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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가 월요일 밤 <600만불의 사나이>로 한창 장안의 화제를 독점하고 있을 무렵, MBC는 목요일 밤 <특수공작원 소머즈>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시청자들은 잠시 의아해했지만 곧 적응했습니다. 두 시리즈는 주인공 외에는 모든 배경이 똑같았기 때문이죠.

두 시리즈는 쌍둥이입니다. 스티브 오스틴(리 메이저스)과 제이미 소머즈(린제이 와그너)는 모두 오스카 골드맨(리처드 앤더슨)의 명령을 받아 움직이는 OSI의 요원들입니다. 시청자들은 자세한 속사정은 몰랐지만, 아무튼 두 드라마가 같은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 차립니다. 심지어 <특수공작원 소머즈>의 몇몇 에피소드에는 '오스틴 대령'이 함께 등장합니다. 단지 방송사가 달랐기 때문에 귀에 익은 양지운씨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는 게 불만인 정도였습니다.

당시의 한국 시청자들은 몰랐지만 <특수공작원 소머즈>, 즉 Bionic Woman은 <600만불의 사나이>에서 갈라져 나온 드라마입니다. 인기 절정이던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오스틴 대령에게 여자친구를 마련해 주고, 그 에피소드가 인기를 끌자 이 여자친구를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에피소드를 탄생시킨 것이죠.

한 드라마에서 인기를 끈 설정을 그대로 끌고 나와 또 하나의 새로운 드라마를 론칭시키는 것을 흔히 스핀오프 Spin-off라고 부릅니다. 이 두 드라마는 지금까지 나온 거의 모든 스핀오프의 모범 사례로 꼽히죠. 최근의 히트 시트콤이었던 <프렌즈>는 스핀오프로 <조이>를 탄생시켰지만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영화 <데어데블>과 스핀오프인 <엘렉트라>는 두 편 모두 신통한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죠.


아무튼 처음으로 제이미 소머즈, 미모의 프로 테니스 선수이며 우주비행사 스티브 오스틴의 옛 애인이었다는 스펙을 가진 이 여인이 처음으로 시청자들에게 등장한 것은 1975년 3월16일의 일입니다. 두번째 시즌으로 접어든 <600만불의 사나이>의 19번째 에피소드였죠.

이 에피소드의 소제목이 바로 The Bionic Woman입니다. 이듬해부터 3시즌에 걸쳐 방송될 인기 시리즈의 제목이 이때 정해진 것입니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일단 여기서 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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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의 어느 날, 그렇게 온 반 아이들(특히 남자 아이들)의 화제가 한 곳에 집중되는 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따라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셨는데, 절반 이상이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했던 걸로 기억납니다.

그렇습니다. 그 전날이 바로 <원더우먼>의 첫회, 트레버 소령(라일 와고너)이 버뮤다 삼각지대에 떨어져 원더우먼 린다 카터를 처음 만나 인간 세계로 데려오는 에피소드가 한국에서 방송된 날이었거든요.

전 세계인에게 원더우먼=린다 카터라는 등식은 깨진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 시리즈를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이 사진을 보면 "원더우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린다 카터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원더우먼'이라고 말하면 '아하'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캐릭터인데다, 린다 카터는 그 역할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얼굴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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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여배우들의 기준으로 볼 때 분명히 빠지는 얼굴은 아닙니다. 5피트 7인치(1m68 정도 되는군요)의 키에 35-23-34의 몸매, 윔블던 본선에도 올라간 적이 있는 전직 프로 테니스 선수에 저 정도의 외모라면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1974년, 미국 방송이 린다 카터보다 2년 전에 원더우먼 역할을 할 여배우를 찾았을 때 선택된 것은 캐시 리 크로스비였습니다. 크로스비라는 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빙 크로스비와는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이 <원더우먼>은 코믹스 판 <원더우먼>에서 다이애나 프린스와 트레버 소령이라는 주인공들의 이름을 갖고 오긴 했지만 코믹스의 세계와는 사실 거의 관계가 없었습니다. 이 원더우먼의 능력도 뛰어나긴 했지만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에 비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총알을 막는 팔찌 따위도 없었고, 대신 정교한 폭발물과 기계 장비가 임무 수행을 도왔을 뿐입니다. 의상도 독특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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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원더우먼>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고, 그저 파일럿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실 이 1974년판 <원더우먼>은 한국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린다 카터의 <원더우먼>이 한창 방송되던 도중-아마도 TBC의 구매 담당자와 미국 프로그램 판매사 사이에 뭔가 차질이 빚어진게 아닌가 추측해보지만- 아무런 예고 없이 캐시 리 크로스비의 <원더우먼>이 방송된 것이죠. 물론 성우까지도 다른 성우들을 썼기 때문에 혼동의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단지 방송이 나간 뒤에 시청자들로부터 상당한 항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대체 '우리의 린다'는 어디다 갖다 버리고 저렇게 못생긴 여자를 대역으로 데리고 왔느냐"는게 항의의 주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크로스비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동일선상에서 경쟁을 벌였다 해도 그가 린다 카터를 이기기는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누가 저런 '국제 표준 미녀'에게 감히 대항할 수 있었을까요.

린다 카터에게 극장판 원더우먼 역할은 누가 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하자 "캐서린 제타 존스... 글쎄...?"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차라리 린다 카터가 그냥 하라"는 약간 정신나간 팬들도 상당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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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얘기 나오는 산드라 블록요? 그냥 영화 예산을 현찰로 바꿔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린다 카터는 <원더우먼> 외에는 배우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갑부 변호사 로버트 알트만(BCCI 스캔들이라는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관련된 엄청난 금융 스캔들의 주범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만큼 돈과 권력도 장난 아니란 얘기죠)과 결혼해 떵떵거리고 잘 살고 있습니다. 반면 크로스비는 근육에서 힘이 빠지는 희귀병으로 불행한 만년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운명이 그에겐 지나치게 가혹했다고나 할까요.


캐시 리 크로스비판 원더우먼의 오프닝입니다.




그중 한 장면. 함정에 빠진 원더우먼입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린다 카터 원더우먼. 위기 돌파가 훨씬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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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됩니다. http://isblog.joins.com/fivecard/13)


흔히 조선 3대 악녀(?)로 정난정, 장녹수, 장희빈을 꼽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여기에 광해군 때의 상궁 김개시(개똥이)를 포함시키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아무튼 조선같은 신분사회에서 여자의 몸으로 정권을 농단할 수 있었다는 건 대단한 재능이라고 봐야겠죠.

영화 <왕의 남자>에서 이준기에 비해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강성연은 농염한 연기로 전과는 크게 다른 느낌을 심는데 성공했습니다. TV에선 지나치게 바른생활소녀 역할만 해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무튼 강성연이 연기한 장녹수는, 실제로는 강성연 만한 미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녀가 아닌데도 남자를 녹이는 별난 재주가 있었다...는 것이 요지인데, 한번 자세한 내용을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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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2] <왕의 남자>의 진실은?

연산군이 정씨와 엄씨의 시신을 처리한 방식은 원문에는 '裂而?之, 散棄山野'라고 되어 있다. '잘게 찢어 해(?, 젓갈)로 담가 산과 들에 흩뿌렸다'는 뜻이다. 시신마저도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은 최고의 형벌을 뜻한다. 일찌기 한고조 유방이 통일의 공신인 팽월을 죽인 뒤 시체를 해(?)로 만들어 각지의 장수들에게 돌려 먹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내용은 뒷날 '중국인은 사람 고기를 수시로 먹었다'는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그저 처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분풀이가 되지 않았던 새디스트들이 개발한 복수의 한 방법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4. 장녹수는 정말로 연산군을 아이 다루듯 했나?

강성연이 연기한 장녹수는 연산군을 아기 다루듯 하며 공길과 연산의 관계를 질투하는 드센 여자로 나온다. 과연 실제의 장녹수는 어떤 여자였을까. 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장녹수는 이팔 청춘도 아니었고, 빼어난 미인도 아닌 30여세의 농염한 여인이었으며 특히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다'는 것은 실록에도 나온다. 실록의 시각은 다음과 같다.

'장녹수는 제안 대군(齊安大君)의 가비(家婢)였다. 성품이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었는데,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 생활을 했으므로 시집을 여러 번 갔었다. 그러다가 대군(大君)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은 뒤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는데,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궁중으로 맞아들였는데, 이로부터 총애(寵愛)함이 날로 융성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좇았고,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얼굴은 보통 정도를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으므로, 왕이 혹하여 엄청난 상을 내렸다. (중략)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 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왕이 비록 몹시 노했더라도 녹수만 보면 반드시 기뻐하여 웃었으므로, 상주고 벌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려 있었다.'


5. 이극균은 정말 역모를 일으켰나?

광대들을 동물처럼 풀어놓은 사냥놀이에서 진짜 화살을 쏘다 잡힌 신하에게 연산군은 "네놈은 내 어머니에게 사약을 안긴 놈이 아니냐"고 말한다. 대본상으로 이 인물은 이극균이다(사실 진짜 이극균은 연산군에게 처단될 때 이미 67세의 노인이었으므로 활을 쏘아 누구를 노리고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성종조에 북방의 야인들을 무찔러 국경을 안정시키는 등 공이 많았으나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사사당할 때 조카 이세좌와 함께 사약을 받든 탓에 갑자사화의 희생양이 됐다. 영화와 같은 사건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 연산군은 이극균이 '나라의 명을 따랐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지은 죄가 없다'며 사약을 먹지 않고 목을 매어 죽자 시신의 목을 베어 효수한 뒤, 나중에는 무덤을 파 백골을 바람에 날리게 하는 등 복수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이극균과 이세좌의 운명은 두고 두고 얘깃거리가 됐다. 뒷날 숙종 때의 장희빈은 사약을 거부하며 "나에게 사약을 안기는 자는 뒷날 이세좌의 꼴이 될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장희빈의 아들인 세자가 뒷날 경종이 될 운명이었으니 그리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었다. 다만 경종이 단명하는 바람에 갑자사화와 같은 피바람은 다시 일지 않았다.


6. 한글로 연산군을 욕한 벽보가 붙었나?


이것이 유명한 익명서 사건이다. 1504년 7월, 신수영의 집에 익명으로 된 투서가 날아들어왔다. 살펴보니 3명의 의녀들이 모여서 임금을 비판했다는 비슷비슷한 내용의 익명서가 순 한글로 쓰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한 의녀가 '옛 임금은 난시(亂時)일지라도 이토록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는데 지금 우리 임금은 어떤 임금이기에 신하를 파리 머리를 끊듯이 죽이는가. 아아! 어느 때나 이를 분별할까?’ 하고 묻자 다른 의녀가 ‘그렇다면 반드시 오래 가지 못하려니와, 무슨 의심이 있으랴’라고 대답했다는 등의 대담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무튼 이 익명서를 보고 연산군은 대노하여 익명서의 등장인물들인 실재 인물들을 잡아들여 문초를 했으나 다들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조정이 발칵 뒤집혔고, 대신들은 '고발하는 자에게는 범인의 재산과 베 500필을 주고, 벼슬이 없는 자라면 3품 벼슬을 주며, 천민이면 양인을 만들어 준다'는 후한 상을 내걸기를 주청하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범인이 잡히자 않자 연산군은 몸이 달았다. 7월22일에는 한글을 쓰는 자를 처벌하고, 한글로 구결을 단 책까지 불태우라는 '언문 금지령'이 내려지고, 7월23일에는 한글을 잘 쓰는 자들의 필체를 보고하게 하여 필적 대조를 통해 범인을 잡으라는 지시까지 내린다. 결국 25일에는 한글과 한문을 잘 쓰는 자들의 필적을 사헌부 등에서 보관하게 하여 뒷날의 사단에 대비하라는 조치가 내려진다. 이렇게 난리를 피운 데 비하면 범인이 잡혔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으나, 필적 대조 사태는 영화에 나온 것과 과히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7. 연산군은 동성애자였나?

정사든 야사든 '연산군과 동성애'에 대한 암시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연산군에게서는 과도한 이성애의 흔적이 보일 뿐이다. 나중에 숙원의 직첩을 받은 장녹수를 비롯해 전향, 수근비 등의 수많은 여인들이 실록에 이름을 드러낸다. 특히 '사대부가의 여인들을 잔치에 불러 오래도록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종친인 월산대군부인 박씨와도 관계를 맺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월산대군은 아버지 성종의 친형이니 자신의 큰어머니를 능욕한 셈이다.

연산군 12년(1506년) 7월20일, 월산대군부인 박씨가 사망한 내용을 다루며 실록은 '사람들은 왕에게 총애를 받아 잉태하자 약을 먹고 자결한 것이라고 쑥덕거렸다(人言見幸於王, 有胎候, 服藥死)'는 내용을 덧붙였다. 그리고 이 스캔들은 그의 몰락을 앞당겼다. 중종반정의 주역인 박원종이 바로 이 대군부인 박씨의 남동생이었던 것이다. 박원종은 누이의 시신 앞에서 통곡했고 그로부터 불과 40여일 뒤인 9월2일, 성희안 유자광 등과 군사를 일으켜 연산군을 물리치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을 옹립한다. 아무튼 이런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연산군이 동성애자였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 인용된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은 모두 국사편찬위원회의 온라인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을 참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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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와 관련된 코멘트를 할 때마다, 반드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볼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만들걸 그랬다"고 합니다. 물론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말이겠지만, 저는 이 말에 한 30% 정도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감독의 '역사 비틀기' 솜씨는 이미 <황산벌>에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남자>는 그 부문에서는 <황산벌>의 성취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햄릿>을 이용한 경극 장면은 지나치게 가벼웠다고나 할까요. 영화는 화려하고 볼거리도 풍부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기에는 약간 부족했다는 것이 저의 느낌입니다.

아무튼 국민의 1/4이 봤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성취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이제 지독하게 못난 짓이 되어 버렸습니다. 다음은 영화가 한창 흥행 가도를 달릴 무렵인 지난 2월에 쓰여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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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왕의 남자'의 진실은? (1)
 

'왕의 남자'가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온갖 대작들이 겨울방학과 크리스마스-연말연시 대목을 겨냥하고 일제히 포문을 여는 12월. '킹콩'과 '태풍'의 쌍끌이 정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우려되던 '왕의 남자'는 예상밖의 선전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물론 아직 관객 동원면에서는 '태풍'의 절반 정도인 200만명 선을 웃돌고 있지만 제작비는 '태풍'의 1/4 수준이니 효율면에서는 두배가 넘는 셈이다.

원작 연극 '이'가 보여준 이색적인 소재, 감우성과 정진영에서 신인 이준기에 이르는 출연진의 호연, 이미 '황산벌'에서 역사의 재해석에 만만찮은 솜씨를 보여준 이준익 감독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룬 결과. 그런데 '왕의 남자'를 보다 보면 궁금증이 절로 생긴다. 과연 이 영화는 얼마나 역사 속의 사실과 일치하고 있을까? 예전같으면 꿈도 꾸기 힘든 일이지만 최근 전산화된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의 힘으로 일반인들도 조선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단, 이하의 내용은 그냥 궁금증을 해소하자는 글일 뿐, 영화의 공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일찌기 임권택 감독의 '개벽'이 개봉됐을 때 한 재야사학자는 '최제우와 전봉준은 보은 집회에서 만난 적이 없는데도 영화에서는 사실을 왜곡했다'며 영화의 '부정확한 고증'을 지적하는 글을 일간지에 기고하기도 했지만, 이는 영화에 대한 몰이해의 결과다. 영화 작가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사건들의 구멍을 상상력으로 메울 권리가 있다. 영화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1. 장생과 공길은 실존 인물인가?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의 연산군조에 장생이란 인물은 나오지 않지만 공길은 딱 한번 나온다. 연산군 11년(폐위되기 1년 전) 12월 29일의 일이다.

배우 공길(孔吉)이 늙은 선비 장난을 하며, (중략)'논어(論語)'를 외어 말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아무리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으랴"하니, 왕은 그 말이 불경하다 하여 곤장을 쳐서 먼 곳으로 유배(流配)하였다.

이날 왕은 또 "배우들이 서울에 떼로 모이면 도둑이 된다"는 이유로 아예 광대들이 대거 참석하던 전통 유희인 나례를 폐지시켜버렸다. 배우라는 존재에 대해 어지간히 비위가 상하지 않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이보다 6년 전인 연산군 5년(1499년) 12월19일만 해도 은손(銀孫)이라는 뛰어났던 광대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가 은퇴했으니 후임자를 천거하라고 대신들에게 요구할 정도로 연희에 애정이 두터웠던 연산군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실제의 역사는 이런 기록 한 줄로 추정하기에는 훨씬 복잡했을 것이다. 참고로 공길이 미소년이었을 것이라는 내용은 전혀 없다.


2. '왕의 남자'가 커버하고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의 기간인가?

시작의 시점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앞부분의 내용이 갑자사화 직전의 긴장된 분위기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작은 연산군 10년인 1504년 3월 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1506년이다. 이렇게 따지면 전체 시간은 약 2년에 달한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2년이 흘렀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3. 연산군은 정말 성종의 후궁들을 영화처럼 죽였나?

놀랍게도 실록은 영화보다 훨씬 끔찍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연산군 10년(1504년) 3월20일, 연산군은 임사홍의 밀고로 마침내 모친에 대한 복수의 칼을 뽑았다. 폐비 윤씨의 죽음이 아버지 성종의 후궁이었던 엄씨와 정씨, 그리고 이들을 궁으로 들인 할머니 인수대비의 참소 때문이라고 판단한 연산군은 일단 정씨의 소생인 두 동생,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잡아들여 곤장을 친다. 그 다음의 행동은 인간으로서는 용서받기 힘든 패륜의 극치였다. 실록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 본다.

(왕은) 모비(母妃) 윤씨(尹氏)가 폐위되고 죽은 것이 엄씨(嚴氏)·정씨(鄭氏) 의 참소 때문이라 하여, 밤에 엄씨·정씨를 대궐 뜰에 결박하여 놓고, 손수 마구 치고 짓밟다가, 안양군 항과 봉안군 봉을 불러 엄씨와 정씨를 가리키며 '이 죄인을 치라' 하니 항은 어두워서 누군지 모르고 치고, 봉은 마음속에 어머니임을 알고 차마 장을 대지 못하니, 왕이 불쾌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마구 치되 갖은 참혹한 짓을 하여 마침내 죽였다.(중략)

왕이 항과 봉의 머리털을 움켜잡고 인수 대비(仁粹大妃) 침전으로 가 방문을 열고 욕하기를 '이것은 대비의 사랑하는 손자가 드리는 술잔이니 한 번 맛보시오' 하며, 항을 독촉하여 잔을 드리게 하니, 대비가 부득이하여 허락하였다. 왕이 또 말하기를, '사랑하는 손자에게 하사하는 것이 없습니까?' 하니, 대비가 놀라 창졸간에 베 2필을 가져다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대비는 어찌하여 우리 어머니를 죽였습니까?' 하며, 불손한 말이 많았다. 뒤에 내수사(內需司)를 시켜 엄씨·정씨의 시신을 가져다 찢어 젓담그어 산과 들에 흩어버렸다.

다음날 왕은 자신의 명대로 어머니를 곤장으로 친 안양군에게 말 한마리를 상으로 내리는, 제 정신인 사람은 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결국 안양군 봉안군 형제는 1년 뒤 유배를 거쳐 사약을 받는다. 연산군은 이들을 죽이기 전에도 전 재산을 몰수하고 첩들을 다른 종친들에게 첩으로 보내는 등 악착같은 복수의 집념을 보였다. (2편에서 계속  http://isblog.joins.com/fivecard/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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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무어라는 이름을 모를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로저 무어는 제임스 본드로 변신하기 전, 두 편의 주목할만한 TV 시리즈에 출연합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세인트>일 겁니다. 항상 성자의 이름을 가명으로 쓰고, 특유의 사인을 현장에 남기는 괴도 세인트의 모습은 그가 표현한 제임스 본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로저 무어의 세인트 연기는 AFKN을 통해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시청자들이 볼 수 있었던 <세인트>는 무어의 후계자 아이언 오길비가 사이먼 템플러 역할을 맡았던 <돌아온 세인트>였죠. 그래서 오늘 여기서 소개할 시리즈는 바로 <전격대작전>, The Persuaders입니다.

The Persuaders (1971-72)

Tony Curtis ....  Danny Wilde
Roger Moore ....  Lord Brett Sinclair
Laurence Naismith ....  Judge Fulton

설정에 따르면 대니 와일드는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집안 출신의 미국 백만장자, 브렛 싱클레어는 뼈속부터 영국 귀족인 모험가입니다. 성분이 영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만사태평에 겁이라곤 없는 사나이들이라는 점이죠. 어느날 풀턴 판사는 법으로 해결하기 힘든 국제 범죄자들을 두 사람을 통해 처단하자는 야심을 품게 됩니다. 안 그래도 아드레날린이 넘쳐 나는 두 사람은 당연히 OK를 하죠. 이렇게 해서 한 시즌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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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팬들은 <스팔타커스>의 미남 스타 토니 커티스의 '망가진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두 빅 스타의 만남은 그 자체로 화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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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슬럼가를 헤치고 살아남은 야심만만한 와일드와 사빌 로우의 고급 양복을 걸친, 그야말로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금방 걸어나온 필리어스 포그의 현신 같은 싱클레어는 사사건건 부딪힙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분위기상 두 사람은 기관총이 소나기처럼 퍼붓는 상황 속을 걸어나오면서도 농담을 주고 받을 것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 앞에 해결되지 않을 문제는 없겠죠. 이런 장면이 기억납니다.

(지독한 난리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두 사람. 대니 와일드는 완전히 거지 꼴이 다 된 반면, 싱클레어 경은 양복-그것도 흰 색-에서 톡톡 먼지를 털어내고 있다.)

와일드: 이봐, 자네는 어떻게 이 난리통에서도 그렇게 깔끔한거야!
싱클레어: (눈길도 주지 않고 먼지를 털며) 흠. 그거야말로 자네와 내 차이 아니겠나.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농담은 오래 전 토니 커티스가 잭 레먼과 함께 주연한 <뜨거운 것이 좋아>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전격대작전>에서는 토니 커티스가 잭 레먼이 되고, 로저 무어가 토니 커티스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사실 두 주인공이 너무도 위력적이라는 것은 이 시리즈가 단 1시즌으로 끝맺게 된 요인이 됩니다. 절대로 실패할 것 같지 않은 주인공이 두 사람이나 되는데 대체 어떤 놈의 악당이 거기에 당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즉 '우리편이 너무 강하다 보니'  한두번이면 몰라도, 한 시즌 내내 흥미를 유지할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전격대작전>은 한 시즌으로 막을 내리고, 로저 무어는 안 그래도 전부터 오라고 오라고 난리를 치던 007 쪽으로 눈을 돌려 <죽느냐 사느냐 Live and let die>에 출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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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여유 넘치는 영국 신사 스파이의 모습은 <세인트>에서건, <전격대작전>에서건, 그리고 007 시리즈에서건 결국 그게 그거였죠. 물론 그게 그거라서 싫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진정한 007은 숀 코너리가 아니라 로저 무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p.s. 이제 제목에 대해 얘기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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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전격대작전>의 오프닝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노자무어 형님이 달러 지폐로 담뱃불을 붙이고 계십니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100불짜리 벤자민이겠죠.

저 장면을 보고 맨 위에 있는 <영웅본색>의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과연 우연일지, 아니면 모방일지, 오우삼씨는 진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전격대작전>의 오리지널 오프닝입니다.

 


2009년 개봉 예정으로 제작중인 영화판 <전격대작전>.

누굴까요? 조지 클루니와 휴 그랜트입니다.

현역 배우로는 최고 캐스팅인 것 같군요.^^




물론 오리지널 배우들에게는 그래도 좀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지만.

원작의 향기를 살짝 느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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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비 가족>이 한창 인기를 끌던 무렵, <엔젤 하트>라는 영화가 개봉됩니다. 로버트 드 니로와 미키 루크라는 두 빅 스타가 주연한 이색적인 분위기의 악마에 대한 영화였죠.

이 영화에서 신비의 인물 로버트 드 니로의 의뢰로 사람을 찾아다니는 사립탐정 미키 루크는 소녀를 갓 면한 미모의 흑인 여인과 하룻밤을 지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다음날 아침 시체로 발견되죠. 영화가 끝날 무렵, 그와 그녀는 서로 무관한 사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두 사람의 베드신은 80년대로서는 사뭇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TV에서 보던 미소녀가 어느 새 저런 노출 신을 소화하게 됐다는 건 사뭇 놀라운 일이었죠(개인적으로 참 놀랐습니다^^). <코스비 가족>의 둘째딸 리사 보넷은 만 스무살이 된 기념(?)으로 <엔젤 하트>를 통해 '이제 더 이상 청소년이 아님'을 알린 것이었죠.

비슷한 시기에 리사 보넷은 레니 크래비츠와 결혼까지 해 버립니다. 에릭 베네-할리 베리 커플의 탄생 전까지 할리우드 최고의 흑인 가수-연기자가 엮인 커플이라고 불러 손색이 없었죠. 그러고 보니 윌 스미스-제이다 핀켓 커플도 이 범주에 들 수 있겠군요.

아무튼 <엔젤 하트>의 반향은 미국에서도 제법 커서, 타블로이드들은 리사 보넷이 빌 코스비의 명을 어기고 <코스비 가족>에서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했다고 떠들어댔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넷은 <코스비 가족>이 막을 내릴 때까지 자리를 지켰고, 코스비는 보넷을 주인공으로 한 스핀오프 Different World를 내놓는 등 각별한 총애를 자랑합니다.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지만 위자료가 너무 많았는지 리사 보넷은 그리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윌 스미스와 공연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그리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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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에서는 출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인상적인 역할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바로 존 쿠색이 반해 하룻밤 풋사랑에 빠지는 포크 여가수 역할이죠. 이 영화에서만도 사뭇 멋졌지만 이제 마흔 줄에 들어선 리사 보넷,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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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sby Show, 1984-1992

Bill Cosby ....  Dr. Heathcliff 'Cliff' Huxtable
Phylicia Rashad ....  Clair Hanks Huxtable
Sabrina Le Beauf ....  Sondra Huxtable Tibideaux
Lisa Bonet ....  Denise Huxtable Kendall (1984-1991)
Malcolm-Jamal Warner ....  Theodore 'Theo' Huxtable
Tempestt Bledsoe ....  Vanessa Huxtable
Keshia Knight Pulliam ....  Rudy Huxtable


흑인 중산층(아빠가 의사고 엄마가 변호사면 사실 상류층이군요)을 무대로 한 이색 시트콤인 <코스비 가족>은 국내에서 정말 드물게 히트한, '흑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입니다. 한국 시청자들이 흑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면 놀랄 사람이 많을 겁니다. 90년대까지 한국 공연업자들은 '흑인 여가수 공연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을 정도입니다. 서울에서만 사신 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정서가 있죠.

아무튼 <코스비 가족>은 일요일 아침 시간대에 방송되며 많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아무래도 딕 반 패튼이 주연한 <아들과 딸들 Eight is enough> 이후 처음 한국 시장에 나온 본격 가족 드라마라는 점도 한 몫을 했을 것 같고, 무엇보다 늘 TV에는 범죄자나 극빈층으로만 묘사되던 흑인들이 안정된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는 점도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주역인 빌 코스비는 이런 부분에 항상 이의를 제기했다고 합니다.



코스비는 이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방송된 92년, 당시 로드니 킹 사건으로 빚어진 LA 난동 사태(한국인들의 피해가 컸죠)때 흑인들을 상대로 자제를 호소했을 만큼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관심이 큰 사람입니다. 그는 이 시트콤의 인기가 한창이던 87년 둘째딸 드니즈 역을 맡은 리사 보넷을 주인공으로 한 A Different World 라는 스핀오프 시트콤을 내놓습니다. '젊은 흑인들이 고등교육을 받고 사회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후반기에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이 주연하기도 한 이 시트콤도 나름대로 6시즌을 이어가는 짭짤한 성공을 거뒀죠.

초기에 헉스터블 부부와 네 딸, 한 아들(이는 진짜 코스비의 자녀 비율과 일치합니다)로만 단촐(?)하게 시작했던 출연진은 두 명의 사위가 추가되고 어린애였던 자녀들이 장성하며 이런 거대 가족이 되었습니다.

<코스비 가족>이 방송 9년만에 막을 내리자 '미국을 대표하는 가족 드라마'의 위치는 <심슨스>에게 넘어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어찌보면 <아메리칸 뷰티>가 괜히 나온게 아니죠.


당시의 주역들의 현재 모습을 담은 UCC입니다. 그런데 별로 달라진 사람이 없군요?



<코스비 가족> 이야기는 조금 할 얘기가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둘째 딸 드니즈에 대한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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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gan's Heros (1965-1971)

Bob Crane .... Col. Robert E. Hogan
Werner Klemperer .... Col. Wilhelm Klink
John Banner .... Sgt. Hans Georg Schultz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겠지만 이 시트콤(?)의 무대는 2차대전 중 독일 뒤셀도르프 근처에 있었던 한 연합군 포로수용소입니다. 그러나 영화 <대탈주>에서 보여지는 페이소스를 기대하면 큰 일납니다. 비록 포로로 잡혀 있는 처지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에 나오는 미군 포로들은 호텔보다 더 안락하게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재적인 지도자 호간 대령과 수하의 골때리는 재주꾼들 덕분이죠.

수용소장인 클링크 대령은 "호간 대령, 내가 당신 속을 모를 줄 알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절대 그 속을 모릅니다. 짐작조차 하지 못하죠. 아무튼 이 수용소의 미군 포로들은 수시로 이미 구축돼 있는 땅굴을 통해 독일 국내 곳곳은 물론 어디든 쉽사리 드나듭니다. 간혹 '탈출 시도'가 발각될 때도 있는데, 이건 경비부대의 일원인 슐츠 상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거죠. 처음엔 그냥 포로들에게 이용당하다가 나중엔 아예 포로들의 편이 되어 버리는 슐츠 상사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슐츠: 이건 좀 약속해줘.
호간: 뭘?
슐츠: 만약에 당신들이 정말 탈출할 일이 생기면, 나도 꼭 데려가.

아무튼 이 수용소를 거의 2차대전중 연합군의 대 독일 공작 본부처럼 활용하는 이들은 가끔 클링크 소장을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다루기 쉬운 클링크 대령이 계속 소장으로 남아 있어야 수용소를 '운영' 하기가 쉽기 때문이죠.

웃기는 것은 이 드라마가 독일에서도 매우 높은 인기를 누렸다는 점 정도일까요. 생각해보면 독일 사람들은 참 속이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찌 보면 진짜 반성을 하고 있든지요.



'호간의 영웅들' 팬들이 만든 하이라이트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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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Avengers(1976-1977)

Patrick Macnee .... John Steed
Joanna Lumley .... Purdey
Gareth Hunt .... Mike Gambit (1976-1977)




자, 왜 키트도 안 나오고 라이더도 안 나오나 하는 분들, 제목을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제트>가 아니고 <제로>입니다. <전격제트작전>보다 훨씬 먼저 방송됐던 외화입니다. 80년대초 KBS 2TV에서 화요일인가 수요일 밤에 방송했죠.

영국산인 이 시리즈의 원제는 NEW AVENGERS입니다. 그냥 AVENGERS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두 시리즈 사이에는 약 7년의 시간차가 있습니다. 물론 주인공이 같은 존 스티드고 두 작품에서 모두 패트릭 맥니가 그 역할을 맡았으니 연결되는 시리즈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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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부터 69년까지 방송되던 인기 시리즈(인기가 있으니 9년이나 했겠죠) AVENGERS는 본래 주인공 존 스티드가 미모의 여성 파트너들을 바꿔 가며 사건을 해결하던 스파이 시리즈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제임스 본드가 대외용이었다면 존 스티드는 영국을 위협하는 외국 스파이나 범죄자들을 잡는 방첩물이었던 셈이죠.

아무튼 시리즈 끝나고 7년, 제작자들은 존 스티드를 부활시키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원래 시리즈때 팔팔한(?) 40대였던 패트릭 맥니가 이미 50대 중반이 되어 버린 것이죠. 그래서 예전처럼 젊은 미녀들과 짝짓기...가 좀 어려워집니다. 결국 마이크 갬비라는 젊은 남자 캐릭터가 필요해집니다. 미녀 퍼디가 나오긴 하되 러브 라인은 마이크와 퍼디 사이에서 그려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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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타깃'이라는 코너입니다. 비밀요원을 육성하기 위한 사격 훈련장을 지나간 요원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자 스티드와 갬비가 수사에 나섭니다. 여기서 남미 오지에서 발견한 기이한 독이 발견되고, 퍼디가 그 독에 노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갬비와 스티드는 비장한 대화를 나누죠.

갬비: 만약... 퍼디를 살려내지 못하면
스티드: 그런 소리 말아.
갬비: 이 세상을 나 혼자서 다 뒤지더라도 그 독을 퍼뜨린 놈을 해치워 버릴 겁니다.
스티드: 안돼.
갬비: ?
스티드: 혼자는 안돼. 나하고 같이 해야 되네.

뭐 이런 약간 유치한 비장미. 그러나 주인공이 죽어서는 시리즈가 끝나 버릴테니 결론은 해피엔딩.

제임스 본드는 물론이고 로저 무어에 이어 아이언 오길비가 이어갔던 <세인트>, 로저 무어와 토니 커티스의 <전격대작전>, 그리고 다음번 쯤 얘기할 마틴 쇼의 <특공대작전> 등 영국제 스파이 드라마에는 정말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관객을 걱정하지 않게 하는, 이 여유 넘치는 주인공들의 아우라가 오늘날에 와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게 돼 버렸다는게 아쉽기만 합니다.

98년 레이프 파인즈, 우마 서먼 주연의 영화로 되살아난 <어벤저>가 망한 것도 결국은 요즘 배우들에게 이런 아우라는 재현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션 코너리가 악역으로 나온다 해도 별로 달라질 건 없었죠.


<전격제로작전>의 몇몇 장면들을 조아나 럼리 중심으로 편집한 영상입니다.





이건 오리지널 시리즈인 <어벤저>. 7년 전의 얼굴이지만 패트릭 맥니는 거의 용모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군요. 이때의 대표적인 여성 파트너 다이애나 릭은 뒷날 본드걸로 훨씬 더 유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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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가요계를 악의 소굴로 생각하는 재야 가요 운동가라는 사람들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야말로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10년 20년 뒤에 현재의 한국 가요계를 과연 '순위' 없이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모든 순위를 '납득할 수 있는 기준'만으로 매길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차트인 빌보드 차트도 결코 판매량으로 매기는 차트는 아닙니다.

차트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과연 그나마 방송사만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차트를 만들 수 있는 기관이 한국에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현실을 모르는 맹목적인 비판만큼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지난 1월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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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왜 방송사는 가요 순위를 매기면 안되나?

MBC TV '음악중심'이 순위 발표를 포기했다. 이로써 한국의 3대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가요에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그동안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악의 총체'라고 생각하던 각종 시민단체들은 무척 속 시원해 할 일이겠지만 기자의 심정은 그리 밝지 못하다. 과연 TV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일각에서 주장하듯 가요계를 '정화'하는데 도움이 될까? 기자는 이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다.

가요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가요계의 비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동물원을 없애면 야생동물 남획이 사라지고 초등학교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으면 우등생과 열등생이 없어지는 평등한 사회가 된다는 식의, 지극히 단순한 논리의 소산일 뿐이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공격하는 논리를 살펴보자. 비판자들은 가요의 순위 매기기가 비리의 온상이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물론 방송은 대다수 가수와 제작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홍보 수단 중 하나지만 매주 발표되는 음반의 수에 비해 매주 방송에서 다뤄줄 수 있는 가수와 노래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이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가수들에게 있어 1차적인 문제는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그 다음 얘기다. 일단은 방송에 얼굴을 비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그렇다면 비리 근절의 가장 좋은 수단은 '순위를 매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방송에서 가요 프로그램 자체를 없애는 것'이 되어야 한다. 1위냐 2위냐 순위를 다툴 수 있는 가수들이 전체 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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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를 매기든, 매기지 않든, 가요계의 비리가 이슈가 되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무명의 신인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성 인기 가수들이 새 음반을 냈을 때,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은 누구나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신인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제아무리 담당 PD가 자신의 귀를 믿고 훌륭한 신인을 발굴해도 어딘가에서는 잡음이 나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비리를 둘러싼 논란이 '순위'와는 사실 별 상관이 없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또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들이 특정 장르에만 편중해 대중음악의 저질화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또한 순위 매기기와는 별 관련이 없다. 오히려 방송사의 자체 기준에 의한 출연자 선정에 외부의 입김이 개입됐을 때, '카우치 사건'과 같은 최악의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10대 취향의 음악에만 편중해 대중음악계를 왜곡시킨다'는 주장에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악의 축으로 지목된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한국에서 가장 대중의 지지가 높은 노래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그리고 현재 대중음악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은 계층은 바로 10대들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문제가 된다면, 다른 계층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 일이지,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을 뜯어고치자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이런 주장을 드라마에 그대로 적용하면, '10대를 겨냥한 시트콤'같은 프로그램도 사라져야 한다. 과연 모든 드라마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일 필요가 있을까.

일각에서는 순위 매기기 자체가 가요계의 '상업화'를 촉진시킨다고 한다. 이런 주장에까지 응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방송사든 아니든 가요 순위가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 당장은 누가 인기가수이고 누가 인기가수가 아닌지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지만,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난 뒤 누군가 한국 가요사를 정리하려는 상황이라면,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당시를 평가할 것인가 생각해 보자. 음반 판매량도 한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빌보드 차트가 그저 음반판매량 순위가 아닌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빌보드 차트가 지금의 권위와 명성을 획득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과 공정성 확보를 위한 빌보드 지 편집진의 노력이 있었음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비판자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TV 가요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공정한 순위'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존재가 음반 판매량과 방송 회수, 다운로드 회수, 전문가들의 평가 등을 종합해 방송사보다 권위있고 공정한 순위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더욱 암담하기만 하다. 보다 믿을만한 순위 작성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이런 중요한 과업을 일부의 비판 때문에 폐지해버린 방송사들의 단견이 안타까울 뿐이다. (끝)





이 글을 쓴지 2년이 돼 가지만 상황이 달라진게 있다면 지상파 TV 가요 프로그램들이 극도의 시청률 저하로 영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정도입니다. 가수들은 시청률이 나오는 오락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가해 인지도를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기존의 가요 프로그램에 대한 비정상적인 시각도 이런 현실을 만든 범인 중 하나일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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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킹콩'에 열광했던 건 이렇게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힘도 세고, 잔머리 따위는 굴리지 않고, 외모는 좀 그렇지만 마음만큼은 일편단심인 남자친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나온 '킹콩 무비'들을 비교해서 즐겨보실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송원섭의 through*2] 세 '킹콩'들에 대해 궁금한 8가지 것들

지난 1933년 처음 극장에 등장한 이후 킹콩은 슈퍼맨과 배트맨을 포함해 어떤 캐릭터 못잖은 유명한 존재가 됐다.

이번에 피터 잭슨이 만든 작품은 72년 전의 오리지널을 그대로 리메이크한 것. 과연 이 사이 킹콩은 얼마나 달라졌고, 그 동안 어떤 변천사를 겪어왔을까? 모르고 봐도 상관없지만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킹콩' 이야기를 모아 봤다.

1. 킹콩은 지금까지 3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머라이언 쿠퍼의 오리지널은 1933년작. 1976년에는 제프 브리지스, 제시카 랭 주연의 '킹콩'이 만들어졌고 2005년, 피터 잭슨이 33년작을 리메이크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미지의 섬에 석유를 찾아 나섰다가 킹콩을 발견한 유조선 선원들의 모험을 그린 76년판의 감독 존 길러민은 1986년 암컷 킹콩이 나오는 속편을 제작하기도 했으나 그 수준은 참혹할 정도였고, 이 영화는 정식 '킹콩' 계보에서 사실상 삭제됐다. 33년판에도 '킹콩의 아들(Son of Kong)'이라는 속편이 있지만 역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계보는 할리우드판 킹콩만을 감안한 것. 지난 76년 만들어진 이낙훈 주연의 한미합작 3D영화 '킹콩의 대역습(Ape)'이나 킹콩이 등장하는 고지라 시리즈를 합하면 킹콩이 출연한 전 세계 영화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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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 킹콩 중에서 실제로 가장 컸던 것은 신장 12미터(40피트)였던 76년판의 킹콩. 33년판 킹콩의 키는 대사에는 15미터(50피트)로 되어 있지만 피터 잭슨은 33년판에 나오는 킹콩의 키를 사람이나 건물의 높이와 비교할 때 실제 키는 그 절반 정도라고 판단하고 2005년판에 나오는 킹콩의 키를 7.5미터(25피트)로 결정했다.

3. 세 편 모두 킹콩은 뉴욕에서 최후를 맞지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처럼 세 편 모두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 무대가 된 것은 아니었다. 76년판에서 킹콩은 9.11 테러로 사라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기어올라간다. 뉴욕의 마천루를 대표하는 빌딩들이 '킹콩' 유치를 위해 벌인 경쟁에서 WTC가 이긴 결과였다.

4. 피터 잭슨의 2005년판은 33년판의 충실한 재현.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고 어머니의 털 코트를 잘라 킹콩 인형을 만들고 놀았다는 잭슨의 33년판에 대한 존경심은 가끔 장난기로 변해 나타나기도 한다. 도입부에서 화감독 데넘(잭 블랙)과 조수 프레스톤(콜린 행크스)은 여배우 캐스팅에 대해 이런 대화를 나눈다.

데넘: 페이는 어때?

프레스톤: 페이는 쿠퍼와 함께 영화 찍고 있어요.

데넘: 맞아. RKO 영화였지.

페이(레이)가 출연하고 (머라이언)쿠퍼가 연출한 RKO 영화란 바로 오리지널 '킹콩'. 잭슨은 원작에서 앤 대로우 역을 맡은 페이 레이를 2005년판에도 특별출연시켜 마지막 대사인 "킹콩을 죽인 건 비행기가 아니야. 미녀가 야수를 죽인 거지"라는 대사를 맡기려 했지만 레이는 지난해 8월 97세로 사망했다.

5. 33년판과 2005년판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일단 캐릭터 중에서 남자 주인공 잭 드리스콜은 2005년판에서 앤 대로우(나오미 와츠)가 존경하는 작가지만 33년판에서는 그냥 용감무쌍한 부선장일 뿐이다.

킹콩과 여주인공 사이의 종을 초월한 애틋한 감정은 76년판에서 시작됐다. 33년판의 여주인공 페이 레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킹콩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76년판의 제시카 랭은 마지막 순간 헬기 편대의 기총소사를 막기 위해 흐느끼며 킹콩을 감싼다. 2005년판에서 피터 잭슨은 여기에 감미로운 스케이팅 신까지 추가하며 '미녀와 야수'라는 주제를 더욱 발전시켰다.

6.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골룸 역을 맡아 명성을 얻은 앤디 서키스 는 이번에는 1인2역을 해내 피터 잭슨의 오른팔임을 증명했다. 영화에 나오는 디지털 킹콩의 표정은 서키스의 표정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킹콩 역할을 위해 런던 동물원의 고릴라들과 안면을 틀 정도로 심도있는 연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또 하나의 캐릭터는? 바로 애꾸눈 선원 럼피다.

7. 이밖에 프레스톤 역의 콜린 행크스는 별로 닮지 않았지만 톰 행크스의 아들. 또 지미 역의 제이미 벨은 '빌리 엘리어트' 의 그 소년이다. 카일 챈들러가 연기한 극중 할리우드 스타 브루스 박스터는 어딘가 클라크 게이블을 희화화한 듯한 모습. 실제로 브루스 박스터라는 배우가 있기는 했지만 원작이 만들어질 무렵인 30년대에 활동하지는 않았다.

8. 피터 잭슨은 두 권의 책을 잊지 않고 부각시킨다. 첫째는 1912년에 출간된 코난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 공룡을 비롯한 멸종된 원시 생물들이 군집해 살고 있는 절해고도를 탐험하는 내용인 이 책은 오리지널 '킹콩'의 발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공원' 2편의 제목이 '잃어버린 세계'인 것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잭슨이 그려낸 해골섬의 장벽 모습은 '잃어버린 세계'의 삽화에서 영감을 얻은 33년판의 영상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또 2005년판에서 지미가 항해중 읽는 책은 1899년에 나온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 훗날 프란시스 코폴라가 만든 '지옥의 묵시록'의 원안이 되는 바로 그 책이다. 서구인들이 얼마나 무분별하게 저개발국의 자연과 주민들에게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거를 저질렀는가를 고발하는 이 책을 등장시킴으로써 잭슨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고 있다.


송원섭 기자





p.s. 심지어 한국 영화 '킹콩의 대역습'은 입체영화였습니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봤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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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연말이면 진행되는 조용필의 예술의전당 공연 리뷰입니다.

2005년 연말 공연을 보고 쓴 글이니 벌써 세월이 참 흐를대로 흘렀군요.

한때 조용필은 '마마미아' 스타일의 공연을 마음먹고 있었지만 이미 그 욕심은 버렸다는군요. 하지만 그의 공연에는 여전히 뮤지컬의 향취가 풍깁니다.




[송원섭의 through*2] 두얼굴의 조용필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비켜갈수 없다는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조용필, '바람의 노래' 중에서


몇해 전부터 조용필의 콘서트는 항상 2부로 나뉜다. 2부는 보통 가수들과 별로 다를 게 없지만 1부는 뮤지컬 스타일의 독특한 콘서트가 펼쳐진다.

한동안 '마마미아'(아바) '위 윌 록 유'(퀸)처럼 한 뮤지션의 노래들로만 채워지는 '가수 뮤지컬'을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조용필은 최근 "기존의 곡들을 죽 배열하는 식의 뮤지컬은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매년 갖는 연말 공연의 1부다.

올해 공연의 1부였던 '정글 시티'에서 고정된 캐릭터는 한 사나이(조용필)와 영원의 여인(이상은) 뿐이다. 캐주얼 러브가 판을 치는 도시 한 복판에서 지쳐가는 주인공은 문득 먼 기억의 저편에서 어린 시절 사랑했던 그녀를 떠올리고, 마침내 그녀를 찾아낸다는 것이 '정글 시티'의 줄거리다.

줄거리는 있으나 거의 모든 노래는 조용필 혼자 이끌어간다. '명성황후'의 주역이었던 이상은과 코러스, 어린이 합창단이 부분적으로 도움을 주지만, 가수 혼자 노래를 하면서 나머지 출연자들이 춤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기본적인 형식은 빌리 조엘의 노래를 이용한 브로드웨이 쇼 '무빙 아웃(Movin' Out)'을 연상시킨다.

'무빙 아웃'은 무대 상단에 밴드와 가수(물론 빌리 조엘 본인은 아니다)가 위치하고, 하단의 배우들은 무용을 통해 1960년대에 고교를 졸업한 뉴욕 출신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반항의 나날과 월남전의 상처를 딛고 세상과 화해하게 되는가를 연기한다. 물론 그 시대의 젊음을 노래에 담았던 빌리 조엘의 노랫말들이 나레이션 역할을 한다.

뉴욕에 '피아노 맨' 조엘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조용필이 있었다. 가왕 조용필은 '추억 속의 재회' '눈물의 파티' '꿈' 등 주옥같은 노래와 노랫말을 통해 도시와 고독, 소외와 절망의 극복을 성공적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구원의 여인을 향해 부르는 노래,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라는 '바람의 노래'는 대체 한 가수가 이룰 수 있는 성취의 끝은 어디인가를 의심케 하는 찌릿한 전율이 객석에 차고 넘치게 했다.

1부 공연에서 하늘 위로 올라갔던 조용필은 2부 시작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와 다시 팬들을 만났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풍겼던 1부와는 달리 2부의 조용필은 때로 친근한 동네 아저씨처럼("밀지들 말어, 다쳐, 여기 상주 만들 일 있어?"), 아니면 옛날 그대로의 '오빠'처럼("아유, 알았다니까, 소리좀 고만 질러") 팬들을 품에 안았다. 그렇다. 그의 얼굴은 정확하게 두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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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못찾겠다 꾀꼬리' '정' '눈물로 보이는 그대' '미지의 세계' '잊혀진 사랑' '여행을 떠나요' '모나리자'... 불러도 불러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히트곡의 퍼레이드는 마침내 앵콜곡 '단발머리'와 '돌아와요 부산항에' '자존심'으로 막을 내렸다. '감사합니다'라고 쓰인 막이 내려와도 팬들의 아우성이 끊기지 않자 조용필은 퇴장하는 밴드를 다시 불러세워 관객들과 함께 '친구여'를 합창했다.

문득 공연 전 조용필의 한마디가 떠올랐다. "욕심 같아선 전 공연을 1부처럼 하고 싶은데, 팬들 마음이 다 똑같지가 않아요. 어떤 노장 하나가 '난 허공 들으러 왔는데 지금 이게 뭐야' 하면 어떻게 할거야. 그분들 생각도 해야 돼요."

그러고 보니 '허공'은 없었다. '촛불'도, '물망초'도, '큐'도, '간양록'도, '킬리만자로의 표범'도, '그 겨울의 찻집'도 이날 공연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미워 미워 미워'도, '비련'도, '아시아의 불꽃'도, '마도요'도 연주되지 않았다. 대체 이 노래들은 언제 다 들려주려는걸까. 문득 '그분'이 오래 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라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라, 그러고 보니 나는 '조빠'였구나.

송원섭 JES 기자
five@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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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셨나요? 이 영화에서 짜장을 얼굴에 묻힌 최진실과, 김 서린 창문에 하트를 그리던 박중훈의 모습이 기억나시나요?

그런 분들이 읽어보시면 잠시나마 옛 기억이 살아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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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형사'의 부활에 대한 단상

재미란 무엇인가. '엔터테인먼트'를 취재 대상으로 10년 이상 종사하다 보니 '재미'라는 말의 벽에 부딪힐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나마 결론을 내린 것이 있다면, '결국 재미란 음식 맛과 같다. 어느 정도 일반적인 기준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개개인의 취향이 절대적인 기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명세 감독의 '형사'가 디지털 판으로 재상영된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의 일이다. 디지털 버전의 '형사'는 CGV강변 인디영화관에서 23일부터 일주일간 하루 2차례씩 상영되며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상영기간이나 회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 연말 영평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을 휩쓴 이후의 쾌거라고 할 만 하다.

기자는 분명 이명세 감독의 팬이 아니다. '형사'를 재미있게 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한때는 그에게 심각한 반감을 갖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너무도 한심한 것인데 여기서 한번 공개해보기로 한다.

대부분의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기자도 이명세 감독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통해 처음 만났다. 경직 일변도의 한국영화계에 한줄기 훈풍으로 다가왔던 이 영화에는 신랑 박중훈이 유리창에 하트를 그려 창문 너머에 있는 신부 최진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좀 더 자세히 복기해 보자. 추운 겨울날, 집들이를 마치고 친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던 박중훈은 김 서린 창 너머로 최진실이 설겆이하는 광경을 본다. 박중훈은 손을 호호 불며 하트를 그리고, 창을 두드려 최진실이 그 하트를 보게 한다.

흐뭇한 장면. 그러나 기자는 이 장면에서 심사가 마구 뒤틀렸다. 생각해보라. 추운 겨울이면, 창문에 김이 서리는 것은 따뜻한 집 안쪽이지 바람이 쌩쌩 부는 바깥쪽이 아니다. 그러므로 박중훈은 창문에 하트를 그릴 수도 없고, 설사 그린다 해도 안쪽에 서린 김 때문에 최진실은 하트를 볼 수도 없다.

기자는 '이런 기초적인 자연법칙조차도 무시하고 영화를 만든' 이명세라는 감독을 향해 치기 어린 비난을 퍼부었고, 그 뒤로는 그의 영화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괴로워'는 물론이고 '인정사정 볼것없다' 또한 허점 투성이의 영화일 뿐이었다(그러면서 참 많이도 봤다).

지난 9월 개봉됐던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는 일반 관객들을 상대로는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열광하던 팬들은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간판을 내린 것을 견디지 못하고 직접 돈을 걷어 단관 상영회를 계속해왔다. 팬카페에서는 이 영화를 몇번 봤느냐를 가지고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극장에서 몇명이 이 영화를 봤느냐는 그 다음 문제. 이명세 감독은 행운아다. 적지만 자신의 영화를 호응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데 스필버그인들 부러울까.

영화든 드라마든, 만듦새나 수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된 평가의 기준도 있고, 누구라도 그 기준으로 영화를 농단할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이나 관객수가 그 영화의 '재미'까지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결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에겐 최악의 드라마가 남들에겐 인생 최고의 걸작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유명한 평론가라도, 이런 면에서는 '수많은 관객(또는 시청자)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송원섭 JES 기자 five@jesnews.co.kr

*<Through*2>는 연예계의 다양한 사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칼럼입니다. 제목인 <Through*2>는 걸리는 곳 없이 이리저리 통한다는 <Through+Through>, 한글로는 <두루두루>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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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생결단', 황정민과 류승범의 낭비 조회(2268) / 추천(1)
등록일 : 2006-05-01 11:50:17



흐린 날이라 그런지, 일부러 노출을 줄였는지 칙칙한 부산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뜨는 고전미 넘치는 <사생결단>이라는 로고. 흐르는 음악조차도 이소룡의 <용쟁호투>다. 70년대의 아우라가 도입부에서 뿜어나온다.

물론 이건 그냥 포장지에 불과하다. 이 영화 안에 70년대는 없다. 장르 영화, 혹은 느와르에 대한 애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그저 느낄 수 있는 것은 감독의 불필요한 사회적 책임감 뿐이다.

마약 중간판매상 이상도(류승범)는 황금구역인 연산동을 관리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어느날 살짝 맛이 간 형사 도진광(황정민)으로부터 협박을 겸한 유혹을 받는다. 못이긴 채 도진광에게 협력하지만 이상도에게 돌아온 것은 쇠고랑 뿐. 그런 그에게 도진광은 다시 협력을 요청해온다.

두 주인공이 쓰레기 중의 쓰레기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약범 집안의 자손인 이상도는 어려서부터 약 심부름을 하며 자랐고, 충성이며 우정, 의리라고는 모르는 캐릭터다.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부분은 마지막 시퀀스에서나 등장한다.

도진광은 투박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신경쇠약의 증세를 보이는 형사(이 부분이 이 영화 최대의 실패 요인이다). 선배 형사가 마약범 장철의 염산 세례를 맞고 죽은 뒤부터 그는 정신병자가 되어 살아간다. 갑자기 그는 장철을 잡지 못한 것이 그의 인생을 꼬이게 한 계기라고 생각하게 되고, 엄청난 집착을 보인다.

최호 감독은 시사회 직전 "장르영화를 만든다고는 하지만, 그 장르영화가 사회를 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번역하자면 "내가 만든게 아무 생각 없는 양아치 영화인 것 같지만, 나는 나름대로 그 시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사생결단'을 보고 있으면 노력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리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

잘 만든 양아치 영화에는 저절로 그 시대가 담긴다. 공연히 더 큰 노력을 기울이면 그때부터는 관객이 영화를 외면하기 시작한다. 시대가 담기지 않았다면, 그건 그 시대의 양아치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뜻이고, 그런 영화는 애당초 성공할 수가 없다.

이 영화를 본 거의 모든 사람들은 '두 주인공이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나쁜 놈들이라 정 줄 곳이 없다'고 말한다. 솔직히 소악당이 대악당을 무너뜨리는, 즉 '덜 나쁜 놈이 더 나쁜 놈들을 잡는' 영화는 쌔고 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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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들의 공통점은 소악당 캐릭터에 관객들이 애정을 기울일 수 있게 하는 세심한 배려가 따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악당들에게 애정을 갖는 것이 불합리한 일이 되지 않도록, 대악당은 진정한 악당으로 그려져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악당인 대 마약상 장철은 별 존재감이 없다. 그는 이상도나 도진광에 비해 별로 나쁜 놈으로 그려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 안에서 장철은 그저 머리가 약간 좋은 약장사에 불과하다. 별로 미움받을 소지가 없고, 이상도나 도진광에 비해 별로 더 나쁜 놈이 아니다.

당연히 장철을 잡아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그나마 도진광에 비해 조금은 애정이 가는 캐릭터인 이상도는 느슨하게 '좋은 악당'으로의 변신을 노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후반부의 느린 진행은 엔딩 크레딧을 구원의 신호로 여기게 만들 정도로 지루하다.

결말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총소리가 울리고 나면 참으로 허무한 마무리가 기다리고 있다. 전혀 독창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페이소스도 없고, 해소의 쾌감도 없다. 과연 이런 결말을 위해서 두 시간 동안 그렇게 힘겹게 달려왔나 하는 허탈감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등장인물들을 이런 파국으로 몰고 가는 감정에 대해 납득이 갈 만한 과정이 보이질 않는다.

류승범과 황정민의 연기는 글자 그대로 불을 뿜고,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두 인물이 마주보고 앉아서 국어책만 읽고 있어도 충분히 볼 거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마지막 30분이 완전히 관객의 맥을 뽑아놓는다는 것은 역시 감독의 실수다.

p.s. 황-류도 황-류지만, 온주완은 잘 몰랐던 배우인데 이번 영화에선 정말 훌륭했다. 그 또래에서 보기 드문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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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연말, 패닉의 앨범을 듣고 쓴 글입니다.

'두루두루(Through*2)'라는 제목을 정하고 가장 먼저 쓴 글이죠.





<송원섭의 Through*2> 패닉은 '취업재수생' 정서, 서태지는 '자퇴생' 정서?

듀오 패닉이 7년만에 4집으로 복귀했다. 이적과 김진표, 비록 패닉이라는 이름으로는 아니었지만 두 뮤지션은 모두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활동했던 프로젝트나 팀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원고지 한장은 충분히 채울 정도다. 그렇지만 패닉 이후의 어떤 움직임도 그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지난 95년 데뷔한 패닉의 등장과 성공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와 맞닿아 있다는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팬들은 패닉을 통해 서태지의 공백에서 온 아쉬움을 달랬다. 고만고만한 목소리의 '대중가요 가수들'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뮤지션의 등장이야말로 대중이 애타게 찾던 것이었다.

한때 신해철은 "서태지는 '낙오자 정서', 내가 대변하는 것은 '비겁자 정서'"라고 정리한 적이 있다. 패닉은 이런 구분에 따르면 역시 '낙오자 정서'에 속하는 그룹을 대변해왔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지금까지 패닉은 비록 낙오자이기는 하나 언제든 현실을 딛고 성공하고 말겠다는 '취업 재수생의 정서', 서태지는 세상은 세상, 나는 나라는 '자퇴생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구별할 수 있다.
패닉의 노랫말들은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자신을 노래하긴 하지만, 항상 '현실에의 복귀', 혹은 '언젠가의 화려한 성공'을 동경하고 있다. 4집의 대표곡이 '로시난테'로 뽑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뮤지컬 '라 만차의 사나이'에 나오는 '임파서블 드림(Impossible Dream)'과 일맥상통하는 이 노래에서 이적은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달려보자/ 언제고 떨쳐낼 수 없는 꿈이라면', 김진표는 '절대 포기하면 안돼/ 모든 걸 할 수 있는 바로 난데'라고 노래한다. 1집의 대표곡인 '달팽이'에서도 이적은 '언젠가/ 저 멀고 거치른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노래했다.

이적이 불렀던 토이의 5집 수록곡인 '모두 어디로 간 걸까'는 비록 이적이 쓴 가사는 아니지만 이런 맥락에서 너무나도 패닉적인 노래다. '말해줘/ 난 잘하고 있다고/ 나 혼자만 외로운 건 아니라고'라는 가사는 '지금은 비록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지만 나는 결코 이렇게 뒤처져 있지는 않을 거야'라는, 결코 현실을 포기하지 않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거칠은 인생속에/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나를 완성하겠어(컴백홈)'라는, 서태지가 갖고 있던 '이 세상을 등져도 어쨌든 나는 나'라는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서태지만큼 강한 의지를 부르짖지는 않지만,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패닉의 목소리가 한층 따뜻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이런 패닉의 목소리가 7년간의 공백을 딛고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어쩌면 7년 전보다, 사람들은 한층 더 이렇게 옆에서 격려해주는 목소리에 목말라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7년 전에 10대였던 패닉의 팬들이라면 이제 사회의 차가운 바람을 정면에서 맞게 된 시점에 만난 옛 친구가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표곡의 제목이 돈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라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일찌기 삼국지에 나오는 위무제 조조는 귀수가(龜首歌)라는 시에서 '노기복력, 지재천리(老驥伏?, 志在千里)'라고 읊었다. '늙은 천리마는 구유에 엎드려 있어도 그 뜻은 천리 밖에 있다'는 뜻. 이 시의 댓구인 열사모년 장심불이(烈士暮年 壯心不已), '절개 있는 선비는 비록 늙었어도 당당한 뜻은 사라지지 않는다'와 맞춰 읽으면 바로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 로시난테면 어떠냐. 비록 잠시 뜻을 잃었어도, 또는 이미 늙었어도 타고 떠날 말 한필만 있으면 우리는 모두 정의의 기사 돈키호테인 것을.

송원섭 JES기자 fivecard@jesnews.co.kr

*<Through*2>는 연예계의 다양한 사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칼럼입니다. 제목인 <Through*2>는 걸리는 곳 없이 이리저리 통한다는 <Through+Through>, 한글로는 <두루두루>라는 뜻입니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조조는 뛰어난 무장인 동시에 대단한 문장가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편에 나오는 횡삭부(橫朔賦)도 훌륭하지만 여기서 예로 든 귀수가는 감히 조조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龜雖歌

神龜雖壽, 신령스런 거북이 오래 산다 하나,
猷有竟時. 반드시 죽을 때가 있고
騰蛇乘霧, 이무기(騰蛇), 안개를 타고 오르나,
終爲土灰. 결국은 흙먼지가 되고 만다.

老驥伏? 늙은 준마는 구유에 엎드려 있어도
志在千里, 뜻은 천리밖에 있으며,
烈士暮年 열사는 늙어도
壯心不已. 장한 뜻은 사라지지 않네.

盈縮之期, 넘치고 모자란 때가
不但在天    하늘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네.
養怡之福, 몸간수를 잘 하고 마음을 즐겁게 가지면
可得永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을.

幸甚至哉, 얼마나 행복한가,
歌以詠志. 노래로써 뜻을 읊을 수 있으니.





노기복력(老驥伏력)의 '력'은 木자 옆에 歷자가 붙은 것으로, '말구유 력'이라고 불리는 글자입니다. '노기복력 지재천리, 열사모년 장심불이'. 나이 먹은 뒤에 들으면 다시금 가슴이 뛰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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