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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꽃보다 남자'의 도입부를 보면 구준표는 참 찌질하기 그지없는 인물입니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집안 돈으로 학교에서 왕 노릇이나 하고, 말도 안되는 사소한 이유로 동급생을 자살 위기에 몰아넣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의 전체 구조를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저런 '이상한 놈'이 주인공으로 인기를 얻는다는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찌질한 남자'라는 점에서 구준표 말고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천추태후'의 경종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KBS 2TV '천추태후'를 볼 맛이 없어졌습니다. 잘 나가던 드라마에서 휙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천추태후'의 도입부에는 상당히 매력있는 배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어린 천추태후 역의 김소은('꽃보다 남자'의 가을이기도 하죠)과 그 남편인 경종 역의 최철호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세월이 흐르면서 경종과 어린 천추태후가 사라져 버렸더군요. 그에 비해 성인 역의 인물들은 좀 지나치게 평면적입니다.

아무튼 구준표나 경종 같은, 종래의 의미로는 '전혀 멋지지 않은' 남자들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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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남자'가 뜨는 이유

KBS 2TV 대하사극 '천추태후'가 인기다. 투입된 물량이며 공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인기의 진원지가 예상과는 전혀 달라 관계자들도 놀라고 있다. 타이틀 롤인 천추태후 역의 채시라가 1, 2회에만 출연하고 빠진 가운데서도 20%대의 시청률을 기록중인 건 누가 뭐래도 경종 역을 맡은 최철호의 힘이다.

24일 방송된 7회에서 경종이 죽자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제 무슨 재미로 보겠느냐"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 드라마 속 경종은 전혀 멋지지 않다. 정사는 돌보지 않는 술꾼에다 함부로 말을 내뱉고, 사리 분별이 없는 폭군의 모습이다.

안 좋은 면 투성이지만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던 '나쁜 남자'와도 전혀 다르다. '나쁜 남자'들이 용모와 능력은 뛰어나지만 차가운 성격 때문에 여자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는 인물형을 가리킨다면 최철호의 경종은 그저 '못난 남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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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런 못난 남자가 인기일까. 어찌 보면 최철호의 인기는 고개 숙인 남성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욕은 먹었지만 지난해 SBS TV '조강지처 클럽'의 인기를 이끈 안내상이나 현재 SBS TV '아내의 유혹' 인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변우민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통점은 '악당 축에도 못 드는 찌질함'이다. 악인은 악인이되 자기가 지은 잘못을 감당하지도 못할 정도로 심약하다. 가끔은 극중 여성들에게 너무 당해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안내상은 오현경의 복수로 인생 밑바닥을 맛보고, 변우민 역시 전처 장서희와 현재 아내 김서형의 협공으로 궁지에 몰렸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최철호 역시 당찬 어린 아내 김소은 앞에서 설설 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이 당하는 모습 역시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주고 있다.

어쨌든 다른 드라마라면 그냥 묻힐 수도 있었던 캐릭터들이 좋은 배우들을 만나 빛을 봤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최철호와 안내상, 변우민은 모두 한심한 인물들을 다소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희화화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로 승화시켰고, 가끔은 동정을 사기도 하는 내공을 발휘했다.

문득 이런 찌질남들의 인기는 결국 영웅이 사라진 시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힘든 현실에서 시대를 이끄는 멋진 남자들의 모습을 볼 길이 없으니 드라마 속에서도 영웅호걸이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현실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속히 시대를 타개할 영웅이 다시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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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구준표나 경종은 뒤에 가서 개과천선이라도 하지만 철저하게 응징당하는 '원수씨' 안내상이나 아마도 크게 응징을 당할 '교빈씨' 변우민은 또 뭐란 말입니까.

이런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전형적인 영웅 캐릭터 -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 인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은 도대체 대책이 안 나오는 무심한 대본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캐릭터나 배우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작가의 오만이 잘 나가던 드라마를 망쳤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에덴의 동쪽'은 실력 이상으로 운의 뒷받침을 받았죠. 마땅히 시청자들을 끌어들일만한 경쟁작이 없는 가운데 순항했던 것을 100% 모두 실력이라고 믿고, 방만하게 스토리를 풀어헤쳐 놓은 채 진도를 나가지 않는 사이 지칠대로 지친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렸습니다.

결국 현재 시청자들은 '더 이상 드라마에서도 영웅이 고생하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쪽으로 기운 것 같습니다.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시청자들은 현실의 고민을 드라마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듯 합니다. 아마 올해 내내 좀 더 가벼운 이야기,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의미로 사극의 강세도 계속되겠죠. 드라마 속에서 진정한 영웅 캐릭터가 우뚝 서는 것과, 현실을 타개할 진짜 영웅이 나타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빠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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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한국의 구준표는 일본의 츠카사에 비해 너무 빨리 착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쉽게 달라질 놈이 그동안 그 못된 짓을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죠.

그나자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꽃보다 남자'같은 비현실적인 드라마는 처음 본다"며 방송심의위원회에 강력 항의했다는 시청자에 대한 기사가 떴더군요. 이 분, '반지의 제왕'을 보고는 어디에 항의했을까요? 뉴질랜드 대사관?






혹시 이 글에 나오는 '꽃보다 남자'에 대한 언급에 불만 있는 분들(예: '준표님은 찌질하지 않아요. 님하 드라마나 좀 보셈' 등등)이 있을 것 같아서 그동안 썼던 '꽃남' 관련 글들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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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인기, 그 가운데서도 이민호와 김현중의 인기 다툼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오는 27일 열리는 백상예술대상 인기상 후보로 나란히 올라 있습니다.

현재도 온라인으로 진행중인 인기투표 득표 현황(http://isplus.joins.com/100sang/vote/vote.html)으로 들어가 보면 정말 박빙의 대결이라는 말이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 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득표율 면에서 0.1% 단위까지 차이가 없는 40.4% 동률. 줄곧 0.1% 이내의 승부입니다. 투표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0.2% 이상 벌어진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3위인 이준기가 10%도 안 나올 정도로 두 사람에게 투표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기존의 지명도나 단순한 꽃미남으로서의 외형에서는 김현중이 훨씬 앞서 있었지만 막상 드라마가 방송을 타자 무명시절 다져온 연기력과 결국 금잔디와 맺어질 것이라는 주인공 구준표 캐릭터의 위용, 그리고 남성적인 매력에선 이민호가 한발 앞서 나가는 모습입니다. 좋은 라이벌이죠. 이런 인기투표 등을 보면 두 사람이 경쟁자인 것처럼 보이고, 벌써 어느 한쪽의 광팬들은 다른 한쪽을 깎아내리기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습니다.

최소한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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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남'은 짧은 시간에 네 주인공의 매력, 워낙 유명한 원작의 지명도, 만화적인 상상력과 1회의 폭력 논란이 불러 일으킨 화제, 여기에 별 관심 없던 사람까지 몰입하게 했던 설 연휴의 집중 재방송까지 호재로 작용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모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짧은 시간에 확 떠 버렸다는 겁니다. 2일 방송이 9회. 총 24부작이니 이제 3분의 1 가량 달려온 셈이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지난 7, 8회에서 스토리는 구준표 - 금잔디의 아기자기한 사랑 만들기 이야기에서 구준표 - 윤지후 - 금잔디의 삼각관계로 급속히 전환했습니다. 그러다 다시 대결을 거쳐 금잔디는 다시 준표 쪽으로 기울죠. 윤지후는 언제 경쟁자로 나섰냐 싶게 후원자로 변신했습니다. 구준표는 김장과 오뎅 먹기 등 서민 생활 체험을 통해 시청자들의 호감도를 더욱 높였죠.

지금까지 이 드라마가 걸어 온 길을 생각하면, 앞으로 다뤄질 사건은 어머니의 방해 - 잔디의 TOJ(한국식이면 TOK쯤 되려나요?) 출전 - F4의 졸업 - 준표의 유학 등일 겁니다. 어쨌든 총 24부 중에서 전반 12부는 준표와 금잔디가 함께 학교를 다니면서 일어나는 사건, 그리고 후반 12부는 F4가 졸업한 뒤(또는 금잔디도 졸업한 뒤까지) 일어나는 상황이 다뤄질 겁니다. 후반 12부 중에는 어머니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한 준표-잔디 관계의 위기와 우연한 사고로 인한 준표의 기억상실 등이 중요한 사건이 되겠죠. 그리고 13회부터 등장하는 준표의 약혼녀도 꽤 중요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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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드라마의 투톱은 구준표-금잔디에서 윤지후-금잔디로 슬몃 이동하는게 순리라는 점입니다. 구준표-금잔디의 관계만으로 24편의 드라마를 끌고 가는 건 누가 봐도 무리입니다. 일본은 비슷한 기간을 1부 9편, 2부 11편의 20부로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2부(리턴즈)의 주인공은 하나자와 루이(윤지후)"라고들 얘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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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2부 얘기를 잠깐 하자면, 츠카사(구준표)는 미국 유학을 간 뒤 츠쿠시(금잔디)를 멀리합니다. 어머니의 음모에 의해 세계적인 대재벌의 후계자가 지녀야 할 몸가짐에 지나친 강박관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게 곧 알려집니다. 게다가 가문을 위해 정략결혼을 해야 한다는 압박도 주어집니다.

당연히 츠쿠시는 상처를 받고, 이런 츠쿠시를 위해 루이가 백마 탄 기사처럼 나타납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츠카사가 "어떻게 친구의 여자에게..."라며 항변하지만 루이는 "내가 말했지. 네가 츠쿠시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면 절대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거라고"라며 당당하게 맞섭니다.

(솔직히 말해 대체 츠쿠시가 왜 이런 남자를 두고 츠카사 같은 천둥벌거숭이에게 한눈을 파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일본판 '꽃보다 남자' 2부에서 루이의 활약은 눈부십니다. 물론 오구리 슌의 연기력이 빛을 발하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오구리 슌의 스타일은 영화 '크로우즈 제로' 쪽이 하나자와 루이 역보다는 훨씬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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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판 드라마가 이렇게 나갔다고 해서 한국판 '꽃보다 남자'도 이런 식으로 진행될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꽃보다 남자'라는 드라마가 결국 원작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사소한 에피소드를 빼고 중요한 사건들이 그대로 재현됐다는 점(9부의 더블 데이트 신도 그중 하나입니다)을 감안 한다면, 24부작이라는 긴 드라마를 끌고 가기 위해서는 구준표-금잔디의 사이가 쉽게 맺어져서는 안되고, 그 사이에서 누군가는 긴장을 유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할 사람은 바로 금잔디의 첫사랑인 윤지후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윤지후가 멋져 보이지 않으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빛을 잃는 겁니다. 윤지후가 멋진 놈으로 그려질수록, 그 멋진 놈을 뛰어 넘어 구준표와 금잔디가 맺어질 때 시청자들이 긴장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월드컵에 출전해 우승을 하려면 브라질을 꺾고 우승을 해야 하는 거죠. '슬램 덩크'는 북산이 산왕과 붙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겁니다. 만약 산왕이 엉뚱한 학교에게 졸전 끝에 진다면 북산이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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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김현중의 윤지후가 살지 못하면 그건 구준표에게도 치명적입니다. 윤지후가 강적일수록 구준표가 부각되기 때문이죠. 윤지후는 거의 마지막까지 - 시청자들에게는 "혹시 작가가 미쳐서 구준표와 금잔디 대신 윤지후와 금잔디를 맺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져야 합니다.

이민호는 이제 뜰만큼 다 떴는데 무슨소리냐...고 하실 분들도 있지만 24부작이 다 방송되려면 줄잡아 3개월. 꽤 긴 시간입니다. 지난 연말만 해도 '에덴의 동쪽'이 이렇게 고전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겁니다. 한 발 삐끗해서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그동안 벌어 놓은 시청률 까먹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꽃보다 남자'에 달려든 수많은 휘발성 팬들은 질리는 시간도 짧습니다. '...짜증나' 한마디면 상황이 급변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최소한 이 24부작이 끝날 때까지는 긴장감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어느 쪽 팬이건, 다른 한 쪽을 깎아내리는 것은 곧 자신이 응원하는 쪽에게도 해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편이 낫습니다. 오히려 모자라 보이면 격려하고 부추겨 줘야 한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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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이런 구상에 가장 부족한 부분은 김현중의 연기력일 겁니다. 드라마라고는 처음(시트콤은 드라마가 아닙니다)이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본인의 진짜 성격에 비해 윤지후의 대사는 "너무나 낮간지럽고 쑥스럽다"는 김현중의 설명을 볼 때에는 차라리 작가가 '우결'에 나오는 김현중의 캐릭터에 맞게 윤지후 역을 좀 다듬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튼 이건 뒤로 갈수록 나아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 드라마의 진짜 위험은 금잔디 캐릭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 비하면 김현중의 연기력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벌떡 일어선 이민호가 뿌린 화제에 대한 글



관련이 있다면 있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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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지나고 나자 '꽃보다 남자'의 위력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물론 취재 일선에서는 이미 처음 1,2주 사이에 '이건 대형사고다'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지만, 회사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이런 느낌은 늦게 전달됩니다.

특히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은 '꽃보다 남자'가 뭔지를 모르거나 어쩌다 눈에 띄어도 "뭐 저런 유치찬란하고 황당한 드라마가 있어"하기 마련이죠. 하지만 설 연휴는 온 가족이 모이는 시기입니다. 70대 할머니와 10대 손녀가 함께 앉아서 이민호와 김현중의 화려한 미모에 정신을 잃고 빠져드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다들 "아, 이 드라마에 뭔가 있구나"라는 걸 절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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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배운 사람들'에게 이 드라마는 '아내의 유혹' 못잖은 막장 드라마고, 교훈도 없고 메시지도 없고 생각도 없는 한심한 작품이지만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한글을 해독할 수 있는 여성 시청자들은 모두 '꽃남'의 노예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30일, 여러 매체에 의해 '이민호의 옛날 여자친구 사진'이 일제히 보도됐습니다. 요즘 같은 인기라면 대체 이민호와 한때라도 사귀었던 여자는 어떤 사람일까, 관심이 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이런 사진이 나온다고 해서 이민호가 손해를 볼 일은 전혀 없습니다. 혈기방장하고 매력만점인 20대 젊은이가 지금까지 여자친구 한번 사귄 일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경악할 일이죠. 만약 이민호가 어떤 인터뷰에서건 "지금까지 여자 손목도 안 잡아봤다"고 얘기한다면 그날로 바로 이민호의 성적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올 겁니다.

정작 곤란한 건 바로 그 옛날 여자친구겠죠. 이런 식으로 얼굴이 공개되면 불편할 일이 꽤 있을텐데 말입니다. 심지어 일부 매체는 얼굴도 가리지 않고 사진을 싣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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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일제히 보도된 사진 외에도 현재 인터넷에는 '이민호의 전 여자친구'라고 돌아다니는 사진이 2-3 종 정도 있습니다. 화질이 선명치 않아 같은 인물인지, 그냥 닮은 사람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아무튼 이런 사진들에 대해 이민호의 소속사 측 역시 너무도 평온한 반응입니다. "이민호가 고교시절까지 합하면 지금까지 한 2-3번 정도 여자를 사귄 걸로 알고 있다. 아마 그 중 한명인가보다"라는게 전부였습니다. 그럼 여자도 안 사귀어 봤겠느냐는, 지극히 당연한 입장이죠.

(흥미롭게도 그 상황에서 이런 사진을 갖고 이민호에게 협박(?)을 시도한 웃기는 기자 - 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지만 - 나부랭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료를 확보했다. 어떻게 하기를 바라느냐'는 식으로 접근을 하더라는군요. 어쩌다 이 바닥이 이렇게 망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민호 본인도 쿨하기 그지없는 반응을 보입니다. 저런 먼 과거의 일들 말고 현재의 일들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한때 일각에서 다비치 멤버 강민경과 사귀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이민호는 "앞으로 박보영, 문채원, 최은서까지 3번은 더 열애설이 날 것 같다"며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끼리 스스럼없이 놀러 다니다 보니 함께 찍은 사진도 많고 본 사람도 많을 거란 얘기죠. 이렇게 떳떳한데 뭐 더 보탤 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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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나왔던 강민경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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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학교 ET' 시사때 박보영과의 모습.

(울학교 ET 시절 이야기는 이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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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소속사 후배이자 친구인 최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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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가장 절친한 친구라면 일지매군을 빼놓을 수 없겠죠.


'이민호의 옛날 여자친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매우 평온합니다. "어쩌면 저렇게 미남 미녀들끼리 만났나"하는 찬탄과 부러움이 대세를 이루고 있죠. 몇해 전만 해도 일부 아이들 그룹의 경우, 소속사가 멤버들의 과거 사진까지도 '세탁'을 하고 입단속을 하던 것과는 천지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세상이 성숙해졌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이민호가 유독 '옛날 여자친구' 들로 화제가 된 건 아무래도 무명이었던 시기가 길었고, 현재 너무 갑작스러운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무명 시절은 어딜 가도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남들의 시선을 의식할 일도 없었겠죠.

그나자나 지금은 드라마 찍느라 정신이 없어 개인 행동은 할 시간이 없겠지만, 이제부터 F4 멤버들은 어딜 가나 세상의 눈길에 시달릴텐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스스로 달라진 위상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 충격도 만만찮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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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남자들은 대개 현재의 F4 중에서 외모로는 김현중이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아무래도 이민호 쪽으로 몰리는 듯 합니다. 한국판 '꽃남'의 특징은 김현중이 연기하는 윤지후(하나자와 루이) 캐릭터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 같은데, 윤지후는 원작이나 일본판 드라마에 비해 훨씬 적극적인 인물이더군요. 김현중이 '야심만만'에서 "친구의 애인이건 뭐건, 마음에 들면 일단 대시하고 본다"고 말했듯 극중의 윤지후도 금잔디에게 서슴없이 애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구상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김현중의 연기력도 그만큼 뒷받침이 되어야겠죠. 물론 연기가 태어나서 처음이란 점을 감안하면 현재 하고 있는 것도 대견하긴 합니다만, 회를 거듭하면서 좀 더 나아지는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의 단면에 대한 글



김현중과 이민호이 균형을 맞춰야 하는 이유에 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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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쇼! 비디오자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감히 말하자면, 이때가 바로 한국 코미디의 전성기였습니다.

지금도 '개그콘서트'나 '웃찾사'같은 프로그램들이 있지 않느냐구요? 몇해 전 '개그콘서트' 초창기의 인기는 정말 대단하지 않았냐구요? 그건 그 시대를 모르는 사람들의 얘깁니다. 당시 '쇼! 비디오자키'의 인기는 지금의 '개그콘서트'와 '패밀리가 떴다'를 합쳐 놓은 수준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쇼! 비디오자키'에서 유행어가 하나 뜨면 그게 전 사회의 유행어였죠. 매주 화요일에 방송되던 '쇼! 비디오자키'를 보지 않으면 1주일 동안 사람들의 대화에 끼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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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김형곤 최양락 이봉원 장두석 심형래는 정말 최고의 스타들이었습니다. 오프닝 코너로 는 임하룡과 김정식의 '도시의 천사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쉰옥수수' 임하룡과 '밥풀떼기' 김정식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뒤에 서 있던 양종철 서원섭 조문식 등의 모습도 말입니다.

이 프로그램 전성기에는 "오! 신이시여!"를 외치던 최양락이 네로, 임미숙이 황후 날라리아 역으로 나오는 '네로 25시'가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조연들도 엄청난 인기였죠. 못된 메기테리우스 이상운, 평소에는 강직하기 그지없다가도 술만 먹으면 호스테스 버전으로 급변신하던 페트로니우스 정명재, 항상 강직하게 옳은 말만 하다가 네로에게 학대를 당하던 당돌리우스 엄용수, 이상한 캐릭터의 쌍벽이었던 얼떨리우스 하상훈과 헷갈리우스 김용, 그리고 발바리우스 이경래 등이 바로 '네로25시의 주역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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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네로 25시'에는 세계 코미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한한 캐릭터가 나옵니다. 바로 '침묵리우스' 손경수죠.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합니다. 가끔 네로가 부르기는 하죠. '침묵리우스'라고.

최양락은 얼마 전 그런 캐릭터를 자신이 직접 만든 거라고 언급하면서 "심지어 대사 한마디 없던 침묵리우스까지도 CF를 두 개나 할 수 있게 해 줬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쇼! 비디오 자키'의 힘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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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흘러가던 '쇼! 비디오 자키'의 마무리는 김한국-김미화의 '쓰리랑 부부'였습니다. 물론 여기에 국악인 '북치는 소녀' 신영희씨와 강아지 행국이, 그리고 '지씨 조이너' 지영옥이 가세해야 완벽한 팀이 만들어지죠. 최근 예능 활동을 재개한 김한국이 "그때 사실 김미화와 그렇게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행국이는 단 한번도 같은 개가 두번 출연한 적이 없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놔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펭귄 심형래와 곰 박승대의 '동물의 왕국', 이봉원-장두석의 '시커먼스', 이경래-이경옥의 '달빛 소나타' 등이 '쇼! 비디오자키'를 빛낸 코너들입니다.

이 '쇼! 비디오자키'와 함께 주말에 방송되던 '유머 1번지'는 김형곤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들이 돋보였습니다. '회장님 우리 회장님'과 '탱자 가라사대'가 있었고, 심형래 임하룡의 '변방의 북소리', 그리고 김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작그만'이 역시 최고의 인기 코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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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세월 사이에 당시의 주역들은 대부분 현역에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김형곤과 양종철은 고인이 됐고 김정식은 종교에 투신했죠. 임하룡은 영화배우가 됐고 심형래는 영화감독이 됐습니다. 이 시대의 주역 중 가장 오래 코미디를 지킨 김미화는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변신했죠.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장두석이 오랜 명상을 끊고 활동 재개를 선언했고, 김한국 김학래 최양락 이봉원 등이 이제 예능계로 서서히 돌아오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이 현재를 지배하는 유재석-강호동 중심 체제에서 자신들의 설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일단 40대 후반에서 50대에 접어드는 이들이 미리 잘 짜여진 콩트보다는 순간적인 순발력을 중시하는 최근의 예능 동향에 적응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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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워낙 얘깃거리가 많이 축적되어 있는 노장들인 만큼 한 6개월 정도는 왕년의 추억담만으로도 충분히 자기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들을 잘 모르는 신세대 연예인들과 이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의 상황이죠. 오래된 얘기거리를 털어내고, 이제 이들이 신진급 연예인들과 마주하는 상황이 시청자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게 됐을 때, 과연 이들은 무엇을 무기로 계속 자신의 가치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요?

일단 새로운 분위기에의 적응력 면에서는 최양락의 실력을 믿어도 충분할 듯 합니다. 최양락은 최근까지도 예능 프로그램의 물길을 자기 쪽으로 돌린 적이 있었죠. 바로 몇년 전 불같이 일어났던 '알까기 열풍'입니다. 어떤 사전 맥락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원로기사 윤기현 9단의 말투를 흉내낸 느릿느릿한 바둑 해설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습니다. 이런 기량을 보여준 최양락이기 때문에 '감'을 찾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최양락에게 '복귀'라는 말을 쓰는 것은 모욕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도 라디오에서는 발군의 진행 솜씨를 뽐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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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것은 협력체제입니다. 현재의 예능계는 독불장군이 살아남기 힘든 형태입니다. 유라인과 강라인은 물론이고 대세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윤종신-신정환-김구라-김국진의 라디오 스타 팀, 또는 송은이-신봉선의 패키지를 보듯 팀의 형태로 움직이는 것이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말하자면 '라인의 구축'이 급선무입니다.

그럼 과연 최양락의 곁에는 누가 있게 될까요? 그건 그때 가서 알게 될 일입니다. 다만 그 시점에서도 '왕년에 잘 나갔던 노장들'만으로 움직인다면 그건 상당한 약점이 될 걸로 보입니다. 지금은 강호동이 살짝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젊은 쪽에서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 유리해 보입니다.

노장 노장 하지만 최양락은 1962년생. 이경규보다 2년 연하고 여자 연예인과 비교하면 최화정과 황신혜의 사이에 있습니다. 아직 충분히 정상에 설 수 있는 나이입니다. 모처럼 노장들의 성공적인 행진이 오래 가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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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 흥행의 최대 강적은 일단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영화 속에서는 슈타펜버그라는 미국식 발음으로 나옵니다. 앞으론 슈타펜버그로 통일합니다)의 음모가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슈타펜버그와 그밖의 음모가들이 꾸민 1944년 7월20일의 히틀러 암살과 쿠데타 시도가 실패했다는 건 모르더라도, 히틀러가 베를린 함락 직전인 1945년 4월30일 벙커에서 정부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했다는 건 거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죠. 정확한 날짜까진 모르더라도 최소한 '히틀러는 암살당한게 아니라 자살했다'는 것만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미 이 영화의 결말은 노출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할 가치가 있을까요? 물론 이런 경우는 한둘이 아닙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패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고 트로이에서 아킬레스와 파리스가 모두 죽는다는 것 역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지만(최근들어 줄고 있는 것 같기도 하죠^^), 이런 영화들은 모두 존재의 의미가 있습니다. 심지어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극장을 찾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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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작전명 발키리'의 미덕은 무엇일까요.

먼저 줄거리입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왼쪽 눈과 오른손, 왼손의 손가락 2개를 잃고 베를린으로 돌아온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은 승전의 가망은 없다는 현실 인식 위에서 히틀러를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를 지켜보던 폰 트레스코프 장군(케니스 브라나)과 노장 벡(테렌스 스탬프) 등 반 히틀러 음모가들은 대령을 실제 작전 책임자로 영입하죠.

이들은 베를린 지역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때 예비군이 베를린 지역을 계엄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발키리(발퀴레) 계획을 이용, 히틀러를 암살한 뒤 베를린을 접수하고 임시 정부를 수립하는 계획을 꾸밉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계획도 현장에서의 변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틀어지기 마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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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암살하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슈타펜버그 이전에도 여럿 있었습니다. 히틀러도 암살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수시로 계획을 변경했고 자신의 동선을 쉽게 눈치채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위협을 뚫고 히틀러 암살 직전까지 갔던 1944년 7월20일의 음모는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만약 이들의 거사가 성공했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었겠죠. 독일이 아직 파리를 점령하고 있던 시점에서 나치 정권이 붕괴되고, 새로운 정부가 휴전 협상에 들어갔다면 최소한 동서 분단은 막을 수 있었을테고, 냉전시대의 양상도 상당히 크게 변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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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 양쪽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던 미국의 입장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유럽에서의 전쟁을 마감하고 태평양 쪽으로 군사력을 집중시키고 싶었을 겁니다. 게다가 전후에 세워진 독일 정권을 공산주의의 서진을 막는 보루로 이용한다면 미국으로선 손해 볼 것이 없는 휴전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히틀러를 보호했고 수많은 위험을 넘어 살아남은 히틀러는 결국 조국을 미국과 러시아군의 발길 아래 짓밟히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9개월 동안 독일 전토는 연합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고 나라는 44년 동안 분단되는 고통을 맛보게 됐죠. 지금도 부강한 독일을 보면 그게 그거랄 수도 있겠지만, 1960년대, 70년대의 시각에서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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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이 반드시 흥미로운 사건이란 법은 없죠. 더구나 이런 음모와 모의는 대개 담배 연기 속에서 남자들끼리의 은밀한 대화로 이뤄집니다. 스크린을 채울만한 볼거리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엑스맨' 시리즈를 만든 흥행의 귀재 브라이언 싱어가 이걸 모를 리는 없죠. 당초 싱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앞부분의 아프리카 전투 신도 없는, 저예산의 암울한 영화였지만 톰 크루즈가 스타펜버그 역에 관심을 느끼면서 규모가 갑자기 커져 버린 영홥니다. 그런데도 흥행에서도 제법 성공을 거뒀죠.

싱어는 다 아는 결말 대신, 음모가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좌절했는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의 영상이 보여준 것은 쿠데타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지고 분쇄되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이기적으로 움직이는가 하는 '쿠데타를 통해 본 인간의 단면'입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장군들과 장교들은 총 대신 전화기를 붙잡고 전투를 벌이지만, 이 전투는 직접 몸을 날리는 싸움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박진감을 제공합니다. (이보다 더 심한 영화도 있습니다. 시드니 루멧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모든 영화가 방 하나 안에 앉은 12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되고 끝납니다. 하지만 결코 정적인 영화가 아니죠.) 그런 면에서 싱어는 자신의 재능을 다시 과시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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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작전명 발키리'의 운명은 관객이 이 사건에 얼마나 관심이 있느냐에 매달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독일 관객들은 미국 관객들에 비해 이 영화에 훨씬 더 관심을 보일 겁니다. 마찬가지로 '제5공화국' 드라마를 한국 아닌 다른 나라 국민들이 재미있어 할 여지는 별로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 영화가 예상을 뒤엎고 흥행에서도 꽤 성공한 것은 당연히 톰 크루즈의 힘일 겁니다. 슈타펜버그의 유족들은 "키가 너무 작다"며 불평했다지만 타고난 닮은 얼굴에 힘입어 크루즈는 배우로서 할만큼 했습니다. 아마도 목표로 했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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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의 매력은 아무래도 쿠데타라는 작업의 현실적인 묘사죠.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30대 이상의 한국 남성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떠오를 광경은 바로 12.12일 겁니다. 어느 나라나 쿠데타라는 것이 일어나는 과정은 비슷합니다.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음모를 탐지해 방지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어느 쪽에 가담하는 것이 좋을까 저울질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죠.

음모를 눈치챈 사람의 수에 비해 적극적으로 이를 막으려는 사람이 항상 부족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누구라도 음모를 꾸미는 쪽이나 막으려는 쪽에 적극 가담하기 보다는, 음모의 결과에 관계없이 살아남는 쪽을 우선 선택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이 냉엄한 현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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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인들에게는 이런 정경이 매우 친숙합니다. 이미 해방 이후 두 번의 쿠데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해 가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두 차례 모두 쿠데타를 주도한 장군들은 대단히 관대했습니다. 쿠데타에 맞섰던 장군들 중 끝까지 항거하다가 죽음을 당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인 걸 보면 말입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어쩌면 그 '항거'의 진실성이 의심스러워지기도 합니다. 5.16 때에는 당시 육군 참모총장까지도 '긴가민가'한 태도로 일관했던 걸 보면 말입니다.

'작전명 발키리'의 홍보 담당자들이 왜 한국인에게 친숙한 5.16이나 12.12를 적극적으로 홍보에 이용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합니다. 이 영화를 초기에 본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가 '영웅' 톰 크루즈가 나타나 나치의 잔당들을 쓸어 버리는 활극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런 관객들은 영화의 수준에 대대적인 실망을 했을테고 최악의 입소문이 돌았겠죠.

톰 크루즈를 한국에까지 데려온 것으로 할 수 있는 홍보는 다 했다고 판단했다면 참 안이한 생각입니다. 5.16이나 12.12를 마케팅에 끌어들이지 않은 것은 영화에서는 쿠데타 세력이 '좋은 편'이고 한국의 현실에서는 '나쁜 편'이었기 때문일까요?

마지막으로 한마디: 이상의 논의가 지루한 분이라면, '작전명 발키리'는 전혀 볼만한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얘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꼭 볼만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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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7월20일의 음모로 인한 가장 유명한 피해자는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원수(위 사진)일 겁니다. 롬멜이 이 음모와 직접 관련이 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최소한 음모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롬멜의 유족들은 롬멜이 "이렇게 히틀러를 해치우면 전쟁을 끝내더라도 '내부로부터의 배신 때문에 이길수 있는(!) 전쟁에서 패했다'고 주장하는 히틀러 광신도들로부터 역습을 당해 반역자로 몰릴 것"이라는 이유로 가담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답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독일은 1차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내부의 적 때문에 패할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로 우매한 군중의 지지를 얻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히틀러는 1944년 10월14일 롬멜에게 자살할 것을 요구합니다. 공개 재판으로 가면 앞날을 알 수 없지만 자살하면 전쟁 영웅의 지위와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밀약이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작전명 발키리'에는 '혹시 롬멜일 지도 모르는' 장군이 아프리카 신에 등장했다가 죽을 뿐, 롬멜이라는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이렇게 유명한 장군이 등장하면 주인공 슈타펜버그에게 몰려야 할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요?

p.s.2. 잘 알려진대로 발키리(Valkyrie)는 북구 신화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혼을 천국 발할라로 인도하는 여신들입니다. 전통적으로 바그너 악극의 제목인 '발퀴레'라는 표기로 알려졌죠. 이를 굳이 '발키리'라고 쓴 건, 스타크래프트 유닛 이름을 사용해서 10-20대 관객들을 끌어들이려는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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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올해 아카데미상 후보들을 발표됐습니다. 올해는 좀 특별한 해였죠. 작품상, 남녀 주연상 후보보다 남우조연상 후보가 더 관심을 끌었습니다. 브래드 피트가 남우주연상 후보, 안젤리나 졸리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간 것도 흥미로웠지만 히스 레저라는 이름이 올라가기를 기대한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죠.

'다크 나이트'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히스 레저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주연상 후보래도 뭐 크게 탈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 조연상 후보로 올라가는 쪽이 수상 가능성이 훨씬 높은 편이죠.

이미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히스 레저가 과연 오스카에서도 사상 두번째로 사후 수상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이지만 오스카라는 상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설픈 예측은 금물입니다. 일단 사후 수상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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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후수상

1993년 3월 8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상인 세자르상 시상식장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 수상작으로 시릴 콜라르가 감독·주연한 영화 '사베지 나이트(Les Nuits Fauves)'가 호명됐다. 하지만 콜라르는 금빛 세자르상 트로피에 키스하지 못했다. 에이즈에 걸려 있던 콜라르는 시상식 3일 전 병원에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12일(한국시간) 열린 2009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도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으로 명성을 떨친 히스 레저가 극영화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수상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동성애자 연기로 2006년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나이답잖게 연기파 배우의 명성을 쌓아온 레저는 영화가 개봉되기 6개월 전인 지난해 1월, 29세의 나이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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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상의 결과에 따라 레저의 팬들은 '32년 만의 오스카 사후 수상'이라는 기대에 한껏 차 있다. 아카데미상의 80년 역사에서 사후에 연기상을 받은 인물은 1977년 '네트워크'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피터 핀치 단 한 명뿐이다.

영원한 청춘의 우상 제임스 딘은 55년 사망한 뒤 이듬해엔 '에덴의 동쪽'으로, 57년엔 '자이언트'로 두 번이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수상에는 실패했다. 스펜서 트레이시(68년 '초대받지 않은 손님'), 랄프 리처드슨(85년 '그레이스토크'), 마시모 트로이지(96년 '일 포스티노') 등 일세를 풍미한 명배우들도 후보에 그쳤다. 그만치 생과 사의 벽은 높았다.

어떤 분야에서든 사후 수상이란 매우 감동적인 이벤트다. 불의의 사고사든, 예고된 죽음이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분야에서 열정을 불사른 위대한 장인에게 살아 남은 사람들이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헌사이기도 하다. 물론 분야에 따라 경우가 다를 수 있다. 무공훈장이라면 생존한 수상자보다 사망한 수상자가 더 많은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반면 노벨상은 이미 사망한 인물을 수상자로 결정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감정의 개입 없이 오로지 업적으로만 엄격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다.

오스카상도 지금까지는 '망자에게는 공로상, 산 배우에게는 연기상'이란 원칙에 비교적 충실해 왔다. 역대 최고의 악역 연기라는 평가를 얻었던 히스 레저는 원칙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다음 달 23일의 제8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결과가 기대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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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베지 나이트'라는 해괴한 제목으로 국내에 공개됐던 이 영화는 에이즈 감염자인 남자와, 그 남자와 동침한 뒤에야 그가 에이즈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 여자의 사랑과 좌절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영화의 구상에 들어간 시릴 콜라르는 결국 죽기 전에 영화를 완성시켰습니다.

물론 문화 차이도 있겠지만, '사베지 나이트'를 보고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주인공들의 자기연민과 이기적인 행동에 도저히 동정심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죠. 기억나는 건 석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콜라르의 모습 정도지만 세자르상은 이 영화에 작품상을 주고 콜라르를 기렸습니다. 아마도 프랑스 사람들이 앵글로색슨족 보다는 좀 더 인정에 약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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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핀치의 '네트워크'는 미디어의 본질을 파헤친 문제작이었고, 어느날 갑자기 현대의 예언자가 되어 버린 핀치의 명연기는 상이 아깝지 않은 호연입니다. 저보다 몇년 윗 분들은 이 영화의 페이 더너웨이를 '지적인 미녀'의 대명사로 기억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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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수상이 이번만큼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마 제임스 딘의 사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주연한 영화라고는 단 3편. 그중 2편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은(나머지 한 편은 '이유없는 반항'입니다) 이 배우의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카데미는 이 배우에게 상을 주기를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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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에 올랐던 나머지 배우들도 모두 상을 탈만 했던 배우들이었죠. 남우주연상으로만 9차례나 오스카 후보에 올라 이미 2차례 수상한 경력을 가진 스펜서 트레이시는 마지막 후보작이었던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세번째 수상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당시의 인종 문제를 엿볼 수 있는 사회성있는 작품이었죠.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오랜 연인이었죠) 부부의 중산층 백인 가정에 어느날 딸이 남자친구라며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를 데려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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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리처드슨의 '그레이스토크'는 타잔 이야기에서 신화적인 요소를 걷어 내고 '과연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 실종돼 원숭이의 손에서 자란 청년이 런던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지켜본 작품입니다. 크리스토퍼 람베르가 이 영화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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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는 '시네마천국' '지중해' 등과 함께 이 시기의 대중적인 유럽영화를 대표하던 작품입니다. 위대한 시인 네루다와 집배원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죠. 집배원 역을 맡았던 트로이지는 이 영화로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도 동시에 올랐으나 결국 수상엔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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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올해 히스 레저와 경쟁할 후보들은 '밀크'의 조쉬 브롤린, '트로픽 선더'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다우트'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그리고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마이클 섀논입니다. 본 작품은 아직 '다크 나이트'와 '트로픽 선더' 뿐인데 다우니의 후보 지명은 좀 많이 의외군요.^

과연 이들과의 경쟁에서 레저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시상식은 다음달 23일(한국시간), 전체 수상 후보는 http://www.imdb.com/features/rto/2009/oscars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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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의 영화 '적벽대전 2'가 실망스럽다는 글을 올렸더니 예상대로 불쾌하다는 반응이 제법 있더군요. 물론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도 꽤 있을 겁니다. 1편은 국내에서 150만 정도의 관객을 동원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뭐 영화 한편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거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대부'보다 '트와일라잇'이 훨씬 더 감동적인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라고 해서 뭐든 민주주의가 통하지는 않습니다. CG를 많이 쓴게 공통점이라고 해서 '반지의 제왕'과 '디 워'가 비슷하게 평가받는다면 그 또한 서운해 할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문득 '적벽대전'과 '트로이'가 겹쳐지면서 영화가 원작을 제대로 살렸네, 원작을 망쳤네 하는 논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원작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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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적벽대전

미모를 재는 단위가 있을까. 참 할 일도 없었다 싶지만 어느 시대인가 서양 지식인들은 헬렌(Helen)이란 단위를 만들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이 트로이의 파리스와 함께 사라지자 그리스 전역에서 1000척의 대함대가 동원되어 구출에 나섰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만약 한 미녀가 1척의 배를 동원했다면 1밀리헬렌급의 미모로 인정된다. 즉, 1헬렌=1000밀리헬렌이다.

미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구상은 동양인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주유를 흥분시키기 위해 조조가 강동의 유명한 미녀인 교씨 자매를 얻으려 동오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속인다. 교씨 자매의 언니인 대교는 동오의 군주 손권의 형수요, 동생인 소교는 주유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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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이 구상이 제갈량의 계략이었지만 오우삼(吳宇森) 감독은 아예 이 이야기를 토대로 영화 '적벽대전' 1, 2편을 만들었다. '영웅본색'으로 유명한 오감독은 방대한 적벽대전 이야기를 2편의 영화로 나눠 1편은 지난해 여름, 그리고 2편은 지난 22일 공개했다.

아킬레스와 헥토르가 헬렌을 두고 격돌하듯 영화 '적벽대전'에서는 소교를 두고 조조와 주유가 대립한다. 소설에서는 대사 한마디 없는 소교가 영화에선 양측의 진영을 오가며 전쟁의 승부를 좌우하고, 영웅들의 피와 땀은 멜로드라마 속으로 슬쩍 가려진다.

애당초 삼국지라는 원작에 무지할 전 세계 관객들을 대상으로 삼았다니 오히려 서구인들에게는 이런 설정이 이해가 더 빠를 법도 하다. 하지만 대다수가 10대 이후 삼국지의 문화적 영향 속에서 성장하는 동아시아 남성 관객들에게는 원작의 향취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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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비판은 유명한 원작을 둔 영화라면 반드시 거치는 원죄에 해당한다. 1956년 오드리 헵번 주연의 '전쟁과 평화'가 개봉됐을 때에도 미국 평론가들은 일제히 “제작진을 통틀어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헨리 폰다뿐인 것 같다”며 비난했다. 사실 이런 논란은 독자들의 관심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책과 영화 양쪽에 모두 고무적이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언젠가 원작의 훼손과 관련된 논란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이다. 2004년 트로이 전쟁을 다룬 영화 '트로이'가 개봉됐을 때, 아킬레스의 죽음이 거론된 영화평을 두고 네티즌들로부터 “왜 결말을 공개하느냐”는 항의가 줄을 이은 적이 있었다. 고전이 사라진 시대는 이미 시작된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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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헬렌과 밀리헬렌 이야기는 2년 전쯤 다른 글을 쓸 때 써먹은 적이 있어서 약간 찔리지만, '분수대'에는 어차피 처음 나오는 이야기일 것 같아 다시 울궈 먹었습니다. 아무튼 저런 것까지 단위를 만들어 재고 싶어 했다는 데서 서구 합리주의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합니다. 적벽대전에 동원된 조조의 배가 몇 척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오우삼의 해석대로라면 소교는 한 0.3 헬렌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고 욕하는 바보는 없습니다. 어떤 원작도 화면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재현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좋은 재현'과 '나쁜 재현'이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재현일까요. 당연히 이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각자가 생각하는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린 것이 좋은 재현일 겁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짜장면에는 짜장과 돼지고기, 양파와 국수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무리 짜장면을 창조적으로 재해석 한다 해도, 어쨌든 짜장과 국수는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짜장과 밥을 버무려 놓고 이것이 새로운 짜장면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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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식의 주장은 본래 객관화되기 힘든 것인 터라, 유명한 원작을 갖고 만든 드라마나 영화는 어쨌든 원작을 훼손했다(즉 망쳤다)는 주장에 거의 항상 맞닥뜨리게 됩니다. '반지의 제왕' 처럼 호평받는 각색이라도 "왜 봄바딜이 안 나와!" 수준의 교조적인 애독자도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이런 논란이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도 이런 논란이 있다는 것은 원작을 읽는 사람들이 아직 꽤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급속도로 이런 추세가 무너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대체 원작이라는 걸 왜 읽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늘고 있죠.

윗글에서는 영화 '트로이' 때의 코믹한 사건을 예로 들었지만 디즈니 시대 이후에 성장한 세대 가운데에는 '인어공주'가 본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영화 '발퀴레'에서 톰 크루즈가 실패한다는 것도 스포일러요(네. 히틀러는 암살당한게 아니라 자살했다는 걸 모르셨군요),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진다는 것도 스포일러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절대 다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들을 생각하면 참 암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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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얘기지만 소교를 이용한 적벽대전의 전개 자체는 나쁜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칫 퍽퍽해 질 수 있는 적벽대전 이야기에 양념으로는 매우 좋은 선택이죠. 특히 소교 역할을 임지령 같은 미녀가 맡는 한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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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생. 생각보다는 꽤 나이가 있는 편입니다. 물론 잘 늙지 않는 중국 미녀들의 전통을 이어 영화에서는 아직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왕년의 헬렌(헬레네)들과 비교해볼까요.

사상 최악의 헬레네로 거론됐던 다이안 크루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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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판 '헬렌 오브 트로이'의 시에나 길로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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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헬렌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55년작 영화 '헬렌 오브 트로이'의 로사나 포데스타(Rossana Podesta)입니다. '율리시즈' 등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영화에 자주 얼굴이 나왔던 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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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1980년대, 난데없이 '원 플러스 식스'라는 희한한 이탈리아제 섹스 코미디로 나이든 모습을 보여 기억하는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던 배우죠.

임지령도 부디 '적벽대전'을 통해 월드 스타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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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런 대작 사극을 볼때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전쟁에 대한 개념이 있는 전쟁신'입니다. 이 부분에서 '적벽대전 2'는 초실망작입니다. 언제쯤 제대로 된 전쟁신을 다시 보게 될까요. 이 이야기는 따로 하겠습니다.





'적벽대전2'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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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의 '적벽대전 2: 최후의 결전'이 설 연휴를 맞아 개봉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개봉한 1편은 형주를 차지한 조조가 마침내 장강을 건너 동오까지 평정하려는 각오를 품고, 오의 손권은 유비와 제갈양의 협력을 얻어 조조와 맞서 싸우기로 하는 데에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2편. 동시에 촬영된 영화긴 하지만 2편을 보고 나니 1편에 쏟아진 비판을 상당히 의식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일관성이 없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두 편을 합치면 5시간 가까이 되는 대작이니 그 긴 작품을 통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만약 두 편을 한번에 연결해 보시는 분이 있다면 '이거 왜 이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더군요.

1편과 2편을 모두 본 뒤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이렇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를 어떤 판본이든, 3번 이상 읽은 분이 만약 이 영화를 보신다면 모든 기대는 집에 두고 가시기 바랍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꽤 일치하지만, 이건 여러분이 알고 계신 삼국지와 적벽대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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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적벽대전 2'는 장강 북쪽 조조(장풍의)의 진영에 침투한 손상향(조미)의 간첩 활약상에서 시작합니다. 조조는 전염병 작전을 통해 상대 연합군의 와해를 노리고 마침내 견디다 못한 유비는 전군을 거느리고 후퇴해 동맹이 깨져 버립니다. 하지만 제갈양(금성무)은 남아 주유(양조위)를 돕기로 하죠.

제갈양과 주유는 각기 지모를 발휘해 조조의 화살 10만개를 훔쳐오고, 또 조조의 수군 도독인 채모와 장윤을 제거해 싸울 준비를 갖춥니다. 하지만 여전한 병력 열세. 중과부적을 극복하려면 화공뿐이지만 때는 겨울. 동남풍이 없어 화공이 곤란해 질 때 소교(임지령)는 조조의 공격을 막기 위해 강북으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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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소설 삼국지연의를 알고 계신 분들. 이 스토리를 보고 나면 뭔가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뿜어 나오지 않습니까? 요즘 '꽃보다 남자'를 보고 발가락이 오그라든다는 분들이 꽤 있는데 오우삼이 망가뜨려 놓은 적벽대전 스토리를 보면 손발이 다 꼬이는 듯 합니다.

각색자의 권리도 다 좋습니다. 뭐 소교를 이용해 적벽대전을 트로이 전쟁처럼 만들어 버린 것도 그럴 수 있다 칩시다. 하지만 어느 정도라야죠.

1편에서 어이없이 유비와 손권이 합동사령부를 차려 놓고 조자룡과 감녕을 절친으로 만들더니 스스로 만든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갑자기 유비를 비겁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데 오우삼이 만든 스토리대로라면 유비는 갈 곳이 없습니다. 유비가 전염병이 싫어 후퇴한다면 대체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동오의 후방인 더 동쪽? 손권이 함께 싸우기 싫다는 동맹군을 자기 진영의 후방으로 가도록 허용한단 말입니까? 애당초 원작대로 유비의 위치를 조조의 측면 후방, 즉 유사시에 조조를 협공할 수 있는 지역으로 지정해 뒀다면 이런 바보같은 진행은 피할 수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누구나 알고 있듯 적벽대전의 시점은 한겨울입니다. 북서풍이 불고 있는 철이죠. 영화 속에서도 동지떡을 나눠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동지때는 전염병이 돌아 수만 장병이 환자가 될 수 있는 시절이 아닙니다. 게다가 등장인물의 의상은 대부분 겨울옷도 아닙니다. 그럼 대체 왜 북서풍이 불고 있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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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오우삼이 뭘 보여주고자 하는지는 3세 이상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아주 유치한 수준의 반전의식이죠. 손상향은 조조군에 침투해 있는 사이 아무 생각 없는 조조군 병사와 친구가 됩니다. 이 병사에게 전쟁과 군대란 굶주리는 고향 집에서 입을 덜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누가 이기건 지건 그건 아무 상관 없는 일이죠.

이런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서 너무나 저열하고 전형적일 뿐만 아니라, 수십만 군사의 몰살을 그려내는 오우삼의 얄팍한 자기합리화라는 것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즉 '내가 이런 대살육을 그려내면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하려고는 하지만,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건 아니야'라는 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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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2'의 인물과 줄거리는 1편에 이어 최악입니다. 행동에 아무런 개연성을 부여받지 못한 인물들은 한 장면 한 장면에서 그저 멋지게 보여 살아남기 위해 헛웃음 나오는 오버액션으로 일관합니다. 하지만 장풍의의 카리스마로도, 양조위의 우수 어린 눈빛으로도 이런 한심한 캐릭터들을 살려내지는 못합니다.

그나마 평가할만한 부분은 전투신입니다. 물론 모든 전투신은 아닙니다. 그 중 딱 한장면, 화공이 시작되어 조조의 함대를 불사르는 장면이 유일하게 박진감을 넘치게 하지만 이 장면 역시 전체를 보여주는 부감 신이 거의 나오지 않아 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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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전투신들은 지금까지 본 오만 전쟁영화들의 허술한 짜깁기입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트로이'가 시시각가으로 화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역시 원작을 보신 분들이라면 대체 왜 적벽대전에서 공성전이 펼쳐져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아무 전쟁이나 닥치는대로 갖다 붙였다는 것이 너무 선명합니다. 이 시대의 중국군이 로마 군단의 대표적인 전술인 테스튜도(Testudo)를 사용하는 걸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테스튜도는 라틴어로 거북이라는 뜻이며 로마군이 사용하던 큰 직사각형 방패를 사용해 하나의 방진을 탱크처럼 만드는 전술입니다.

바로 아래 사진 같은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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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 정도도 그 사이 사이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만화적인 장면들에 비하면 양반입니다.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조조의 인질극 신은 정말 목불인견입니다.

삼국지 팬으로서 한마디 하자면, 오우삼은 적벽대전에서 본격적인 화공전 못잖게 중요한 순간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바로 동남풍이 불기 시작하는 시점이죠. 소설에서 제갈양은 조조를 물리치기 위해 도술의 힘으로 동남풍을 불게 하겠다며 멀리 강가에 제단을 쌓고 기도를 올립니다.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던 주유와 동오 대장들. 약속된 시간이 되어도 동남풍이 불 기색이 보이지 않자 욕설과 한탄이 나오려는 상황에서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뀝니다. 경악의 외침 속에서 주유의 마음 속에서는 한가지 결단이 내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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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도 껄끄러운 라이벌로 여겨지던 제갈양이 이제 한 순간도 더 살려둘 수 없는 무서운 적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는 것이죠. 원하던 바람을 얻은 이상 유비의 협조 없이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확신이 생긴데다 이제부터 제갈양이 살아 있는 한, 자신은 비와 바람까지도 지배하는 적을 상대로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빠른 판단이 결단을 촉구한 것입니다. 다들 바뀐 바람의 방향을 기뻐하는 사이 주유는 수하 정예병을 보내 제갈양의 목을 베어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오우삼은 어처구니없는 초등학생용 우정놀이 때문에 이 비장미 넘치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날려 버립니다. 아무튼 모든 걸 다 떠나서 한겨울(전염병 도는 한겨울!) 쌩쌩 불던 북서풍이 승리의 동남풍으로 바뀌는 순간, 이 영화에서는 아무런 박력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바뀐 바람의 방향'조차도 관객의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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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오우삼은 "관객은 내가 잘 안다. 내가 아는 관객의 수준이라는 것은 그따위 디테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두고 봐라. 주유 역의 양조위만 멋지게 나오면 아무 문제 없을테니까"라고 생각했던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일부 맞아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리뷰 중에는 '장대한 스케일과 배우들의 호연'을 칭찬하는 내용도 꽤 많더군요. 또 양조위 - 금성무를 '꽃보다 남자'처럼 소비하는 관객들도 '적벽대전' 1, 2편에 만족을 표하곤 합니다. 취향은 제각각인게 당연하지만, 대체 뭘 봤는지 궁금합니다.

이 영화를 보셔도 좋고, 안 보셔도 좋습니다. 미리 마음의 다짐만 하고 가신다면 의외의 재미를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기대를 확 낮추고, 감독과 제작진의 실책을 비웃는 재미가 생각보다 쏠쏠할 수도 있거든요. 제가 걱정하는 건 '삼국지의 웅장한 모습이 제대로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가 실망할 분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원작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별 관심 없는 분들은 보셔도 괜찮습니다.

물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덧대자면, 제발 이 영화를 보고 '삼국지를 봤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초등학교 극단이 공연한 '햄릿'을 보고 "뭐야,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하더니 별 거 아니잖아"라고 말하거나, 어린이들이 리코더로 연주하는 합창교향곡을 듣고 베토벤을 폄하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p.s. 글을 쓰고 나면 내용에 동의하는 분들과 그렇지 않은 분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정말 이런건 너무 당연한 건데 꼭 써야 할까' 싶은 부분을 빼놓으면 거기에 대해 논의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더군요.

예를 들면 그렇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는 당연히 역사 자체가 아닙니다(물론 진수의 정사 삼국지 또한 부분적으로 그렇죠). 또 원작이나 역사를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때 인물이며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은 창작자의 권리이기도 하죠. (이런게 바로 너무 당연한 얘기기 때문에 생략되는 부분입니다)

오우삼의 '적벽대전' 1,2편이 비판을 받는 것은 재구성이나 새로운 해석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재구성이나 새로운 해석이 원작에 비해 형편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형편없음의 기준은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죠. 감독이 애써 공들여 만든 영화를, 누군가는 재미있게 봤을 영화를 왜 네 맘대로 폄훼하냐는 분들, 그럼 대체 블로그라는건 뭐하러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난해 썼던 1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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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피디, 주철환 사장, 주철환 교수, 이 분의 변신을 가리켜 손석희 교수는 "인생을 삼모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시기도 하지만 정말 자주 신분이 바뀌는 분입니다. 최근 다시 야인으로 돌아시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이 많은 호칭 중에서 가장 어울리는 직함은 아무래도 아직 '주철환 피디'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이 분이 일간지에 연재하던 칼럼 '주철환의 사자성어'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주로 방송-연예계를 중심으로 한 그 주의 최신 화제를 사자성어로 풀어 내는 코너였죠. 시사적인 관점을 강조하다 보니 책으로 묶여 나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책이 되어 나온 모습을 보니 전혀 어색하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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뵐 일이 있어서 책 한권을 선물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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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의 저서나 말씀을 들어보면 탁월한 정리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말장난으로 치부할 만한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정말 늘 이런걸 펼쳐 놓고 연구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책에 나오는 예들을 잠시 들어 보겠습니다.

'명작 탄생에는 3정이 필수다. 정보, 정열, 정성이다.'

'PD가 되려면 4척의 배(ship)를 갈아타야 한다. 멤버십, 파트너십, 프렌드십, 리더십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친구가 되지만 좋은 사람을 만들면 리더가 된다.'

'조용필 공연에는 3S가 있다. 사운드, 스케일, 스토리다.'

'오프라 윈프리를 꿈꾸는 박경림의 현재 위치는 오프로 윈프리다.'

'매니저는 스타의 CSI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캐릭터, 스타일, 이미지의 고양을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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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될 때의 코너 제목은 '즐거운 천자문'이었지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사자성어입니다. 과물탄개(過勿憚改, 잘못을 알았으면 고치기를 주저하지 말라)처럼 보기 드문 말도 있지만 대개는 흔히 듣고, 흔히 사용하는 말들입니다. 이 분이 제게 주신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은 2번에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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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교육계에 몸담았던 분인 터라 개그콘서트의 '변선생' 코너에 숨은 의미를 짚어내는 등하불명(燈下不明) 풀이 같은 부분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이 코너에서 투명인간인 이종훈 캐릭터 얘깁니다. 담임 교사든, 같은 반 학생이든, 교장이든 이사장이든 그 학생이 안 보일 리가 없죠. 하지만 보고도 못본 척 하는 사이에 학생은 투명인간이 되어 가고 투명인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생이 눈길을 끌려 벌이는 행동은 점점 더 과격해져 갑니다. 과연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페이지는 가볍지만 느낌은 가볍지 않은 책입니다. 일독하시면 최소한 그동안 금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던 4자 성어들이 적재적소에서 살아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출판사에서 붙인 소제목일 '어휘력 증가 프로젝트'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p.s. 이분을 가리켜 '인생삼모작'이라고 평한(책 서두에 있습니다) 손석희 교수는 이분과 처남 매부간입니다(손석희 교수의 누나의 남편). 왕년에 주철환 사장님이 쓰다가 끊으신 소설에도 처남 캐릭터가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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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의 최근 사직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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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1955년생 중에서 성형수술 안 하고 이 분만큼 곱상한 분은 없습니다.^

이 분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무려 2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던 '장학퀴즈' 출연자 예비 심사 자리에서 저는 "안녕? (가슴에 손을 얹고)나는 주철환 선생님이야"라고 말하는 PD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학생 다섯을 앉혀 놓고 몇가지 규칙을 설명하던 이 분은 "그러니까 '반복'은 되지만 '번복'은 안 된다"고 설명하다가 대뜸 저를 가리키면서 "니가 반복과 번복의 차이를 설명해 봐"라고 지목하시더군요. 더듬거리며 설명했더니 "그래, 똑같은 답을 되풀이하는 건 되지만 바꿔서 대답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게 퀴즈의 원칙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최근들어 소란스럽기도 했지만 이 분이 OBS 대표가 되셨을 때의 글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분이 임기를 꽤 많이 남겨놓고 사퇴를 선언하셨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새삼 이 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2007년 연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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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PD의 꿈 ‘TV 정글’에서 통할까

경인TV 대표로 방송 복귀한 주철환 사장

당대(唐代)의 시성(詩聖) 두보의 작품 중에 ‘강남봉이구년(江南逢李龜年)’이라는 칠언절구가 있다. 안록산의 난으로 유랑 중이던 두보가 한때 최고의 명창이었으나 이미 쇠락한 가객 이구년을 만난 감회를 노래한 시다. 1990년대의 스타 PD 주철환은 “흘러간 인기 가수를 방송국 복도에서 마주칠 때 혹시라도 출연 요청을 해올까 봐 시선을 피하는 심정”을 이 시에 빗댔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그의 재기발랄함을 설명하는 데 있어 아주 미세한 편린에 불과하다. 항간에 수없이 회자되는 ‘꿈·끼·깡·꾀·꼴·끈’ 이라는 쌍기역 돌림의 ‘성공 조건’ 또한 그의 작품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 출신인 그는 ‘모여라 꿈동산’ ‘퀴즈 아카데미’의 주제가를 직접 작사·작곡하기도 했다.

이런 르네상스풍의 지식인인 그가 이화여대 교수가 됐을 때에도 ‘과연 조용히 학계에만 몸을 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 결국 그는 28일 처음 전파를 내보낸 경인TV(OBS)의 대표직을 맡아 현장에 복귀했다.

하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않으니 일선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표라고 해도 그에게 맡겨진 사명은 회사의 경영보다는 콘텐트의 관리다. OBS라는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프로그램에 어떻게 ‘주철환 표’의 색깔을 입히느냐가 사람들의 관심사다.

‘주철환 표’란 무엇일까. 일찍이 그와 함께 MBC ·TV의 예능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스타 PD 송창의(현 tvN 대표)와 그의 색깔은 현직 시절부터 ‘당의정론’으로 확연히 구분됐다. “오락 프로그램은 일단 재미있으면 그걸로 제 기능을 다한 것”이라는 송창의의 주장에 주철환은 “재미 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프로그램에 담아내야 한다”고 맞섰다.

이른바 ‘당의정처럼 오락으로 포장된 교양을 시청자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이 흐름은 뒷날 ‘이경규가 간다’나 ‘느낌표’ 등을 통해 KBS·SBS와는 다른 ‘MBC 예능’의 독특한 색채로 계승됐다.

OBS는 28일 개국과 함께 7명의 스타 영화감독이 만드는 드라마, 주철환 대표가 직접 진행하는 정보성 토크쇼, 앙드레김의 반생을 그린 팩션 드라마 등 기존 방송사와는 색채가 다른 상품을 매장에 전시했다. 그렇다 해도 현실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다.

OBS는 개국 후에도 상당 기간 인천과 경기도 일부 지역(서울 제외) 주민들만의 방송이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여타 지방에서 케이블TV로라도 OBS를 시청하려면 방송위원회의 역외 재전송 허가가 떨어져야한다.

주 대표는 자신의 영문 이니셜 C H의 C를 ‘창의력(Creativity)+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상식(Common Sense)’으로, H를 ‘조화(Harmony)+휴머니티(Humanity)+유머 감각(Humor Sense)’으로 정의해 이를 새 조직의 모토로 삼았다.

요약하면 ‘인간의 얼굴을 한 방송사와 방송 콘텐트’인데, 과연 무한 시청률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TV 정글’에서 이런 선의가 살아남을 것인지, 그 방법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겠다. (끝)







 


물론 이 분에 대한 항간의 오해도 살짝 있습니다. 이 분이 만든 프로그램이 모두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퀴즈아카데미'와 '우정의 무대' 등은 크게 성공했지만 이들 못잖게 야심에 찬 프로그램이었던 'TV 청년내각'은 실패했죠.

또 많은 분들이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이 분이 만든 것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이 코너는 이 분의 전임자였던 송창의 PD의 작품입니다. 이때도 이미 인기였지만 주철환 PD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맡으면서, 자신이 연출한 첫 몰래카메라에 이 분을 등장시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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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내사랑 굿바이 굿바이 어디서나~~'라는 가사로 유명한 '이별 아닌 이별'을 한창 히트시키고 있던 이범학입니다. 당시 '퀴즈 아카데미'에는 문제 출제(문제 읽기)를 위해 인기 연예인들이 하루 한명씩 출연했는데, 어느날 출연중인 학생들 앞에 이경규가 "오늘부터 내가 이 프로그램의 MC를 맡게 됐다"고 주장하며 나왔습니다. 그날의 출제자가 이범학이었던 거죠.

그냥 '퀴즈 아카데미'의 섭외인 줄 알고 스튜디오에 나온 이범학은 '2 더하기 2는 4입니다. 그럼 2 빼기 2는 무엇일까요(정답은 틀니)', '아담 스미스는 어쩌고 저쩌고 저쩌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발의 피란 무슨 뜻일까요(정답은 아주 적은 양)' 같은 황당한 문제를 읽다가 급기야는 '다음 흉내는 어떤 동물을 가리키는 것일까요'라는 문제를 내 놓고 원숭이 흉내를 내는 등 시청자들의 배꼽을 홀딱 빼 놓았습니다.





(그 뒤로 이런 몰래카메라, 즉 '몰카'들도 생겨났죠.^^)


이날 몰래카메라는 이범학 뿐만 아니라 문제를 풀러 나온 순진한 대학생들(개중에는 나중에 5승을 한 '달과 600냥'이라는 팀이 있었습니다)까지 희생양으로 만들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문에 '몰래카메라'라는 것을 주철환 PD가 만든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많아졌죠.

사실 저는 당시 집에서 이 방송을 보다가 "저건 틀림없는 조작"이라고 우겼습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저 바보같은 문제를 맞추는 동안(학생들도 처음엔 얼떨떨 하다가 계속 이런 문제가 나오자 나중에는 기를 쓰고 서로 맞추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학생들의 머리 뒤에 있는 점수판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제를 맞추거나 틀리거나 점수가 전혀 변동이 없으면 학생이든 MC든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고, 문제가 해결된 뒤 녹화를 재개했어야 한다. 그런데 점수 변동이 없는데도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고 녹화가 진행됐다는 건 최소한 학생들은 이게 정상적인 녹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죠.

하지만 그건 오해였습니다. 나중에 그 '달과 600냥' 출신들을 잘 알게 됐는데 "워낙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라 아무 정신이 없었다. 점수판이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며 웃었습니다.  주철환 사장님도 나중에 이 얘기를 했더니 "야, 그런건 너같은 놈이나 알지 걔들이 그런걸 어떻게 신경 쓰겠냐"고 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이건 점수판을 조작하던 분과 호흡이 맞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본래 '퀴즈 아카데미' 제작진이 녹화 준비를 끝내고 있는데 이경규씨가 MC 자리에 들어오자 이 점수판 조작 담당이 "아, 그럼 녹화가 지연되는구나" 하고 잠시 자리를 비운 거였습니다. 그 사이에 '몰래 카메라'가 진행됐고, 점수판은 불통이었던 겁니다.


 


PD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많은 제자를 길러 내신 분(제자들 중에는 이 윗 분도 있습니다) 답게 주위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고, 자신의 재능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는데 주저하지 않은 분입니다. 이 분의 작품들은 수시로 도용되고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 든 ‘꿈·끼·깡·꾀·꼴·끈’ 만 해도 인터넷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작품인 양 자랑하고 있죠.

저도 그 뒤로 이 분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지만 가장 쓸모 있는 건 이 한마디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방송의 본질'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도중, 이 분은 '내가 방송의 본질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마'며 이 얘기를 하셨습니다.

"방송이란 건, 감탄고토(甘呑苦吐)야."




13개월만에 이때의 글을 다시 보니 역시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걱정이 현실이 된 듯 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OBS는 다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을 두드렸지만 일단 시청자와 방송이 만나는 접점이 너무 적었죠. 방송망 확대에 예상보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신생 방송사의 재정에 경기 악화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최근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신 점을 생각하면 사장직을 벗어 버리신 것이 오히려 홀가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능력있는 분이니 오래 쉬실 리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경기도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만 보이던 OBS는 이제는 서울 지역에서도 40% 이상이 시청 가능 지역이라고(물론 케이블로) 합니다. 요즘 경영이 힘들다고도 하는데, 초대 사장을 이렇게 떠나 보낸 OBS는 과연 언제쯤 전국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근에 책을 또 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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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이민호가 인기 상종가를 누리고 있습니다. 스타들 중에는 가끔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딱 한 작품이나 노래 한 곡으로 곧바로 톱스타 진용에 합류하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이민호는 그렇지 않습니다. 2006년 EBS 드라마 '비밀의 교정'으로 데뷔한 이래, 아슬아슬하게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그 작품은 대박이 나고, 천신만고끝에 캐스팅된 작품은 조기종영을 하거나 흥행에서 참패했기 때문입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성형수술을 한 것도 아니죠. 이런 건 그냥 운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마침내 '꽃보다 남자'의 히트가 이런 설움을 모두 씻어버리는 순간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이민호가 뜬 걸 보고 가장 아쉬워하는 건 누굴까요. 뭐니뭐니해도 영화 '울학교 이티'의 제작진입니다. 5개월 정도만 버티고 개봉을 했더라면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이민호 하나면 사실 아쉬움은 그리 심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이 영화에는 무명의 똘망똘망한 배우들이 학생들로 줄줄이 출연하고 있었죠. 어떤 얼굴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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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학교 이티'는 강남의 한 사립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철밥통 생활을 즐기고 있던 천선생(김수로)이 어느날 체육시간을 줄이고 국-영-수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학교 방침에 따라 직장을 놓칠 위기에 놓이면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일이 되려다 보니 어찌어찌하다가 대학 재학 시절에 따 놓은 영어교사 자격증이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납니다. 이 자격증을 발판으로 천선생은 영어 교사로 변신을 노립니다. 이것이 바로 이티(ET: English Teacher)의 정체죠.

이 영화는 시사회 직후엔 각계의 호평으로 "잘하면 300만 정도는 가능하겠다"는 기대를 자아냈지만 불행히도 스크린에 걸렸을 때에는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1주일 앞서 개봉한 '맘마미아'와 '신기전'이 의외로 흥행 돌풍을 일으켰고, 같은 9월11일 개봉한 '영화는 영화다'도 선전하는 가운데 묻혀 버린 피해자가 됐죠. 적절한 웃음과 따뜻함이 조화를 이룬 영화라는 것이 중론이었지만 일각에서는 '너무 착한 영화'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극장 관객 70만은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아쉬운 숫자인 것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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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가 지금 개봉한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나오는 겁니다. 지난해 9월11일 개봉 당시만 해도 이 영화는 김수로의 원맨 무비로 홍보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만치 다른 배우들의 지명도가 떨어졌기 때문이죠.

아역 출신으로 고정팬을 어느 정도 확보한 백성현이 있었지만 극중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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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바로 F1 이민호가 꽤 큰 비중으로 나오기 때문이죠. 이민호는 이 영화에서 부잣집 아들 출신의 반항아로 우여곡절을 거쳐 천선생을 마음으로부터 이해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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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이민호라면 극중 비중도 편집 과정에서 훨씬 더 커졌을 겁니다. 지금의 웨이브 머리 모습이 다소 느끼하다면 저 때는 보다 야성미가 강조된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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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영화가 개봉된지 2주 뒤,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박신양 문근영이야 당연한 얘기지만 여기서 기생 정향 역을 맡은 문채원이 각광을 받았죠. 네티즌들이 문근영과 문채원의 묘한 관계를 '닷냥커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서 문채원의 고전미 넘치는 마스크가 화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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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채원은 영화에선 가난으로 시달리다가 원조교제에 나서는 여학생 은실 역을 맡았습니다. 물론 정의감 넘치는 이티 천선생의 도움을 받는 캐릭터죠. 그늘진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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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개봉 3개월 뒤, 아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영화 '과속스캔들'이 바람을 탔습니다. 현재 6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코미디 사상 두번째로 많은 관객('미녀는 괴로워'의 661만 바로 다음)을 기록하고 있죠.

이 영화를 통해 가장 큰 덕을 본 것은 신인 박보영이었습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던 박보영이라는 이름이 '제2의 전도연'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집중적인 조명이 쏟아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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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영은 '울학교 이티'에서는 반의 모범생이자 전교 1등 송이로 출연하죠. 공부도 잘 할 뿐만 아니라 마음 속 깊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천선생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최고의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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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울학교 이티'가 지난해 9월11일이 아니라 올해 1월에 개봉했다면 어땠을까요. 박보영-문채원은 몰라도 이민호의 덕은 확실히 볼 수 있었을 듯 합니다. 지난해까지는 영화를 다 찍어 놓고도 홍보비 문제로 개봉이 미뤄지는 영화들도 많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깔끔한 완성도를 자랑하는 '울학교 이티'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게 아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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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오뉴월 하루 볕이 다르다고 한장 자랄 나이의 청춘들이라 그런지 벌써 이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사뭇 달라 보이는군요.





꽃보다 남자에 대한 다른 이야기:



무명시절 이민호가 겪었던 고초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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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과 동성애, 공민왕과 자제위 얘기는 요즘 갑작스레 너무 조명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지겨우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와 남성 무장 집단의 관계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구합니다.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인 성호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보면 화랑의 유래에 대한 고찰에서 '화랑(花郞)이라는 것은 꽃같은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는 남색의 무리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 부분에서 보면 그 시절의 동성애라는 것은 요즘 얘기하는 유전자의 결정설이나 피치 못할 끌림과는 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어찌 보면 남성성을 좀 더 강화하는 데 있어 결속을 다지는 일종의 스포츠같은 측면도 엿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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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쌍화점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에는 신성대(Sacred Band of Thebes)라는 특수부대가 있었다. 테베의 최정예 부대인 이 무장집단의 특징은 150쌍의 동성애자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었다. 잘 싸웠을까? 물론이다. 이들은 기원전 338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끌던 마케도니아군에게 전멸당할 때까지 무적을 자랑했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연인에게 부끄러운 꼴을 보이지 않으려 서로 보호하면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이들에게 이길 군대는 세상에 없었다”고 전할 정도다.

이들 외에도 세계 역사에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무장집단과 동성애 사이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혹자는 화랑 오계의 교우이신(交友以信)에서도 단순한 글자 이상의 의미를 읽곤 한다.

지난해 12월 30일 개봉한 유하 감독의 영화 '쌍화점'이 첫 주 15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등 화제 만발이다. 고려 왕(주진모)과 그의 호위대장 홍림(조인성) 간의 동성애가 특히나 관심을 끈다. 미남 스타들이 연기하는 동성애 장면이 마케팅의 수단일 뿐이냐, 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냐는 예견된 논쟁이 일어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공민왕에 대한 왜곡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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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왕이 공민왕이라고 가정할 때, 주요 내용은 『고려사』의 기록과 상당히 일치한다. 금실이 두터웠던 몽골 출신의 왕비 노국공주가 죽은 뒤 공민왕은 여색을 멀리하고 1372년 궁중에 명문 귀족 청년들로 구성된 자제위(子弟衛)를 둔 뒤 남자들과 음행을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구중궁궐에 사지가 성한 미남 청년들이 들어섰으니 사고는 예견된 일. 자제위의 일원인 홍륜이 공민왕의 계비를 임신시켰고, 공민왕은 홍륜을 제거해 추문을 막으려다 되려 홍륜 패거리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얘기가 보고 싶은 분은>
 

과연 공민왕은 동성애자였을까. 일부 사학자들은 그 또한 조선의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 왜곡의 희생자였으며 문제의 자제위 역시 공민왕을 보위하던 세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뒤를 이은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소생이라고 깎아내렸던 당시의 분위기를 봐선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다.

물론 이런 논의는 모두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시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쌍화점'이 극장에서 화제 속에 개봉되고 꽃미남들의 키스신이 여성 관객을 위한 서비스로 간주되는 요즘 같은 시대라면 사관들은 어떤 흠결을 찾아내야 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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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 신성대에 대한 기록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정확한 명칭은 '비교 열전')'의 펠로피다스 편에 나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신성대를 구성한 사람은 장군 고르기다스라고 하는군요.

카에로네아에서 마케도니아군과 싸웠을 때에도 이들은 선 자리에서 후퇴하지 않고 그대로 전사해 용명을 떨쳤습니다. 이 시기의 다른 기록을 보면 뒷날 카에로네아의 전투 지역을 발굴한 결과 254구의 유골이 7열로 줄을 맞춰 발굴됐다고 하는군요. 아무튼 이들의 용감성에 대해 플루타르코스는 "감히 이들의 위업을 의심하는 자에게는 그 즉시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플라톤도 '향연''에서 이 신성대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내용은 플루타르코스의 것과 대동소이합니다. 요지는 "연인과 함께 싸우는 이상 누구도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이죠.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동성애자는 평화를 사랑하는 유약한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을 깨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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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시기의 문건들을 보면 (동성간의) 우정은 (남녀간의) 사랑보다 훨씬 숭고하고 우아한 감정의 경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물론 여성들간의 우정은 거론되지 않습니다. 그만치 우정-동성애는 남자들만의 특권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녀간의 교합이란 사회의 유지와 자녀의 출산을 위한 다소 기능적인 것이었던 반면, 남자들끼리의 사귐은 함께 학식과 무예를 연마한 친구들 끼리의 깊은 정신적 교감이 육체적인 것으로 승화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먼 그리스 땅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신라의 화랑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듯 합니다. 물론 한없이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그래서 위서 논란도 한창인) '화랑세기'에도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룬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마복자 관계 등을 통해 은유를 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시대를 뛰어넘어 공민왕과 자제위의 관계를 볼 때도 이것이 과연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는 동성애와 같은 것일까 하는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자제위의 홍륜이 여자인 익비와도 사고를 쳤듯, 이들에게 있어 남자들끼리의 동성애는 여자와의 사랑에 대한 대체물이 아니라 고대 전사집단의 남성간 결속 강화의 수단으로서 이뤄지던 행위의 전통이 계승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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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식의 생각은 자칫하면 수시로 문제가 되는 군내 동성애의 존재에 대한 옹호의 논리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죠. 집단 전체의 암묵적인 동의하에서 이뤄지는 관계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상급자의 폭력을 통해 이뤄지는 관계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현대의 군 내에서 동성애가 금기시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튼 '천추태후'때도 얘기했지만 그 천년 전의 일을 요즘의 시각으로 재단하려 하는 것은 항상 심각한 문제와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가끔은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해도 그때 사람들에게는 왜 이런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을까, 당시의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예전에도 그랬는데 요즘 그러면 어때'라는 시각 또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덧붙여야겠죠.



영화 '쌍화점'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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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가 불같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당연히 예상됐던 궤적입니다. 이 드라마의 주요 소구 대상인 10대 후반-20대 후반의 여성층 중에서 원작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사실 이 원작은 기본적으로 남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네 명의 엄친아들에게 전교생이 노예처럼 굴종하는 상황이라는 건 남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한마디로 '꽃보다 남자'는 자신의 모습을 여주인공 츠쿠시에게 투영하는 여성들을 위한 완벽한 판타지 상품이죠.

이런 부분을 일단 접고 볼 때 현재 방송중인 KBS판 '꽃보다 남자'는 꽤 볼만한 드라마입니다. 에피소드끼리의 연결이 억지스럽지 않고, 다소 설익은 듯한 주인공들의 연기도 싱싱합니다. 일본 드라마 '부호형사' 식의 부자들에 대한 희화화도 충분히 웃음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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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완성되어 방송중인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는 드라마 내용과는 별도로 흥미로운 부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실종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어떻게든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성인 연기자가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성인들은 고교생인 주인공들 만큼의 이성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준표에 의해 '마귀할멈'이라고 불리는 어머니(이혜영)이나 동전 한푼에 목숨을 거는 희화화된 금잔디의 부모(안석환, 임예진)는 청소년들의 눈에 비쳐지는 속물적이고 한심한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배울 게 없는 어른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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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 비해 F4의 지각은 다 자란 듯 합니다. 금잔디와의 연애로 희희낙락하는 준표에게 던져지는 F4 동료들의 충고를 보시죠. "우리의 자유는 연애까지야. 결혼 상대자를 선택할 권리는 부모님에게 있다는 걸 잊지 마." 이미 어른들의 세계 따위는 다 꿰뚫고 있다는 식입니다.

그나마 전직 대통령 이정길이나 신화그룹의 비서실장 정호빈 정도가 '철든 어른'의 모습을 앞으로 보여 줄 걸로 기대되지만 그 나머지 어른들은 모두 '어른으로서의 모범'을 보여주기엔 역부족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의 어른들의 공백은 만화에서는 흔한 설정이죠. '슬램 덩크' 이후로 청소년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만화에서 부모들이 의미 있는 역할로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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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교생들의 현실은 겉으로 보기엔 '꽃보다 남자' 속 세상과 꽤 다릅니다. 일상생활에서 진로선택까지 모두 부모의 교육열과 과보호 속에서 이뤄지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이게 지나쳐서 서른이 넘을 때까지 부모의 보호 속에서 사는 캥거루족이 되는 경우도 널렸죠. 아무튼 현실의 고교생들은 부모의 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마음 속에서도 어른의 권위를 인정하고 있을까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현상은 권위의 부정입니다. 인터넷을 통한 값싼 지식의 확산과 함께 전통적인 '어른과 아이' 사이의 장벽은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의 의미는 무엇이든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나 알 수 있는 것이죠. 여행 감상문과 진짜 여행의 체험은 직접 그 땅을 밟아 본 사람이 느낄 수 있습니다. 맛집 기행문과 진짜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의 느낌은 천지차이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아직 아무 것도 먹어 보지 못한 사람, 직접 거기에 가 본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마치 가 본듯 그 느낌을 줄줄 외울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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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지식민주화와 함께 너무나 많은 정보가 쏟아지면서, 웹 검색 기술이 기존의 '어른들'이 일생 동안 읽은 도서목록을 일시적으로 추월해버리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무식한 어른들'을 인정하지 않게 돼 버렸죠. 여기에 몇몇 어른들이 동조하면서 '아이들'의 '어른들'에 대한 태도는 권위의 부정을 넘어 아예 멸시의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꽃보다 남자'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 속에서 보여지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관계는 우리 사회에서 한창 빚어지고 있는 권위의 공백을 그대로 묘사한 듯 합니다. 이 드라마에서 성인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권위의 기준은 돈 뿐입니다. 돈으로 청소년들을 지배할 수 없는 어른들은 반대로 돈을 가진 청소년들에 의해 지배당하는 존재들로 묘사됩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꽃보다 남자'는 그저 유치하고 낯간지러운 드라마에서 보고 있으면 무서워지는 드라마로 슬쩍 변신하기도 합니다. 물론 개인적인 시각의 얘깁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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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참 대만판이나 일본판의 캐스팅을 보면 한국산 F4의 위용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더군요. 어찌나 다들 쭉쭉 빠지고 잘생겼는지. 아니면 이런 부분이 한-중-일간의 미묘한 취향 차이를 보여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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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안 하고 한해를 넘기니 어째 좀 껄적지근합니다. 뭐 며칠 늦었지만 그래도 한번은 짚어 봐야 할 것 같더군요. 리뷰를 쓴 영화도, 안 쓴 영화도 있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 한해도 여름 기간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폭격이 대단했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됩니다.

올해도 '트랜스포머 2'가 벌써부터 기세를 올리고 있더군요. 그래도 지난해 한국 영화 중에는 꽤 건질 작품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돈 많이 안 들인 영화 중에서 희망을 볼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반면 대작들 중에는 그리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는 게 아쉬움 반, 걱정 반으로 남습니다. 그만큼 수업료들을 냈으니 이제 앞으로 잘 만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이제 그분들이 그만한 투자를 받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 때문이죠.

아무튼 2008년의 만족스러웠던 영화 열편입니다. 순위가 그닥 큰 의미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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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이언맨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때 가장 만족스러웠던 영화. 유치하지도 않으면서 경박하지도 않았고 주인공이 지나치게 착해서 답답하지도 않았다. 2편도 기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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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쿵푸팬더

더 이상 재미있기 힘들 것 같은 최상의 엔터테인먼트. 뭘 더 바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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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최강의 캐릭터, 최강의 호흡. 같은 해였다면 히스 레저는 죽어서도 조연상을 못 받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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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추격자

탄탄한 스릴러의 힘을 보여준 걸작. 짝퉁 스릴러들은 제발 좀 참고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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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월 E

전의상실. 상상력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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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고 70

이렇게 잘 만들고도 외면당하는 심정은 어떨까. 한국 영화의 힘을 느끼게 한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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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크나이트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과 역사에 남을 걸작은 아니라는 생각의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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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님은 먼곳에

누가 뭐라건 마음이 끌린다. 감독의 뚝심으로 끌어낸 20세기의 여신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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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더 폴 - 오디어스의 문

불가사의한 시각적 도전. 이렇게만 찍으면 대체 누가 스토리를 따질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는 리뷰 쓸 시기를 놓쳤습니다. 죄송-_-. 나중에 추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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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미쓰홍당무

 

포스팅 제목 그대로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꽃게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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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합: 영화는 영화다

11등? 뭐 아무튼 박력 넘치는 수작. 이렇게 제한된 자원으로도 이런 영화가 나오다니.






다음은 실망스러웠던 다섯 편의 영화입니다.

위의 열편과 아래 다섯 편에 포함되지 않은 영화들은, 그 사이의 어중간한 영화들일 수도 있고, 아예 언급할 만한 가치가 없는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이번 다섯 편도 기준은 저의 개인적인 기대와 거기에 대한 배반의 크기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들이 아무리 편견으로 보더라도 '2008년의 가장 못 만든 영화'들은 아닙니다.

이번엔 순위도 빼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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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

멋진 장면 몇개로 의문부호 투성이인 세시간 짜리 영화를 구하는 방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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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든 킹덤

 

두 명의 쿵후 전설을 모은 결과가 이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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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뻔한 기획과 뻔한 결과. 안이함과 나태함이 돋보였던 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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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800억원을 들여 10억 독자를 실망시키는 방법에 대한 연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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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피

제발 천녀유혼을 10번만 더 봐라



이렇습니다. 여러분의 편견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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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코믹스의 세계가 참 깊고도 넓다는 것은 일찌기 알았지만, 아이언맨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의 제작 소식이 들릴 때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고편만큼은 대단한 수준이라고 느꼈는데, 역시 영화를 보니 좋은 예고편에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이론이 별로 틀리는 법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더군요.

예고편 마지막 장면에서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블랙 사바스의 '아이언 맨' 부터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뭉클뭉클 부풀게 했습니다. 어쨌든 아이언 맨이라는 주인공은 참 생소합니다. 그 세계를 모르니 일단 영화 중심으로, 줄거리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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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사장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최초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아버지로부터 초대형 군수산업체를 물려받은 부자이자 17세에 MIT를 수석 졸업한 천재입니다. 여자와 술, 자동차와 하드 록에 심취해 있는 자기도취적 인물이죠.

그런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신무기 실험을 마친 뒤 독립용병단체에 납치됩니다. 같은 포로 신세인 잉센이 만든 전자석을 몸에 부착해 목숨을 건진 스타크는 첨단 미사일을 만들어 내라는 협박을 받습니다. 이걸 기회로 이용한 스타크는 주문한 장비를 갖고 아이언맨의 프로토타입을 망치로 두들겨 만들고(...천재라니까요), 그걸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어쨌든 자신이 만든 무기가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대량살상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스타크는 아이언맨 장비를 개량,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을 물리치는 영웅으로 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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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줄거리를 가지고 흠을 잡자면 끝이 없죠.



일부 정신나간 리뷰에서는 이 영화의 화려한 그래픽에 도취돼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한 슈퍼 히어로의 모습을 구현했다'는 등등의 말이 나오지만, 전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이언맨의 장갑이 총알은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중에서 저런 식으로 떨어지거나 화염방사기로 주변을 불질렀을 때 과연 충격이나 뜨거워진 장갑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을 턱이 없죠. 쇼크사를 당해도 100번은 당했을 겁니다.

아무리 견고한 금속이라도 한번 타격을 받으면 어느 정도까지 변형이 이뤄졌다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겁니다. 그럼 실제 크기는 저 정도보다 훨씬 커져야 안에 있는 인체에 손상이 없을 수 있겠죠. 게다가 전투를 겪다 보면 외부 장갑이 뒤틀리고 변형되는 일이 비일비재할텐데, 과연 전투 후에 옷을 벗을수나 있을지...

(처음 썼던 '탱크 외부 충격으로 인한 승무원 사망'은 기갑부대 출신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실제 병사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의외로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있군요. 하긴 현역 기갑부대 사병이나 장교 중에 탱크 탄 채로 포탄 맞아 본 사람이 없을테니 그쪽 생각이라고 반드시 맞으라는 법은 없을 것 같군요. 물의를 빚어 죄송하니다.)






물론 이건 그렇게 따져서 될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시비를 걸자면 국제정치와 무기 생산에 관련된 문제만도 결코 스타크가 생각하는 것만큼 순진하고 단순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다만 이 부분에서는, 그래도 그렇게 자기만 알도록 자라온 한 인물이 이 세상에 '남들도 살고 있고, 나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특해할만 하다는 선에서 넘어가도록 합니다.

아무튼 '아이언맨'은 매우 성공적인 영화입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형상화한 주인공의 캐릭터에 있습니다.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도 본래는 어느 정도 부자에 플레이보이로 설정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배트맨 영화에서 이 부분이 크게 부각된 적은 없었습니다(다른 배우들은 몰라도, 심지어 조지 클루니가 배트맨일 때에도 말입니다). 일단은 '어두운 영웅'이라는 컨셉트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죠.

반면 다우니가 만들어 낸 토니 스타크는 자제력도 없고, 엄청나게 잘난 척 하며 향락적인 인물이지만 오히려 그걸 매력으로 바꿔놓은 성공적인 캐릭터입니다. 지나치게 고뇌하는 슈퍼 영웅들에 비해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온다고나 할까요. 이런 부분에서 토니 스타크, 혹은 아이언맨은 배트맨이나 슈퍼맨에 비해 훨씬 '트랜스포머' 쪽에 가 있는 영화입니다.

원작자에 따르면 본래 이 토니 스타크의 모델은 바로 이 사람, 하워드 휴즈입니다.



바로 갑부 2세이고, 미남에, 자제력없고, 플레이보이에, 결국은 '미친 놈'인 인물이죠.

그의 전기 영화인 '에비에이터'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표정과 거의 똑같네요.



디카프리오도 연구 많이 했었군요.^^








물론 훌륭한 특수효과 - 이것만으로 영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누차 강조한 바 있지만 - 의 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일본제 마징가Z에서 그랜다이저, 건담에 이르는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심취했던 '남자들'이라면 또 한번 뒤집어지지 않을 수 없는 볼거리가 넘쳐납니다.


 

F-22가 '트랜스포머'에 이어 다시 등장하기도 하죠.^

사실 다우니의 활약이 워낙 두드러지다 보니 영화의 다른 인물들은 거의 들러리처럼 느껴집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기네스 팰트로를 눈으로 보기 전까지 팰트로가 이 영화에 나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친구이자 조력자인 로드 중령 역으로 나오는 테렌스 하워드도 마찬가지. 오베이다 역의 제프 브리지스가 대머리로 나오는 걸 보고 좀 놀랐을 뿐입니다.




속편이 계속되다보면(물론 안 나올리가 없겠습니다만)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이번 1편은 다우니의 독무대입니다. 기네스 팰트로가 맡은 비서 페퍼 포츠만 해도 팰트로같은 비싼 배우를 쓸 필요가 전혀 없는 역할이죠.

감독 존 파브로는 다우니와 함께 한국에 오기도 했습니다.




배우로 경력이 훨씬 많죠. 기억나는 건 '윔블던'에서의 에이전트 역 정도지만, 이밖에도 수많은 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으로 이번에 보여준 역량은 대단하더군요. 이 정도라면 이제 전업 감독으로 활약해도 될 것 같습니다.

본래 만화 아이언맨 시리즈의 팬이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한 15편까지는 만들고 싶다"고 기염을 토했다는군요. 글쎄... CG 회사들이 과연 그 바람에 맞춰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1편이 흥행에 성공하고 2편 3편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군요.




p.s.1. 이 영화의 크레딧에는 사무엘 잭슨이 닉 퓨리라는 역으로 등장한다고 되어 있지만, 영화를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이런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촬영에는 임한 것 같은데 대체 왜 없을까요? 정답은 영화가 끝난 다음에 있었습니다. 크레딧이 모두 지나간 뒤 쿠키가 있답니다.




만화상으로는 이런 캐릭터였다고 합니다. 루이스 고셋 주니어가 모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나라 극장에서는 혹시 커트되고 안 나올지도 모르겠는데(저는 바로 나와버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보신 분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p.s.2. 만화 아이언맨의 원작자 스탠 리는 이 영화에 카메오로 나옵니다. 바로 파티장에서 토니 스타크가 휴 헤프너라고 생각하는 인물(파자마를 입은 할아버지가 금발 미녀들과 서 있으면 그게 누구겠습니까^^)이 스탠 리라는군요.




엔딩은 예고편의 마지막에 등장했던(그리고 영화에서도 엔딩에 등장하는) 블랙 사바스의 올드 넘버 'Iron Man'입니다. 1970년 라이브 화면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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