영화 끝나고 뭘 할까 생각도, 그 시점까지 영화의 앞부분에서 뭐가 좋았고 뭐가 안 좋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우생순'을 포함해서, '록키'를 포함해서 이렇게 가슴 벅찬 스포츠 신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되새겨보려니 가슴이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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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인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그리 벗어나지 않습니다. 미국에 입양돼 주니어 시절 알파인 스키 대표선수까지 지냈던 헌태(하정우)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어머니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방코치(성동일)의 꼬임에 넘어가 난데없이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됩니다.

하지만 방코치가 모아들인 선수들은 오합지졸. 고교시절 약물파동으로 스키 입상을 취소당한 흥철(김동욱)과 그 뒤를 따라다니기만 하던 파파보이 재복(최재환), 그리고 가난이 유죄로 군대를 안 가기 위해 운동을 결심한 칠구(김지석)까지 간신히 4인 1조, 스키점프 단체전에 나갈 수 있는 한 팀이 꾸려집니다.

여기에 방코치의 딸이며 섹시하지만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수연(이은성)이 갑자기 끼어들면서 훈련은 코믹하게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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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과정은 '쿨 러닝'을 보신 분이라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원지의 폐허에서 사용되지 않는 워터슬라이드를 점프대 대신 이용하기도 하고, 사철 눈이 내리지 않는 한국의 특성상 흘러내리는 물을 대체품으로 이용합니다. 자동차 위에 스키부츠를 고정시키는 위험천만한 장면도 연출됩니다.

마냥 동화 속 이야기같은 '쿨 러닝'과는 달리 이 영화는 '어른들의 세계'에도 한 발을 걸칩니다. 사실 이런 과정이 이야기들에는 점수를 많이 줘 봐야 5점 만점에 3.5점 정도 이상은 주기 힘듭니다. 이야기는 때로 무리한 진행을 보이기도 하고,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중간에 튀는 듯한 부분도 몇 번 있습니다. 게다가 심각한 장면을 강제로 해소하기 위해 갑작스레 코미디로 전환하는 장면들은 그리 효과적이지도 않을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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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30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이들 선수들의 경기 장면은 그동안 약간 위태롭게 보이던 이 영화의 앞부분을 싹 잊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감히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한국 영화의 클라이막스 가운데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 박상민이 혼마찌에 단신으로 쳐들어가 벌이던 격투 신 이후로 이렇게 피가 끓어오르는 장면은 처음입니다.

이런 강력한 클라이막스 덕분에 '국가대표'는 올해 한국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CG의 도움이 컸겠지만, 수만의 관중 앞에서 펼쳐지는 스키점프의 박력과 정교한 스토리의 배치는 김용화 감독의 역량을 다시 한번 높이 평가하게 해 줍니다. 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 영화의 스키 점프 신은 한국 스포츠 영화, 아니, 한국 영화 전체를 꿰뚫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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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을 보시면 그 감동의 0.1% 정도를 공유하실 수 있게 됩니다.

배우들의 연기로 따지자면 수훈갑은 하정우보다는 김동욱입니다. 물론 하정우가 맡은 캐릭터의 개연성이 좀 부족했다는 점을 먼저 꼽아야겠지만, 아무래도 하정우보다는 김동욱의 영화라는 쪽이 맞을 듯 합니다.

그 밖의 배우들에게선 이들과 비교할만한 비중을 두기 힘듭니다. 특히 이은성이 좀 더 좋은 연기를 보였다면 영화는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었을 겁니다. 여배우 조련에 꽤 뛰어난 걸로 알려진 김용화 감독도 이렇게 손을 들었을 정도면 앞으로 이은성은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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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더욱 볼만하게 만드는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주제가로 쓰인 러브홀릭스의 '버터플라이'입니다. 지난해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하지 못한 점이 안타까웠는데, 이번 기회에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지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국가대표'는 이게 전부인 영화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얘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영화 줄거리의 세세한 부분을 건드리게 됩니다. 그게 싫으신 분들은 아래로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게 좋을 겁니다. 어쨌든 약간 정리해서 얘기하자면, 오락 영화로서 '국가대표'는 강추작입니다. 사소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라스트의 박진감이 모든 것을 보상해 줍니다.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그럼 나머지는 안 보셔도 될 얘기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제목에 해당되는 부분은 이 아래쪽에 다 있군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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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맨 첫 부분.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온 헌태-바비는 TV의 아침 방송에 나가 사연을 얘기합니다. 헌태가 "함께 입양된 여동생이 결혼해 아기를 낳았는데 너무 귀엽다"고 말하자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다가, 갑자기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헌태의 얼굴 뒤 화면에 여동생 가족의 사진이 나오는데 남편이 흑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헌태는 사람들이 왜 웅성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헌태는 "이 나라가 나를 3천만원에 외국에 팔았어! FUCKING KOREA!"라며 분노를 토로하기도 합니다. 영화 앞부분에서 헌태가 말하는 '우리 나라'는 미국입니다. 또 재복이 임신한 연변 처녀 순덕이와 결혼하겠다고 말하자 재복의 아버지는 "우리집 독자인 놈이 중국년과 결혼을 한다고?"라며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런 일련의 장면들이 보여주려 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한국인들의 이중성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죠. 외국인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면서도 일본을 제외한 여타 아시아 국가 사람들이나 흑인들에 대해서는 경멸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주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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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이 영화는 주인공인 스키점프 선수들을 지나치게 사회적인 약자로 몰아가려는 무리한 시도를 계속합니다. 이들에게 '나라'와 '어른'들은 줄곧 거짓말을 하고, 무책임하고, 여차하면 자신들을 버리려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식의 배치가 보여주는 것 역시 자명합니다. '세상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벌떡 일어선' 주인공들을 더욱 영웅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시도죠.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시도들이 영화 '국가대표'의 발랄한 스텝과 그리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가끔은 이런 부수적인 요소들이 잘 흘러가는 영화에 짐이 되는가 아닌가 아슬아슬할 때도 있습니다. 다행히, 아주 거슬릴 정도는 아닙니다.

김용화 감독이 왜 이 영화에 이런 부수적인 요소를 넣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생각 있어 보이기 위해서'라면 대단한 위험을 감수한 셈입니다. 정말 다행히도 이런 요소들이 영화를 크게 해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보실 분들에게도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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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당신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속인 적이 없습니까?

국내에도 상륙한 김구라의 '모멘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라는 프로그램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폭스TV에서 방송됐던 이 쇼는 현재 국내 케이블 채널 QTV에서 방송중입니다. 일반적으로 막연히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한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식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 보니 위력이 만만찮더군요.

물론 그동안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가끔씩 거짓말 탐지기가 소품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반 장난이었죠. 그러나 일반인들이 등장하는 '모멘트 오브 트루스'는 좀 섬칫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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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20년 전쯤 그룹 서바이버가 부른 ‘모멘트 오브 트루스’(Moment of truth, 이하 MOT)란 노래가 히트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는 <베스트 키드>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 <카라테 키드>의 주제곡이었다. 이 ‘MOT’라는 제목을 다시 듣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이번엔 방송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케이블 채널 QTV에서 최근 방송을 시작한 는 지난해 1월 미국에서 첫 시즌이 방송된 뒤 국내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꽤 소문이 돌았다. ‘독하디독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진행 방식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출연자는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 거짓말 탐지기를 몸에 부착하고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50여 개의 질문에 답한다. 제작진은 그 중 스물한 개의 독한 질문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출연자에게 다시 묻는다. 스물한 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거짓말 탐지기에 의해 사실로 판정되면 1억 원(미국의 경우 50만 달러)을 손에 쥘 수 있다.

‘거짓말만 안 하면 1억 원을 줄게’라는 것은 상대가 어린이라면 ‘자, 1억 원 줄게, 가져’와 같은 의미로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모두 성인이고, 제작진은 자선 단체가 아니다. 스튜디오에는 이 질문과 직접 관련이 있는 친구, 부모, 애인, 아내 등이 나와 있어 출연자를 난처하게 한다. 남편이 눈을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남편이 내 몸을 만지는 게 싫어 자는 척한 적이 있다”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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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 즉 ‘진실의 순간’이라는 말은 ‘El Momento de la Verdad’라는 스페인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본뜻은 ‘투우사가 지친 소의 숨통을 끊기 위해 장검을 찔러 넣는 순간’을 말한다. 사실 사람들은 문제의 순간이 닥치기 전까지 사실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혹한 것인지를 잊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순간에 영원한 사랑의 꿈을 깨버리고, 믿었던 사람의 가슴에 비수를 박곤 한다. 이 프로그램의 선정성은 미국에서도 당연히 도마에 올랐지만, 사람들은 때로 가정 파탄이나 인간관계 단절의 위기를 무릅쓰면서도 출연 신청에 줄을 이었다.

자신은 정말 솔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거짓말 탐지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불신한 걸까. 한국에서 방송된 첫 회를 보고 나서,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공포는 사생활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질문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남자 출연자는 여자친구가 바라보는 앞에서 ‘돈 때문에 여자와 성행위를 한 적이 있느냐’ 는 질문에도 ‘그렇다’라는 솔직한 대답을 해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간단해 보이는 질문 앞에서 무너졌다. 바로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입니까?’라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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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은 상대방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나의 말을 신뢰할 것이라는 전제를 안고 살아간다. 저 질문은 “남에게 ‘내 말을 믿으라’고 말하는 당신은, 정작 당신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의미다. 그는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했지만 거짓말 탐지기는 이 대답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기계의 판정을 신뢰한다면 출연자는 거짓말을 한 것이거나, 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모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오래전 심리학개론 시간에 들은 ‘일곱 개의 베일’ 이론이 떠올랐다. 사람은 평소 일곱 개의 베일로 자신의 본모습을 가리고 있으며, 가까운 사람일수록 베일을 하나씩 벗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혼자가 되었을 때에도 베일 한 장은 남아 있다. 마지막 베일은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벗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에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멘트 오브 트루스'는 이런 두려움을 되살아나게 했다. 이건 오락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내겐 어지간한 납량 특집보다 훨씬 소름이 끼쳤다. (끝)>>

 

미국 방송때도 화제가 됐던 인물의 출연 모습입니다. 로렌 클러리(lauren cleri)라는 여성이 출연했고 친정 부모와 남편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건 그 에피소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등장해서 "너는 남편이 아니라 나와 결혼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는 남자는 로렌 클러리의 옛날 애인입니다. 말하자면 특별출연이죠. 로렌의 대답은 YES. 판정은 TRUTH. 이렇게 해서 로렌은 10만 달러를 확보합니다.

3개의 질문을 더 거치면 2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는 상태. 이어지는 질문은 "남편과 결혼한 뒤 다른 남자와 성적인 관계를 가진 적이 있느냐"는 겁니다. 역시 대답은 YES, 판정도 TRUTH.

하지만 그 다음 질문은 생뚱맞게도 "당신은 좋은 사람(GOOD PERSON)입니까?"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로렌은 YES라고 대답하지만 판정은 FALSE입니다. 사회자는 "마음 속 어느 한 곳에서는 너도 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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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거짓말 탐지기를 그렇게 신뢰할 수 있을까?'하는 거였습니다. 실제로 했던 일에 대한 질문, 즉 '당신은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실과 거짓을 가리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신은 여자친구의 용모를 다른 여자와 비교해 본 적이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의 사실과 거짓을 가리는 건 꽤 어려운 일일텐데 말입니다.

제작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거짓말 탐지기는 각 질문에 대한 응답자의 대답이 '사실일 확률'을 결과로 내놓는다는 것이죠. 방송에 쓸 때 '사실일 확률' 혹은 '거짓일 확률'이 55%나 60%(즉 거짓말 탐지기의 판단이 틀릴 확률도 40-45%가 된다는 얘기죠)인 질문은 아예 방송에서 제외한다고 합니다. 최소한 80% 이상의 확실한 판정이 내려지는 질문만을 방송에서 이용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출연자의 인권에 대해서 제작진이 하는 대답은 "출연자는 언제든지 도전을 멈출 수 있다. 또 질문이 위험하다 싶을 때에는 참관인(가족이나 친구)도 1회에 한해 질문에 대한 응답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출연자가 자진해서 출연한 방송인 만큼 그 이상의 조치는 오히려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그까짓거 사실대로만 대답하면 되는게 뭐가 어렵냐"고 합니다. 하지만 3회까지 나간 이 프로그램을 보면 그 "사실대로만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여기 도전하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죽었다 깨나도 못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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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인기 프로그램인 KBS 2TV '출발 드림팀'이 부활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2회 정도의 파일럿을 촬영해 본 뒤 정규 편성을 고려한다는 상황인 모양입니다. 공식 반응은 '현재 전담팀이 꾸려져 있다' 정도군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매주 일요일 저녁 방송됐던 '출발 드림팀'은 운동신경이 뛰어난 젊은 남자 연예인들이 주로 등장해 선수 못잖은 기량을 자랑하던 프로그램이죠. 혹은 한때 '한국 가요계에서 뜨려면 애를 잘 보든가, 뜀틀이라도 잘 넘어야 한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낳았던 바로 그 프로그램입니다.

이 프로그램 MC로 등장했던 개그맨 이창명은 여기서 얻은 인기를 통해 '자장면 시키신 분' 광고에 출연했고, 이 광고의 인기를 타고 전국에 널린 자장면 체인 사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창명이야말로 왕년의 '출발 드림팀'에서 최고의 수혜자였다고 꼽을 만 합니다.

그럼 이 프로그램이 부활한다면, 시즌 2의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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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프로그램의 부활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조성모를 꼽게 됩니다. 조성모는 군 제대 복귀 후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드림팀 시절이 그립다'는 소회를 털어놨습니다. 그의 말대로 높이뛰기에서 2m50을 뛰어 넘었을 때 앨범이 250만장씩 팔려나갔으니 정말 그리운 그 시절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드림팀'이 조성모에게 최적의 무대였던 것은 여리고 여성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던 조성모에게 남자다움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조성모가 '드림팀'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만 해도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감상적인 발라드 가수인 조성모가 뛰고 달리는 데 이렇게 재능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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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모는 한때 '출발 드림팀'에 이어 팬클럽 회원들과 함께 마라톤을 10회 완주하는 철인 프로그램에도 도전, 발톱이 빠져 가며 421.95km를 달리는 무시무시한 역정을 소화하기도 했습니다. (네. 당시엔 정말 가수 하기 힘들었습니다) 아무튼 제대 후 신작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조성모는 새로 시작하는 '출발 드림팀'에 반드시 참여해 부활을 노릴 전망입니다. 과연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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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모 못잖게 득을 본 사람은 이상인입니다. '드림팀'이 없었다면 이상인이라는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마 지금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체육인 이상인'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고려대 출신이라는 드문 학벌과 함께 어린 시절부터 차력으로 단련된 이상인은 슈퍼탤런트 2기로 데뷔할 때(동기 중에 박선영과 이주현이 있습니다)부터 "황영조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전략적으로 뽑은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으며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아마 '드림팀'이 다시 뜨면 그에게도 복귀의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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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팀과 함께 영광을 누리다 보기 힘들어진 연예인 중에 탤런트 김승현이 있습니다.

큰 키와 매끈한 콧날, 가수 채연과 퍽 닮은 얼굴로 인기를 모았던 김승현은 어느날 갑자기 아이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다소 물의를 빚은 적이 있습니다. 그 전까지의 김승현은 차세대 주연급으로 꼽히는 유망주였고, '드림팀'에서는 조성모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높이뛰기의 다크호스였습니다.

요즘은 TV에선 자주 볼 수 없고, 쇼핑몰 운영으로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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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드림팀'의 영광을 말하자면 전진과 김종국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전진은 큰 키에서 뿜어나오는 주력과 점프력으로 거의 모든 종목에서 막강한 위력을 뽐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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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짜 체육인임을 뽐낸 것은 오히려 박용하였습니다. '드림팀' 출연이 그리 잦지는 않았지만, 등장할 때마다 가공할 스피드를 뽐냈던 박용하의 모습은 지금도 많은 팬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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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팀'에 이런 영광의 과거가 있었다면 어둠도 있었습니다. 얼핏 기억하기에 전진도 꽤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고, 많은 연예인들이 촬영 중 사고로 응급실 신세를 졌습니다. '드림팀'에서는 연예인들과 기존 스포츠 스타들의 대결도 자주 추진하곤 했는데, 현재 MBC ESPN 이상윤 해설위원(축구)은 2001년 이 프로그램 녹화 때 당한 부상 때문에 축구 인생이 바뀌기도 했죠.

물론 제작진도 크게 신경을 썼겠지만 몸으로 달리고 부딪는 프로그램인 만큼 부상의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있었고, 결국 4년간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이 프로그램은 '사람 잡는다'는 비판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또 이 프로그램에서 펄펄 날던 연예인들이 대부분 현역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비판의 여지를 남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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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출발 드림팀'이 부활된다면 가장 관심을 끌 승부는 '왕년의 드림팀'과 요즘 펄펄 날고 있는 20대 초반의 젊은 연예인들이 벌일 대결일 듯 합니다.

젊은 층은 아무래도 '짐승돌' 2PM이 주축이 될 듯 하군요. 과연 이 '짐승돌'들의 탄력과 스피드에 왕년의 노병들이 얼마나 맞상대할 수 있는지(예비역의 노련미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켜보는 건 생각만 해도 흥미롭습니다. 정규편성이 아니면 특집의 형태로라도 한번쯤 '드림팀'을 다시 보고 싶어집니다.



근데 재미있게 보셨으면 바로 아래 추천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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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의 할리우드 진출작 '지아이 조(G.I. Joe)'가 마침내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리 인기를 모으지 못했지만 G.I 조 인형은 미국의 남자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놀만큼 인기 만점입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말할 것도 없죠.

물론 아무리 인기 있는 원작이라고 하더라도 이병헌이 듣보잡 캐릭터로 나오면 의미가 없겠죠. 한국이나 아시아 출신이 아니더라도, 비 미국 출신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엉성한 캐릭터를 맡아 무너지는 경우는 한두번 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병헌이 스톰 섀도우 역을 맡았다고 할 때부터 안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아직 영화는 못 봤습니다만, 영화상으로도 훌륭한 모양입니다. 뿌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병헌에게 할리우드 진출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말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굴까요(제목에 썼으면서 이런..). 바로 성룡입니다. 오래 전에 썼던 글입니다. 이병헌과 성룡의 사연은 맨 뒤쪽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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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헌, 할리우드는 가서 뭘 하게?"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다 보면 언뜻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 오버랩된다. 그렇다. 교집합은 바로 아시아의 보석 공리다.

연인 장예모 감독과 함께 중국 영화를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히트 상품으로 만들어 내던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이미 공리도 40대. 하지만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다 보면 미모와 카리스마는 어떤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할리우드 진출에 있어 <게이샤의 추억>의 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모국인 중국 국민들은 장자이와 공리를 '일본 창녀가 됐다'며 매국노 취급을 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을 토대로 공리는 세계인의 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현재 공리가 있는 자리에는 다른 한국 여배우가 설 수도 있었다. 스필버그와 드림웍스 관계자들은 이 작품의 제작에 앞서 줄잡아 100여명의 한-중-일 3국 여배우들을 만났다.

김희선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 배우들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드림웍스는 장자이와 공리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 구사 능력이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고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많은 아시아 배우들은 이런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현재 <로스트>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리를 구축한 한국 배우가 된 김윤진을보면 영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물론 역시 영어 실력이 뛰어난 김민(성룡과 공연했던 <액시덴털 스파이>로 세계 무대에 나설 기회가 있었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언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연기력을 갖춘 상태에서 뛰어난 영어 구사력을 갖춘 김윤진에게 미국 시장은 그리 높은 벽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데뷔하던 시절의 김윤진은 오히려 한국어보다 영어 구사력이 뛰어난 배우였다. 중학교때 이민을 가 미국 보스턴대에서 셰익스피어극을 전공하고 미국에서도 연극 활동을 하던 김윤진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은 <질투>와 <국희> 등으로 잘 알려진 드라마의 거장 이승렬PD였다. 그는 지난 96년 미니시리즈 <화려한 휴가>를 제작하며 최재성의 여동생 역으로 김윤진을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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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자가 만난 김윤진은 교포 치고는 정확한 발음을 갖고 있었지만 인터뷰 도중에도 가끔 "그걸 한국말로 뭐라고 하죠?"라며 자기가 표현하려는 단어를 찾았다. 대본에 나오는 어려운 말은 일단 외우고 나중에 뜻을 물어본다던 김윤진은 그러면서도 항상 사전을 갖고 다니고, 밑줄을 치며 신문을 읽는 열성을 보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국에서도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고 미국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진 외에도 할리우드의 제의를 받았던 배우들은 대부분 영어구사력의 관문을 넘은 인물들이었다. 차인표가 007 시리즈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캐스팅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지만 당시 그는 이 영화가 한국의 실상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했다. 결국 그 배역은 재미교포 배우 윌 윤 리에게 돌아갔고, 역시 재미교포인 릭 윤이 악역으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양들의 침묵>의 조나선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에 출연했던 박중훈 이후 남자 연기자 중에서 '꿈의 할리우드'에 가장 근접해 있는 배우로는 이병헌이 첫 손에 꼽힌다. 유창한 영어 실력에다 그를 캐스팅하면 한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에서도 흥행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한류 스타로서의 지명도는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호조건이다. 이런 이병헌에게 대놓고 "할리우드에 가면 뭘 하냐"고 만류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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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병헌보다 먼저 할리우드를 밟은 아시아의 스타 성룡이었다.


지난 2005년,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성룡은 이병헌을 만나 반가운 술자리를 가졌다. 술잔이 도는 사이 이병헌이 할리우드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성룡은 "할리우드에 왜 가려고 하느냐. '가 봤는데' 별 것 없더라. 할리우드에 가는 것 보다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는 게 훨씬 낫다. 일단 당신이 노려야 할 것은 아시아 최고의 스타다. 그리고 나서 할리우드에서 모시러 오면 가고, 아니면 말면 그 뿐이다."


이날 성룡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할리우드에서 <러시 아워> 시리즈의 흥행 대박을 일궈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백인들의 변함 없는 편견 때문에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는 것이 동석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과연 성룡의 이 한마디가 이병헌의 야망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답은 몇년 뒤의 결과로 미뤄 짐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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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실제로 의형제를 맺었을 정도 친한 사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룡도 진정으로 이병헌에 대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거죠.

아무튼 이 무렵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빼어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려 온 이병헌은 마침내 입성에 성공했고, 할리우드의 스타 감독 중 하나인 스티븐 소머즈와도 친분을 쌓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윗글 마지막 부분에 쓰여 있는 '몇년 뒤'가 벌써 왔군요. 이런 이병헌의 모습을 보면 성룡도 옛날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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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이 인기 궤도에 오르면서 '이 드라마에는 세 개의 떡밥이 있다'는 얘기를 기자들과 나눴습니다. 굳이 떡밥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시청자를 붕어로 비하하는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게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떡밥이란, 이 드라마가 후발 주자들의 추격으로 위기(?)에 놓일 때 터뜨릴 수 있는 세 가지 비밀 무기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말하자면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비단 주머니 같은 역할이죠.

첫번째 떡밥은 당연히 덕만(이요원)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문노(정호빈)의 재등장이죠. 세번째는 유승호로 정해져 있는 김춘추의 등장입니다. 이 세가지 무기가 이미 장착돼 있기 때문에 '선덕여왕'은 탄탄한 독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이고, 이번에 첫번째 떡밥이 뿌려졌습니다. 아마도 SBS TV '드림'의 방송 시작에 맞춰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덕만이 천명(박예진)의 동생이라는 것이 공개되면서 '선덕여왕'은 34%로 치솟았고 '드림'은 여전히 5%대에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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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드라마에는 예고된 이벤트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베테랑 작가들은 한껏 긴장을 고조시켜 놓고 '터뜨릴 수 있는' 사건이나 인물들을 배치해놓고 전략을 짜기 마련이죠. 이미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들은 시간순에 따라 전략적인 사건 배치로 후발 작품들의 추격을 피하려 합니다. 반대로, 후발 작품들은 기를 쓰고 이런 상대방의 계산을 깨기 위해 현재 방송중인 작품을 1,2회 연장해 흐름을 깨려 하고, 특집방송을 끼워 넣는 등의 형태로 가장 중요한 첫회의 방송 시점을 미루곤 합니다. 시청률이란 작품의 수준에 따라서도 결정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진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덕만의 출생의 비밀' 이벤트는 성공적으로 끝나긴 했지만 상당히 반성의 여지도 남겼습니다. '덕만의 고민이나 반응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시청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라는 것을 안 덕만의 "나는 없어야 하는 사람이라면서요"라는 반응은 누가 봐도 20세기 이후에 태어난 사람의 것입니다. 7세기 사람이라면 저런 식의 '자아 우선' 반응을 보일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게다가 공주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도 '덕만아 덕만아' 하는 유신랑(엄태웅)의 태도 역시 무엄하기 짝이 없는 것이죠. 최소한 둘만 있을 때라도 존대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아무튼 아직 '덕만이 공주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으니 한동안 드라마가 골치아픈 방황을 하게 될 것은 분명해졌습니다. 작가진이 스스로 만든 이 난제를 어떻게 돌파할지가 궁금합니다. 어려서 이미 죽어야 할 몸이었다면, 다 커서 돌아왔다 한들 내버려둘 수 없는 것은 분명하고 또 미실이 이를 묵과할 리가 없는데 과연 어쩔 작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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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번째와 세번째 떡밥으로 넘어갑니다.

사실 이 떡밥들이 언제 나올지는 제작진의 영업 비밀이므로 미리 알 수 없는 게 당연합니다. 다만 주변 상황으로 추측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일단 문노 부분입니다. 처음 몇 회 나오지 않았지만 '정의롭고도 강한 남자' 문노의 이미지는 워낙 강렬했고, 다시 등장하면 악의 무리(?)들을 단칼에 정리할 수 있을 듯 하기 때문에, 문노의 출현은 그 자체로 상당히 큰 이벤트가 될 겁니다.

하지만 문노의 재등장은 당분간 좀 어려울 듯 합니다. 국선 문노께서 제주도에 바쁜 볼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SBS TV 수목드라마 '태양을 삼켜라'에 상당히 중요한 역으로 출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쪽에서의 비중이 계속 커지는 한 양다리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따라서 SBS가 '드림'을 간접 지원하는 방법 중에는 '태양을 삼켜라'에서 정호빈의 출연 신을 계속 늘리는 것도 있을 겁니다. 아직도 '선덕여왕' 시청자 가운데 "대체 문노는 언제 나오는 거냐"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반면 정호빈의 역할이 축소된다면 문노의 복귀는 그만큼 앞당겨 질 수 있겠죠. (물론 심각해지면 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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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떡밥 역시 '드림' 쪽에는 치명적입니다. '드림'이 겨냥하고 있는 주 시청층이 10대와 20대를 핵심으로 하는 여성층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유승호의 등장은 만만찮은 위협입니다.

유승호는 별다른 최근 히트작 없이도 수많은 누나 팬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최근 티아라의 뮤직비디오에 출연, 멤버 지연과 나눈 키스신 때문에 인터넷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왜 벌써 그런 걸 시키냐'는 '누나 팬'들의 분노(?) 때문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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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유승호의 등장은 정말 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 그리 앞당겨지지 않을 전망입니다. 28일 방송에서 가만히 천명공주의 어깨를 감싸던 유신랑의 손길처럼, 유신랑을 둘러싼 두 자매의 미묘한 감정 대립이 상당 기간 이 드라마의 주제가 되어야 할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래 한 쪽은 애 딸린 과부고 한쪽은 처녀라는 점에서 그리 팽팽하지 못한 대결인데, 심지어 그 미망인에게 유승호같은 장성한 아들이 불쑥 등장한다면 이건 멜로드라마로선 치명적이겠죠.

그러니 제작진으로서는 '유승호의 등장 = 박예진의 멜로의 끝'이라는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박예진과 이요원은 설정상 쌍둥이 자매입니다. 어느 한쪽만 확 늙고, 어느 한 쪽은 여전히 젊은 채로 있다는 것도 비웃음을 자아낼 상황이죠. 즉 '유승호 같은 장성한 아들의 등장'은 곧 이요원에게도 '나도 제때 낳았으면 너만한 아들이 있다'는 상황이 되어 버립니다.

아무튼 이런 난제 때문에 유승호군의 등장은 그리 빨리 기대할 수 없겠습니다. 왕자 옷 입은 유승호군의 미태를 빨리 보고 싶은 시청자들은 안타깝지만 좀 더 기다리시든가, 아니면 '선덕여왕'의 시청률을 확 끌어내리든가 하는 방법을 써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그게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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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모 손담비 김범. 세 주인공의 이름값만으로도 기본은 먹고 들어갈듯한 SBS TV 새 월화드라마 '드림'(극본 정형수, 연출 백수찬)이 27일 첫 방송을 마쳤습니다. 이종격투기와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다소 낯선 소재에 대한 접근이 눈길을 끕니다.

일단은 속도감있는 연출이 안정감 있게 다가오는 첫회였습니다. 등장인물들 사이의 관계도 간명하게 펼쳐졌고 세 주인공의 엇갈림도 인상적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거침없는 진행이 돋보였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를 차별화하는 요소는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이 드라마는 지금껏 방송됐던 수많은 드라마들과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첫회에 나온 그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기존의 드라마 상식선에서 볼 때 '착한 인물'이 당최 보이질 않는 겁니다.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예의없고 못된^^ 드라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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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투수 유망주 출신으로 어깨가 망가진 뒤 스포츠 에이전트로 전향한 제일(주진모)은 냉정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에이전트계에서 두각을 보이지만, 어느날 친구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 기탁(연정훈-우정출연인 듯 합니다)이 스테로이드제 강제 복용을 폭로하고 야구계를 떠나버리는 대형 사고를 당합니다. 그동안 제일을 키워준 사장 경탁(박상원)은 곤란한 지경에 놓이자 제일을 헌신짝처럼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한편 소년원을 출소한 장석(김범)은 진짜 아버지인지 의심스러운 영출(오달수)를 만나고 가는 길에 드림체육관을 엿보다 관장 딸이자 태보 지도자인 소연(손담비)에게 혼쭐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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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1회의 대략 스토리. 그리고 앞으로는 경탁에게 버림받은 제일이 홀로서기를 위해 노력하다가 이종격투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장석(척 보면 당연하죠)의 에이전트가 되고, 그를 선수로 단련시키는 과정에서 소연과 두 남자가 삼각관계가 될 거라는 건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보지 않았어도 드라마 세편만 본 사람이면 알 수 있는 진행 방향입니다.

앞에서도 거론했지만 특이한 건 정말 한결같이 싸가지없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입니다. 에이전트들인 경탁과 제일은 천하 제일의 냉혈한들이고 장석 역시 앞으로 착하게 살겠다고 결심은 했다지만 결코 선량한 성격은 아닙니다. 소연 역시 만나자마자 재수없게 구는 제일을 그냥 두고 볼 성격이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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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장석의 아버지 영출부터 제일이 마음대로 주무르던 주기자(이름부터 참 의미심장합니다)에 이르기까지, 뭔가 생각을 추스려서 말하는 인물이 없습니다. 다들 생각나는대로 내뱉는 인물들 투성이고, 도대체 제대로 된 인물이 없습니다. 정말 쓰레기같은 세상이고 그 못잖은 등장인물들입니다.

이전까지 '다모'나 '주몽'같은 점잖은(?) 사극을 쓰던 정형수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버릇없음'은 참 뜻밖입니다. 아마도 이런 식의 거침없는 인물 됨됨이들은 바로 20대 이하 연령층을 겨냥한 의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옆에서 '마마' 하는 사극 '선덕여왕'이 굳게 버티고 있으니 이런 식의 직설 화법을 쓰는 드라마가 눈길을 끌 수가 있겠죠.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
 
(시청률을 확인해보니 5%대에 머물렀군요. 아직은 '선덕여왕'의 벽이 엄청나게 높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선에서 침몰할 드라마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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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회에서 유난히 돋보인 것은 손담비의 활용입니다. 사실 1회에서의 손담비는 대사 처리도 나쁘지 않았고, 뛰어난 연기 적응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연기보다 중요한 것은 손담비 그 자체더군요. 흔히 말하는 '자체발광'이란 말에 걸맞게, 그저 손담비가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이럴때 저는 '자연 다큐멘터리적인 연출'이라는 말을 씁니다. 손담비를 다루는 '드림' 제작진의 손길은 히말라야의 비경이나 이과수 폭포를 다루는 자연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접근 방식과 비슷하더라는 것입니다. 그저 카메라를 갖다 대면 그냥 볼거리더라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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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첫회 스토리의 초점은 주진모에게, 그리고 스토리와 무관하게 영상의 초점은 손담비에게 맞춰져 있어 상대적으로 김범의 비중은 작았지만 첫회에선 그 정도면 충분할 듯 합니다. 언제쯤 김범이 단련된 복근을 꺼내 여성 시청자들을 넋나가게 할지도 지켜볼 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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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김범의 복근은 전략적으로 아껴 둘 수도 있겠지만(예상보다 시청률이 더디게 오를수록 빨리 등장하겠죠), 줄리엔 강(위 사진)을 비롯한 다른 근육질 출연진들의 대거 등장은 여성 시청자들에게 상당한 자극이 될 듯 합니다.

결국 '드림'의 성패가 전 연령층의 여성 시청자들, 그리고 30대 이하의 남성 시청자들을 '선덕여왕'과 '결혼 못하는 남자'로부터 얼마나 빼앗아 오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때 김범과 기타 출연진의 복근이 맡을 역할은 막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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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이런 드라마에 과연 언제쯤 '괜찮은 기자'도 하나쯤 나올까 하는 겁니다. 보통 사람보다 유별나게 괜찮지 않더라도, 대략 그냥 보통 사람 정도만 되는 기자 하나만 구경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뭐 판타지이긴 하지만 스포츠 백 안에 가득 든 돈다발... 그저 웃음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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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1박2일'을 보다 보면 이제는 선수 중의 선수가 된 여섯 멤버들의 개인 기량 발전에도 주목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처음에는 정말 하는게 운전 밖에 없는 듯 하던 이수근은 이제 여섯 멤버 가운데 가장 웃기는 멤버로 발전했고, 초반에는 그냥 거친 형들(?)의 놀림감이던 허당 이승기는 오히려 형들을 가지고 노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좀 너무 웃자랐다는 느낌이 가끔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섯 멤버 가운데 가장 놀라운 성장을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은 제가 보기에는 은지원입니다. 수시로 '천재'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은지원은 여섯 멤버 가운데 순발력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미리 짜여져 있는 룰 안에서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하지만, 그때마다 발생하는 새로운 국면에 대한 적응에서는 이제 한 경지에 올랐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확실히 짙게 한 것이 26일 방송에 나온 '섭섭도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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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로 떠난 전남 영광 여행에서 갑자기 돌발적으로 고민 상담이 시작됩니다. 고민 상담이라면 연예계 고민 상담의 1인자 무릎팍 도사 강호동이 있지만 경쟁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무릎팍 도사를 연기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전에도 한번 등장했던 이수근의 '물렁뼈 도사'가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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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물렁뼈도사는 내공 부족으로 조기 은퇴. 그리고 그 자리를 이어받은 것은 섭섭도사 은지원이었습니다. 은지원은 손님으로 바뀐 이수근, 리액션에 약점이 있다는 김C, 드라마 뿐만 아니라 예능에서도 1인자가 되고 싶다는 이승기를 연속으로 처리해 도사로서의 자격을 인증받았습니다.

사실 이게 미리 짜여져 있던 얘기라면 별로 할 얘기가 없겠지만, 프로그램의 흐름으로 볼 때 '섭섭도사'라는 이름조차도 이수근이 그 자리에서 지어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세 손님에게 적절한 대처를 해서 돌려보낼 수 있었다는 건 은지원의 순발력이 만만찮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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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집으로' 특집 때에도 은지원의 솜씨에 대해 칭찬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집으로'라는 당시 방송분의 컨셉트가 아예 은지원을 위해 짜여진 거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스스로 상황을 만들고 거기에 대처해야 하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경우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이제 메인 MC의 자리를 위해 은지원에게 남은 과제는 뭘까요. 제 생각엔 긴 호흡과 교양입니다. 순발력과 받아 치는 실력으로는 발군인 박명수도 단독 MC로 나섰을 때에는 만만찮은 곤란을 겪었습니다. 이건 메인 MC와 서브 MC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은지원에게도 좀 다르지만 비슷한 주문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1시간 가량 길이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정확한 문장 구사력과 평균 이상의 교양 수준이 필수입니다. 초기의 강호동을 생각하면, 지금의 강호동이 얼마나 많은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 기억하시는 분들은 다 알수 있을 겁니다. 나날이 발전하는 발군의 순발력을 자랑하는 은지원이 앞으로 어떻게 차세대 MC의 모습을 갖춰 가는지도 지켜볼 만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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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나자나 영광굴비... 정말 침샘을 바쁘게 하더군요. 내외가 한참 침을 삼켰습니다. 어디 가서 숙성 잘 된 보리굴비 한마리 구해다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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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아트센터의 2009년판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보고 왔습니다.

어떤 장르든 '입문용 작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음식이라는 분야를 대상으로 한다면, 처음부터 삭힌 홍어나 청국장을 먹여서 한국음식에 입문을 시키려 한다면 거부감을 느끼고 달아날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이 '브로드웨이 42번가'는 뮤지컬, 특히 대중용 뮤지컬의 입문용 작품으로 가장 적절한 작품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춤과 노래, 스토리의 세 박자가 - 오늘날의 시선에서 볼 때는 유치할 정도로 지나치게 단순하고 명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 잘 갖춰진 작품입니다. 물론 어떤 작품부터 시작해도 지금 뮤지컬을 즐기고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이런 작품부터 시작해서 내공이 쌓여나간다면 이상적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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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이번으로 모두 네번째 보게 됐습니다. 1996년 국내 초연 때 처음 봤고 브로드웨이서는 2001년 리바이벌 공연 때 본 적이 있습니다. 뮤지컬의 고풍스러운 느낌과는 달리 브로드웨이 초연도 1980년, 생각보다 훨씬 늦습니다.

그런데도 옛날 작품 냄새가 가득한 이유는 이 뮤지컬이 1933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주 오해가 일어나는데, 이 원작 영화는 '뮤지컬 제작 현장을 무대로 하고 있을 뿐' 뮤지컬 영화가 아닙니다. 뮤지컬인 줄 알고 DVD를 샀다가 이게 뭥미 했던 사람이 여기도 하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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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번가'의 스토리 라인은 앞에서도 말했듯 지독하게 단순합니다. 브로드웨이 최고의 연출자인 줄리언 마쉬는 새로운 뮤지컬 '프리티 레이디'에 출연할 배우들을 고르기 위해 오디션을 실시합니다. 연예계 진출을 꿈꾸는 시골 처녀 페기 소여(빌리 조엘의 노래로 유명한 알렌타운 출신입니다)는 이 오디션에 늦어 기회를 얻지 못하지만, 어찌 어찌 하다가 막차로 코러스에 합류합니다.

마쉬가 이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점찍은 도로시는 무식하고 촌스러운 장난감 공장 사장 애브너를 꼬드겨 '프리티 레이디' 제작에 거액을 투자하게 하지만 정작 도로시에게는 숨겨운 애인 팻이 있습니다. 마쉬는 팻의 존재가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팻을 제거하려고 손을 쓰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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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작품을 처음 대하는 사람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결말이 펼쳐집니다. 즉 이 이야기는 '순진한 시골 처녀가 하루 아침에 브로드웨이의 빅 스타가 되는 이야기'인 것이죠.

1980년 초연된 작품은 3천회 이상 공연되는 성공을 거뒀고, 2001년의 리바이벌 공연도 1천회 이상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번 LG아트센터 공연은 굳이 1980년의 프로덕션을 따른다고 되어 있더군요.

'1980년 버전이 스토리의 완결성에서 앞선다' 어쩌고 하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이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2001년 버전과 1980년 버전은 몇가지 무대 장치를 빼놓고는 똑같기 때문입니다.

2001년 버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 계단 신입니다. 출연자 거의 전원이 조명이 밝혀진 화려한 계단에 서서 금빛 반짝이 의상을 차려 입고(이 대목에선 영화 '코러스 라인'의 영향이 느껴집니다) 화려한 탭댄스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장면이죠. 이 장면을 위해 수십명이 무대 뒤에서 계단을 달려내려오는 장면은 그 자체로 대단한 볼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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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LG아트센터 공연은 엄밀히 말하면 1980년과 2001년의 중간입니다. 화려한 반짝이 의상과 탭댄스 퍼포먼스는 그대로 있지만 계단은 없어졌습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계단을 만드는 비용의 문제일지... 그러고 보면 2001년 버전에 있는 중간의 코러스 숙소 신(서로의 방에서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없어졌습니다.^

아무튼 이 작품이 주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향수와 순진한 유머감각은 오늘날의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통하는 듯 합니다. 공연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열광 그 자체였습니다. 사실 '지킬 앤 하이드'나 '돈 주앙' 같은 심각한 분위기의 뮤지컬들이 나오는 시대에 이렇게 선의와 순박함으로 가득 한 작품이 생명력을 얻고 있다는 것 역시 이 작품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작품의 주제가이자 브로드웨이의 주제가가 되어 버린 '브로드웨이의 자장가'입니다.

제가 본 공연은 마쉬(김법래), 페기(임혜영), 도로시(박해미)의 캐스트였습니다. 김법래의 마쉬는 매우 훌륭했고, 아마도 박상원의 마쉬보다 카리스마의 측면에선 좀 더 나은 캐스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임혜영의 페기입니다. 춤과 외모, 전반부의 목소리에서는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이 뮤지컬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끝부분, '페기의 성숙'을 표현하는 장면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은 매우 놀랍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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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쉬는 공연 직전 페기에게 "무대에 올라갈때는 신출내기지만 내려올 때에는 스타가 되어 있어야 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쉬에게 파티에 함께 가자고 말하는 페기는 전과는 전혀 다른, 요부의 느낌을 주어 마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런데 임혜영의 페기는 이 장면에서 무대에 올라가기 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목소리의 한계 때문인지, 새로운 인물 해석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극 전편에서 이 장면이 갖는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임혜영의 페기로 이 공연을 본 사람은 포인트 하나를 놓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옥주현의 페기를 보지 못했으므로 둘 중 누가 더 나은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LG아트센터 공연의 강점은 잘 짜여진 안무와, 원작의 의도를 전혀 훼손하지 않는 화려한 안무입니다. 특히나 '대체 뮤지컬이라는 걸 왜 보러 가는 거야?'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이래서 보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는 더 이상 적절한 작품이 없을 정도입니다. 평점은 '놓치면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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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는 해운대를 덮치는 가상의 쓰나미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 지진 전문가 김휘 박사(박중훈)는 부산 재해대책 당국에 메가 쓰나미의 공포를 역설하지만 당국자는 "이제껏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 당국자가 몰랐기 때문에 나온 반응입니다. 최근 30년간, 적어도 두 차례 한국은 쓰나미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 1983년과 1993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두 차례 모두 '해운대'의 설정과 흡사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위력은 영화에 나온 메가쓰나미에 비해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지만, 일본 연안의 해저 지진이 한국에 해일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기엔 충분했습니다. 특히 1993년엔 '우리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한동안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런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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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22일 개봉한 영화 ‘해운대’는 쓰나미로 부산 해운대가 쑥대밭이 되는 가상 상황을 그린 영화다. 이런 영화에는 재해를 정확하게 예언하지만 무시당하는, 이른바 카산드라(Cassandra) 캐릭터가 반드시 등장한다. ‘해운대’에선 박중훈이 연기하는 김휘 박사가 줄곧 “일본 쓰시마 섬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해일은 10분 만에 부산 앞바다에 도착한다”며 대비를 촉구하지만, 피서철을 맞은 공무원들은 안 그래도 바쁘다며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 땅에 쓰나미가 밀어닥친다는 얘기는 얼핏 허황된 듯하지만 사실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1983년 5월 27일자 중앙일보는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여파로 강원도 동해안에 바닷물이 높아졌다 낮아지는 승강현상과 함께 파고 3m의 해일이 밀어닥쳐 3명이 실종되고, 74척의 선박이 침몰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지진 발생 지역은 홋카이도의 남쪽인 일본 서부 해상. 이 지진으로 일본은 1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쓰나미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있을 뿐, 해저 지진으로 인한 해일과 수면 승강 현상은 바로 쓰나미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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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7월 12일에도 역시 홋카이도 남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해저 지진으로 동해안에 해일이 발생, 57척의 어선이 파손됐다. 이 해 7월 20일자에는 당시 서울대 오임상 교수가 “일본 근해에서 해일이 발생할 경우 2~3시간이면 우리나라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해저 지진이 있을 경우 즉각 대비 태세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이 실려 있다. 영화 속 김휘 교수의 주장도 그리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사실 피서객의 입장에서 오늘날 해운대를 볼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르는 쓰나미보다는 백사장의 침식이다. 80년대 이후 해안의 무분별한 개발 결과 백사장의 길이가 날로 짧아져 해마다 여름이면 몇만t씩 모래를 보충한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침식 때문에 해안선에서 멀어질수록 급격하게 수면이 깊어지는 협곡화 현상까지 발생했다고도 한다. 다양한 백사장 보호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별 뾰족한 수는 없는 모양이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자신의 호 고운(孤雲)에서 한 글자를 떼어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피서지 해운대. 글자대로 바다와 구름만 남고 해수욕장은 사라지는 비운을 맞는다면 그거야말로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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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제가 쓰나미 전문가일리는 없으니 그림 설명을 보는게 낫겠습니다.

일본어의 쓰나미(津波)는 그냥 물결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이지만, 학술용어 쓰나미는 해일을 발생 원인으로 구별할 때, 지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해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림에서 보듯 쓰나미는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서 물 아래로 파동을 전달, 육지 가까운 곳에 도착하면 그 에너지를 높은 파도로 바꿔 덮쳐온다는 겁니다. 당연히 진앙으로부터의 거리와 지진의 크기가 파도의 크기를 결정하겠죠.

지금까지 기록된 한국의 쓰나미들은 비교적 거리가 먼 북해도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것들이라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83년과 93년의 사고를 봐도, 거의 매년 일어나는 홍수 피해에 비하면 별다른 큰 재난이라고 하기 힘든 정도입니다.

1983년의 재해 보도.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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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93년 5월20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지진에 대한 기획기사.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보다 일주일 전인 5월12일 홋카이도 남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가 밀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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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사상자 없이 어선 57척이 파손되는 정도의 피해였지만 일본에서는 당시 쓰나미로 14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대피할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이 기사의 끝부분에 이런 내용이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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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4-5m 정도라고 되어 있지만 가까운 지점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하는 경우, 쓰나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현재까지 기록된 최대의 쓰나미는 1958년 7월 9일 미국 알래스카 리투야만(Lituya Bay)에서 목격된 것으로, 파도의 높이가 524m(1720피트)에 달했다고 합니다. 대체 뭘로 측정했는지가 정말 궁금하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높은 쓰나미였다는군요.

영화에도 나오는 2004년의 인도양 쓰나미는 수마트라 섬 서쪽 160km 지점에서 진도 9.0의 해저 지진이 발생,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스리랑카 등 주변국들을 덮쳤습니다. 총 사망자만 30여만명. 수마트라 해안에서 본 파도의 높이는 30m에 달했다고 합니다.

물론 영화 속의 대형 재해가 발생하려면 한국과 상당히 거리가 가까운 쓰시마 섬의 서안에서, 그것도 초대형 지진이 발생해야 한다는 등 여러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아예 일어날 수 없는 재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영화 얘기는 언제 나오나 하는 분들을 위해: 영화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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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까지 가능성으로 따진다면, 해운대 해수욕장은 쓰나미로 사라지는 것보다 모래 침식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더 높을 듯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자동으로 모래사장이 평형을 유지한다, 심지어 최근 몇년 사이에는 오히려 백사장이 넓어지고 있다는 등의 주장들이 엇갈리고 있지만, 현재의 백사장 넓이를 보면 끝없는 모래사장으로 기억되던 왕년의 해운대와는 천지차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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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최근 내린 비로 한 신축 건물 앞의 해변은 이렇게 자갈이 드러나기도 했다는군요. 이거야말로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만큼 수중 제방을 설치한다는 등의 다양한 대책이 세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어서, 다음 세대에도 해운대 백사장의 전설이 전해지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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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는 개봉 전부터 큰 우려의 대상이 됐던 영화입니다. 당초 올 여름을 겨냥한 한국 영화계의 카드로는 '해운대', '차우', '국가대표'가 있었죠. 이 가운데서도 '해운대'는 한국 영화 사상 초유의 재난 블록버스터로 큰 주목을 끌었습니다.

아무리 CG 기술이 발달했다 한들 관객들의 눈높이 역시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재난 블록버스터란 엔간한 제작비로는 감히 시도하기 힘든 장르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처음 공개된 예고편의 수준은 2년 동안 '해운대'를 기다렸던 관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대재난이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오가곤 했죠.

하지만 극장에서 개봉된 '해운대'는 이런 사람들의 걱정을 상당 부분 가라앉히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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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과 '해운대'의 초기 홍보 방향은 '재난'에 올인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 무렵까지 대중들에게 홍보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설경구도, 하지원도, 박중훈도 아닌 '쓰나미'였던 것이죠.

하지만 이건 대단히 위험하고 초보적인 생각입니다. 어떤 재난 영화도 '재난'을 주인공으로 해서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재난 영화의 고전들인 스티브 맥퀸의 '타워링'이나 진 해크만의 '포세이돈 어드벤처(리메이크 말고 오리지날)'에서 비교적 최근작인 '투모로우'에 이르기까지, 재난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져야 할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왕 제임스 카메론이 '타이타닉'의 대사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속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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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어떤 재난영화도 재난을 보여주는 걸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습니다. 쓰나미가 덮쳐 폐허가 된 파라다이스 호텔이나 씨클라우드 호텔의 모습은 한 몇초 정도 사람들을 '아' 하게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 영화가 성공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결국 그 재난에 연루된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어떻게 영화에 녹아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재난'만을 강조한 예고편에 쏟아진 혹평이 본편 영화 '해운대'가 지금의 모습으로 개봉되는 데에는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한 관계자는 "예고편에 대한 반응을 보고 나서 편집 방향이 상당 부분 수정됐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이때 휴먼 스토리에 대한 부분이 좀 더 강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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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입니다.

2004년, 원양어선을 타고 가다가 쓰나미에 휘말린 만식(설경구)은 같이 타고 있던 연희(하지원)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고 늘 마음의 짐을 느낍니다. 2009년. 연희는 해운대에서 낮에는 생선 행상, 밤에는 횟집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고 있고, 이웃 상가 번영회장이 된 만식은 늘 안쓰러운 눈으로 연희를 바라봅니다.

지질학자 김휘박사(박중훈)는 홋카이도 인근에서부터 차츰 남하하는 해저 지진의 진앙지를 보고 한반도에 쓰나미가 닥칠 가능성을 경고하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특히 해운대에서 각국 VIP들과 함께 포럼을 준비하고 있는 김박사의 전처 유진(엄정화)은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김박사가 짜증스러울 뿐입니다.

만식의 동생인 구조대원 형식(이민기)은 서울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러온 삼수생 희미(강예원)를 구해 주다가 엉뚱한 인연이 닿게 됩니다. 이런 세 커플의 사연 위로 쓰나미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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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재난영화지만 진짜 재난이 닥치는 것은 영화가 시작하고 90분이 지나서입니다. 그 전까지 세 커플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사연이 구구절절 소개됩니다. 이 부분에서 윤제균 감독은 충분히 재능을 발휘합니다.

지나치게 신파조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이런 영화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야말로 신파 스토리라는 것은 지난 세기부터 시작된 재난영화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타이타닉' 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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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일일히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베테랑 배우들답게 다들 자기 몫을 해 주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득을 본 사람을 꼽으라면 백수건달 동춘 역의 김인권과 구조대원 형식 역의 이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 동춘 캐릭터는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민기는 이 영화를 통해 '멋진 남자' 이미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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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얘기했듯 쓰나미는 이 영화에서 단역입니다. 사람들의 갈등과 사연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죠. 그리고 '해운대'는 그런 재난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영화가 됐습니다.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면 그걸로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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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연히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쓰나미에 대한 연구가 좀 부족해 보입니다. 그저 거대한 파도가 해운대를 덮친다는 얘기만 강조될 뿐, 쓰나미라는 재난을 당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에 대한 연구가 좀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재난영화에서 과학을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것은 잘 알지만, 이를테면 2차 쓰나미가 올 때 1차 쓰나미에서 온전했던 건물까지 쓸려가는데 광안대교 아래에 둥둥 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멀쩡한지, 그리고 왜 호텔 복도는 그냥 걸을 수 있는 정도인데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 키까지 물이 차는지 등등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하긴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끝이 없긴 없죠.^^ 사람이 평지에서 볼 수 있는 수평선은 맑은 날도 5-7km를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영화 속 쓰나미의 속도는 시속 700km. 수평선 끝에서 파도가 보이고 약 30초 뒤면 뛰고 어쩌고 할 새도 없이 끝장이 난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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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쓰나미 이전의 사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쓰나미 이후의 삶에 대한 조명 역시 지나치게 부족합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바로 마무리입니다. 당연히 대 재난이 덮쳤으므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칩니다. '해운대' 제작진의 마무리는 그 죽고 다친 사람들의 뒷애기를 담담하게 지켜보는 선에서 그칩니다.

뭐 그걸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작진의 선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재난영화의 결말은 재난이 재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건을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승화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해운대'의 상영시간은 2시간 10분. 이런 규모의 영화라면 3시간은 되어도 충분할 듯 한데, 이야기의 살려내지 못한 부분들이 좀 아쉽긴 하지만 초유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할 몫은 충분히 다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평점을 매기라면, 저의 평점은 '볼만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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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이 영화의 무대가 '한국 어느 항구도시'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구체적인 지역,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해운대로 설정되어 있었다면 좀 더 노골적인 결말이 나와도 나쁠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왜 제작진은 결말에서 부산 시민들의 애향심을 좀 더 자극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결말은 '재난을 극복하고 도시를 재건하려는 부산 시민의 의지'를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부산적인 요소'는 영화 내내 나오는 사투리와 롯데 자이언츠 신 만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부산 시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결말이 있었다면 '친구' 때의 경험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최소 100만명 이상의 관객은 더 동원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실지... 너무 장삿속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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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현역 소주 모델인 하지원이 다른 회사 소주병을 놓고 앉아있는 모습... 물론 부산이라는 향토색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광고주가 보면 좀 분노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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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무릎팍도사'에 박중훈이 출연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반드시 빠지지 않고 나올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던 질문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장동건이 어떻게 하면 무릎팍도사에 나올까요?'라는 질문, 두번째는 선배 안성기와의 관계에 대한 질문, 그리고 세번째는 자주 무릎팍도사와 비교됐던 '박중훈 쇼'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22일 방송된 박중훈 편 2부에서는 세가지 얘기가 모두 나왔습니다.

세 질문 중 가장 흥미도(?)가 떨어질 법한 안성기와의 관계. "배우 박중훈에게 안성기는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박중훈은 "아버지와도 같다. 안성기라는 배우는 속도는 느리지만 크고 튼튼한 트럭이다. 반면 나는 시속 200km를 낼 수 있는 스포츠카다. 가끔은 추월하지 않고 그 트럭의 뒤를 쫓는게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 뒤를 쫓아 달렸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 영화계, 혹은 연예계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이건 단순히 이 말 이상의 의미가 담긴 얘기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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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가요계에 조용필이 있다면 영화계에는 안성기가 있습니다. 이 경동중학교 동창생인 두 사람은 스타일은 전혀 다르지만 양쪽 분야에서 수많은 후배들의 추앙과 존경을 받고, 독보적인 '대선배'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조용필에게 김종서와 신승훈이 있다면 안성기에게는 박중훈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차이는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전통적으로 가수 쪽의 선후배 의식이 훨씬 강합니다. 아이들 그룹의 범람도 이런 전통적인 선후배간의 관계를 흔들지는 못했습니다. 조용필에 대한 존경은 80년대를 휩쓴, 카리스마 넘치는 제왕에 대한 자연스러운 추종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강한 위계질서의 연장선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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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배우 쪽에서는 안성기라는 인물이 구심점으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한동안 이런 전통적인 관계들이 실종됐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증언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들을 다시 정립한 것이 바로 박중훈이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관계를 정립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한때 한국 영화계 최대의 파워 서클이었던 골프 모임 싱글벙글이었습니다. 이름은 살짝 촌스럽지만^ 회장 안성기, 부회장 한석규 박중훈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 영화계의 거의 모든 주연급 남자 배우들이 회원이었던 모임이죠. 이 모임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안성기-박중훈을 축으로 하는 한국 남자 톱스타의 대열에 합류한다는 의미였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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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배들인 남자배우들은 가끔 "중훈이형의 부름을 받았을 때"를 흥분된 목소리로 상기하곤 합니다. 사실 영화계는 제작자건 스태프건 모든 소속된 사람들을 하나의 거대한 서클로 취급하는 몸짓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안성기 선배님'이라고 불리는 안성기의 카리스마를 완성시킨 데 박중훈이 세운 공헌은 수많은 다른 후배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그것이 영화계의 한 시스템을 완성하는 역할을 해 온 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얼마 전 한 술자리에서 어느 톱스타 남자 배우가 이제 막 스타로 발돋움하려는 남자 배우에게 열심히 이런 체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톱스타(이름을 그냥 쓰기는 그렇고, 얼마 전 왕 연기로 호평을 받은 J씨라고 해 두겠습니다)는 후배에게, 자신이 처음 '안성기 선배님'과 '중훈이 형'을 선배로 모시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내용입니다.

"나도 처음에는 다 잘난 사람들끼리 무슨 선배고 후배고, 위 아래 질서를 이렇게 따지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 영화계에 들어온 이상, 그렇게 형들이 위에 계시고 그 어디쯤에 내 위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게 그만큼 든든하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어. 너도 곧 알게 될거다. 내가 자리를 만들테니까 그때 다시 한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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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라서 얘기가 좀 장황해진 탓도 있겠지만, 그 후배는 아직 이런 이야기에 그리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도 머잖아 그 대열에 합류해 있을 거란 점은 그리 의심스럽지 않더군요.

아무튼 박중훈은 '안성기 선배님'을 영화계 전체가 '선배님'이라고 부르게 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지만 누구도 그를 안성기의 그림자에 묻힌 인물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질서의 정립을 통해 그 자신 또한 존경받는 선배로 자리하게 된 것이죠. '박중훈 쇼'에 그 많은 톱스타들이 선뜻 출연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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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연예계에서 분야에 관계 없이 대통령을 뽑는다면 가장 당선 확률이 높은 사람은 박중훈일 것"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이 주장이 옳다는 데 꽤 무게를 실어 준 듯 합니다. 그리고 이런 폭넓은 인망이야말로 그가 '시속 40km로 달리는 트럭 안성기'의 뒤를 묵묵히 지킨 대가가 아닐까 합니다. 만약 그가 무리하게 앞서가려 했다면 결코 얻지 못했을 것들 말입니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박중훈의 현명함을 돋보이게 하는 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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