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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연예인 강호동을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친근감 때문입니다. 가끔은 MC몽이나 유세윤을 폭력으로 제압(?)하기도 하고, 처음 정했던 조건에 쉽게 승복하지 않은 채 끈질기게 재협상을 요구하거나 억지를 부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근본적으로 그의 밑바닥에는 대중에 대한, 또 함께 출연하는 다른 연예인들에 대한 선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방송인 강호동을, 가끔은 거칠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구라나 신정환과는 다른 종류의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 여기게 합니다.

하지만 18일 방송된 '무릎팍도사'에서 유세윤과 강호동의 모습은 그런 부분에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바로 늘 웃음의 대상이 되는 권상우의 혀짧은 발음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입니다. 권상우도 웃어 넘겼지만, 사소하게 넘어가기에는 그 대목이 영 마음에 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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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세윤은 처음부터 '덩서야 한덩서'를 시작으로 '천국의 계단(한정서는 이 드라마에서 최지우의 이름)'에 나오는 대사를 흉내내며 권상우를 자극했습니다. 이걸로 끝나지 않고, 권상우의 프로필을 낭독할 때에도 마지막 순간에 '다당은 움디기는 거야(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유명한 권상우의 CF 멘트를 흉내냈죠.

이걸 본 권상우가 기가 차다는 듯 웃자 강호동은 사과한답시고 엎드려서 '데송합니다. 데송합니다'를 연발했습니다.

뭐 재미있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는 부분이고, 언뜻 암시된 대로 권상우와 강호동이 사석(같은 사우나에 다닌다더군요)에서는 형 아우 하고 지내는 격의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편안한 말투가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발음 부분은 배우로서의 권상우에게 계속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어 온 부분이고, 어찌 보면 태생적인 약점입니다. 권상우는 데뷔 이후 줄곧 이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현재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이 약점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입니다(물론 흥분하거나 긴장된 장면의 연기 때에는 가끔 다시 살아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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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발음으로 놀리기'는 '천국의 계단' 때의 상대역이었던 최지우가 더 많이 당한 바 있습니다. 있는 자리건 없는 자리건, 화를 잘 내지 않는 최지우의 성품을 이용해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약점을 놀려먹었죠.

아무튼 이런 부분들은 당사자의 노력으로 고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보는 사람을 그리 즐겁지 않게 합니다. 변명거리는 많습니다. 언뜻 완벽해 보이는 권상우에게도 그런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 일반인들을 좀 더 행복하게 할 지도 모르고, 권상우 본인이 웃어 넘겼는데 왜 다른 사람이 난리냐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진짜 코미디란 남의 약점보다는 나의 약점을, 남의 부족한 점보다는 장점을 이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수근과 정명훈이 '키컸으면'을 외칠 때 웃을 수 있었던 건 자신들의 약점을 코미디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정종철이나 오지헌이 자신들의 외모를, 대성과 김종국이 자신들의 작은 눈을, 이윤석이나 윤종신이 자신들의 건강을 거론하며 웃음의 소재로 삼는 건 페어 플레이지만, 이런 약점들을 다른 사람들이 캐내 공격하는 건 아무래도 반칙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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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에게 혼전 임신을 부정한 거짓말을 추궁하거나, 손태영의 옛날 애인이던 신현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어보거나, 이런 부분들은 토크 프로그램의 본령이고 권상우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에 이미 감수했을 부분들이니 여기서 예의를 따지는 건 좀 빗나간 행동입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보다는 혀짧은 소리의 흉내가 훨씬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최근 몇년 사이 막말과 예의상실이 예능 프로그램의 기본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경험담을 이용해 남을 스토커로 몰거나(김세아 - 김민준 사건이죠), 방송에서 '개새끼'라는 욕을 하고도 아직 아무런 조치도 없는 방송(상상플러스는 여전히 잘 돌아갑니다)이 만연하고 있는데, 그나마 품위를 유지하고 있던 국가대표 방송인 강호동까지 그런 대열에 합류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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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날 방송 최고의 유머는 권상우의 '숙면'이었습니다. 자신과 송승헌이 출연한 영화 '숙명'이 전날 잠을 못 잔 관객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했다며 '숙명'이 아니라 '숙면(영어로는 Deep Sleep이라고 친절하게 영역까지)'이라고 빗대더군요. 그러고 보면 '자신의 약점을 승화시킨 개그'의 좋은 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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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 보신 분도 있습니까? 연예인이나 웹서핑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퓨마쇽(Pumashock)이라는 아이디를 아실 겁니다. 아니면 '소녀시대, 원더걸스 노래를 한국어로 자유자재로 부르는 흑인 여가수'라고 하면 아시려나요?

이 흑인 여가수의 이름은 나탈리 화이트입니다(나이는 굳이 안 밝히겠다는군요. 한 독자 분의 도움으로 알아낸 결과는 82년생^^). 아직 음반을 내거나 한 적은 없지만 게임 음악 등을 직접 만들고 있는 뮤지션이고, 자신이 만든 곡으로 싱글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는 프로 가수 지망생이더군요.

며칠간 추적 끝에 저희 팀에서 이메일 인터뷰에 성공했습니다. 알고 보니 나탈리, 엄청나게 밝은 아가씨에다 한국 대중문화를 줄줄이 꿰고 있는 미국의 한류 마니아더군요. 발빠른 SBS TV '스타킹'에서도 벌써 접촉을 했다니 잘하면 곧 한국 TV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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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셨던 분들이라면 일단 노래를 들어보시는게 가장 이해가 빠를 겁니다. 소녀시대의 'Gee'.



노래 중간의 가사 '바보'에서 머리를 툭툭 치는 몸짓을 보면, 그냥 한국어를 흉내만 내는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교포 혹은 2세 쯤 되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사실 지난주에 교포걸님이 이 블로그에 댓글을 달아주시기 전까지 이 친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이미 유명인사더군요. 원더걸스의 '노바디' 등 노래들을 한국어로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더욱 놀라운 건 발음만 한국어로 하는게 아니라 그 의미까지 알고 부르더라는 겁니다.

이런 친구라면 한번 찾아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행히도 유튜브에 개인 페이지가 있더군요. 즉시 안 되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쪽지를 날렸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답장이 오더군요.^

Hello Song,

Thank you so much for contacting me! It's a pleasure to meet you :)
It's so cool that you watched my videos! I'm just amazed at the positive response and would like to reach out to as many Koreans as I can with my singing.
I'd love to do an email interview with you. It's an awesome opportunity!
Please contact me at 이메일 주소^^ with your instructions.
...how exciting X-D

Thanks again,
Natalie White

그래서 그 다음에는 저보다 영어 잘 하는 후배에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답장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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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과시하듯 중간 중간 한국어를 섞어 쓴 구석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일 먼저 본 한국 드라마는 지진희 수애 조현재 주연의 '러브레터'였고, 가장 먼저 본 뮤직비디오는 신화의 것이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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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보고 나온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902/18/200902181021261076020100000201040002010401.html

그러니까 시카고 근처 노스웨스턴 대학(대단한 명문입니다. 엄친딸 냄새가...) 재학중 자취방에 채널이 3개밖에 안 나오는 채널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잘 나오는 채널이 하필 한국 교포 유선방송이라 어쩔수없이 한국 문화에 노출됐다가 깊이 빠져들었다는군요.

그 뒤로 10년. 항상 백설공주에 나오는 듯한 멋진 남자들(Prince Charming)이 여주인공을 놓고 싸우는 한국 드라마에 푹 빠졌고, 이제는 좋아하는 한국영화로 김기덕 감독의 '빈집(3-iron)'을 꼽는 수준이 됐습니다.

현재 가장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의 이름은 한 20여명 되는 리스트였지만, 가장 먼저 있는 이름은 윤은혜였습니다. '커피 프린스'를 열심히 본듯 공유의 이름도 곧 나오더군요. 특히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해피 투게더'의 '쟁반노래방'이었고 유재석과 김제동을 정말 좋아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신동엽과 이효리 시절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온갖 한국 드라마와 영화, 예능 프로그램과 노래까지 챙기고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지만 LA의 클럽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새 춤을 춘 뒤 새벽까지 하는 코리아타운 식당가에 가서 daeji bulgogi, spicy rice cakes(...아마 떡볶이가 아닐까요^), ox-tail soup(...떡볶이에 꼬리곰탕이라... 음... 럭셔리하군요) 등을 시켜 먹는걸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역시 한국의 24시간 영업문화, 경쟁력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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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자기 홈페이지의 게시글을 통해 "내가 한국어로 연기한다면 '내이름은 김삼순'에 나오는 다니엘 헤니 같지 않을까?^^" (I want to perform in Korea someday and act too! I could be like Daniel Henney's character in "Samsoon" haha!** I'm working hard to learn the language, so please forgive any mispronunciations... I'll get better!) 라고 말하고 있을 만큼 한국에 대한 나탈리의 관심은 뜨겁기만 합니다.

그동안 한류 팬이라면 우리 아시아 동포들이나 '대장금'을 보시는 아랍, 아프리카의 친구들만 생각했다가 미국 본토에서 이런 반응을 보니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는 굳이 밝히지 않지만 한국 문화에 빠져든 지 10년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아마 30대 초반 정도...? ^^  요즘 '꽃보다 남자'도 혹시 잘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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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한국에서 모습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메일로만 접해봤지만 참 밝고 씩씩한 친구더군요.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꿈을 펼치고 잘 살기를 바라게 됩니다.

16일 올라온 나탈리의 최신작, 이효리의 '유고걸'입니다.




원더걸스의 '노바디',





동방신기의 '미로틱'입니다. 특이합니다.



유튜브 개인채널 http://www.youtube.com/user/Pumashock 에서 신청곡도 받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편곡하는지 궁금하신 곡이 있으면 신청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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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의 연예기자들 중 상당수가 2부로 접어든 KBS 2TV '꽃보다 남자'로 먹고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3개의 연재를 하고 있는데 주기가 모두 다릅니다. 중앙일보 분수대는 매주, 일간스포츠 두루두루는 격주, 그리고 무비위크의 롤링페이퍼는 확실치 않지만 4주에 1회 정도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불운한 경우에는 한주에 모두 몰리게 되죠. 거기다 다른 회사일까지 겹쳐서 지난주는 제법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영화 시사회도 드문드문 갈까말까한데, 본 건 '꽃보다 남자' 뿐이고, 그렇다고 전부 '꽃보다 남자' 얘기로 쓸 수도 없고... 무척 고민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그중 하나가 이 글입니다.

'꽃보다 남자'의 존재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미덕'이라고 할만한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장점 한가지가 있더군요. 물론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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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미덕

아주 오래 전, 필자가 코흘리개 학생이던 시절의 얘기다. 어느날 집에 좀 일찍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밥그릇이 좀 컸다. 귀찮은 설겆이를 피해 냉면 사발에 반찬을 몰아 넣고 간이 비빔밥을 만드신 듯 했다. 입이 방정이었다. "엄마, 무슨 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

그날 저녁 내내 분위기가 냉랭했다. 당시엔 대체 어머니가 별것도 아닌 말에 왜 그렇게 분개(?)하셨는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몇 해가 지난 어느날, 갑자기 섬광처럼 깨달음이 뒤통수를 갈겼다. 그랬다. 어머니도 여자였던 거였다. 말한 사람이 누구건 그런 식의 무식한 논평을 당했다는 사실은 한 여자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던 거다.

지난 설 연휴, 수많은 남자들이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 한편의 TV 드라마를 통해서다. 네 명의 꽃미남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를 그린 '꽃보다 남자'는 KBS 2TV와 기타 케이블 TV를 통해 재방송과 재재방송, 사방 오방 재생되어 나갔다. 그리고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집집마다 초등학교 5학년 손녀에서 칠순을 넘긴 할머니까지, 온 집안의 여자들은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앉아 네 꽃미남들의 품평회를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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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을 본 남자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그들 여자들이 드라마 보느라 수정과 한 사발만 달라는 남편(혹은 아들, 혹은 아빠)의 요청은 들은 체도 않는 데 격분하여 "에잇, 여자들이란!"하고 혀를 끌끌 차며 다시 화투 패를 펼쳐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몇몇 남자들은 그 썩 잘 만들지도 못한 드라마 한 편이 대한민국의 10세에서 75세 사이 여성들을 홀딱 사로잡아 버린 데 대해 평소답지 않은 인류학적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이들이 내린 결론을 대략 요약하자면 "그러니까 우리 마누라, 우리 어머니, 우리 형수들도 우리(이란 약 10세에 75세 사이의 남자들을 말한다)가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볼 때 느끼는, 막연하고 나른한 행복감과 충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그중 몇몇의 느낌은 이랬다고도 한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도 아직 여자였구나!"

남자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동방신기나 H.O.T의 파괴력은 대략 초등학교 학부형의 연령 장벽을 넘지 못했다. '다모'의 이서진이나 '주몽'의 송일국,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이나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차인표도 F4의 강력함에 비길 정도는 아니었다. 필자가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인 것은 '첫사랑'의 배용준 외에는 없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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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매주 주말이면 저녁밥 내놓으라고 짜증내는 남편과 아들들을 내팽개치고 TV 앞에 숨 죽이고 앉아 있다가 "아이고! 배용준이가 끝내 깡패가 되려나보다. 어쩌면 좋으냐!"고 속상해 했다는 바로 그 드라마 말이다. 이 드라마가 기록한 65.8%의 대한민국 역대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은 거저 먹은 게 아니었다.

꽃보다 남자. 욕하려고 맘 먹으면 한도 끝도 없다. 허술한 편집,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대사, 음악 구성이고 뭐고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OST 수록곡, 무개념의 학원 폭력 묘사…. 장담하건데 5년, 아니 3년만 지나도 그 촌스러움에 치가 떨릴 드라마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에는 부정할 수 없는 미덕이 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딸들이 '여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공감하게 해 줬다는 공, 또 그 어머니들에게 그 먼 옛날, 당신들도 눈썹 진한 오빠들을 보고 가슴 떨려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준 공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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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글을 보고 '우리 어머니는 그따위 저질 드라마를 보고 즐거워하는 분이 아니야!'라면서 격분하실 분들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분명히 '꽃보다 남자'도 아니 보고 '아내의 유혹'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불철주야 자식 걱정과 남편 걱정, 또는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으로 날을 지새느라 그따위 드라마를 볼 시간 따위는 없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너무 우아하시고 고상하셔서 이런 허섭쓰레기에는 아무 관심 없는 분들도 있겠죠.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시간낭비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어머니 잘 모시고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아버지나 삼촌들이 TV에 나오는 소녀시대를 무슨 음흉한 마음이 있어서 좋아하는게 아니잖습니까. 어머니들도 마찬가집니다. 오히려 음흉한 마음(?)이라면 여중생들이 더 많이 갖고 있겠죠.

주위의 증언이나 반응으로 미뤄 볼 때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 여성 중 적잖은 분들이 '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그놈 참 잘났다'는 감탄사를 토해 내고 계신 듯 합니다. 그 분들에게 잠시나마 고단한 인생사를 잊게 해 주는 효과를 냈다면 드라마가 막장 아니라 막막장이라 해도 충분히 용서를 해야겠지요.

그런 뜻입니다. 하지만 좀 더 잘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만큼은 여전합니다. 어떤 분이 '꽃보다 남자 허술하게 만들었다고 욕하지 말라'고 분개하는 댓글에다 '그럼 너는 천추태후 보다가 운동화 신은 놈 나와도 좋으냐'고 답글을 다셨던데 제 말이 그말입니다. 이 드라마 수출까지 한다는데 너무 막나가면 민망하잖습니까.

2부의 도입부는 시간이 충분한 상태에서 찍은 덕분인지 1부 끝부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몇번 더 볼때까지 평가를 미뤄야 할 듯 합니다.





그 전의 꽃남 관련 글들입니다.


12부에서 극에 달한 '꽃보다 남자'의 허술함에 대한 농담


꽃남들의 운명에 대한 글



벌떡 일어선 이민호가 뿌린 화제에 대한 글



관련이 있다면 있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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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박중훈 쇼'의 게스트로 최양락이 나와 좋았던 옛 시절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때 박중훈이 최양락의 알려지지 않은 영화배우 경력을 폭로(?)했죠. 최양락은 87년 이후 총 6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박중훈이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뭣보다 두 사람이 한 작품에서 공연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규형 감독의 1987년작,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입니다. 흔히 '청춘스케치'라면 이 영화였는데 뒤늦게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1994년작 'Reality Bites'가 '청춘스케치'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출시되면서,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라는 긴 원제를 다 얘기해야 통하는 영화가 돼 버렸습니다.

지금이라면 우스운 숫자지만 1987년 7월 개봉한 이 영화는 2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6월 항쟁 때 깔린 종로 거리의 최루탄 가루가 아직 다 흩어지기 전인 정치의 시대였지만 오히려 그런 분위기 때문에 갑갑한 청춘들에게는 피난처 역할을 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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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하는 분들이 꽤 있겠지만 한국 대중문화는 1985년 스포츠서울이 창간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88년 올림픽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컬러 1면과 가로쓰기 체제의 스포츠 신문이 새로 나온 건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죠.

이 신문은 급속도로 젊은 층 독자를 빨아들였는데, 당시의 제작1선에 섰던 분들은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규형이라는 새로운 인물의 주간 연재 소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였죠. 감각있는 필체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던 글쟁이 이규형 감독은 턱없이 순수하지만 현실에서는 별볼일없는 남자 대학생 철수와 역시 그저 그런 여대생이지만 장래에 대한 꿈 만큼은 원대한 미미 커플을 등장시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웃기는 짜장면' '슬픈 울면' 같은 표현도 이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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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소심하고 빌빌한 철수와, 술 - 주먹 - 미모(책에는 나중에 미미가 영화배우로 캐스팅되는 사연까지 나오죠)만큼은 탁월한 미미 커플은 대단한 인기였습니다. 영화 데뷔작인 '청 블루 스케치(천호진과 허준호의 데뷔작)'로 감각을 인정받은 영화감독이었지만, 아무래도 당시의 이규형 감독은 글쟁이로서의 재능을 한층 높이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1986년 연말, 소설 '청춘스케치'가 미미와 철수의 결혼생활로 접어들어 아직 연재되는 상황에서 태원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은 '청춘스케치'의 영화화를 결정합니다. 뒷날 '서편제'를 만든 한국 영화계의 거목이지만 당시까지는 소장파 제작자에 속했던 분이죠.

영화판의 주인공은 세 사람. 철수, 미미와 철수의 친구 보물섬이었습니다. 철수 역은 '깜보'로 가능성을 인정받은 박중훈, 보물섬 역은 '가슴을 펴라'라는 영화로 주목받은 김세준으로 일찌감치 결정됐습니다. 미미는 '엽기적인 그녀'의 원형을 이루는 말괄량이로 워낙 선명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수많은 배우들이 거론됐지만 결정은 쉽게 되지 않았죠.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강수연이 이 역할을 맡게 되면서 다른 주장은 쑥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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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신화는 이뤄지기 몇달 전(물론 '씨받이'는 1986년 개봉됐었죠)이었지만 강수연은 다른 두 배우와는 격이 다른 스타였습니다. 1970년대 아역 시절부터 지존의 미모로 신화적인 인기를 누렸고, '고교생일기'나 기타 다른 드라마로도 익히 잘 알려져 있었던 배우였기 때문입니다.

이밖에 조연급으로 '최 아랑드롱'이라는 역할이 있었습니다. 이 역할은 본래 소설에선 철수를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이태원으로 데리고 가 프로의 위력을 보여주는 초절정 미남이었지만 영화에선 말만 앞세우는 속빈 강정 캐릭터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 역할은 당시 이규형 감독과 친분이 두터웠던 개그맨 최양락의 차지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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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형 감독은 최양락을 캐스팅할 때 '강수연과 러브신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강수연과 단 한 신도 함께 출연하지 않아 뒷날 '속았다'며 투덜댔습니다. 최양락은 15일 방송에서 "그래서 시사 이벤트 때 콩트를 짜 실컷 껴안아 봤다"고 뒷얘기를 하기도 했죠. 최양락은 이후 이규형 감독의 영화 '어른들은 몰라요'와 '난 뭔가 깜짝 놀랄 일을 할거야'에 잇달아 출연해 인연을 이어 갔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될 당시 이규형 감독은 흥행을 위한 영화 홍보에도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신기법을 활용해 주목을 끌었습니다. 대대적인 엑스트라 모집 광고도 그중 하나였죠. '철수 뒤에서 짜장면먹는 남자 역, 미미 뒤에서 짬뽕 먹는 여자 역, 지하철에서 조는 남자 역' 등의 조역들을 일반인들로부터 공모를 받아 채우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의대생 역에는 진짜 의대생, 법대생 역에는 진짜 법대생을 캐스팅하겠다는 공고도 있었죠(절반 정도 성공했습니다).

사실 이런 아이디어를 내놓기 위해 이규형 감독은 오래 전부터 혹독한 브레인스토밍을 거쳤습니다. 7-8명으로 구성된 팀이 늘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감독과 김영남 조감독(뒷날 최진실의 데뷔작인 '꼭지딴' 감독)이 판정위원이 되는 식의 회의였죠. 이때 회의를 거친 사람들 중 상당수가 90년대에서 현재까지 한국 예능 방송계를 이끌어가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음악도 꽤 주목을 끌었습니다. 일단 1986년 발매된 산울림 11집 수록곡 중 2곡이 메인 테마로 쓰였습니다. '그대 떠나는 날 비가 오는가'와 '안녕'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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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두 곡 외에도 가수 최성수가 프로듀서 역할을 맡은 O.S.T에는 당시 꽤 주목받던 노래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오프닝에 흐르던 손현희의 '오늘은 어떤 일이'에서, 미미의 나이트클럽 신에 나왔던 벗님들의 '우리의 젊음', 그리고 최성수의 '내사랑 미미'까지 꽤 짭짤한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참 22년전, 어제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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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이 영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일까요?^

산울림의 '안녕'입니다.



p.s. '박중훈 쇼'가 날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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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영화의 완성도나 재미에 대한 판단은 꽤 엇갈립니다만, 개인적으로 눈길이 간 건 이 영화의 제목입니다. (이 글은 이 영화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이 영화 아직 못봤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를 열심히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대사 "He's just not that into you"는 드라마 속에서 여자들이 일반적인 남자의 생리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주는 소재로 쓰였죠. 여자들은 늘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여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살다 보면 참 많이 느끼게 됩니다.

얼마 전 한 여자 후배에게 일어난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후배는 20대 후반. 소위 명문대를 나왔고 다른 일에서는 무척이나 야무지고 똘망똘망한 친구입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하루는 소개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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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을 했는데 제법 마음에 드는 남자가 나왔답니다. 게다가 매너가 짱이었다는군요. 영화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호스트 역을 맡은 김주혁도 "프로 호스트들을 만나 보니 인물은 크게 대단한 게 없었다. 역시 매너는 끝내 주더라"는 얘기를 하는 걸 보면 매너, 중요하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남자는 식사와 차로 이어지는 첫날 소개팅 풀코스를 무난히 소화하고, 후배의 전화번호를 알아 갔습니다. 물론 조만간에 다시 보자는 립 서비스도 했죠. 하지만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저는 좀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소개팅의 상식 중에 상식인 일을 이 후배가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 일주일째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가 걸려오지 않자 후배는 주선자를 닦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전화를 한다더니 전화가 걸려오지 않는거냐. 그 남자 어떻게 된 거냐.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게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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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라면 후배를 좋게 보고 남자 하나 붙여주려 했던 죄밖에 없는 애꿎은 주선자는 또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봅니다. 물론 이 이후의 상황은 불보듯 뻔합니다. "요즘 매우 바쁘다. 여유가 생기면 연락하겠다." 지극히 교과서적인 대답입니다.

하지만 후배는 이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전화를 기다리다가 급기야는 친구들에게 이 남자를 씹어대기 시작합니다. "뭐야, 처음부터 기대를 갖게 하질 말던가. 전화한다고 해 놓고 왜 전화를 안 해. 남자들은 이상해. 그놈만 이상한 걸까? 하여간 이상해."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웃음이 터져나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를 열심히 보신 분이라면 아마 이와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보셨을 겁니다. 특히 시즌6의 4번째 에피소드, <Pick-A-Little, Talk-A-Little> 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캐리의 애인 잭 버거가 네 여자와 담소를 나누는데 미란다(혹시 모르시는 분이라면 사진 맨 오른쪽)가 얼마전의 만족스러운 데이트 이야기를 합니다.

첫 데이트에서 키스를 두 번이나 했는데 남자가 유감스럽게도 다음날 바쁜 일이 있어서 그냥 갔고, 곧 전화를 한다고 했는데 지금껏 전화고 이메일이고 오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데이트때 그렇게 좋았다면 곧 전화가 오겠지"라며 맞장구를 칩니다.

하지만 잭 버거는 '진실을 원하느냐'고 묻고, '그 남자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은 것 뿐(He's just not that into you)'이라고 말해줍니다.



이 대사는 나중에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토리 어드바이저였던 그렉 버렌트 (Greg Behrendt)가 쓴 연애 지침서의 제목이 될 정도로 유명한 한마디가 됐습니다(그리고 당연히 이번엔 영화의 제목이 됐죠).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런 상황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여자들은 의외로 잘 모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후배의 이야기를 전해 준 다른 후배(역시 비슷한 또래의 비슷한 스펙입니다)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역시나 "그 남자가 좀 이상한 사람 아니냐"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설명했죠.

"그 남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 남자가 소개팅에서 **이(소개팅을 했던 후배의 이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대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했을까?"

소개팅이라는 건 참 묘하게 예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일단 주선자의 얼굴을 생각해야죠.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가 나온다고 해서 마구 행동해선 안됩니다. 최대한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거죠.

이런 예의바른 행동을 자기에 대한 지나친 호감으로 착각해선 곤란합니다. 첫날은 누구나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키죠. 그 예의에는 '상대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것'도 포함됩니다. '잘 들어가셨나요' 정도의 귀가 확인 문자도 이 예의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기껏 잘해주더니 전화도 안 거는 이상한 놈'이라고 상대를 매도하는 것은 대단히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첫날의 그 남자는 여자에게 호감을 표시한 것이 아닙니다. 진짜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는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날 약속을 하는지 마는지'에 달려 있는 거죠.

물론 아주 드물게 손가락이 부러졌다든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든가, 회사가 망했다든가 하는 일로 전화를 못 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면 남자는 절대로 소개팅에서 만난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전화를 생략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바로 다음날 전화를 걸게 되고, 제아무리 선수라 해도 일주일을 넘지 않습니다. (선수일수록 전화를 늦게 하는 경향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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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입니다.

첫 만남 이후에 남자가 전화를 걸어오기까지의 기간은 그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를 확인해주는 시간입니다. '첫날'은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첫날 아무리 잘 대해 줘도 그건 그 남자의 일상적인 행동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가끔은 이럴 때 여자 쪽의 친구 중에 '그럼 니가 전화를 해보면 되잖아'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친구는 멀리 하는게 좋습니다. 물론 가끔은 이런 식으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할 때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런 전화가 걸려오는 순간 남자는 그나마 있던 정(?)까지도 떨어지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여자를 스토커 취급하고 경계 태세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자신이 어느 정도 여자에게 매력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록 더욱 그렇죠.




만약 정말로 그 남자에게 전화를 한번 걸어보고 싶어진다면, 최소한 열흘은 기다려 보는 게 좋습니다. 열흘이라면 어떤 남자라도, 호감을 느낀 여자에게 전화를 걸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시간입니다. 열흘 내에 전화하지 않는 남자는 1년이 지나도 전화하지 않습니다(어쩌다 술을 한잔 먹으면 전화할지도 모릅니다. 이건 또 다른 심각한 문젭니다. 절대 넘어가면 안됩니다).

따라서 열흘이 지난 상태에서 전화를 하는 건 '밑져야 본전'인 상태가 되는 겁니다. 이때도 뜨뜻미지근한 상태라면 조용히 마음을 접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이런 전화는 하지 않는게 더 좋죠. 정말 제법 매력있는 남자라면, 이런 전화 한통에 왕자병이 더욱 심해질 수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p.s. 요즘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남자들이 나약해져서 '여자들이 빨리 반응을 안 보이면 그냥 발 뺀다'는 친구들이 꽤 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 고, 전화도 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도 있더군요.

뭐 세상이 좋아졌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하지만 남자라면 진득하게 달려드는 맛이 있어야지, 그런 찌질이들을 뒀다 뭐에 쓰겠습니까. 그런 남자라면 오히려 연결 안 되는게 여자들의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긴, 자기 앞으로 건물 두채 쯤 있는 남자라면 적극적으로 달려들 만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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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이런 영화가 또 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데이빗 핀처는 잘 알려진대로 '에일리언 3'에서 '세븐', '파이트 게임'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묵직한 작품들을 남겨왔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보고 나서 만든 듯한 '조디악'에서는 좀 달랐지만 그의 영화 세계는 보는 사람이 눈치채든 그렇지 않든, 언제든지 과감한 시각적 모험을 시도했습니다.

이번에 그가 시도한 영화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남자에 대한 거였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비주얼만 요란한 영화들을 가리켜 'CG로 떡칠을 한 영화'라고 비아냥대기도 하죠. 하지만 핀처는 'CG로 떡칠을 하건 말건' 그건 좋은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몸소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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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차대전 승전 기념 축제가 열리던 1918년 어느날, 한 소년이 80세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곡절 끝에 양로원 앞에 버려진 아이는 선량한 도로시 부부를 만나 벤자민(나중에 브래드 피트가 되죠)이라는 이름을 얻고, 자신이 타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고 잘 자라납니다.

7세에서야 걷기 시작한 벤자민은 십대의 어느날, 예쁜 소녀 데이지(뒷날의 케이트 블랜칫)를 만납니다. 데이시 역시 노인의 모습인 벤자민을 낯설어하지 않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됩니다. 그로부터 점점 젊어지는 벤자민과 정상적으로 나이를 먹는 데이지의 평생을 가는 사랑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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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입니다. 남들이 겪는 세월을 거꾸로 가는 사람. 1922년에 나온 원작과 영화의 얼개가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의 기발한 소재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거의 3시간에 걸친 이 영화를 관통하는 소재는 '남과 나의 다름'에 대한 비유입니다.

만약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이 실제로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는 살아가면서 어느 세대와도 진정한 유대나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울 겁니다. 유소년기에는 마음이 젊은 데 비해 몸은 늙어서 어느 한 쪽과도 어울리기 힘들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노년기에 접어든다면 젊은 겉모습 때문에 양쪽 모두와 어울리기 힘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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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유일하게 그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차이를 잊을 수 있는 시기는 인생의 한 복판, 중년일 겁니다. 그때가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외모와 나이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이 짧은 시기를 위해 앞의 반생을 보낸 그는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모든 사람들과 이별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셈입니다.

이런 남과 다름에 대해 벤자민 자신은 한번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좌절하지도 않죠. 거기에 연연하지도 않고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남의 시선 따위를 의식할 틈은 그에겐 없습니다.

물론 '벤자민 버튼...'은 이런 벤자민이 느끼는 본질적인 슬픔을 그때마다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미덕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은 누구나 그의 외양을 보고 그를 판단하지만 역시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그 다름이 사람 누구나 갖고 있는 개별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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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이 한폭의 동화에 다른 영화 한 편이 겹쳐집니다. 바로 '벤자민 버튼...'의 시나리오 작가 에릭 로스를 스타로 만든 '포레스트 검프'죠. 포레스트 검프가 남과 다른 부분이 지능이었다면 벤자민 버튼의 다름은 남들과 반대인 외모입니다. 하지만 둘 다 남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둘 다 자신들이 왜 남과 달라졌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런 신세 한탄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 따위는 없습니다. 두 사람 모두 남들이 보기에 '열등한 인자'라고 할만한 것들을 타고 났지만 스스로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좀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죠.

검프와 버튼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일생의 한 사람, 진정 사랑한 여인의 의미입니다. 검프에게 그 여인은 어린 포레스트만 남겨줄 뿐, 평생을 아쉬움 속에서 지내다 사라지지만 그나마 버튼은 반생을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검프와는 달리 이들 커플은 처음부터 인생의 한 시기 외에는 함께 살 수 없는 운명이죠. 이들 커플이 아이를 낳고 해로하기에는 세상의 벽이 너무 높습니다. 정상적으로 점점 늙어가는 아내와, 언젠가는 자신의 아이들보다 더 젊어질 남편이 함께 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동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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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로스의 성숙을 느끼게 하는 부분은 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 벤자민의 노년에 대한 부분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 벤자민(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과 그를 바라보는 데이시의 모습은 오랜만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감동을 자아냅니다.

알려진 것과는 달리 벤자민 버튼의 모든 세대를 브래드 피트 혼자 연기하지는 않습니다. 5명의 다른 배우들이 각자 연령대에 맞는 역할을 연기합니다. 물론 피트의 특수분장이 한몫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특히나 50-60대 정도로 분장한 피트의 모습은, 물론 지금까지도 몇만번 들은 얘기겠지만, 로버트 레드포드와 너무나 흡사해서 감탄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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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팅에서 유일한 아쉬움은 케이트 블랜칫이 예쁜 여자 역으로 나온다는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연기력으로 자기 몫을 합니다. 틸다 스윈튼은 여전히 현실에 있을 법 하지 않은 신비로운 역을 맡았고, 줄리아 오몬드는 결국 1990년대 한때의 각광이 거품이었음을 증명하더군요.

몇몇 평론가연하는 기자들이 '그래도 좀 지루했다', '러닝타임이 너무 길었다', '밋밋했다' 등의 관점을 내놓고 있던데 한번 정말 그런지 직접 겪어 보시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그런 말에 관람을 포기했다가 진짜 좋은 영화를 놓치는 경우는 매우 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영화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벤자민의 인생 역정에 자신의 연령대를 투영해 보는 것일 듯 합니다. 과연 저 나이 때의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혹시 내가 나이에 비해 너무 성숙하거나 너무 미숙해서 동년배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을까. 지금의 나는 과연 나의 동세대와 얼마나 어울리고 있을까. 이런 자문자답과 함께,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원하는 모습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면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해야 할 몫은 충분히 다 한 셈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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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 아기가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사이에서 태어난 딸 샤일로입니다. 이 영화에는 뒷부분에 벤자민-데이지 사이의 딸 역으로 잠깐 출연합니다. 물론 1년 전 모습이니 이 사진보다 훨씬 어려 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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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데이는 초콜렛 주고 받는 날입니다. 뭐 이 날이 일본 제과업계의 상혼에서 비롯된 거니 뭐니 케케묵은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 글에서 밝히고 싶은 것은 축복받은 연인들의 날인 발렌타인데이가 아닌, 저주받은 암흑의 발렌타인데이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매우 충격적인 날입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이 발렌타인데이는 Ballantine's Day라고 씁니다.

스펠링은 어차피 잘 모르셨죠? 참고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발렌타인 데이, 언론이 밸런타인데이라고 쓰는 Valentine's Day와는 다른 날이란 말입니다.

이 두개의 차이는 뭘까요? 기왕 얘기를 꺼낸 김에 발렌타인데이의 유래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자코포 바사노, 성 루칠라를 세례하는 성 발렌타인, 1575 -


이 날은 3세기 후반, 로마 황제 클라디우스 2세 시절 사형당한 순교자 발렌타인, 혹은 발렌티누스의 이름을 따 온 날입니다. 하지만 그의 생몰연대며 신상은 모두 불확실하고, 이 인물과 관련된 전설은 상당 부분이 13세기 영국의 제프리 초서(<켄터베리 이야기>의 저자인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영화 <기사 윌리엄>에도 등장했죠)에 의해 창작된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그리고 초기 교회의 축일이던 성 발렌타인의 날(2월14일)이 낭만적인 연인의 날로 변신한 것도 이 무렵이라는군요.

아무튼 중세 전설에 따르면 성 발렌타인은 로마 병사들의 결혼이 금지돼 있던 시절, 몰래 병사들과 아내들의 결합을 도와줬다고 합니다.

물론 연인의 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 날의 유래는 더욱 깊어집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2월 중순 언저리의 기간은 Gamelion이라는 이름으로 헤라와 제우스의 결혼을 축하하는 기간이었다고 합니다.

또 기독교 이전 로마에서 2월15일은 루퍼칼리아(Lupercalia)라는 축일이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인 로물루스 형제에게 바쳐진 날이었죠. Luper는 바로 늑대, 즉 로물루스 형제에게 젖을 먹인 그 동물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각에서 말하는 '늑대의 습격을 피하기 위한 축제' 운운은 아무런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496년 교황 겔라시우스가 루퍼칼리아 축전을 금지하고 기독교의 성일인 발렌타인 데이를 2월14일로 공표합니다. 아무튼 고대 로마인들의 동지 축제 가 크리스마스의 기원이 됐듯, 오늘날의 발렌타인 데이는 이 루퍼칼리아 축전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사실 좋은 일만 있던 날도 아닙니다. 1349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는 기독교인 폭도들에 의해 2000명의 유태인들이 몰살당합니다. 이것이 유명한 '발렌타인데이의 학살'이라는 것이죠.




(위 그림) 뉴질랜드를 발견한 제임스 쿡 선장은 1779년 발렌타인데이에 하와이에서 원주민들과 사소한 시비 끝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도 1910년 이날 사형선고를 받았군요.

아무튼 이 날을 상업적으로 처음 이용한 것은 미국의 카드 회사인 홀마크 사였고 그 다음에는 미국의 보석업계, 그리고 일본의 제과업계입니다. 물론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아무리 연인들의 날이라도 서구 기독교권에서 발렌타인데이는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꽃이며 과자를 선물하는 날입니다. 반대라도 무방하긴 하지만, 일방적으로 여자가 남자에게 전해 주는 날로 못박힌 것은 한국과 일본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찬란한 발렌타인데이의 역사 속에서, 어두운 빛을 뿜는 발렌타인 데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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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두 개의 발렌타인은 슬쩍 다릅니다. 연인들의 날 발렌타인 데이는 Valentine's Day, 그리고 위스키 발렌타인에서 나온 암흑의 발렌타인 데이Ballantine's Day입니다. 두 개의 발렌타인을 혼동하셨던 분들은 이 기회에 구별하시기 바랍니다.

Ballantine's Day도 날짜는 Valentine's Day와 같은 2월14일입니다. 하지만 여러명이 모인다는 사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싱글이어야 한다는 사실이 다릅니다. 몇명이 모이건, 사람 수대로 발렌타인 위스키를 병나발을 불고,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헤어지는 날입니다.

(구라 아닙니다. http://www.nationmaster.com/encyclopedia/Ballantine's-Day
 위키피디아의 이 항목은 삭제된 듯 합니다.)



Ballantine's Day는 한국의 블랙데이(4월14일, 애인 없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짜장면을 먹으며 비탄에 빠지는 날)와 아주 비슷한 날이라고 할 수 있지요. Valentine's Day와 같은 날이라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는 날입니다.

V데이를 즐길 수 있는 분보다는 B데이를 즐겨야만(?) 하는 분들이 더 많은게 역사의 진실이고 보면 발렌타인 위스키 컴퍼니는 하루 빨리 마케팅의 힘으로 이 날을 더욱 넓게 전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Ballantine' Day를 맞는 분들이 얼른 이런 카드를 받을 날을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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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간에 그래미상과 서울가요대상이 함께 열렸습니다.

'소 핫'과 '노바디'의 원더걸스가 대상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물론 두 다른 그룹의 모습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도 인지상정이죠.

이 자리에 우주의 기원을 이름으로 삼은 그룹은 등장했지만 무협지적인 이름을 가진 그룹은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시상식의 여파는 과연 어떻게 미칠까요. 서울가요대상 3일 전에 쓴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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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에 그래미상이 생긴다면

국내 팝 시장의 몰락과 함께 그래미상 시상식 결과에도 별 관심이 쏠리지 않던 차에 올해는 뜻밖에도 반가운 이름의 수상 소식을 들었다.

로버트 플랜트. 전설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리드 보컬인 그가 만 61세에 5개 부문을 휩쓸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동방예의지국에서라면 다른 상은 제쳐두고 레드 제플린의 결성 40주년(이들의 데뷔 앨범은 1969년에 나왔다)인 올해, 공로상부터 드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을 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해본다. 만약 이번 그래미상이 한국에서 열린 행사였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졌을까. 그리 유쾌한 일만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미상의 최고 영예는 싱글을 대상으로 한 '올해의 레코드', 앨범을 대상으로 한 '올해의 앨범', 그리고 작곡자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노래'로 압축된다. 이 3개의 상은 모든 장르를 통틀어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이다. 단 이 3개 가운데서 우열을 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누가 1등인지 가려야 하기 때문에, '올해의 노래' 부문 수상자로 내정된 콜드플레이는 "우리의 수상 순서가 마지막이 아닐 경우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어거지를 쓴다. 어쨌든 마지막에 주는 상이 가장 중요한 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최우수 남성 R&B 보컬의 2개 부문을 수상한 니요는 대중성에서 최고인 자신이 3개의 대상 중 하나도 차지하지 못한다는 건 주최측의 농간이라고 주장하며 역시 해외 투어를 떠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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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남성 팝 보컬상을 받은 존 메이어의 광적인 여성 팬들은 메이어의 싱글 '세이'가 왜 올해의 앨범상(?)을 받지 못했느냐고 대대적인 인터넷 댓글로 그래미상 흠집내기에 나선다. 여기에 싱글과 앨범의 개념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자칭 기자들까지도 팬들의 편을 들고 나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최우수 헤비메탈 가창/연주상을 받은 메탈리카는 그 상은 벌써 다섯 번이나 받았다며 불참을 선언해 버린다.

말도 안 된다고?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공신력있는 한국의 빌보드 차트와 한국의 그래미상'을 신설해 음악산업 진흥에 이바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상식이 없어서 음악시장이 침체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가요계 종사자들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미 가요계는 지난 2004년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 시상식에 불신을 표명하고, 독자적인 시상식을 만들겠다고 주장해왔다. 이 시상식은 아직 한번도 치러지지 못했다. 국내에 몇 남지 않은 다른 시상식에 대해서도 '내가 받으면 좋은 상, 못 받으면 나쁜 상'이라는 가요계의 기본적인 인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어떤 시상식이든, 상의 공신력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가요계와 문광부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가 심사를 하든, 어느 기관이 주관을 하든 '한국판 그래미'의 앞날도 그리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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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단의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강조를 위한 표현입니다. 물론 주는 사람이 잘 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시상식이든, '주는 사람'의 몫은 30% 미만입니다. 나머지는 받는 사람들이 그 상을 어떻게 인정하고, 예우하는지에 달린 겁니다.

주는 사람이 자기 몫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상은 당연히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주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도, 받는 사람들이 외면하면 그 상은 아예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대형 기획사와 톱스타들이 모든 시상식을 "우리야, 쟤네야? 우리가 아니면 안 가"라는 식의 파워 게임의 장으로 생각하는 한, 문광부 아니라 청와대가 시상 주체로 나서도 '한국의 그래미'는 존재하기 힘듭니다. 아, 차라리 문광부 아닌 국세청이 주관 기관으로 나서서 '이유 없이 불참하는 기획사에는 당장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엄포를 놓는다면 이런 식의 파워게임이 종식될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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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로버트 플랜트와 앨리슨 크로스의  Please Read The Letter 입니다. 플랜트의 사자후를 기대하셨던 분이라면 무척 실망하시겠지만, 이런 창법도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모든 다른 상이 그렇겠지만, 그래미상은 특히나 '그간의 공로(60) + 이번 음반의 성과(40)'를 기준으로 수상자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릭 클랩튼도 그래미에서는 대부분 중년 이후에 상을 받았죠. 중년 이후의 음악이 탁월해서라기보다는 '젊어서 못 준 상'을 미뤘다 줬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날도 꿀꿀한데 Led Zeppelin의 대표작 중 하나인 Immigrant So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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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이자 인생의 활력소가 가끔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이 짓을 왜 시작했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갑자기 멈춰선 방문자 수가 위산을 분비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블로그라는 놈을 시작한게 2006년 5월 1일, 지금의 집으로 옮겨 온게 작년 5월입니다. 정든 옛 집을 떠날 때에는 그동안 쌓아온 히스토리가 아깝기도 했지만 옮기고 보니 훨씬 요란한 새집이 돼 버렸습니다.

800만 조금 넘었을 무렵에 떠나온 그 옛날 집에도 하루에 1000명, 2000명씩 방문자가 발생해서(검색 엔진의 힘인지, 아직도 즐겨찾기를 움직이지 않고 옛날 집을 통해서 들어오시는 분들이 있는지^) 그래도 조금씩은 숫자가 늘고 있었는데, 간밤에 숫자가 역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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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900만을 넘었습니다.

물론 최근 몇달은 한달에 100만 이상 방문자수가 붙었기 때문에 900만이 그리 오래 갈 숫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블로그 시작하고 처음 도달한 숫자라 느낌이 각별합니다.

요즘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이라 자축 모임이나 이벤트는 좀 힘들 것 같고, 포스팅으로 그냥 의미를 남길까 합니다(사실 퀴즈 낼 여력이 좀 부족합니다^^). 현재 목표는 이번 달 안으로 천만을 넘는 건데, 그때는 반드시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자축곡은 당연히 -




가사가 들어 있는 버전도 있지만 일본어 노래에 거부감을 느낄 분들도 있을 것 같아 연주곡 버전으로 들어 봅니다. 지금도 가사가 귓전에 맴도는 듯 합니다.

저넓은 은하수 헤쳐나가는 달려라 009 우리의 용사
평화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 아아아 무적의 009

라고만 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스폰서가 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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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월27일 오후 9시 부터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올해 백상예술대상 시상식(http://isplus.joins.com/100sang/) 에 몇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약 3일 동안 응모를 받았는데 벌써 지나치게 많은 분들이 응모해 주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좀 더 일찍 끊었어야 했는데... 아무튼 먼저 약속한 15분에게 초대권을 2매씩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초대권을 받을 분들은 다음 포스팅에 공지했습니다.





누가 나오는지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최소한 이 친구들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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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성인블로그의 제왕이신 Lezhin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얼마전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축전'이란 말도 처음 들었는데 두 개의 포스팅이 사람을 쓰러뜨리더군요.

문제의 포스팅은 http://lezhin.com/186 과 http://lezhin.com/187 입니다. 반드시 순서대로 보셔야 합니다. Lezhin님, 존경합니다. (아, 제 메일 주소는 fivecard@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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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KBS 2TV '꽃보다 남자'의 연출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10일 방송된 12부를 보다가 쓴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구준표(이민호)는 이날 제하(정의철) 패거리에게 죽도록 맞다가 나머지 F3에 의해 구출됩니다.

다음 장면. 구준표가 여기 저기 다친 얼굴로 금잔디(구혜선)의 병상을 지킵니다. 이어지는 닭살 신을 생략하고, 사채업자들에게 납치된 금잔디 아버지를 건너 뛰어 F4와 금잔디는 스키장으로 갑니다. 놀랍게도 구준표의 모든 상처가 말끔히 나아 있군요! 얼굴 어디에도 죽도록 맞은 상처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타박상과 멍이 그렇게 말끔하게 다 가시려면 한달은 걸렸을텐데(폭행 내용으로 보아 갈비뼈도 몇개 부러졌을텐데 스키 타는 몸놀림을 보면 전혀 부상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갈비뼈가 붙으려면 최소 두달은 걸릴텐데...^^), 그 한달 동안 구준표의 어머니 강희수 여사(이혜영)는 구준표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거겠군요. 그리고 금잔디가 돈도 돌려줬으니, 그 한달 동안 금잔디의 아버지는 사채업자들에게 과연 무슨 꼴을 당했을까요. 그걸 뻔히 알면서도 구준표와 먹을 계란말이 도시락을 싸고 있는 금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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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런 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습니다. 스키장. '강원도 일대의 폭설로 교통이 두절되고...'라는 뉴스를 윤지후(김현중)가 보고 있고, 가을(김소은)이 달려와 잔디가 없어졌다며 걱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교통이 두절'됐다는 그 순간, 구준표를 서울로 데려가는 보디가드들의 차는 깨끗한 고속도로를 씽씽 달리고 있습니다. 구준표가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건너편의 길도 마찬가지. 눈은 커녕 얼음 한조각 보이지 않는 길에서 차들이 쌩쌩 구준표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차가 빨리 달려서 폭설구역을 이미 지나갔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구준표는 다시 폭설 속의 스키장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럼 구준표는 대체 무슨 수로 폭설구역을 지나서 금잔디를 찾으러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이 두 장면을 종합해 볼 때 구준표는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입니다. 그래서 포장마차 오뎅을 한 자리에서 50개씩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상처도 며칠이면 싹 나아 버리고, 차도 다닐 수 없는 폭설의 강원도 산길을 무서운 속력으로 달려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장면에서 약한 척 하는 건... 아무래도 금잔디에게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연극인 거죠. (남산타워에서도 감기 증세를 보인 걸 보면 외계인이기 때문에 지구의 감기 바이러스에는 약점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의 실제 모습은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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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자식을 두지 못한 구본형 회장과 강희수 회장이 만들어 낸 인조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신화전자의 첨단 공학의 집합체인 셈이죠. 그래서 고교생으로 설정되어 있고 극강의 전투력과 체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사실은 두세살바기 아기의 지능만 갖고 있습니다. 대신 인공지능에 학습능력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물에는 대단히 호기심을 느끼죠(계란말이도, 오뎅도, 김장도 모르는 건 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시 늘 보던 쭉쭉 빵빵 아이들과 전혀 다른 금잔디에게도 연구 의욕을 느끼는 겁니다. 나머지 F3는 이 비밀을 알고 있지만, 신화그룹의 후계자로 구준표를 키워내야 하는 비밀 임무를 띠고 있기 때문에 항상 구준표를 뒤에서 따라다니며 그의 결점을 감춰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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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 마지막에서 강회장이 긴급히 중국으로 구준표를 데려가는 것도 구준표의 인공지능에 이상이 생겼다고 판단한 강회장이 중국 오지에 있는 신화전자 비밀연구소에 가서 정밀진단을 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13부에서 금잔디는 마카오에서 구준표를 만나지만 싸늘한 대접에 놀랍니다. 강회장이 칩을 몇개 바꿔 넣었기 때문입니다. (쓰다 보니 자꾸 말이 되는 것 같아서 제가 중독되는 느낌입니다. 그만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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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돌아와서...

사실 스키장에서의 조난 장면 역시 아무리 이해하려 해 줘도 어이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스키장에서 과연 조난을 당하는게 가능한지를 접어 둡니다. 드라마의 진행상 금잔디는 스키 극 초보인데, 그럼 가 봐야 가장 완만하고 낮은 초보자 코스였을 겁니다. 초보자 코스 꼭대기에 대체 무슨 장작까지 있는 피난용 오두막이 있는지도 참 안습입니다. 심지어 금잔디를 구하는 구준표의 저 머리 뒤로는 스키장 콘도의 불빛이 반짝이더군요. 대단한 눈보라입니다. 바람을 피할 오두막에, 장작불까지 피워 놓고, 두 사람 모두 방한복을 입은 상태에서 얼어 죽을 것 처럼 호들갑을 떠는 건 뭐 요즘 애들의 특징이라고 치겠지만,

아무튼 제작진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궁금합니다. 뭐 요즘처럼 우울한 시절에 웃을 일을 많이 만들어 주는 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정교한 내러티브나 한 회 한 회의 완결성을 기대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좀 너무 막 나간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제 꼭 절반 지났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무책임한 진행을 보인다면 마지막 무렵엔 과연 어디까지 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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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다음번에는 유령 아니면 닌자일 듯한 윤지후(서울 시내 어디에 있든 금잔디의 위치를 찾아낸다)의 정체나, 대체 소이정 김범이 왜 '꽃보다 남자'에서 조연의 자리에 만족하고 있는지(정답을 슬쩍 공개하자면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고 있지 않을 때에는 하숙범으로 변신, 이원장 댁에 놀러가서 정일우 - 김혜성 형제와 놀고 있다는...)에 대해 포스팅해볼까 합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공약을 지켰습니다.


p.s.2. 그러고보니 '꽃보다 남자' 시작 이후 F4 멤버들은 모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세 멤버가 모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한 반면, 구준표 이민호만큼은 전혀 다치지 않았죠.

...그럼 혹시 구준표가 아니라 이민호가... (심각해지면 지는겁니다.^)



꽃남들의 운명에 대한 글



벌떡 일어선 이민호가 뿌린 화제에 대한 글



관련이 있다면 있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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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심의의 잣대라는 건 참 균형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TV에서 여자 연예인의 비키니 차림이라는 건 대단히 음란한 표현으로 취급되곤 합니다. 여름의 특집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이 모두 수영복 위에 티셔츠를 껴입거나 반바지를 입고 나오는 건 패션 감각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저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가 수영복만 입고 출연한 프로그램에 대해 '보기에 편치 않다'고 눈살을 찌푸리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에게는 '아니 수영장만 가도 요새는 일반인들도 다 저러고 다니는데...'라고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면 또 청학동에서 인터넷 하시는 분들이 '그럼 TV를 수영장으로 만들겠다는 거냐'고 수염을 부르르 떨고 하시는데, 뭐 꼭 그럴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도 좋아하는 사극 드라마에서는 예전부터 훨씬 더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SBS TV에서 곧 방송될 '자명고' 팀이 사진 두 장을 공개했습니다. 자명공주 역의 정려원과 낙랑공주 역의 박민영이 잇달아 '목욕신'을 찍었더군요. 네. 아주 옛날부터 자주 보던, 사극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바로 그 '쇄골 아래 10cm' 짜리 목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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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화끈거리십니까? 애들이 볼까봐 두려우십니까(엄살은...)? 그런데 이런 장면은 벌써 수십번 안방극장에서 재현된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극 드라마를 통해서죠.

현대극에 나왔다면 시청자들이 득달같이 들고 일어날 장면도 사극에 삽입되면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가는 것이 흔히 있던 일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한 2년 전에 썼던 글이 있어서 좀 수정했습니다. 고려하고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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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사극에만 목욕신이 나올까?

사극이 강하다. 2006년 MBC TV '주몽'의 빅 히트 이후 주중 시간대에도 사극과 퓨전 사극 드라마의 고정 편성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이산',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바람의 화원' 등이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주말 사극인 '대조영'과 '대왕 세종', '천추태후', 그리고 퓨전 사극인 '일지매'와 '홍길동'까지 더하면 사극 드라마가 방송되지 않은 주가 없을 정도다.  

심지어 케이블TV에서도 사극(풍) 드라마가 꾸준한 인기다. 조선시대의 수사드라마 '별순검'은 지상파에서도 의미 있는 숫자인 4%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OCN의 '메디컬기방 영화관', CGV의 '정조암살 미스터리 8일'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사극이 왜 인기일까. 수만가지 답을 내릴 수 있지만 사극 붐을 설명할 때 현실에 대한 실망감을 빼놓을 수는 없다. 온 주위를 둘러 봐도 신나는 일이 없을 때. 현실이 너무도 심각하고 각박할 때 사극은 도피의 공간을 제공한다.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미 수백년전에 흙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떤 고민을 갖고 어떤 위기에 처하든 그건 모두 지금의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고로 편안하다.

게다가 사극에는 상당히 풍부한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존재한다. '라쇼몽'의 원작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현대 일본 최고의 문학상으로 꼽히는 아쿠다가와상은 그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는 일찌기 역사 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내가 원하는 설정을 마음대로 맞춰 놓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소설을 쓰는게 아니라 작가가 원하는 이야기를 쓰기 위해 적절한 시대와 배경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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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반드시 이렇지는 않더라도 사극이 현대극보다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훨씬 적절한 형태라는 것은 확실하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사극의 고증이 훨씬 어려울 것 같지만 최근의 퓨전 사극 붐은 이마저도 흐트러놓은지 오래다. 현대극이라면 대단히 민감할 내용도 역사적 인물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훨씬 매끄럽게 전달된다.

심지어 사극은 방송에서 가장 엄격하게 규제하는 섹스와 폭력의 문제에서도 현대극보다 훨씬 관대한 대접을 받는다. '메디컬기방 영화관'이나 '정조암살 미스테리 8일' 같은 케이블 TV 드라마 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방송된 사극 중에서 여주인공의 목욕신이 등장하지 않은 작품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현대극이라면 꽤나 화제가 될법한 수준이 일반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노출만도 아니다. '태왕사신기'에서의 피가 튀는 살육 장면 역시 현대극에서 재현됐다면 방송위원회의 규제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신기한 건 한국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서도 최근 몇년새 붐을 이뤘던 '로마'나 '튜더스'같은 사극에서의 노출이나 폭력 강도는 현대극보다 훨씬 강렬하다. 아마도 '이건 다 현실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서슬 푸른 검열의 손길도 멎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재미있는 사극을 많이 보여준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이 떠나는 것이 드라마 바깥, 실제 세상의 문제 때문이라면 상당히 우울해진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주식회사 한국'의 앞날이 밝을 때에는 드라마도 밝았지만 어느새 TV의 현대극에서는 치정과 불륜 드라마만 살아남게 돼 버렸다. 과연 내년에는 '밝은 현대극'을 볼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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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래서 밝은 현대극이 나왔습니다. (이건 농담.^)

현대극이 싫어서 사극을 본다... 이건 좀 말장난같긴 하지만 현 상황에선 가장 정확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사극에는 목욕신이 나와도 괜찮다'는 선입견 역시, '저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듯 합니다.

아무튼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극이 더 야하고 잔인하다'는 것 또한 절묘하게도 사실입니다. 위에 예로 든 '튜더스'나 '로마'는 정말 대담하죠.




아울러 사극이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한국의 목욕신들.

(왜 꼭 하얀 속곳을 입고 목욕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장희빈'의 김혜수



'황진이'의 하지원




'왕과 나'의 구혜선




그리고 충격(?)이라는 표현도 나왔던 '신돈'의 서지혜




'여인천하'의 강수연






'왕의 여자'의 박선영까지.


정말 너무나 비슷비슷하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독 사극에만 관대한 한국 방송이 모든 시대에 좀 더 관대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자들만 나온다고 뭐라 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건 인정해야 합니다. 영화 '스카페이스'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고 누가 기억이나 해 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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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이 정도면 기억할 만도 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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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의 '꽃보다 남자'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살인마 강호순의 얼굴이 공개되고, 그가 뜻밖에도 인상 좋은 호남형 얼굴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국의 전설적인 미남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를 연상시키면서 잇달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연쇄살인자가 연예인 수준의 미남인 것도 아니고, 미남이 평범한 외모의 남자들보다 더 위험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위험한 성향을 가진 사람, 전문 용어로 사이코패스인 인물들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위험성은 배가될수밖에 없을 겁니다.

특히 미남 연쇄 살인범에 대한 기록들은, 이들이 잘생긴 외모 때문에 일찌감치 수사선상에서 제외되거나 체포된 뒤에도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던 전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죄라는 증거가 뚜렷한 상황에서도 이런 추종자들은 그들이 무죄라고 믿고, 심지어 남편으로 삼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체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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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보다 살인마

1980년 2월9일, 30여 명을 죽인 혐의로 체포된 미국의 살인마 테드 번디(위 사진)는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재판 도중 증인으로 출석해 있던 캐럴 앤 분에게 “나와 결혼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분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법정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이날 번디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잘생긴 외모와 언변에다 법대 졸업 학력까지 갖춘 번디는 매스컴의 주목으로 '살인 귀공자'란 별명과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팬레터가 밀어닥쳤고 일부는 그가 진범일 리 없다고 주장했다. 번디는 89년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자신의 변호인과도 염문을 뿌렸다.

미남 살인마에 대한 기록에는 거의 예외없이 그들에게 매력을 느낀 여성들의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영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샌디 폭스는 74년 미국 애틀랜타의 한 바에서 미남 청년 폴 존 노울스(아래 사진)를 만났다. 폭스는 77년 쓴 책 『킬링 타임』에서 노울스가 “확 눈에 들어오는 잘생긴 얼굴과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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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미 18명을 죽인 노울스는 그날 밤 자신의 범행을 상당 부분 털어놨고, 폭스는 “섬뜩함을 느꼈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고 전했다. 뒷날 체포된 그에게는 면회를 요청하는 여성들이 끊이지 않았다. 언론은 그를 '카사노바 킬러'라고 명명했다.

미남 살인자들의 인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범죄심리학자들은 위험한 범죄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향을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라고 통칭한다. 이에 대한 유력한 설명은 구원 판타지다. 여성들은 설혹 상대가 연쇄살인마라 할지라도 자신의 사랑으로 그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녀와 야수 신드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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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재판이 주는 긴박감이 보는 이를 성적으로 흥분시킨다는 가설, 또 유명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동경, 범죄자 내면의 외로움을 자신만이 달랠 수 있다는 믿음 등이 있다. 그리고 간혹 발견되는 미남형 범인들은 이런 경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다는 것.

살인마 강호순의 미남형 외모가 공개되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그가 자신의 매력을 피해 대상인 여성들을 유혹하는 데 사용했다는 수사 보고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인터넷에는 '강호순 팬카페'까지 등장했다. 누군가의 치기 어린 장난이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도 일각에서는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 TV 프로그램들이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들 한다. 하지만 미남 살인마들을 둘러싼 기록을 보면 외모에 대한 선호는 이미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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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번디는 30여명의 살해를 인정했지만 실제로 그가 죽인 여자는 1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번디는 1980년 사형 판결을 받은 이후 줄곧 "속죄의 의미에서 경찰에게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전모를 밝히겠다"며 사형 집행을 1989년까지 연장했지만, 결국 재판 결과 외에는 아무 것도 더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9년 동안 수없이 많은 경찰, 기자, 성직자, 심리학자와 프로파일러들을 만났지만 주장에는 일관성도 없었고,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식의 고백과 면담은 모두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려는 술책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사형 집행 전날까지도 유명한 포르노 반대자인 제임스 돕슨 목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포르노를 금지하지 않으면 소년들이 제2, 제3의 번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수사관들은 "그 이전까지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범행이 포르노의 영향이라고 말한 적도 없었고, 그의 소지품에서 포르노가 나온 적도 없었다"고 비웃었습니다. 결국 이 인터뷰 역시 돕슨 목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대가로,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돕슨 목사가 자신의 사형 집행을 연기시켜 줄 것을 기대한 쇼였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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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캐럴 앤 분과의 결혼 역시 대중을 의식한 연기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번디와 분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은 번디가 자신의 애인이라고 믿었습니다. 분은 번디가 주로 살해한 피해자들과 비슷한 특징 - 긴 갈색 머리,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마, 가녀린 몸매 - 을 갖고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번디는 분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분은,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은 것은 그가 일련의 살인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던 거죠. 유력한 증거였던 던디가 사체에 남긴 깨문 흔적조차도 분은 "경찰의 조작"이라고 우겼습니다.

법정에서 결혼한 뒤 1982년 번디의 딸까지 낳은 분은 그러나 1986년의 어느날, 번디와 이혼을 선언한 뒤 이름을 바꾸고 사라졌습니다. 뒤늦게나마 환상이 깨진 모양이죠. 번디의 딸이 살아있다면 현재 27세. 과연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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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린 리오이라는 여자는 13건의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리처드 라미레스(위 사진)에게 구애하다가 결국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리오이는 라미레스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 자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미레스는.... 살인범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면 흉악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본다면 '강렬한 개성의 특이한 얼굴'로 볼 수 있는 용모입니다.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라는 생소한 용어는 성도착의 여러 증상 중 하나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위험해 보이는 남자, 특히 폭력적인 범죄자에게 끌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가끔 '보니 앤 클라이드 신드롬', 혹은 '미녀와 야수 신드롬'이라고 불리던 현상들과 어느 정도 겹치는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모성애의 발로에서든, 아니면 다른 증세에서든 여자들은 악한 남자의 내면에서 구원의 여지를 찾고 거기에 헌신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죠. 물론 모든 여자가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약간 비약하자면 많은 여자들이 순박하고 착한 남자보다 거칠고 못된 남자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슬쩍 이런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살인자에게 느끼는 위험한 매력과 비교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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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까지는 미남 살인자에 대한 여자들의 막연한 호감을 주로 얘기했지만 우리는 이미 그 반대의 경우를 온 국민이 겪어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1988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현희의 경우에 이런 일이 있었죠. 미모 때문에 저지른 범죄의 어마어마한 죄과는 슬쩍 묻혀 버렸던 경험 말입니다. 어찌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은 여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란 말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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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쓸데없이 무거워진 것 같으니 유머로 마감하겠습니다. ^

얼마 전 조인성이 출연한 커피 광고가 '음악 하나 바꿨을 뿐인데' 사이코패스 드라마로 바뀌는 동영상이 유행한 적이 있었죠.

이건 '음악하나 바꿨을 뿐인데' 꽃보다 남자의 미남들이 사이코패스로 둔갑하는 마술들입니다. 먼저 윤지후 김현중 편입니다.




다음은 소이정 김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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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의 제목은 '테이큰'입니다. 네. 혹시나 해서 다시 봐도 우리가 아는, 리암 니슨이 주연한 그 '테이큰'입니다.

작년에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김회장이 생각난다'는 제목을 달아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테이큰'은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어떤 폭력도 무릅쓰는 비밀 요원 출신 아버지의 맹활약을 그린 영화입니다.

벌써 기억에서 희미해진 분들도 있겠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술집에서 싸우다 맞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수십명의 조폭을 이끌고 현장으로 돌진하신 김 모 회장님이 화제가 됐었죠. 참 어처구니없는 얘기지만 중년 남성들 가운데에는 '내 자식이 어디서 맞고 왔으면 야구 방망이라도 들고 보복하러 가는게 인지상정 아니냐'며 은근히 김회장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해하세요. 남자들은 원래 철이 늦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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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년 전에 개봉한 영화가 미국에서 이제 박스오피스 1위를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한국이 세계 영화 시장에서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한국에서 되면 세계에서 된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먼저 개봉하면 한국에서의 장사는 포기해야 한다(불법복제 때문에)'는 씁쓸한 현실을 반영해주기도 합니다.

아무튼 느낌은 이 정도. 이 단순무식과격한 영화를 본 첫 느낌은 바로 이랬습니다.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바로 이겁니다.

저 포스터를 보는 순간, TAKEN이라는 영문 표기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저 TEKKEN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너무나 TEKKEN의 분위기더라는...^^




브라이언(리암 니슨)은 은퇴한 안티테러리스트 에이전트. 지금은 사설 경호원 아르바이트나 하는 처지지만, 한때 나라를 위해 봉사하느라 아내 레노어(팸케 얀슨)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상탭니다. 17세인 딸 킴(메기 그레이스) 역시 거의 만날 수 없게 돼 버렸죠.

그런데 킴이 어느날 유럽으로 연수를 가겠다고 동의서를 받으러 옵니다(미국 법규상 미성년자의 외국 여행엔 친부의 동의가 필요한 모양이더군요). 애를 물가에 내놓듯 걱정이 만발해 있던 브라이언. 결국 마지못해 동의를 해 줍니다.

하지만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킴은 긴급 구조 요청을 해오고... 브라이언은 모처럼 실력 발휘를 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혼한 아내가 키워온 귀여운 딸을 구하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파리로 날아가는 전직 특수요원 아버지. 이런 설정은 제작진에게 몇가지 안전판을 제공해 줍니다. 특히 '테이큰'은 그 이점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액션 영화의 팬들이 기본적으로 남자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름 열심히 살았건만 이제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는 초로의 리엄 니슨은 상당히 동정표를 얻을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또 주인공이 전문직(특수 요원 또는 경찰)이 아니라 피해자의 아버지라는 점은, 폭력의 묘사와 수위,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소 과격하고 비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줍니다. '딸이 죽게 생겼는데' 라는 상황에서,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는 심정을 이입시켜 주는 거죠.



그 결과, '테이큰'의 브라이언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 캐릭터가 되어 버립니다. 인명의 소중함? 이런 건 먼 은하계 밖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재수없게도 총에 맞아 즉사하지 못한 불쌍한 범인은 즉석에서 빨래집게로 전기고문까지 당하죠.

이 장면에서 리엄 니슨은 아주 즐거워 보입니다. "그럼 난 이걸 켜놓고 가지. 정전이라도 되면 누가 와서 꺼 주지 않을까?" 누군가 영화평에 '악당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라고 했던데 적합한 표현입니다. 한마디로 얘들은 '잘못 걸린' 거죠.

이 대목에서는 사실 이 분이 잠시 생각납니다.



("내 아들이 술집에서 맞고 왔다는데, 어떻게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냐구!")

네. 자식 키우는 아버지로서 공감이 가신다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사실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이 펼치는 액션에 비하면 김회장이 하신 정도는 애교로 보이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럼 김회장이 잘 했다는 거냐"며 흥분하시는 분들, 가만 계세요. '테이큰'은 어디까지나 영홥니다. 그것도 킬링타임용 울트라 액션 영화죠. 영화는 그냥 영홥니다. 영화에서 자식사랑이 눈물겹다고 해서,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 회장이 영화와 현실을 구별 못했다는 게 다시 한번 생각나서 들쳐 봤습니다.



실종된 가족 찾기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진짜 영화 중에는 이런게 있었죠.



갑자기 파리에서 사라진 아내를 찾아 동분서주하던 해리슨 포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프랜틱'. 아마 비디오 제목이 '해리슨 포드의 실종'이었을겁니다.

물론 배경이 파리라서 '실종'이 먼저 기억나지만 사실 더 비슷한 영화가 있죠.



진 해크먼과 맷 딜런이 부자간으로 나온 '타깃'.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가 실종되고, 젊은 아들을 혈기로 방방 뜨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가 전직 특수요원이었던 겁니다. 매력이라곤 전혀 없던 소심쟁이 중년 남성이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실종 이후 냉철한 눈빛을 뿜어내며 범인을 추격한다는 분위기 전환이 감상 포인트였죠.




아무튼 '테이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미국산 십대용 공포영화와 상당히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스크림' 이전에 나온 십대용 공포영화(물론 그 뒤에도)들은 대부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른 말 안 듣고 니들끼리 위험한 데 가면 사고난다'는 것이었는데, 이 영화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특히 수많은 슬래셔 무비에서 괴물(혹은 범인)은 주인공들 중 유일한 **에 의해 퇴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브라이언의 딸 킴은 **였기 때문에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죠(뭐 스포일러긴 합니다만, 설마 이런 영화에서 리암 니슨이 파리까지 갔다가 사랑하는 딸의 시체를 안고 비통한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하는 분은 안 계시겠죠?).

게다가 남자에게 방종한 태도를 보이면 벌을 받는다는 것 또한 슬래셔 무비의 법칙 중 하나죠. 문란하게 구는 캐릭터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꼭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





뭐 길게 썼지만 결론은 간단합니다. 평소 스릴러나 액션 영화를 보다가 지나치게 심약하고 도덕심이 투철한 주인공, 그리고 인명를 지극히 중시하는 '착한 주인공'들(이런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일수록 주인공 주변의 착한 사람들이 더 많이 다치고 죽습니다) 때문에 짜증을 느낀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 이상의 강추 영화는 없습니다. 리엄 니슨은 절대로 이 영화에서, '쓸데없이' 착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영화는 또 짧고(90분이면 끝납니다), 간명합니다. 구질구질한 사설도 없고, 거창한 세계관과 인간관을 설파해서 졸음을 유발하는 등장인물도 없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바보가 아니면 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리엄 니슨은 소심하고 인정 많은 주인공들(그들이 "죽이면 안돼! 그에게도 정식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어!"라며 파트너를 제지하는 순간, 죽어가는 척 하던 악당들은 비웃으며 파트너에게 총알을 퍼붓죠)이 그동안 관객들에게 끼쳐 온 폐해를 보상하기 위해 영화 나라에서 온 구호 자원봉사자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런 걸 기대했던 관객 - 뭐 그 중에 저도 있습니다만 - 에게는 '테이큰'은 정말 신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1년에 영화 두세편 보는데 그래도 영화 한편 보고 나면 뭐 남는게 있어야지'라는 분이라면 절대 보면 안 될 영화죠. 그런 분들에게는... 음...

('남는게' 너무 많아서 소화불량이 될 것 같은 영화가 갑자기 한편도 떠오르지 않는군요.)

아무튼 이 영화를 굳이 보신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가시길 권합니다.






이 영화에서 청순녀 킴 역할을 맡은 매기 그레이스. 17세 역을 하기엔 나이가 좀 많은 듯도 하지만, 그런건 상관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눈 크기.








사실 이런 사진이나 '로스트'에서는 이 배우가 이렇게 눈이 작다는 걸 몰랐습니다.

알고 나서 보니 눈 화장이 장난 아니었군요!







그런 의미에서, '테이큰'은 매기 그레이스의 '눈 커밍아웃' 작품으로 기억되겠더군요.

저 속눈썹과 메이컵을 상당 부분 제거하고 나면 그의 눈 크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이 영화의 볼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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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중국 연예계의 대부 성룡이 김장훈에게 돌연 편지 한장과 함께 1만 달러의 돈을 보내왔습니다. 선행에 앞장서고 있는 김장훈의 노력을 치하하면서, "젊은 친구가 어렵고 힘든 이들을 위해 아낌없이 봉사하고 있다는 점에 감동했다"며 자신의 선의를 보탠 것입니다.

김장훈이 성룡을 직접 만난 적은 한번도 없지만 아시아권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성룡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게다가 기부의 액수로 따진다면 성룡은 그야말로 자선의 황제 격입니다. 지난번에도 40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런 자선활동, 한국에 대해 보여온 지속적인 호의,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배우 겸 감독으로서의 탁월한 성과 때문에 아마도 성룡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해외 스타 중에서 호감도 1, 2위를 다툴만한 인물입니다. ('추석이나 설 연휴때면 생각나는 인물 1위'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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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눈여겨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룡이 보낸 편지는 순 한글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 잘 쓴 글씨는 아니지만, 틀린 부분도 없는 깔끔한 한글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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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은 공식석상에서 일부러 한국어를 자제하지만 사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70년대 초, 한국 액션영화의 전성기 때 성룡은 충무로에서 스턴트맨으로 활동했고, 한국 여자친구와도 오래 사귄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처지였던 홍금보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하기도 했죠. 기자회견이라도 하면 성룡은 이미 한국 기자가 던진 질문을 다 알아 듣고 씩 웃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대답은 농담할 때를 빼면 전부 중국어로 합니다.

저 편지를 받은 김장훈 측도 이런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성룡의 친필 편지'라고 말했지만, 뒤늦게 성룡 측에 의해 이 편지를 대필한 사람이 유승준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일부 기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좋은 기사'에 과연 유승준의 이름을 넣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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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의 의도는 명백합니다. 유승준을 자신의 매니지먼트사인 JC 소속 연예인으로 만든 이상, 성룡의 급선무는 한국 내에서 유승준의 복권을 이루는 것이죠. 그 방안의 하나로 성룡은 한국에서 호감도 1위인 김장훈과 외국인 스타 중 호감도 1위인 자신의 좋은 사연 속에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슬쩍 끼워 넣은 것입니다.

물론 이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해서 성룡의 선의나 김장훈에 대한 경의를 부정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성룡의 입장에서는, '마침 이런 좋은 일을 하자니 여기에 승준이도 한몫 하게 하면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구상은 좋았지만, 이 정도로 얼음이 녹기엔 유승준에 대한 배척은 너무도 공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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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햇동안 유승준은 한국 방송과 관련해 두 차례의 논란을 겪었습니다.

하나는 MBC TV '무릎팍 도사' 이범수 편에서 나온 유승준의 자료 화면입니다. 왕년의 자료 화면 한번 보여준 것 갖고도 여론이 들끓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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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은 MBC TV '네버엔딩 스토리'가 홍콩에 가서 성룡을 인터뷰하면서 유승준을 함께 동석시켰던 사건입니다. '성룡 편에 유승준이 나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다시 여론은 죽창을 세웠고, 결국 MBC는 유승준이 등장하는 부분을 싹 편집하고 방송을 내보냈습니다. 사실 성룡 측에서는 이 인터뷰를 수락한 이유가 바로 유승준을 한국 TV에 한번 내보내 보자는 의도였다는 후문인데, 이것도 실패한 셈입니다.

일반인들에겐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유승준은 국적 변경과 함께 한국 입국이 좌절된 뒤로 기회 있을 때마다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시도해왔습니다. 몇몇 기자들과는 실제로 인터뷰를 성사시키기도 했죠. 하지만 그때마다 데스크 선에서 모두 게재가 좌절됐습니다. 일부 매체는 - 좀 코믹하지만 - 유승준의 이름을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이라고 표기하는 상황에서 누구든 유승준의 앞잡이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그렇게 '폭탄돌리기'를 하던 사이 최근 한 여성지가 용기있게 기사를 실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성룡은 한국인의 문화와 스타일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유승준의 한국 연예계 복귀는 첩첩산중이라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 그가, 최근 '대병소장'이라는 새 영화에 유승준을 기용하면서 다시 유승준의 복권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대체 그는 왜 이렇게 유승준에게 공을 기울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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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유승준은 중국에서도 장나라 급의 최고 한류 스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스타덤을 구축하고 있는 연예인입니다. 춤과 노래 실력은 이미 10년 전에 정평이 났죠.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 본 적은 없지만 드라마타이즈 프로그램이 예능의 주류를 이루던 시절 활동을 하면서 연기력도 제법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빼어난 용모는 기본이고 한국어-영어, 그리고 중국어까지 3개 국어를 소화할 수 있습니다. 나이도 이제 고작 만 33세. 제작자라면 당연히 탐낼 재목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의 폭발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곳은 한국이라는 점이 성룡의 고민입니다. 더구나 한류 시장에서도 '한국산 한국 연예인'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즉 성룡+유승준의 시너지가 최대한 발휘되기 위해선 유승준이 한국 시장에서 복권되는 것이 절실한 상황이죠.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이미 영화 촬영 계획이 밝혀졌으니 이 영화가 만들어지면 한국 국민들은 다시 한번 유승준과 관련된 화제에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성룡의 한국측 대리인이 "유승준 하나 나온다고 이 영화의 한국 상영을 고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는 입장을 보였으니 어떻게든 공개는 되겠죠. 관객들이 극장 앞에서 시위를 하든, 스크린에 계란을 던지든, 그건 그때 가 봐야 알 일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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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유승준에 대한 배척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살인죄보다 더 무서운 국민정서법 위반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하지만 통장에 26만원밖에 없는 아무개씨도 돌 맞을 걱정 없이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병역 비리 사범으로 몰렸다가 뒤늦게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온 다른 연예인들도 왕년보다 더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나라에서 왜 유독 유승준에게는 여론의 손길이 가혹한 걸까요?

많은 사람들은 유승준의 가장 큰 잘못은 병역 기피 그 자체보다도 "당당히 군대를 가겠다"고 선언했다가 뒤늦게 공인의 약속을 저버린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물 위에 쓴 글자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의도 서쪽의 둥근 지붕 아래에도 우글우글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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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8대 국회의원 299명 중 25명이 전과자인 나라(그나마 지난 17대의 60명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셈이더군요)에서,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출마자 6869명 중 10.5%인 725명이 전과자(그것도 대부분 뇌물공여, 부정수표단속법, 사기 등 죄질이 나쁜 종목)였던 나라에서 과연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연예인' 하나가 이 나라 땅조차 밟을 수 없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죄인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인 듯 합니다.

누구도 유승준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면, 대체 그가 자신의 잘못을 정말 뉘우치고 있는지, 얼마나 어떻게 반성하고 있는지라도 한번 드러낼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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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물론 재미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대단히 미묘한 문제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이 영화를 보고 '재미'를 느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 '발키리'는 본래 국내에서는 '발퀴레'라는 표기가 더 익숙한 단어입니다. 바그너의 악극 제목이자, 북구 신화의 등장인물이죠.

이 '발퀴레'라는 음악과 관련된 지휘자 중에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래 세계적인 명지휘자였던 이 사람은 '발퀴레'를 잘 연주해서가 아니라 '발퀴레'를 연주하려다 좌절한 사연 때문에 세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바렌보임의 '발퀴레'와 톰 크루즈의 '발키리'는 과연 어떤 관계일까요. 거기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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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키리 - 발퀴레

22일 개봉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Valkyrie)'는 1944년 히틀러를 암살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조기에 종식시키려던 독일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담고 있다. 최근 내한한 주인공 톰 크루즈는 출연 이유를 묻자 “당시 독일의 모든 사람이 나치의 꼭두각시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제목의 발키리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발퀴레(Walkure)의 영어식 발음. 흔히 갑옷 차림에 하늘을 나는 여신들로 묘사되는 발퀴레는 전사한 영웅들의 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바그너의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의 2부 제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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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게르만 신화를 소재로 한 바그너의 작품들이 독일 민족혼을 고취시킨다며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었다. 특히 애용된 것이 '발퀴레' 3막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騎行)'이다. 당시 독일 전차부대는 외부 스피커로 '발퀴레의 기행'을 쩌렁쩌렁 틀어 놓고 진군하기도 했다.

이런 악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음악회에서든 바그너의 곡을 연주하는 것은 금기로 취급돼 왔다.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게 주된 이유였고, 바그너 자신이 유명한 반(反)유대주의자란 사실도 한몫했다. 이 금기는 2001년 7월 7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굳게 지켜져 왔다.

여기에도 곡절이 있다. 평소 이스라엘의 대아랍 강경책을 비판해 온 바렌보임은 이 해 예루살렘에서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발퀴레'의 하이라이트를 연주한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홀로코스트 희생자 유족들의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타의에 의해 레퍼토리가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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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렌보임은 연주 당일, 즉석에서 청중에게 앙코르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한 곡을 연주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야유가 나왔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우리만 희생자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서슬이 시퍼런 나치 치하에서도 모든 독일인이 권력에 굴종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고, 바렌보임의 '발퀴레'는 모든 유대인이 아랍과의 공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알렸다. 히틀러의 상징 음악으로 쓰였던 '발퀴레'가 시대를 뛰어 넘어 다수 여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양심의 소리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가자 지구의 현실은 바렌보임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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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나름(?) 수려한 용모의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바렌보임은 25세 때이던 1967년, 당시 22세의 세계적인 미녀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와 이스라엘에서 결혼합니다. 두 사람의 결합은 당시 '20세기의 슈만과 클라라'라고 불릴 정도의 반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프레는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으로 연주 능력을 잃게 되고, 결국 1987년 42세의 한창 나이에 사망합니다.

이런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음악청년 바렌보임(일각에서는 아내가 죽어가는데도 콘서트 연습을 하고 있었다며 냉혈한이라고 그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사실 음악 말고 뭘 할수 있었겠습니까)은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또 한번 주목을 받게 됩니다.

지난해 알 자지라 영어 방송의 토크쇼 '프로스트'에 출연한 바렌보임입니다.

바렌보임은 마틴 부버의 말을 인용, "이스라엘과 아랍의 관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단순히 총격의 종료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 이스라엘이 현재의 이스라엘 점령지구가 직면한 문제에는 아랍과 이스라엘 양측의 책임이 공존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좋다. 그런데 그 지역은 이스라엘이 40년간 점유해온 지역이다. 40년을 다스렸다면 그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의 질에 대해선 점유하고 있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합니다.

그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아랍과 이스라엘 청년들이 함께 연주하는 '웨스트 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세계적인 연주 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발퀴레'의 일부분입니다. 이 곡에 한이 어지간히 맺혔던 모양입니다.^




사실 국내에 나와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1992년 유로피언 콘서트 DVD에도 바렌보임의 지휘로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르는 '발퀴레' 1막에 나오는 사랑의 아리아 '겨울 바람은 우아한 달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고 Wintersturme wichen dem Wonnemond'가 수록돼 있습니다. 이 노래는 도밍고의 애창곡으로, 이번 내한 공연때도 리스트에 있었습니다.

한번 들어 보실 만 합니다. 2005년 BBC 프롬에서 '발퀴레' 특집이라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그문트 역의 도밍고가 지글린데 역의 발트라우드 마이어와 함께 이 노래를 부릅니다. (도밍고 형님 특유의 '소프라노 만지며 노래하기' 신공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마지막은 정말 시원시원한 '발퀴레의 기행'입니다. 역시 같은 2005년 BBC 프롬에서 안토니오 파파게노가 지휘하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리사 가스텐을 비롯한 발퀴레 군단의 노래가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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