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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에 걸친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 1000회 특집이 막을 내렸습니다. 사실 지난 20년, 1000회에 걸쳐 국민들의 주말 시간대를 장악했던 거대한 프로그램의 역사를 짚어 보는 특집이라면 그 정도 시간은 할애할 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쉽다면 '일밤'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빠져서는 안 될 주병진, 노사연, 이문세, 이홍렬, 신동엽, 최수종 같은 이름들이 거의 거론되지 않았고, 자료 화면에서도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병진의 경우 스스로 연예인으로서 다시 TV에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했고, 신동엽의 경우 SBS에서 현재 동시간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예의상' 출연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지 않았다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정작 두 차례의 특집에 출연한 사람들 중, 최근 몇년이 아니라 일밤의 20년 역사를 거론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이경규와 김용만, 이휘재, 김국진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얘기하면 이 정도의 숫자는 '20년 총정리'를 말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해 보입니다. 이 부분에서 '일밤 1000회' 특집의 제작진은 어느 정도 반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리가 허술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역시 이경규의 존재 덕분이었습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대중문화에서 이경규와 '일밤'이 지금까지 남긴 족적은 결코 가볍지 않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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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일밤'에 가장 많이 출연한 인물이라서가 아닙니다. 이경규는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 가지 장르의 막을 열었습니다. 하나는 그 자체가 장르의 이름이 된 '몰래카메라'고, 또 하나는 '이경규가 간다'로 대변되는 국민 계도성 오락 프로그램 입니다.

90년대 후반까지 누가 뭐래도 MBC 예능은 경쟁 방송사들을 압도했습니다. 그 시기를 지킨 수많은 예능 PD들은 두 가지 흐름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송창의(현 tvN 사장)-은경표(현 워크원더스, DY 사장)로 대변되는 '재미 지상주의' 세력과 주철환(현 OBS 사장)-김영희(현 PD연합회장)로 대표되는 '교양주의(혹은 당의정파)' 세력입니다. 일단 오락 프로그램은 재미가 있어야 하며 그 재미가 바로 사회에 봉사하는 길이라는 것이 전자의 입장, 그리고 재미가 있는 가운데서도 보고 나면 뭔가 생각할 거리나 느낄 거리를 줘야 한다는 것이 후자의 입장입니다.

이중 후자의 결정판이 바로 '이경규가 간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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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뭐든지 할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만큼 '이경규가 간다'의 정체는 매우 불분명했습니다. 그러던 1996년 어느날, '이경규가 간다'는 이른바 '양심냉장고 프로젝트'를 시작했죠. 우리 사회의 숨은 양심을 찾겠다는 취지에서 전 국민을 몰래카메라의 대상으로 삼은 겁니다. 포상을 의식하지 않고 대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찾아 국민의 영웅으로 삼겠다는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습니다.

지금도 몇몇 주인공들 - 심야 정지선을 지킨 장애인 운전자, 한밤에도 자동차 전용도로 제한속도를 지킨 중소기업체 사장, 복잡한 지하철의 높은 계단 앞에서 무거운 보퉁이를 든 할머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장병 등은 여전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경규가 간다'는 그동안 재미만 있으면 자기 몫을 다 했다고 여겨지던 오락 프로그램들도 공익적인 목표를 이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나갔습니다.

이후 '이경규가 간다'와 같은 뿌리의 오락 프로그램들은 MBC만이 가진 독보적 무기로 톡톡한 공을 세웠습니다. 신동엽의 '러브하우스'나 아예 다른 프로그램으로 출범한 '느낌표'를 비롯해 수많은 코너와 프로그램들이 산타클로스 역할을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감동과 재미라는, 종래에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두 마리 토끼를 한 울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죠. '이경규가 간다'는 또 세 차례의 월드컵에서 보였듯 스포츠가 주는 감동을 오락 프로그램에 이식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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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상에서의 나날이 길다 보니 이경규 역시 잘 된 프로그램도, 실패한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너구리 사건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적도 있었죠. 주병진이나 이홍렬, 신동엽처럼 당대 최고의 순발력을 자랑하는 천재형 MC들과 나란히 섰을 때에는 재능이 부족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예능 MC의 가능성을 지금처럼 확대했고, 10년 이상 예능 프로그램의 패러다임을 이끌었다는 꾸준함과 공로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수많은 '진짜 왕'들이 참여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무시당해 '일밤 1000회 특집'이 내세운 '왕들의 귀환'이라는 제목이 낯간지럽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경규가 있어 볼만했습니다. 공약대로 '일밤 2000회 특집'에서도 이경규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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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영화의 제목 짓는 기술이 영 신통치 않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과속스캔들'도 제목만 잘 지었다면 훨씬 더 히트했을 거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데 이어 '달콤한 거짓말'도 어쩐지 이 너무나 평범한 제목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이 영화에 대해 알려진 가장 핵심적인 정보는 '박진희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예고편은 박진희가 거짓말을 해서 여러 남자를 농락하는 여자인 양 그려져 있습니다. 상세한 줄거리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어쨌든, 제목의 '거짓말'과 상승작용을 하면서 뭔가 너무나 뻔한 영화인 듯한 느낌을 주는 게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심한 영화 취급하기엔 '달콤한 거짓말'은 기대 이상으로 매력적인 영화입니다. 특히 다른 요소를 다 떠나서, 올해 개봉된 한국 영화 중 가장 여주인공의 비중이 큰 영화의 주역을 맡은 박진희의 열연이 빛을 발하는 영화라는 점을 주목할 만 합니다. 그리고 박진희는 그럴 자격이 있는 배우라는 걸 증명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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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버릇이 꽤 고약한데다 맡은 방송마다 조기종영하기 일쑤인 노처녀 방송작가 지호(박진희, 그래 봐야 스물아홉 서른 정도의 나이입니다)는 어릴 적부터 남자와는 낭만적인 첫 만남으로 한 눈에 사랑에 빠져야 한다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에게는 어릴 적 고교 1년 선배인 민우(이기우)에 대한 짝사랑이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추억으로 남아 있죠.

그런 그가 어느날 소매치기를 쫓아 달려가다 외제차에 부딪힙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병원. 그리고 자신을 들이받은 차의 운전자가 꿈에도 잊지 못하던 민우라는 걸 알게 됩니다. 물론 짝사랑이었으므로 민우는 지호를 절대 알아보지 못하죠. 민우와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이어 가기 위해 지호는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 '자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기억상실증을 가장하게 됩니다.

이 방법을 통해 민우의 집에 들어앉게 된 지호는 우연히 민우의 이상형이 현모양처형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갖은 내숭으로 민우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본색을 너무나 잘 아는 고교동창 동식(조한선)의 등장으로 지호의 사기극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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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배경을 읽고 보면 그리 신기할 게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수많은 사건들이 대부분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는 듯도 하지만, 설정을 잘 살펴 보면 어떻게든 아귀를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민우의 곁에 찰싹 달라붙은 지호가 우연히 동식을 만나 위기를 맞곤 하는 것도 지나친 우연처럼 보이지만, 이 세 주인공이 모두 고등학교 동창이고, 그 동네에서 계속 살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하죠.

세 주인공 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지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친구 은숙(최은주)이나 민우의 친구이자 옛날 은숙의 짝사랑 대상이었던 한상(조진웅)이 모두 고교 동문이라는 것은 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추억의 공간이 모두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한 동네이며 함께 소풍을 가곤 했던 동물원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죠. 아울러 양자강이라는 동네 중국집도 여전히 영업중이라는 사실 역시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보시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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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코미디 영화인 만큼 가끔씩 개연성의 벽을 슬쩍 넘으려 드는 '달콤한 거짓말'을 안정시키는 절대적인 요소는 박진희입니다. 한국 영화의 신화 중 하나인 '여고괴담' 첫편이 벌써 10년 전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에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만큼 빨리 성장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이 배우는 어느 감독이라도 욕심낼 만큼 탄탄한 연기력으로 자신을 관리해왔습니다. 쉽게 빠질 수도 있었던 '글래머 여배우'의 길과는 다른 성실한 노선을 걸어 온 거죠.

최근 들어 '돌아와요 순애씨'나 '쩐의 전쟁'같은 드라마에서는 좋은 성과를 거둬 왔지만 불행히도 스크린에서는 데뷔작 '여고괴담'만큼 주목받거나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의 기대작 '궁녀'에서도 훌륭한 소재에 비해 지나치게 개연성이 떨어지는 대본이 박진희의 열연을 묻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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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달콤한 거짓말'은 그야말로 박진희의 원맨쇼입니다. 관객들은 박진희가 가는 길로만 가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두 남자 상대역은 아직까지는 '연기 멀었음'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는 젊은 배우들이죠. 이기우도 조한선도 키 크고 허우대 좋지만 한 사람의 배우로 평가받기엔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인물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진희의 분전은 정말 눈부십니다. 몸을 날려 차를 들이받는 건 기본이고, 코미디의 기본 요소인 순간적인 표정 변화와 적절한 망가짐이 이 배우가 일정 수위 이상의 내공을 확보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줍니다. 안타까움이 있다면 익스트림 클로즈업에서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정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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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배우 중에는 조한선의 캐릭터가 좀 더 유리합니다. 그저 멋진 척만 하면 되는 이기우에 비해 조한선은 확실한 변신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죠. 동식이란 인물은 뜯어 놓고 보면 복잡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말이나 찍찍 내뱉고 패션이라곤 트레이닝복이 제격인 껄렁한 '동네 형'의 분위기인데 의외로 착실한 살림꾼이고 마음 씀씀이도 깊은 데다 정도 깊습니다. 나름 상상력도 풍부합니다.

동식에게 있어 최고의 장면은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의 패러디 신입니다(역시 영화를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을 기준으로 조한선의 연기를 평가한다면... 한 75점 정도는 줘도 될 듯 합니다. 슬슬 이 친구에게도 배우의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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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거짓말'의 가장 큰 미덕은 코미디를 위해 배치한 사소한 요소들이 제몫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 큰 역이라고 볼 수 없는 지호 동생 역의 김동욱, PD 역의 김광규나 AD 역의 개그맨 정성호, 그리고 제법 중요한 역할인 양자강 맨 정재용은 큰 욕심 없이 자기 몫을 다 합니다. 모든 배우가 홈런을 치려고 달려들다 망하는 실패한 코미디 영화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입니다.

'달콤한 거짓말'을 전체적으로 봐도 이 영화는 '두 시간 이내에 최대한 웃긴다'는 코미디 영화의 미덕을 한껏 발휘한 작품입니다. 무슨 대단한 교훈을 주겠다는 야심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엔딩은 - 물론 무슨 반전이 있는 듯도 하지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죠 - 나름 따듯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실한 제목인 '달콤한 거짓말'에 비하면 훨씬 속이 알찬 영화입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면 코미디의 수작이라는 말은 아깝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흥행은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 제목이 주는 거부감을 누르고 표를 살지에 달려 있다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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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장 박진희의 매력이 빛나는 장면은:
지호: 그럼 민우씨가 싫어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민우: 거짓말하는 사람이요.

p.s.2. 영화 도입부와 뒷부분은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에서 차이가 납니다. 참 의이한 부분입니다. 만약 영화가 진행 순서대로 촬영됐다면, 정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기량이 일취월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s.3. 이승환의 '좋은날'이 나옵니다. 공식 주제곡은 리메이크 버전이지만 역시 원곡을 따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맛뵈기로 살짝 들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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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독사'와 '독사2'가 만났습니다. 현재 방송중인 MBC TV '종합병원2'에는 류승수가 악명 높은 치프 레지던트로 나옵니다. 쌍꺼풀 없는 쭉 찢어진 눈에 우락부락한 생김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후배들을 단련시키는 '독사' 역할은 류승수에게 딱 어울립니다. '종합병원2'가 어떻게 끝나든 류승수에겐 남는 게 있을 법 합니다.

오래된 시청자들은 이 '독사' 캐릭터가 어디서 온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원조 '종합병원'에 나왔던 오욱철의 캐릭터였죠. 오욱철의 매서운 눈매와 고문 앞에 이재룡 신은경 등 당시의 젊은 레지던트들은 모두 벌벌 떨었습니다. 특히 권위와 관행에 얽매이지 않으려던 주인공 이재룡은 독사에게 '찍혀' 고난의 나날을 보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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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의 인기에는 바로 이 독사 캐릭터가 큰 몫을 했습니다. 며느리 구박하는 시어머니가 드라마의 인기를 주도하듯 한 거죠. '대장금'으로 대입하면 이재룡이 장금이, 오욱철이 최상궁 정도 됐으려나요. 그런데 18일 방송에 오욱철이 등장하면서 '원조 독사'와 '현재의 독사'가 만났습니다. '종합병원'의 역사를 생각하면 사뭇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사실 독사도 독사 나름입니다. 후배들의 입장에서 보면 '잘 되라고 갈구는' 선배와 '죽이려고 드는' 선배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독사라고 불렸다 해도 메디컬 드라마의 단골 캐릭터인 치프 레지던트(레지던트들의 기강과 훈육을 담당)는 분명 전자에 해당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주인공이 최고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메디컬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이런 캐릭터는 쉽게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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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실미도'의 허준호. 부대원들을 악마처럼 굴리는 조중사 역이었죠. 하지만 마지막에는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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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 오래 된 영화지만 '사관과 신사'의 루이스 고세트 주니어입니다. 해군 비행학교 사관생도 리처드 기어를 악랄하게 못 살게 구는 교육 담당 하사관 역이죠. 이 연기로 82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그 역시 매끝에 정든다는 속담을 구현하기라도 하듯 마지막에는 리처드 기어와 서로 인간적인 교감을 보여줍니다. 이 대사가 지금도 생각나는군요. 마침내 역경을 딛고 장교가 된 리처드 기어. 이제 상관이 된 기어에게 고세트 주니어가 "Sir"라고 부르며 경례를 합니다. 그리곤 그동안 고마웠다는 듯 닭살스러운 말을 하려는 기어에게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이죠. "빨리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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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 제인'의 비고 모텐슨은 독사이기도 하면서 너무 처음부터 데미 무어에게 동정적인 모습을 보여줘 진정한 독사로서의 순도는 떨어집니다. 아무튼 기억에 남는 독사 캐릭터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처럼 성공적인 드라마의 공식 속에서 독사는 끝까지 독사로 남으면 안 되죠. 어느 시점에선가는 '그게 다 너 잘 되라고 그런 거였어'라는 식의 해소가 필요합니다. 뭐 너무 당연한 일이라 드라마의 흐름상 이런 장면이 생략되기도 하지만 다소 단순한 시청자들을 고려하고, 또 독사 캐릭터를 맡았던 배우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이런 장면은 반드시 들어가는게 좋겠죠.^

기자들도 초년병일 때에는 거의 모두 독사같은 선배를 경험합니다. 그 선배가 좋은 기억으로 남는지, 아니면 끝까지 '인간 말종'으로 기억되는지는 결국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칼자루를 바꿔 잡고 보면, 굳이 미워할 이유가 없어도 어쨌든 어리버리한 후배들을 보면 목소리가 커 지는게 선배들의 인지상정인 것 같더군요. 물론 소리만 질러서 될 일도 아니죠. 적당히 조이고, 적당히 풀어주는 게 선배가 할 일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너무나 심하게 '쪼아 대는' 선배 때문에 고민하는 후배들에게는 이런 말로 슬쩍 넘어가곤 합니다. '탄소를 다이아몬드로 바꿔 놓는 건 엄청난 압력'이라고. 아무튼 요즘 고민 많은 '종합병원 2'에 '돌아온 독사' 오욱철이 어떤 영향을 줄 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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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이런 얘기가 왜 나오나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사실은 지난 주말 방송된 '박중훈 쇼' 첫회 때문에 다시 기어나온 겁니다. (주중에도 재방송?)

언젠가부터 한국의 진짜 톱스타들은 토크쇼나 오락 프로그램에 나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와도 정말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너무도 바르고 고운 모습들만을 고집하기 때문이죠. 물론 원조 바른생활 사나이 차인표처럼(왕년에 '허리케인 블루' 패러디를 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작심하고 무너져서 온 국민을 즐겁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대다수는 절대 그런 모헙을 하지 않습니다.

'박중훈 쇼'가 장동건에 이어 정우성을 두번째 출연자로 정했습니다. 과연 이번에는 재미있을까요? 정우성은 가끔씩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라 첫회보다는 훨씬 부드러울 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득, 할리우드 스타들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썼던 포스팅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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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부터 설명을 하겠습니다. 미국에는 지미 키멜 Jimmy Kimmel이라는 토크쇼 사회자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지미 키멜 라이브'라는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쇼를 끝낼 때마다 독특한 엔딩 멘트를 사용해왔습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뭔고 하니...

누가 게스트로 나오든, 누구와 인터뷰를 하던 중이건 마지막 멘트로 ", 오늘 방송은 이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시간이 다 됐군요. 대기하고 있던 맷 데이먼씨, 죄송하지만 다음 번에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안녕히계십쇼" 라고 말하는 겁니다.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굳이 달자면 "우리는 맷 데이먼 정도는 시간이 남을 때를 대비한 예비 출연자로 쓰고 있다. 즉 우리 쇼에 나오는 사람들은 맷 데이먼보단 훨씬 중요한 스타들이다"라는 식의 농담입니다. 참 한국같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물론 미국이라도 '(사람 좋은)맷 데이먼이니까 참는다' 수준의 얘깁니다. 아무튼 맷 데이먼은 자신이 이런 멘트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걸 꽤나 즐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을 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직접 출연 또한 굴욕의 연속입니다. 지미 키멜은 맷 데이먼을 소개하면서 데이먼의 모든 출연작 제목을 거론하는 데 1분 넘는 시간을 소모합니다. 그러면서도 가증스럽게(^^) 데이먼을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분(A man who needs no introduction)"이라고 덧붙입니다.

환호와 함께 등장해 지미 키멜의 옆자리에 앉는 맷. 하지만 여지없이 이날도 ", 시간이 다 됐습니다. 맷 데이먼씨, 죄송하지만 이만---"의 선언이 이어집니다.

맷 데이먼의 'Fuck, Fuck, Fuck' 시리즈도 볼거립니다.

이어지는 공격. 지미 키멜은 정체불명의 하수인 기예르모를 보내 영화 '오션스 13'의 시사회장을 기습합니다.



천진난만한 웃음이 무기인 기예르모는 '지미 키멜 라이브'가 방송되는 방송국의 주차장 관리인 또는 경비원으로 일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의 솜씨로 보아 방송 훈련을 쌓지 않은 일반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습니다만 아무튼 대강 그렇게 넘어가야 합니다.

기예르모의 활약을 살짝 정리해봤습니다.
(뭐 제 짧은 영어 실력으로 한거니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류수정 환영입니다.^)


제작자 제리 와인트로브

기예르모(이하 기): 나도 좀 배우로 써 줘요
제리 와인트로브 : 난 돈은 많이 안 줘
: 사실 지미 키멜도 나한테 돈 주고 이런거 시키는 건 아니에요.
제리: , 그렇군 ;;;

수퍼 데이브 오스본

: (포스터를 가리키며) 그런데 왜 당신은 사진(picture)에 없지?
수퍼: 나는 저 영화(picture)에 나와! (해설: 기예르모가 말하는 picture는 영화 포스터. 하지만 수퍼 데이브 오스본이 말하고 있는 픽처는 영화 '오션스 13'. 같은 단어로 뜻이 달라지는 것을 이용한 말장난.)
: (포스터를 가리키며) 봐요. 당신 얼굴은 저 사진에 없잖아.
수퍼: 나 분명히 영화에 나와. 나는 플롯상 미리 공개할 수 없는 캐릭터라고. 당신 저 영화를 보기나 했어?
: (완전히 무시) 맛 데이몬! 맛 데이몬!
수퍼: (열받음) 이봐. 데이먼은 바빠. 여기서 당신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알아? (계속 무시당함)

엘렌 버킨

: 당신 정말 이뻐.
: 고마워.
: 브래드 피트보다 이뻐. (^^;;;;;;)
: (...너 뭐냐)
: 그렇게 수많은 잘생긴 남자들과 수퍼 데이비드 오스본과 함께 영화 찍은 기분이 어때요?
: , 오스본은 내가 좋아하는 타입인데. (예의상)

돈 치들 (이 부분은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 돈 치들씨, 안녕하세요.
돈 치들 : 내 이름 좋아해?
: 그럼요
: 대체 무슨 뜻으로 좋아하는거지?
: 당신 보고 있으니 배가 고파져요. (뭐냐;;)
: (쓰러짐)
: 치토스 먹는게 생각나요.
: (뭐라는거냐 -_-;;;)


앤디 가르시아

기예르모와 인사를 나누던 앤디가 옆에 온 버니 맥과 포옹한다.
: 나도 안아줘요! 나도 안아줘요!
앤디, 마지못해 안아준다.


알 파치노

: 안녕하세요 알 파치노씨! 안녕하세요!
: (미소)
: 당신은 어떤 바다인가요?
(오션스 13... 바다가 13개 있다는 뜻으로 슬쩍 넘겨서 그중 당신은 어느 바다냐는...)
: (기이한 표정) 내가 무슨 바다냐고?
: .
: (한참 고민하다가) 글쎄... 대서양(Atlantic)?
: (혼자서 알 파치노가 멋지다며 감탄한다. 글쎄... 별로 재미있는 개그도 아니었는데.)

조지 클루니

: 클루니씨, 우리 엄마가 당신 영화를 좋아할까요?
: 지금 여기 계세요? 이리 오슈. , 거래합시다.
엄마: (조지 클루니 옆으로 온다)
: , 당신이 영화를 돈 내고 보면, 지미 키멜이 차를 사 줄겁니다.
: 엄마, 들었어요?
: 클루니씨, 고마워요.
: 아녜요. 정말 예쁘시네요.
: 클루니씨, 그런데 섹시하게 보이는게 어려워요?
: (예의 눈빛) 이봐, 우리끼리니까 얘기지만 그거 하나도 안 어려워. 아주 쉬워. 그냥 있으면 돼. 어머니한테 물어봐.
: 엄마, 클루니씨 섹시해요?
: Very Sexy!

브란젤리나

: 안젤리나! 안젤리나! 나 좀 입양해 줘! 나 좀 입양해 줘(Adopt me)!

맷 데이먼

: 맛 데이먼! 맛 데이먼!
: 안녕하세요!
: (냉정하게 돌아서서 카메라를 보고) 시간이 다 됐군요. 이만 마칩니다.
: (당황한 척;;) 너 뭐야! (생각하는 척) 혹시 지미 키멜이 보내서 온거냐?
: (전혀 개의치 않고) , 데이먼씨, '오션스14'때 봅시다.

.......


세번째 테러. 지미 키멜은 '본 얼티메이텀' 촬영장으로 자객 기예르모를 보냅니다.

이건 뭐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 듯.

", , , 예이슨 본!"



그래서 마침내 맷 데이먼의 복수가 시작됩니다.

지미 키멜에게는 나이는 좀 많지만 섹시한 애인이 있죠. 이름은 사라 실버맨입니다.




잘 보시고 기억을 더듬어 보면 '스쿨 오브 락'에서 잭 블랙을 구박하던, 함께 살던 친구의 여자친구입니다. 코미디쪽에 재능이 있죠. 미국의 정선희랄까...

'저게 뭐가 섹시해!'라고 하실 분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아무튼 이 사라 실버맨이 지미 키멜 라이브에 게스트로 나와 갑자기 고백할 게 있는데 말로 하긴 그렇다며 비디오 클립을 공개합니다.

그 비디오가 바로 유명한 'I'm F***ing Matt Damon!' 입니다.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후렴구를 외치는 맷 데이먼의 천진난만(?)한 모습이란... '침대에서도! 마루에서도! 타월을 깔고도! 문에 대고 서서도! ....'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찍는지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 현재까지 나온 마지막 타이틀입니다.

맷 데이먼에게 여자친구를 빼앗긴(?) 지미 키멜이 복수를 시도합니다. 데이먼이 자기 여자를 빼앗았으니 자기는 데이먼의 가장 친한 친구인 벤 애플랙과 잤다고 선언을 해 버리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저번에 보신 'I'm F***ing Ben Affleck!' 비디오입니다. 화려한 캐스팅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마지막에 피아노에서 일어나는 조쉬 그로번(점잖고 깔끔한 노래와 이미지로 인기있는 가수죠)을 보고 쓰러졌습니다.



참 이런 걸 보다 보면 미국이란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의 희한한 사고방식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맷 데이먼은 연구 대상이란 생각이 듭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난질(?)에 맞장구를 쳐 주는 것인지.

한 매체가 그에게 "지미 키멜의 여자를 빼앗은 소감"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마냥 실제 상황인 것처럼 진지하게 대답해주는 맷 데이먼. 아예 이 역할에 푹 빠졌군요.

아무튼 맷 데이먼, 참 연구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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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볼 영화를 고르는 기준은 각양각색입니다. 주인공을 보고 고르는 사람(통계에 따르면 모든 조건 중에서 남자 주인공을 기준으로 고르는 사람의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감독을 보고 고르는 사람, 또는 특정 제작사(예를 들자면 전성기의 골든 하베스트나 워킹 타이틀)의 영화를 선호하는 사람 등등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겠지만 제게도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이름은, 실망하든 만족하든 '돈이 없으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어쨌든 보고 나서 말을 해야 하는' 감독에 속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나 제임스 카메론이 그렇듯 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선생의 '벼랑 위의 포뇨'가 18일 국내에서도 개봉됩니다. 2004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후 4년만이지만, '하울'은 원작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야자키의 오리지날 스토리로 된 작품은 2001년의 '센과 치히로의 모험' 이후 7년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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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간단한 줄거리를 보자면 이렇습니다. 주인공인 다섯살 소년 소스케는 벼랑 위의 집에서 선장인 아버지 고이치, 양로원에서 일하는 엄마 리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바닷가에서 놀던 소스케는 사람의 얼굴을 한 빨간색 붕어 한마리를 발견하고, 포뇨라는 이름을 붙여 친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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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히로가 성장한 듯한 씩씩한 엄마 리사)

하지만 포뇨의 아버지 후지모토는 인간 세상이 싫어 바다에서 살기로 결심한 마법사. 후지모토는 갖은 수단을 다해 포뇨를 바다로 다시 데려옵니다. 하지만 포뇨는 육지로 나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죠. 결국 포뇨는 수많은 동생들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실험실에 침투하는데 성공합니다.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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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뇨의 아빠인 마법사 후지모토)

'벼랑 위의 포뇨'는 한폭의 예쁜 동화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은 작품입니다. 그만치 어린 관객들을 의식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띕니다. 예쁜 화면, 너무나도 앙증맞고 귀여운 캐릭터, 동화적인 전개 방식과 일체의 비극이나 희생을 배제한 플롯 등등이 어린이들과 부모들을 위한 맞춤형 작품으로 결실을 맺은 셈입니다.

그런 한편으로 또 작품을 볼작시면 은근히 미야자키 선생이 뿌려 놓은 떡밥이 눈길을 끕니다. 그냥 그림만 보기에 심심한 어른 관객들을 위해 생각할 거리를 주자는 심산이겠죠. 뭐 당연히 이 작품의 포스터만 봐도 생각나는 '인어공주'나 '니모를 찾아서'는 제외하고 말입니다. '인어공주'의 막내 공주는 다리가 생긴 뒤에도 땅을 밟을 때마다 면도칼 위를 걷는 고통을 느꼈지만 다행히도 우리의 포뇨는 착한 제작자를 만난 덕분에 아무 통증 없이 땅 위를 달립니다.

그런데 아버지 후지모토는 자신의 장녀(포뇨)를 브륀힐데라고 부릅니다. 딸이 브륀힐데 라면 아버지 후지모토는 자동적으로 보탄(오딘)이 되고, 그 수많은 일본 명란젓 광고에 나오는 것 같은 꼬마 동생들은 발퀴레가 되는 거죠. 네. '벼랑 위의 포뇨'와 '니벨룽의 반지' 사이에는 제법 깊은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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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뇨의 동생들, 왠지 다음 사진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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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명란젓 광고입니다. 비슷하지 않습니까? ^)


이런 관계에 대한 추정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생명의 물을 마신 포뇨가 거대한 물고기로 변한 동생들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수면을 향해 솟구칠 때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유명한 '발퀴레의 기행'과 아주 흡사한 연주곡이 울려퍼집니다. 변주곡이라고 해야 할지도.

푸르트벵글러의 기악곡 버전 '발퀴레의 기행'입니다. 본래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2부에 해당하는 '발퀴레' 3막에 나오는 곡인데, 여기서는 발퀴레 역을 맡은 소프라노들의 목소리가 빠져 있습니다. 뭐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보신 분이라면 너무나 귀에 익었을 곡이죠.



 
바그너의 장대한 4부작 '니벨룽의 반지'의 근간이 되는 '니벨룽의 노래' 신화에 비쳐 보면 소스케 역시 지그프리트의 자리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죠. 브륀힐데는 아버지인 주신 보탄의 명을 어긴 죄로 봉인당하고, 난관을 돌파하고 그녀를 찾아올 만한 영웅을 만날 때까지 잠자는 신세가 되죠. '벼랑 위의 포뇨'에서도 후지모토는 포뇨를 공기방울 안에 가둬 둘의 만남을 방해하지만, 결국 포뇨의 엄마인 바다의 여신의 뜻에 따라 둘을 다시 만나게 하기도 합니다.

(그 다음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을 듯 하여 색깔로 가려 놓겠습니다. 감수하고 보실 분이나, 이미 영화를 보신 분만 보시기 바랍니다. 마우스로 긁으면 글자가 보입니다.)

'니벨룽의 반지'의 마지막 4부 제목은 '신들의 황혼'입니다. 이 '황혼'은 북구 신화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라그나로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신들의 시대가 가고 인간들이 자신의 역사를 일궈나가기 시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 신화에서 주인공 지그프리트와 브륀힐데는 비극적인 운명을 마치고, 그것이 신화의 종결을 상징하지만 포뇨와 소스케는 행복한 결합을 통해, 바다의 힘으로 인간들의 문명에 종지부를 찍으려던 아버지 후지모토로부터 인류 문명을 보호합니다. 어쨌든 '인류 문명의 재개'를 뜻한다는 의미는 통한다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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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란맘마레)

포뇨의 엄마 이름은 '그란맘마레'라고 되어 있죠. Grandmom와 프랑스어로 바다를 뜻하는 mare의 합성어입니다. '바다 할머니' 정도가 되겠군요. 대강 봐도 농경문화가 발전했던 지역에서 숭상해온 대지의 여신(大母神, Magna Mater)의 해양판에 해당하는 바다의 여신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바다의 주신을 여신으로 설정한 신화는 그리 접해보지 못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소스케의 아빠 고이치가 탄 배의 선원들에겐 '관세음보살'로 보이죠.

어른 관객들에게는 소스케와 포뇨가 함께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너무 간단하고 단순하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결말은 활짝 열려있는 진행형이긴 합니다만, 미야자키 선생은 두 어린아이가 기존의 주인공들처럼 어려움을 겪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듯 합니다.

아무튼 일본에서도 이 작품은 엄청난 흥행 성과를 거뒀고, 어린이들은 미칠듯이 좋아했지만 어른들은 '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뒤로 갈수록 너무나 단순해지면서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플롯 상의 문제들(대체 왜 소스케 엄마와 포뇨 엄마가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밀담을 나눠야 하는지 등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돼기도 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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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저는 심심해서 해 본 짓이지만, 사실 '벼랑 위의 포뇨'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런 저런 신화와 연관을 지어 보는 건 상당히 바보같은 짓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 스크린에 지나가는 곱고 귀여운 형상들을 보면서 가벼운 유머에 미소지으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닌가 싶은 거죠. 혹시 옆에 앉아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어린이들이 보이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입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메시지요? '벼랑 위의 포뇨'에서 받을 만한 메시지라면 이미 수십년 전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의 토토로'에서 충분히 다 받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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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야자키는 소스케 캐릭터에 대해 "아들 고로가 다섯살 때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아들 고로'가 바로 욕을 엄청나게 먹은 '게드 전기'의 감독이죠.

주제가, 마냥 신납니다.^^ 정말 중독성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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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화제의 영화 '쌍화점'이 공개됐습니다. 예상을 뛰어 넘는 신체 노출과 자극적인 장면들이 일단 눈길을 끄는 가운데 보는 사람을 압박하는 긴장감에서는 일단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잘 봤지만, 자세한 리뷰는 일단 뒤로 미루겠습니다. 아직 개봉이 열흘 넘게 남은 터라.^^)

영화 '쌍화점'을 보면 막연히 이 이야기가 고려 공민왕 대의 이야기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과연 실제 역사와 얼마나 흡사한지에 대해서는 주장이 엇갈릴 수 있습니다. 과연 영화 '쌍화점'은 얼마나 실제 역사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거의 그대로 가져온 부분이 상당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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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은 왕(주진모)이 자신이 사랑하는 건룡위 수장 홍림(조인성)에게 왕비(송지효)와 동침하라고 명하면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처음에는 왕명을 따랐을 뿐인 홍림과 왕비는 점차 이성간의 사랑에 눈뜨고, 이들의 격정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집니다.

공민왕은 1351년 왕위에 오릅니다. 실제로 긍정적인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왕입니다. 우선 강도(강화도)를 나와 원에 입조한 이후 고려의 왕은 조-종의 칭호를 쓰지 못하고 왕으로 강등된데다 반드시 몽고 공주들과 혼인을 해 부마가 되어야 했고, 왕호 앞에 반드시 '충'자를 넣게 되어 있었죠. 충숙왕, 충혜왕, 충선왕 등이 그 예입니다. 공민왕은 굴욕의 '충'자를 떼낼 수 있을 만큼 자주적인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당 현종의 치세가 성군으로 꼽히던 전기와 당 멸망의 근거를 가져온 후기로 선명하게 갈리듯, 공민왕의 치세도 전기와 후기로 정확하게 갈립니다. 친원파 귀족들을 척살하고 북방 영토를 회복하며 홍건적을 물리치는 등 활기찬 모습을 보였던 공민왕은 1365년, 금슬이 유달리 좋았던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 끝에 사망하자 정치에 뜻을 잃고 이때부터 신돈이 권력을 쥐어 고려말의 혼란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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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년, 신돈 마저도 반역죄로 척살되고(드라마 '신돈'에서 보듯 기득권 귀족들의 반발이라는 설도 유력합니다), 세상 일에 흥미가 없어진 공민왕은 1372년 명문 자제들 중 용모가 아름다운 자들을 골라 자제위(子弟衛)를 궁안에 두게 됩니다. 이때부터 공민왕의 동성애설이 세상에 퍼지는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쇼. 궁 안에 거주하는 남자는 본래 왕 하나뿐인게 정상입니다. 나머지 남자는 모두 내시들 뿐이죠. 그런데 궁녀와 후궁들이 득시글거리는 궁 안에 미남 청년들을 풀어놓았으니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궁 안의 풍기가 문란해진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결국 자제위의 하나인 홍륜(洪倫)이 노국공주 사후 맞아들인 익비를 임신시킵니다. 내시 최만생이 이를 공민왕에게 밀고하자 공민왕은 대노하여 사실을 아는 관련자들을 모두 죽이고 입을 막으려 합니다. 이를 눈치챈 최만생은 오히려 홍륜과 결탁해 먼저 공민왕을 암살하죠. (일설에 따르면 동침 자체가 왕의 생각이었지만, 왕실의 안정을 위해 관련자들을 모두 죽이려 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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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은 이미 1363년 흥왕사에서 김용의 자객들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를 겪었지만 내시 안도치가 대신 칼을 맞은 덕분에 살아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운이 미치지 못했죠. 물론 왕을 살해한 자들도 사후 처리가 미숙했던 바람에 최영과 경복흥 등에 의해 모두 참살당하고 맙니다.

이상은 '고려사'의 기록입니다. 공민왕 사후 우왕-창왕-공양왕으로 세 왕이 더 왕위에 오르지만 사실상 공민왕의 죽음과 함께 고려조는 끝을 봅니다. 이와 관련해 많은 사가들은 공민왕의 동성애나 신돈과의 어지러운 이야기 등은 모두 조선 왕조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조선 건국 세력들이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아무튼 이쯤 되면 '쌍화점'의 중요한 스토리는 거의 대부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어찌 보면 홍륜을 홍림으로 바꿔 놓았을 뿐 역사와 거의 똑같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 물론 홍륜과 공민왕의 로맨스 같은 것은 역사책에 기록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죠.

공민왕은 정치와 군사에도 훌륭한 자질을 보였고, 한편으로는 유명한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충분히 사극의 주인공이 될만한 자격을 갖춘 왕이죠. 그의 그림 천산대렵도는 이 영화에도 등장합니다. 물론 - 영화 속의 그림은 종이에 그려지지만 현재 남은 천산대렵도는 비단에 그려진 것이란 차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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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현재 남은 천산대렵도가 길게 찢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 그림이 대체 왜 찢어져 있는지도 아마 아시게 되겠죠. 그렇게 따지면 '쌍화점'은 실제 역사와 아귀를 맞추기 위해 대단히 많이 노력한 영화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쌍화점'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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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쌍화점'의 이야기는 아서 왕의 이야기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위대한 왕인 아서는 왕비 기네비어가 자신의 오른팔인 랜슬로트와 사랑에 빠지면서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질투로 타락해갑니다. 그리고 위 장면은 뭔가 이 스토리와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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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서와 랜슬롯도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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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혹시 '달콤한 인생'의 강사장과 김실장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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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이 TV에 나왔습니다. '박중훈이 TV 토크쇼를 진행한다'에 이어 '장동건이 나온다'는 건 충분히 주말 밤, 시청자들을 화면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 만한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KBS 2TV '박중훈쇼'는 비슷한 시간대 MBC TV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과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안성기가 나레이션을 맡아 '라디오 스타' 콤비의 맞대결로 눈길을 끌었는데 쇼 프로그램과 다큐가 붙으면 당연히 오락 프로그램이 유리하겠죠. 하지만 두 개의 시청률 조사기관 중 한쪽은 '박중훈쇼'가, 다른 한 쪽은 '북극의 눈물'이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했습니다. 한쪽은 11.4%, 다른 한쪽은 9.5%로 집계했으니 '경이적인 시청률'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내용이 좋았으면 모르겠지만, '보다가 딴데로 돌렸다'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반응이 의미하는 것은 '박중훈과 장동건의 굴욕'일까요? 왜 이 정도의 성적밖에 거두지 못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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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너무나 당연한 사실부터 짚고 넘어갑니다. 현재의 연예계에서 일반 시청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진행자가 박중훈이 아니라면 장동건을 TV 토크쇼에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최고 인기 토크쇼라고 할 수 있는 '무릎팍 도사'가 1년 넘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장동건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어제 방송에서도 말했듯 '연기를 통해서만 대중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방송에 출연한 건 결국 박중훈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는 얘깁니다. 그럼 그렇게 어렵게 불러 낸 박중훈 측에서도 장동건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대한 '부드럽게 다뤄야' 한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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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의 열렬한 팬들이라면 그 정도만으로도 만족할지 모르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에게는 '성인이 된 뒤에 사귄 여자가 몇이나 됩니까' '좋아하는 여자의 부위별 특징은' '밤에 혼자 있을 때는 뭘 합니까' 라는 식의 진행은 불만 투성이일겁니다. 물론 모두 나쁜 질문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나 각종 연예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그 질문 하나로 끝나는 진행에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더 파고 들어가서 어느 정도 속 시원한 결말을 내 주길 바라는 거죠.

더구나 누구보다 장동건의 평소 모습을 잘 알고 있을 박중훈이라면, "저번에 술자리에서 보니까 이러이러한 모습도 보이던데..."라는 식으로 슬쩍 슬쩍 시청자들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었을텐데 매우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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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빈약한 이유 중에는 녹화 시간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무릎팍 도사'는 대개 4-5시간에 걸쳐 '게스트가 진이 다 빠질 때까지' 취조를 합니다. 그 정도로 '짜내고 짜내' 그걸 60분 내외로 편집해 두번에 걸쳐 방송하니 토크의 밀도가 다르게 느껴지죠. 장동건의 녹화 시간은 노래 부른 시간까지 합해 2시간 미만이었습니다.

물론 너무나 당연한 것은, 아무도 장동건에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이고, 그런 식의 적나라하고 날카로운 토크를 통해 '하늘 위에 사는 미남 귀공자'의 이미지를 훼손해 가면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로서 그에게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대체 뭐가 아쉽겠습니까.

그런 가운데서 장동건으로부터 주울 말은 "맥주 세 캔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다" "새벽 세시에 혼자 깨 있을 때, '20분 안으로 전화하는 여자가 있으면 무조건 그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뒷말 때문에 이 방송을 본 여자들 사이에선 "어떻게든 장동건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야겠다"는 농담 섞인 난리가 나기도 했죠.

여담이지만 장동건은 이날 세곡이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김수희의 '고독한 여인'과 최대 히트곡인 '되고송',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박중훈의 '비와 당신'은 제대로 불렀죠. 사실 '비와 당신'은 세 번이나 다시 불러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걸로 골랐습니다.

왕년의 가수 출신으로 대만에도 진출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좀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최대 히트곡(?)인 '너에게로 가는 길'을 다시 부르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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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말해 이 정도의 빈약한 토크로 시청률 두자리를 기록했다는 게 장동건의 위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긴 현장에 나간 후배들의 얘기로는 KBS 아나운서들도 녹화 현장에 내려가 방청객 역할을 자청할 정도였다는군요. (부럽습니다.^)

아무튼 첫회의 지루한 진행은 장동건이 출연했기 때문이라고 치겠지만, 박중훈의 토크 진행 자체도 - 물론 첫회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 그리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일단 너무 툭툭 끊어지는 화법이 진행자로서는 감점 요인입니다. 그가 게스트였을 때에는 그 정도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입장에서 보면 진행자로서 스피드 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장동건 아닌 다른 게스트가 나왔을 때에도 이런 식의 진행이라면 그건 아마 재앙 수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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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어깨를 숙이고 자리에 앉은 자세도 좀 불편해 보였습니다. 좀 더 높은 테이블을 써서 테이블에 기대든가, 아니면 다리를 꼬고 안락의자 깊이 앉은 자세에서 대화를 끌어가는 건 어땠을까요. 주말 밤이라면 이런 게 보는 사람에게도 편안함을 줄 수 있었을 것 같았습니다.

첫날 방송의 박중훈은 평소의, 특히 청룡영화상 인기상 시상 MC로 등장해 수많은 스타들을 '가지고 놀던' 여유 넘치고 노련한 모습이 아니더군요. 물론 워낙 뛰어난 감을 갖고 있는 분인 만큼 곧 자신의 페이스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이 정도의 관심이 몰린 것만으로도 '장동건 효과'는 충분히 본 셈이죠. 이제는 어떤 토크로 승부를 볼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분명한 건 '첫회처럼'은 두번 다시 안 된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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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진행자로 나온 이현주는 알고보니 '연세대 얼짱'으로 꼽혔던 슈퍼모델이었군요. 하지만 방송 무대에서는 아직 갈고 닦을 점이 많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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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재료를 다 넣어 봅니다. 최고급 꽃등심에 싱싱한 전복, 참치 뱃살과 캐나다산 바닷가재를 전부 한 남비에 넣었습니다. 각각 먹어도 맛있는 재료들이니 한꺼번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최고의 요리가 나올까요? 불행히도 늘 그렇지는 않습니다.

'트로픽 썬더'의 진용은 화려하기 짝이 없습니다. 벤 스틸러가 연기파로 변신하려는 액션 스타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를 위해선 성형수술도 불사하는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잭 블랙이 진지한 연기파로 변신하려는 악동 코미디언으로 나옵니다. 여기에 톰 크루즈, 닉 놀테, 매튜 매커너히가 조연(!)으로 나오는 이 영화가 과연 재미 없을 수 있을까요?

(사실 이 영화에서 스포일러를 따진다는게 별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튼 아래 내용 중에 스포일러가 있다는 분이 계십니다. 물론 이 영화의 예고편에도 다 나와 있는 내용들입니다. 그래도 꺼려지시는 분은 여기서 멈추시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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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서너개의 예고편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극중 스타들의 주요 경력이 지나가는 거죠. 터크 스피드맨(벤 스틸러)은 5편까지 속편이 나온 액션 영웅 시리즈로 대단한 인기를 모았지만 최근 하락세인 액션 스타입니다. 아카데미상을 노리고 발달장애 연기에 도전한 '바보 잭(Simple Jack)'역시 엄청난 혹평을 듣죠.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이번엔 월남전 당시의 실화를 다룬 대작 영화 '트로픽 썬더'로 재기를 노립니다.

'트로픽 썬더'는 월남전 영웅 포리프 테이벡(닉 놀테)의 회고록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스피드맨은 포리프 역을 맡고, 상대역인 흑인 오시리스 역으로 아카데미상 5회 수상을 자랑하는 최고의 연기파 배우 커크 라자러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기용합니다. '한번 어떤 역할을 맡으면 DVD의 코멘터리를 녹음할 때까지 그 역할로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라자러스는 흑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피부색을 바꾸는 수술까지 감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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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뚱뚱이 가족 코미디로 인기를 끈 악동 배우 제프 포트노이(잭 블랙), 마초 이미지의 흑인 래퍼 겸 배우 알파 치노(알 파치노가 아닙니다^^, 브랜든 T 잭슨), 신인급 배우 케빈 선더스키(제이 버루철)이 합류합니다.

하지만 개성이 너무나도 뚜렷한 이들 톱스타들은 젊은 영국인 감독 콕번(스티브 쿠건)으로선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인물들이라는 게 곧 드러납니다. 당장 영화사 사장인 레스 그로스맨(톰 크루즈)에게 끌려가 혼쭐이 나는 콕번에게 원작자 포리프는 약간 정신나간 아이디어를 줍니다. "엉망진창인 배우들을 위험한 실제 정글에 내던지고, 곳곳에 설치된 몰래 카메라를 동원해 영화로 만들라"는 것이죠. 하지만 베트남 정글 속에 수없이 남은 지뢰, 마약밀매집단의 게릴라, 정글 속의 지독한 날씨가 개입되면서 영화는 이들이 상상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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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정도까지 소개해도 영화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는 커녕, 오히려 기대가 만발합니다. 정말 기발한 설정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와 만족한 관객들은 많이 잡아야 20%, 냉정하게 보면 10%를 넘지 못할 겁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차이는 한국과 미국식 코미디의 온도 차이입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코미디는 (1) 바보 흉내로 웃기려는 코미디, (2) 넘어지는 걸로 웃기는 코미디가 되었습니다.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 이후 바보 흉내로 성공한 코미디언이 없다는 게 방증입니다. '개그 콘서트'의 박준형이나 김대희가 살짝 시도를 했지만 그건 전체 코미디의 일부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리 성공적이지도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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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덤 앤 더머'류의 코미디가 상당히 중요한 장르로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벤 스틸러의 특기인 화장실 유머가 결합되면 할리우드에서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물론 이 계열의 코미디로 한국에서도 패럴리 형제와 벤 스틸러의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가 꽤 히트한 적이 있죠. (사실 저는 이 영화가 전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똥으로 웃기는 코미디를 대단히 싫어합니다.)

영화 초반에 잭 블랙이 보여주는 1인 6역(7역인가요?)의 코미디 역시 한국인의 유머감각에는 별로 와 닿지 않습니다. '너티 프로페서' 역시 한국에선 그리 히트하지 못했죠. 이 영화의 '필살기'라고 여겨지는 톰 크루즈의 엉덩이 춤 역시 '분장하는데 꽤 애썼구나' 이상의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합니다. 요즘 한국인들의 웃음 포인트를 생각하면 장동건이 대머리 분장을 하고 나와서 춤을 춰도, '...애 썼다' 이상의 반응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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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트로픽 썬더'류의 영화에서 배우들이 따발총처럼 쏴대는 욕설과 풍자를 몇 줄의 자막으로 옮겨놓는다는 건 대단한 무리입니다. 배우들이 한 줄 정도로 읊어대는 문장도 그 배경과 왜 웃기는지의 포인트를 설명하려면 세 줄, 네 줄이 넘어가야 할테니까요.

또 미국 관객들에겐 백인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흑인으로 변신해 사용하는 '흑인 영어', 그리고 백인이 흑인 흉내를 내는 것이 불만인 알파 치노 역의 브랜든 T 잭슨과 벌이는 실랑이가 그 자체로서 훌륭한 코미디입니다. 하지만 절대 다수 한국 관객(물론 저 포함입니다)에겐 똑같이 영어 쓰는 놈들끼리 쑈 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 관객들을 위해 이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벤 스틸러가 잇달아 시도하는 '플래툰' '람보2'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 패러디 정도입니다. 잭 블랙은 이 영화에서 전혀 코미디를 주도하지 못하고, 그냥 짜증 내는 뚱보 역일 뿐입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전혀 웃지 않는 표정으로 로버트 드 니로나 말론 브란도를 형상화한 듯한 '약간 미친 듯한 연기파 배우'를 웃음거리로 만듭니다만, 상당히 심각한 수준의 영화광이 아니라면 전혀 먹히지 않을 코미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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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픽 썬더'는 한마디로 코미디에 대단히 관대한 미국 관객들을 위한, A급 배우들이 B급을 표방하고 만든 영화입니다. 지나치게 내수에 초점을 기울이다 보니 수출용 상품으로서의 매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죠. 미국에서 8월13일 처음 공개돼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한 영화가 한국에선 12월11일에서야 개봉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에서의 생활이나 유학, 사업을 앞두고 자신이 얼마나 미국식 정서에 적응했는지를 테스트해 볼 분이라면 적극 추천합니다. 단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스쿨 오브 락' - '아이언 맨'을 재미있게 봤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선택하시는 분이라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걸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단단한 각오란, 아무런 기대 없이, 마음을 비우는 걸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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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닉 놀테와 매튜 매커너히는 오히려 꽤 웃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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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산이 국내외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당연히 고환율이 첫번째 이유겠죠. 일단 시간 나면 일본으로 향하던 사람들이 연초 데뷔 1.5배 이상 오른 일본 돈 때문에 포기를 했겠고, 그래도 어딘가 쉬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제 1감으로 떠오르는 곳이 부산일겁니다.

서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제주도만 해도 한참 오른 항공권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바다를 건너 가는 건 좀 부담스럽죠. KTX 덕분에 서울-부산간의 심리적 거리가 3시간 이내로 줄어들었기도 합니다. 물론 오해도 있죠. '따뜻한 남쪽'이라는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사실 부산은 바람이 셉니다. 그리 '따뜻한 남쪽'은 아닙니다.

제 경우에 부산을 가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바로 풍부한 먹거리죠. 사실 부산을 생각하면 머리 속에 온갖 해산물이 떠오르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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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회 말고도 좋은 먹거리가 널렸습니다. 전국 주요 도시는 꽤 다녀 봤지만, 미향으로 소문난 전주나 광주보다 부산의 먹거리들이 제게는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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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분들에 비하면 어림없겠지만, 제 경우에는 지난 2002년 아시안게임 때 한달 동안 지옥의(^^) 합숙생활을 한 것이 부산의 맛에 익숙해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장돌뱅이처럼 이런 저런 이유로 부산을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그래도 일정 기간 동안 거주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더군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저라면 '부산의 맛'으로 꼼장어와 복어를 가장 먼저 꼽겠습니다. 꼼장어라면 제가 경험해 본 걸로는 일단 자갈치 시장 주변의 꼼장어구이, 동래의 돌판 꼼장어, 기장의 짚불구이 장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동래의 돌판 꼼장어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복어는 조리법이 정말 다양합니다. 우선 복국은 서울에도 분점을 낸 유명한 복국들보다 해운대 끄트머리 미포에 있는 할매복국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뭐랄까, 좀 소박한 맛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복국보다 우선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은 복불고기입니다.

'복불고기 서울에도 많은데...'하실 분들이 있겠지만 일단 부산에 가서 드셔 보시면, 차원이 다르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서울이나 여타 지역의 복불고기집들은 대개 돼지고기를 요리하듯 고추장 범벅이 된 복불고기를 내놓습니다만, 진짜 복불고기의 맛은 간장 양념에서 찾아야 합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16년 동안 복불고기만 먹어 온 알독 김병만 선생은 말합니다. "간장 복불고기 먹어 봤어?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마."

제가 찾는 집은 부산 연산동의 '제일복집(051-851-3263)'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제일복집은 어디론가 사라진 듯 합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 장사를 그만두셨을 것 같지는 않고, 혹시 부산 사시는 분들 가운데 이 제일복집이 어디로 갔는지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로 소식 좀 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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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동역 6번출구로 나와 반도보라아파트쪽으로 100m 정도만 가면, 아파트 담벼락 바로 맞은편에 있습니다. 이 집에 처음 갔을 때는 크로바 호텔 바로 뒤에 있었습니다. (위 사진의 안 보이는 오른쪽이 바로 반도보라아파트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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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가본 게 2004년. 놀랍게도 2002년과 대략 거의 비슷한 가격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인장은 한술 더 떠서 "10년 전과 똑같은 가격"이라고 주장합니다. 제가 10년 전에도 왔었는데 그때는 25000원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뭐 아무튼 착한 가격입니다. 복불고기는 3만원에 2인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소개 기사를 보면 복샤부샤부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집을 대표하는 메뉴는 간장 복불고기라고 생각합니다. 소불고기 양념과 거의 흡사한 소스에 팽이버섯과 미나리, 양파 등 각종 야채를 넣고 솥뚜껑같은 번철에 구워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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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시간에 이렇게 되죠.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소주보다는 맥주가 더 어울립니다. 껍질 무침과 콩나물 무침을 안주로 홀짝홀짝 맥주를 들이키면서 복살이 익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다 익으면 차가운 맥주로 혀를 식히면서 야들야들한 복살과 미나리를 씹는 맛... 침샘이 터질 것 같군요.

당장 KTX 표를 끊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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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복죽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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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일정이라면 복불고기로 한 끼, 저녁은 적당한 곳에서 회로 한 끼 정도 때워야겠죠. 횟집도 횟감과 스타일에 따라 천차만별일테니 그건 알아서 고르셔야 할 겁니다.

10년 전 회사 선배에게 소개받아 동래의 신화정이라는 횟집에 갔습니다. '이 집에서 양식 회가 발견되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자신만만한 문구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때 이 집에서 먹은 돌도다리(이시가리)회와 광어 서더리를 넣고 끌인 미역국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어디 횟집을 가도 광어 뼈로 끓인 미역국이 있는지 물어보게 되더군요.

최근 갑자기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보니 여전히 번창하고 있더군요.

밤에 술을 드신 분이라면 다음날은 더더욱 복국을 드셔야 합니다. 숙소가 해운대 쪽이라면 위에서 말한 할매복국이나 서울에서 더 유명한 금수복국이 좋겠죠. 뭐 여행지의 아침이니 아점 정도의 시간대가 되겠지만.^

리듬이 깨져서 점심을 걸러야 하거나, 아니면 집으로 향하는 차편 시간 때문에 뭘 먹기가 애매하신 분들에게는 부산 역전의 신발원 만두를 추천하게 됩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서면 가야밀면도 좋겠죠.

부산역 바로 길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세계 어디서나 차이나타운을 상징하는 붉은 바탕의 황금색 용문이 서 있습니다. 물론 이 골목은 차이나타운+러시아타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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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에서 몇미터 안 되는 곳에 신발원(新發園) 간판이 보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곳이지만, 의외로 가게와 간판이 작아 잘못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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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명성을 듣고 처음 간 사람은 테이블이 세개밖에 없는 초간편 매장 규모에 놀랍니다. 대다수 중국집과는 달리 매장보다 주방이 더 크죠.^

메뉴에도 짜장면 탕수육은 없습니다. 신발원은 그냥, 너무도 순수하게 '만두집'이자 '빵집'이기 때문입니다. 고기만두와 물만두를 빼면 나머지는 단팥빵, 커빙(중식 식빵), 꽈배기 등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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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신발원이 자랑하는 고기만두. 돼지고기와 생강 마늘 부추 맛이 나는 전형적인 중국식 만두입니다. 제갈공명이 남만의 원귀들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을 바로 그 만두 맛이라는 생각이 절로 날 정도.

돼지고기를 평소 선호하지 않는 마나님과 순식간에 한 접시를 해치우고, "이거 포장해서 기차에서도 먹을까?"했더니 0.1초만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면서, 신발원 만두의 위력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전혀 담백하지 않습니다. 진짜 그 고기만두 맛입니다. 그리고 일품입니다. 기차 안에서 냄새를 풍기면서 만두를 먹으면 옆 자리 사람들이 큼큼거리며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아마 그 분들도 침을 삼켰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챙겨 먹는 사이사이에 뭘 하냐구요? 그런건 각자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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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때 광고를 하는 것이 경기 회복 후의 급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얼마 전에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경기가 나빠지면 홍보 예산부터 줄이는 것이 그리 좋은 방안은 아니라는 얘기죠. 그렇다고 억지로 은행 대출이라도 받아서 광고를 집행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시사주간지 TIME 온라인판은 대중문화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2008 베스트10을 선정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비가 출연한 '스피드 레이서'를 9위에 올린 2008 영화 베스트 10인데(뭐 타임의 한해 베스트 무비 선정은 예전부터 괴팍하기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저는 TV 광고 베스트 10에 관심이 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0위의 '백악관, 새벽 3시에 누가 전화를 받을까' 광고가 마음에 들더군요. 가끔 '이에 대체 왜 베스트10일까' 싶은 것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스포츠 스타들을 기용한 광고에 높은 점수가 매겨진 듯도 합니다.


1. T-Mobile's NBA series

 
찰스 바클리 경(?)의 입담이야 전 세계가 알아주는 터. 그가 마이애미의 영웅 드웨인 웨이드에게 '정말 아무때나' 전화하는 주책맞은 아저씨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해 냅니다. 웨이드의 연기력도 일품.


2. Fed Ex's horror flick
 

비둘기가 물건을 나른다. "큰 물건들은 어떡하지?" 거대 비둘기가 등장하지만, 이내 온갖 사고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페덱스를 쓰는거야."


3. Fate, according to Nike

 
엔니오 모리코네의 '석양에 돌아오다'에 나오는 The Extacy of Gold 가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사나이는 대결하기 위해 태어났던 것이었던 것이었다'는 메시지가 간명하면서도 강렬하군요. 감독은 '세븐'의 데이빗 핀처.


4. I'm a PC
 

마지막에 아주 작은 윈도우 마크. 빌 게이츠가 살짝 등장합니다(안경을 쓴...). 메시지는 "이제 PC를 쓰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인 듯 합니다. 꽤 특이하군요.

 
5. Scorsese to direct AT&T

 
침대 안의 어린이가 아빠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 마틴 스콜시스가 나타나 평화로운 가족의 한 장면을 느와르 영화로 바꿔놓으려 합니다. 메시지는 "우리는 당신의 통화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당신도 우리의 영화를 방해하지 마세요." A급 유머. (극장 통화 예절을 가르치는 광고로도 제격입니다-이동통신 광고라면 더 잘 어울리겠군요.)



6. Old Spice's meta-humor 

 
'천재소년 두기'로 유명한 닐 패트릭 해리스가 "지속적인 몸냄새는 건강에 해롭습니다"로 시작하는 긴 코멘트로 올드 스파이스 스킨로션을 광고합니다. 그런데 뭐가 그리 뛰어난 유머인지 모르겠군요. 누가 설명 좀 해 주시면...



7. Visa's Olympic Tearjerker


'쇼생크 탈출'로 귀에 익은 모건 프리맨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400m 준결승에서 갑작스런 부상으로 쓰러진 영국의 데렉 레드먼드가 아버지의 도움으로 끝내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였다는 점을 동원한 비자카드의 광고. 개인적으로는 좀 너무 상투적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인데. 이건 '감동 마케팅'이라면 한국이 한발 앞서 있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8. Obama's infomercial


명성이 자자한 오바마 선생의 선거용 인포머셜 광고입니다. 7분이 넘는 길이라 미니다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최근 몇년 사이 살림살이가 악화된 사람들의 경우들을 직접 보여주며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이 제법 설득력있어 보입니다.


9. Guitar Hero's dream band


보컬 코비 브라이언트, 퍼스트 기타 알렉스 로드리게스, 세컨 기타 마이크 '피시' 펠프스, 드럼은 토니 호크(유명 스케이트 보더라는군요). 스포츠계의 톱스타들로 구성된 대형 밴드가 밥 시거의 'Old Time Rock and Roll'을 부르며 '기타 히어로' 게임을 광고합니다. 코비는 거의 연예인인데 펠프스는 아직 촌티(^^)를 다 벗지 못한 듯 합니다.

사실 하이디 클럼 버전이 더 관심이 가죠.^^ 이 버전은 TV용으로는 방송 불허랍니다.





10. It's 3 a.m.


역시 대선이 있던 해다 보니 정치광고가 두개나 올라와 있군요. 사실 '광고'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의 오바마 것보단 이쪽이 훨씬 마음에 듭니다. '새벽 3시, 아이들은 잠들어 있습니다. 이때 백악관에는 위기를 알리는 긴박한 전화가 걸려옵니다. 대체 누가 그 전화를 받기를 원하십니까. 이런 상황에 익숙한 사람일까요, 초보자일까요?' 훌륭하지 않습니까?

마지막은 추억어린 패러디입니다.^



자, 여러분의 취향은 어느 쪽입니까?




p.s. 혹시 2007년의 베스트 10이 궁금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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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이 결국 양육권과 재산관리, 법률대리권 등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최진실이 고인이 된지 60여일만의 일이었죠. 아버지로서의 의무만을 다 하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진실 사후 두 자녀에게 남겨진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조성민 측과 최진실 유족 측의 시비는 가라앉게 된 셈입니다.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씨가 "조성민에 대한 싸늘한 시선을 거둬 달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조성민으로서는 상처뿐인 결말인 셈입니다. 사실 8일 나온 화해의 내용은 지난달 18일 조성민이 MBC TV 'PD 수첩'에 출연해 발언한 내용과 거의 차이나지 않습니다. 당시 조성민은 최진실의 유족 측에게 "(유산을)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아도 좋고, 그쪽에서 모두 맡아서 관리하셔도 좋다. 다만 아이들을 걱정하는 아빠로서의 마음만 알아 주시고, 나중에 아이들만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만 해 주시길 바란다"고 제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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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은 당초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성인이 될 때까지 최진실의 유산을 가족 아닌 누군가가 맡아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하자"고 했지만 이날(18일), 처음으로 재산관리에 대해 아무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양육권은 처음부터 주장한 적이 없었습니다.

조성민은 이날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막자는 마음 뿐이었는데,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기 전에 문제가 불거져 이렇게 된 것 같다"며 "이미 아이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갈라서는 안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로 다시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죠. 하지만 인터넷 댓글로 상징되는 여론은 이런 조성민의 '항복 선언' 이후에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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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온 국민에게 민법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연 살아가면서 이 말이 의미가 있을 날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던 '친권'이라는 법률 용어를 거의 모든 국민이 숙지하게 됐고, 그와 동시에 우리 민법이 얼마나 '만약의 사태'에 대해 미비한지를 알게 됐습니다. 이번 사건이 만약 법원 책상 위에 놓이게 됐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기나긴 재판이 됐을테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혼한 부부 중 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살기를 포기하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맡아 기르고 있었을 때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는 아버지가 자동으로 친권자가 되는(혹시나 아버지가 친권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포기 자체가 인정되지 않고, 다른 한쪽 친권자 - 즉 어머니 - 가 사망함과 동시에 되살아나는) 것이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을 맞아 수많은 법조인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과연 조성민의 친권도 자동으로 부활되는 것인가(혹은 애당초 포기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었는가)?

놀랍게도 의견은 너무도 다양했습니다. '지금까지'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에선 "당연히 친아버지가 친권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다소 진보적인 쪽에서는 "이런 경우에는 친권의 부활 여부를 법정이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부는 "조성민의 경우처럼, 아이의 양육과 별개로 친권을 주장하는 경우 그 향방은 뭐라 말하기 힘들다"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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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혼란처럼 온 사방에서 말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런데 쏟아진 말의 90%는 너무도 일방적이었습니다. 특히 소설가 김연, 여성학자 오한숙희 처럼 이혼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증언'이 쏟아졌죠. 이 분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미 한번 아버지이기를 포기한 사람에게, 법이 그냥 '아버지로서의 권리(물론 의무를 포함해)'를 자동으로 부활시켜 줘서는 안된다."

그런데 과연 이런 경우만 있을까요. 옛날 어른들의 말씀은 단호하게 반대쪽에 있습니다. 이른바 '핏줄은 가까운 쪽일수록 끌린다'는 논리죠. '착한 외삼촌보단 못된 아버지가 낫다'는 것이 전통적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조성민 때문에 되찾는 쪽을 아버지로 상정해서 좀 그런데, 되찾는 쪽이 어머니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죠. 부부가 이혼해 꽤 많은 재산을 가진 아버지가 아이들을 맡았고, 재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망했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빼앗긴' 자녀들을 되찾고 싶습니다. 하지만 민법이 친권의 자동 부활을 부정한다면, 이 친어머니는 자녀와 거기에 자동으로 딸려 있는 재산을 놓고 남편이 재혼한 여성(아이들의 양어머니)과 법정 대결을 벌여야 합니다.
 
자, 되찾는 쪽과 빼앗은 쪽(?)의 성별을 바꿔 놓고 보면 상황이 무척 달라 보이지 않습니까?

이밖에 또 다른 입장은, 이처럼 아이를 맡는 경우 '상당한 수준의 유산에 대한 관리권'이라는 보너스가 함께 따라 오는 경우가 아닌, 아무도 아이를 맡지 않으려는 경우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친권이란 권리를 넘어 의무의 성격을 갖게 됩니다. 즉 미성년자인 자녀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이 경우 '가장 그 권리를 무겁게 갖는 사람은 바로 친 부모'라는 것이 친권의 의미라는 겁니다.

물론 현재의 민법 수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친부모든, 양부모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국가가 개입해서 결정에 관여한다면 일방적으로 불리한 쪽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모처럼 이런 이야기가 수면 위로 불거져 나왔을 때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런 두 개의 주장 중에서 어느 쪽이 21세기의 한국 사회에 보다 적합한 것인지, 결론을 끌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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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친권'이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경우들과, 이런 다양한 경우들에 대응하는 다양한 처리 방안들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민법상의 친권 개념과 그 시행 원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이런 부분들이 빠짐 없이 고려되어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이번 사건 내내 조성민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 부은 사람들이 과연 이번 사건이 갖고 있는 이런 다양한 측면들에 시선을 돌렸을까요. 그걸 기대하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으로 표출되는 대다수 여론은 거의 모두 한 쪽에 치우친 주장만을 수용했고, 조성민 쪽의 이야기는 아예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의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듯 사기꾼이며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심지어 한 방송 프로그램까지 최진실 유족 측의 주장만을 거의 수용해서 방송해 '조성민 매도'에 불을 질렀습니다. 남의 부부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마치 눈 앞에서 본 듯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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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 비명에 간 최진실을 옹호하고 동정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진행 경로를 살펴보면, 조성민은 내세운 주장에 비해 너무 심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그는 '돈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다'는 일관된 주장을 펼쳤고, 그 주장을 입증한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그에게 쏟아진 매도는 대단히 부당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사건은 온 국민에게 '친권'이라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는 성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조성된 여론과 관심이 과연 이 친권 이슈를 기억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긍정적인 힘으로 전환될까요? 불행하게도 그럴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온 사회를 휩쓸었던 뜨거운 관심과 에너지가 그저 순간의 관심과 한 개인에 대한 매도로 끝나고 만다면 그저 안타까운 일일 뿐입니다. 기왕 이슈가 되었다면 그저 구호와 목청만 높일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하는 것이 진정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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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콘서트'가 다시 전성기입니다. 7일 방송에서는 간판 스타 중 하나인 강유미가 '가문이 영꽝'으로 복귀해 반가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달인'이며 '박대박'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 '할매가 뿔났다' 등 한마디로 현재는 버릴 코너가 없을 정도로 알찹니다.

몇번째 전성기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1999년 시작된 프로그램이니 내년이면 10주년. '웃으면 복이 와요'도 아니고 스탠딩 코미디를 중심으로 한 라이브 코미디 프로그램이 이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흘러든 결과인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은 대체 '개콘'의 이런 융성에 비해 다른 방송사 코미디 프로그램들의 힘은 왜 예전같지 않은 것일까요. '개그야'나 '웃찾사'는 왜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일까요. '개콘'과 여타 비슷한 프로그램들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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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어떤 프로그램이든 부침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콘'을 원조로 하는 3대 지상파 방송사의 라이브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서 한때 '웃찾사'가 가장 재미있던 시절이 있었고, 또 한때는 '개그야'가 지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그중에서도 '개콘'이 전성기를 누린 기간이 제일 길다고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게다가 '개콘'이 현재 누리고 있는 전성기는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청률의 급상승은 일요일 오후 10시대에서 9시대로 한시간 빨라진데 따른 이익이지만 10시대일 때도 다른 개그 프로그램들이 무너져 갈 때 개콘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개콘의 힘은 무엇일까요? 스포츠 기사에서 어느 팀이든 우승의 원인을 분석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장이 바로 '신구의 조화'입니다. 노장이 자기 몫을 다하고, 신인이 조기에 주전으로 정착해 주면 성적 안 나올 팀이 없겠죠. 현재의 개콘도 마찬가집니다. 특히 노장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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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 김대희 박성호 등 '개콘 1세대'들이 여전히 버팀목 역할을 해 주고 있고,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데뷔한 김병만(2002) 이수근 변기수(2003) 장동민 유세윤 유상무 김대범 강유미 황현희(2004) 등이 주전으로 만개한 상태에서 신봉선을 필두로 '왕비호' 윤형빈, '수제자' 노우진, '박대박'의 박성광-박영진, '여성학자' 박지선 등 데뷔 만 3년 이내의 신진들이 자리를 잡아 주고 있습니다. 출연진의 폭이나 활약에서 역대 어느 세대의 '개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화려한 진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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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코너의 생사와 '편집에서 살아남기'를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을 볼 때도 '살릴건 살리고 죽일 건 죽인다'는 편집 방침이 확실해 진 것이 눈길을 끕니다. 최근 새로운 코너로 등장했던 '뜬금뉴스', '변수무당' 코너는 신속하게 사라졌지만, 그중 반응이 있었던 캐릭터인 안상태의 '난...'과 박휘순의 '미쳤어, 미쳤어'는 '봉숭아학당2008''에 흡수됐습니다.

또 개그 코너들의 전반적인 향상에 대해선 최근 5-6년 동안 KBS가 기울여 온 코미디 개발의 노력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개그사냥'과 '폭소클럽'의 존재죠. 다양한 스타일의 코미디 개발을 모토로 내걸고 야심차게 추진되었던 프로젝트들입니다. 이들 프로그램을 통해 신인이 발굴되어 KBS의 공채 개그맨으로 흡수되기도 하고, 마땅히 출연할 프로그램이 없는 신인들이 기량을 키우기도 해왔습니다. 한때 KBS의 한 관계자는 "'개그사냥'이 싱글 A, '폭소클럽'이 더블-트리플 A, '개그콘서트'가 메이저"라는 식으로, KBS 개그의 팜(Farm) 시스템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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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이 두 프로그램은 모두 폐지됐습니다. 아무래도 시청률 면에서 대박이 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개콘'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영광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면, 언젠가는 '개콘'에도 위기가 올 거란 예감을 갖게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들 없이는 신인들이 기량을 키울 수 있는 곳이라곤 대학로의 공연 무대뿐입니다. 이런 무대의 현장감각도 중요하지만, 방송 적응이라는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진짜 방송 프로그램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이죠. 물론 그 효과는 두통약처럼 즉각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이들 프로그램이 등장해서 성과로 연결되기까지 3-4년이 걸린 걸 보면, 위기가 찾아오기 까지도 꽤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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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오랜만에 강유미가 복귀한 '가문이 영꽝', 재미있더군요. 왠지 강유미의 얼굴에서 고생(?)의 흔적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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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발라드 가수들도 데뷔하는 데 2-3년 이상 걸립니다. 노래 실력을 다듬느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일단 '외모'를 데뷔하는데 맞추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형수술도 한두번으로 끝나지 않죠. 수술 한번에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여러 차례 성형해 조각같은 얼굴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수의 힘은 역시 가창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한번 노래를 하면 듣는이의 간장이 다 녹아 내리고, 듣는 순간 팬이 되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똑같은 소리를 내도 어떤 사람은 그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감정이 다 펼쳐지는데 다른 사람은 목소리 곱고 음정이 정확한데도 아무런 감동이 없습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명가수는 타고 나기도 하지만 환경의 영향이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굴곡진 삶을 산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소리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 주장을 대변해주는 대표적인 가수로는 위 사진에 나오는 빌리 홀리데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늘 말씀드리지만 주말은 재방송^^)




빌리 홀리데이는 1915년 태어나 1959년 숨을 거뒀습니다. 할아버지는 형제가 16명이나 됐던 버지니아의 노예였고, 어머니는 홀리데이를 낳았을 때 겨우 13세였다고도, 16세였다고도 합니다.

홀리데이는 볼티모어의 빈민가에서 성장했고 부모는 그녀가 세살때 결혼했지만 곧 이혼해서 아버지를 만난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11세때 성폭행을 당했고 이 일을 계기로 무단결석 증세를 보여 가톨릭계의 교정학교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1928년 뉴욕으로 이주해서도 다시 이웃집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합니다.

이런 전력 이후 그녀는 한때 창녀로 일했고, 옥살이도 경험합니다. 그래도 타고난 가창력 때문에 한 재즈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자 청중들은 눈물을 흘렸고, 이로 인해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뉴욕의 수많은 클럽들을 통해 입소문을 충분히 남긴 뒤에 1935년부터는 음반으로 빛을 보게 되죠.

이후의 삶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와 같습니다. 재즈계에서 불멸의 여성 보컬로 각광받았지만 이미 마약과 알콜 중독으로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고, 1959년 죽기 직전에도 마약 소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결국 간경화 때문에 4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죠. 하지만 죽기 1년 전인 1958년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Lady in Satin> - <I'm a fool to want you>가 수록된 - 을 내놓을 정도로 일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한 건 우리나라의 다른 가수 한 분이 생각나서입니다. 예전에 거기에 대해 써 둔 글이 있어서 올려 봅니다. 홀리데이의 사연과는 전혀 다르지만, 이 분의 사연을 알고 나면 어떻게 해서 그런 절창이 가능한지를 느끼게 됩니다. 편의상 이니셜을 사용했지만 짐작하기 그리 어렵진 않으실 겁니다.




제목: 어떤 사람이 가수가 되나

S씨의 아버지는 판소리 중고제(동편제 서편제 외에도 있다)의 명창. 고모는 승무의 대가였다. S씨를 낳을 때 아버지는 이미 60대였지만 그의 제자였던 어머니는 갓 스무살이었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는 S씨를 데리고 개가를 해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사내아이는 내주고 S씨와 함께 또다시 친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늘 두고 온 아들 생각에 눈물짓는 어머니와 단 둘이 자란 S씨는 매우 병약한 아이였다. 급기야 중학교때에는 심장병으로 2년 정도 학교를 쉬게 된다. 그 뒤로도 수시로 병원 신세를 지느라 학교 생활이나 교우관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래도 어머니가 S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오랜 병끝에도 가정교사(흔히 S씨의 첫 히트곡의 주인공이라고들 한다)를 둘 수 있었던 걸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매사 우울하고 예민한 성격이던 그가 1979년 10월, 감히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던 거물급 인사가 바로 눈앞에서 심복에게 사살되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 지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S씨는 이미 스타가 된 뒤에 세번의 결혼을 했다. 첫번째 남편은 역술인. 그는 S를 보자 마자 "우리는 몇 세기 전부터 부부의 연으로 맺어진 사이"라며 못을 박아 버렸다. S는 그의 그런 태도에 감히 반항할 용기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 없이 자란 S는 남자를 만날 때 항상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남자를 찾았다고 한다. 권위있는 남자야말로 자신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 남편은 걸핏하면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파경으로 이어졌고, 결혼 생활에 관심이 없던 남편은 아들을 쉽게 내줬다. 아이를 기르며 살던 S는 이번엔 진해 출신의 호걸풍 사업가와 재혼을 했다. 매사 순조로워보였다. 딸 아이 하나를 낳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은 사업가라기보다는 어둠의 세계에 더 가까웠다. 게다가 알고 보니 본처가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같이 살 수는 없었지만, 남자는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딸 아이는 내놓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감히 맞설 수 없었던 S는 늘 딸 아이가 눈에 선했다. 그래서 '아이야'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세번째 남편은 방송사 PD. 이미 이혼 경력이 있고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던 PD의 남자다운 리더십에 S는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결국 S가 PD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두 사람은 곧 결혼을 했다.

그러는 사이 두번째 남편이 사업도 망하고, 병들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남편은 딸을 데려가 줄 것을 부탁했다. S는 세번째 남편에게 "딸에게 그동안 못한 엄마 노릇을 해 주고 싶다"며 딸을 미국으로 데려가 1년간 함께 살면서 음악을 가르쳤다.

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자 두번째 남편으로부터 "딸이 너무 보고 싶으니 좀 내려 보내 달라"는 연락이 왔다. 개통한지 며칠 안 된 KTX를 타고 딸이 내려가던 날, 두번째 남편은 마중을 나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절명했다.

S는 현재 부모가 엇갈리는 세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다. 다행히 세번째 남편은 절세호인이라 그의 굴곡 많은 삶에도 평화가 깃들었다는 평이다. 하지만 S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겹겹이 쌓인 한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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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노래를 들으면 누구나 목소리에서 뿜어나오는 겹겹이 싸인 한에 감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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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의 송화도 장님이 된 뒤에 그 한이 맺혀 나오는 목소리가 더욱 절창으로 꼽혔다고 하죠. 유독 맹인 명가수들이 많은 데에는 이런 이유도 한 작용을 하는게 아닐까요.

하긴 명배우 중에도 인생에 고달픈 역정이 담긴 사람들이 많이 있죠. 작가들 중에도 남다른 가족사를 가진 분들이 많은 걸 보면 '한'이라는 것이 창작력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 작게 평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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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우를 여왕으로 인정하기까지  (35) 200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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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처음 쓴게 10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정리된 이야기를 고치지 않았다는 데 갑자기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조금 내용을 손봤습니다.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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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스타들의 식성에 대한 얘기를 '송승헌이 설렁탕을 고르는 기준'이라는 제목으로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글의 댓글에 어떤 분이 질문을 던지셨더군요. 바로 '대체 설렁탕과 곰탕은 뭐가 다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누구나 막연히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을 겁니다. 설렁탕은...이러이러한 거고, 곰탕은 저러저러한... 그런데 막상 말로 정리하려고 보면 말문이 막힙니다. 대체 뭐가 다르지?

궁금하면 못 참고 살아온 세월이 벌써 한두성상이 아닙니다. 수사에 착수해 봤습니다.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에 대한 추적보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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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 식당 이남장의 전형적인 설렁탕 모습)

일단 전문가들의 해석은 단호합니다. 많은 분들이 허영만 선생의 만화 '식객' 11권에 나오는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지적하셨습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설렁탕은 뼈 국물이고, 곰탕은 고기 국물이다."

맛 전문기자로 10년을 보내신 요식업계의 거물 선배 기자께도 여쭤봤습니다. 역시 마찬가지.

"뼈를 고아서 만든 것이 설렁탕이고 고기와 내장로 국물을 낸 것이 곰탕이다. 그래서 설렁탕은 국물이 뽀얗고, 곰탕은 국물이 맑다. 국물이 투명하면 곰탕이라고 불러도 좋다."

명료합니다. 더 이상 토를 달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전국적인 지명도를 자랑하는 곰탕의 명가 하동관의 투명한 국물을 생각하면 너무도 명백하게 구분됩니다. 일단은 이런 설명이 정설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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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세상에 곰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하동관 곰탕밖에 없느냐,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동관 곰탕은 소위 서울식 곰탕의 대표라고 해야겠죠.

일단 하동관 못잖게 유명한 현풍할매곰탕이 있습니다. 영남지방에서의 강세를 바탕으로 서울에도 진출했죠. 물론 원조 논쟁이 아직도 치열하지만, 일단 현풍할매곰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음식은 죄다 비슷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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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한 집에 가서 물어봤습니다. 대체 곰탕 국물은 뭘로 내나요? 사골도 들어갑니까?

"그럼 곰탕 국물을 사골로 내지 뭘로 내요? 물론 내장도 넣고 고기도 넣지만."

전문가들은 설렁탕과 곰탕을 구분할 때, '사골곰탕'이라는 등의 말은 민간에서 잘못 쓰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상당수 지역에서는 사골 위주의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꼬리곰탕'이라는 표현 역시 제대로 정착해 있죠. 꼬리곰탕집 치고 국물이 말간 집은(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꼬리곰탕도 분명히 곰탕이되, 뼈 위주의 국물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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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바로 옆에는 1972년에 개업했다고 큼지막하게 써 있는 유서깊은 설렁탕집이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메뉴를 설렁탕으로 집중했지만, 그동안은 도가니탕과 꼬리곰탕도 함께 팔았습니다. 이 집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죠.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가 뭡니까?

"국물은 같아요. 같은 국물에 건더기가 다른 거지."

한 지인의 증언에 따르면, 20년 전 쯤 충북 청주의 한 식당에서 메뉴판에 설렁탕과 곰탕이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주인에게 대체 둘이 뭐가 다르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의 증언은 이랬답니다.

"국물은 똑같소. 수육만 나오는지, 수육하고 내장이 같이 나오는지 차이지."

뭐 당시의 식당 주인이 한식 전문가는 절대 아니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튼 이런 통념도 설렁탕과 곰탕을 구별하는 데 기준이 될 수는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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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설렁탕에는 뼈는 물론이고 소 머리와 양지머리, 기타 소의 온몸 부위가 다 들어간다. 뼈가 주 재료이기 때문에 뽀얀 국물이 특색이다. (물론 선농단 제사가 기본이 됐다는 설은 현재에는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생이 서민의 음식이기 때문에 시커먼 뚝배기를 주로 쓴다. 

2. 곰탕은 기본적으로 내장과 고기로 국물을 낸다. 이와는 전혀 다르게 사골 위주의 국물을 곰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것은 곰탕의 원형에 충실하다고 볼 수는 없다. 세상이 변하다 보니 경계가 흐려졌지만 분명 원래는 '설렁탕은 뼈가 들어가 뽀얀 국물, 곰탕은 내장과 고기로 끓여 맑고 투명한 국물'이 구분의 기준이다. 또 곰탕은 태생이 양반집의 귀한 보양 음식이기 때문에 놋그릇에 담겨 나오는 경우가 많다. 

3. 어쨌든 설렁탕이라고 불리는 음식은 그 기원이 언제든, 20세기 이후에 서울의 시장 음식(서울 구경을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으로 틀이 잡혔기 때문에 전국으로 퍼진 뒤에도 어디서나 거의 비슷한 맛을 낸다. 서울을 벗어나 전국을 대상으로 할 경우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뼈 국물을 곰탕이라 부르는 지방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라는 말 자체가 서울을 기준으로 한 질문이기 때문에 '설렁탕은 뼈 국물, 곰탕은 고기 국물'이라는 구분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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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인터넷으로 기본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설렁탕과 곰탕을 구별하는 법'에 '소면이 들어 있으면 설렁탕, 소면 대신 당면이 들어 있으면 곰탕'이라는 말을 보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해 보니 이게 웃을 수가 없는 얘기더군요. 재료나 전통을 가지고 설렁탕과 곰탕을 정확하게 가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히려 국수의 유무만큼 선명한 구분의 방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유명한 설렁탕 맛집인 이남장의 경우, 설렁탕 국물(뼈국물)과 곰탕 국물(고기 국물)을 따로 따로 끓여 적정한 비율로 섞습니다. 반면 곰탕 맛집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명동 하동관은 본래 고기와 내장으로만 국물을 냈지만, 언젠가부터 사골도 재료에 포함시킵니다. 물론 그 양으로 따지면 사골은 결코 주 재료가 아니고, 국물이 뽀얗게 변하지 않을 정도로만 들어갑니다. 

그렇게 점점 음식들이 섞여 가고,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본래는 분명히 다른 음식이었다는 것.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비슷한 내용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이 책을 참고하시라고 권합니다. 

더욱 깊숙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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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가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바람에 SBS TV '김정은의 초콜릿' 출연이 무산됐다는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서태지의 특별 대우 요구 - 이를테면 사전 녹화 - 가 문제가 된 적이 있기는 했죠. 하지만 세상이 변해 요즘은 웬만한 가수는 웬만한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사전녹화를 합니다.

그밖에도 서태지는 까다로운 요구를 많이 하는 연예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편집권이 문제가 된 모양입니다.

그런데 편집권이란 과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불가침의 권한일까요? 원론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편집권이란 PD의 성역이며,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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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해당 PD가 'PD의 고유 권한인 편집권을 요구해서 거절했다'는 것은 현재의 관행을 볼 때 상식 밖의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방송가에선 오래 전부터 서태지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얼마든지 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나 '김정은의 초콜릿' 등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을 표방하는 TV 쇼에 나갈 때, 여건이 되는 가수들은 거의 모두 자신의 프로그램을 스스로 편집합니다. 그렇습니다. 절대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이승철이며 김장훈 등 많은 가수들이 직접 편집권을 행사해왔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가수들은 라이브 공연이라도 할라치면 대단히 세심하게 자신의 무대와 음향을 손질합니다. 몇번이고 조율을 하면서 스피커의 방향이나 각 악기 사이의 음량 균형을 맞춰 최고의 소리가 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불행히도, TV 라이브 프로그램에서 2,3곡을 부르기 위해 그만한 정성을 기울일 수는 없습니다.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한국적인 여건에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들 가수들은 대신 자신들의 출연분을 가져다 오디오와 비디오를 함께 편집합니다. 물론 이미 치러진 녹음에서 손질을 하는 정도일 뿐, 새로 녹음을 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이런 손질 과정을 거치는 것만으로도 음질은 놀랍게 좋아집니다. 또 녹화중의 커트나 카메라의 방향, 소도구나 인력(댄스팀이나 합창단, 심지어 오케스트라의 등장) 등도 얼마든지 PD와 가수, 혹은 제작자 사이에서 협의가 가능합니다. 물론 전체 프로그램의 편집권을 요구한다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부분적으로 PD가 권한을 양보한다 해도 결국 프로그램의 공과는 PD가 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방송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방송사가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구현해주지 못하는 좋은 품질의 방송을 위해 가수나 제작자가 노력을 보탠다고 생각하죠. 이런 걸 말릴 PD는 대한민국에 거의 없을 겁니다.

이 문제 때문에 흥분하셨던 분들이 있다면 이제 마음을 좀 가라앉히시기 바랍니다. 서태지는 '김정은의 초콜릿'에 출연할 수도 있고, 출연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서태지가 요구한 것은 일반적으로 현재 방송가에서 'PD의 권한 침해'로 간주되는 것들은 아닙니다. 만약 출연이 없던 일이 된다면 무슨 다른 이유 때문일 겁니다.

그냥 그렇다는 얘깁니다.^^


p.s. 저희 기자가 쓴 좀 긴 글을 링크합니다.

'서태지, 방송사에 까다로운 요구... 비난 받을 일인가?'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812/05/2008120516440804760201000002010400020104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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