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이 좀 심하게 난 듯 합니다. 무리하지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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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퀴즈가 좋다'로 잘 알려진 포맷의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는 온 세계 만방에서 리메이크된 퀴즈쇼입니다.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 퀴즈 프로그램은 인도에서도 초절정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입니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주인공 자말이 도전하는 것이 바로 이 퀴즈쇼죠. 인도에서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Kaun Banega Crorepati'고 열 개의 문제를 연속으로 모두 맞추면 도달할 수 있는 상금은 2천만 루피(시작할 때에는 1천만 루피였다는군요)입니다. 1루피가 30원 정도 하니까 약 6억원인 셈입니다.
인도 갑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갑부라고도 하지만 흔히 인도 서민의 한 가족 한달 생활비가 1000루피 정도라고들 하는데, 거기 비하면 정말 팔자 고칠 거액이죠.
글의 제목대로 왕년에 그래도 각종 퀴즈쇼에 한 15회 정도 출연해 봤고, 지난해에는 퀴즈 프로그램도 하나 진행해 본 사람으로서 '퀴즈쇼 영화'로서의 '슬럼독 밀리어네어'에 대해 쓰는 글임을 표방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화 리뷰의 탈을 쓰고 있는 만큼 줄거리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뭄바이의 빈민가에서 자라나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한 자말(데브 파텔)이 어느날 2천만 루피의 상금이 걸린 퀴즈 쇼에 등장합니다.
('대체 퀴즈인이 뭐냐'는 질문이 나와서 약간 덧붙였습니다.)
퀴즈를 풀어나가는 동안 그의 어린 시절이 문제 풀이와 함께 조명됩니다. 형 살림과 함께 뭄바이 빈민가의 이슬람계 주민으로 살아온 자말은 어린 시절부터 온 몸으로 인도 사회의 모순을 경험합니다. 힌두-이슬람계 주민의 갈등 폭발로 어머니를 잃고, 어린이들을 이용한 앵벌이 조직에 속해 있기도 하고, 타지 마할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엉터리 가이드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역시 고아 소녀인 라티카(프리다 핀토)를 만나게 되지만 운명은 두 사람을 쉽게 재회하게 하지 않습니다. 과연 자말은 라티카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
대니 보일이 만든 이 영화의 위대성은 퀴즈라는 게임의 양식에 자말의 인생사와 급격한 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는 인도의 변화상을 한 사발에 제대로 풀어 넣어 관객이 한 방에 후루룩 마셔 버릴 수 있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원작 소설의 플롯이 워낙 잘 되어 있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건 책을 안 봐서 모르겠습니다.
물론 너무 간편하게 '후루룩' 마실 수 있게 한 덕분에, 그 사발 속에 어떤 재료들이 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고 들이키는 관객도 꽤 있었을 겁니다. 사실 그냥 마셨어도 맛만 있었다면 아무 상관 없겠지만, 그래도 재료 각각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훨씬 더 음식 맛을 즐길 수 있었겠죠.
예를 들어 자말의 직장은 다국적 기업의 콜센터입니다. 영미권의 수많은 대기업들은 국내 고객들을 상대하는 콜센터도 인도에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건비가 싸고 영어 사용 인력이 풍부하기 때문이죠(한국 기업들의 콜센터도 상당수가 연변 지역에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건너에서 자신들의 컴플레인을 처리한다는 것은 고객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죠. 그래서 이들은 전화를 걸어 오는 고객들과 같은 지역에서 거주하는 척 하기 위해 '연기하는 법'까지도 교육을 받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정경이 꽤 실감나게 묘사됩니다만, 이런 정황을 모르는 분들은 '쟤네 뭐하는 거야?'라고 어물어물 넘어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뭄바이 시내에 쑥쑥 올라가고 있는 고층건물과 그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빈민가를 동시에 보여주는 대니 보일의 시선을 향해 '세계화 속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평자가 대니 보일의 영화를 이 한편밖에 보지 않았다는 고백과도 같습니다. 최소한 '트레인스포팅'에 그려진 스코틀랜드만 봤더라도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에 '비치'에 그려진 태국의 서구 관광객들을 보면, 현대 인도의 우스꽝스러운 모순들을 들춰내는 대니 보일의 손길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와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구와 동양, 개발과 미개발 사이를 자유자재로 쑤시는 '대니 보일식 인류학'을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요.
제목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퀴즈 얘기를 하겠습니다. 잘 알려진 이 퀴즈의 방식은 그야말로 운과의 싸움입니다. 복수의 출연자가 있고, 출제된 총 20개의 문제 중 10개를 맞추는 것과 혼자 출연해서 오로지 자신에게만 주어지는 10개의 문제를 모두 맞추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주제나 범위도 없이 무차별로 주어지는 10개의 문제 중 모르는 문제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얘긴데, 그건 정말 하늘이 돕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죠.
물론 퀴즈 대회에 나가는 사람은 대개는 자신의 상식 수준이 일반인들보다는 꽤 높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방대한 지식의 바다에서 보면 퀴즈왕이나 일반인이나, 그 차이는 고등어와 참치 정도쯤이나 되려나요. 태평양 전체를 기준으로 할때 고등어 한 마리와 참치 한 마리의 비중 차이는 없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포맷의 퀴즈는 절대적으로 운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미국식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의 제작자들은 문제의 수준을 유치할 정도로 낮췄습니다. 당연히 천문학적인 수의 참가자가 몰리고, 진짜 운은 그 많은 출연자 중에서 선발돼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느냐에서 먼저 시험을 받습니다. (영화에서 자말은 콜센터에서 일한 바람에 전화 신청에서 당첨되는 비법을 알고 있었다는 설정이 나옵니다. '참가 신청자 수가 어마어마할텐데 어떻게 자말이 거기 나갈 수 있느냐'는 비판을 피하자는 얘기죠.)
솔직히 자말이 비정상적으로 문제를 잘 맞추는 바람에 경찰까지 동원돼 조사를 벌인다는 설정이 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이 영화 속 퀴즈 쇼의 문제들은 초보 수준입니다. 세계 관객들은 모르지만 인도인에게 '라마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이라는 문제는 '환웅의 명에 따라 곰과 호랑이가 동굴 안에서 먹은 식물은' 수준의 문제라고 봐야겠죠. (아무리 자말이 힌두계 아닌 이슬람계로 묘사돼 있다 해도 이 정도는 알아야 할 겁니다.^)
게다가 마지막 문제. 2천만 루피가 걸린 마지막 문제 치고는 지나치게 쉽지만, 이건 퀴즈 참가자들의 심리를 아는 연출입니다. 누구에게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 찾아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지식의 단편이 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의 전편 격인 로씨니의 오페라 제목이 뭐더라' 하고 생각만 하고, 찾아 보지 않았는데 희한하게도 그 문제가 결정적일 때 딱 출제됩니다. 이건 퀴즈인의 악몽이라고 할 수 있죠. 알았다가 잊어버린 거라면 더 죽을 맛입니다.
아무튼 마지막 문제를 앞둔 자말의 행태는 퀴즈인에 대한 모욕입니다. 그는 퀴즈인으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동으로, 모든 퀴즈를 로또와 동일시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어떤 만행인지는 차마 밝힐 수 없으니 영화를 보시길). 영화의 맨 앞부분에서 대니 보일은 관객들에게 퀴즈를 냅니다. 네 개의 보기는 '1. 사기를 쳐서 2. 운으로 3. 천재라서 4. 운명이니까(혹은 대본에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입니다. 이 네 개의 보기 중 어느 것이 답인지 알려 주기 위한 장면이라고나 할까요. (무슨 말인지 모르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역시 영화를 보세요.)
한동안 방황했던 대니 보일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특기인 유머감각은 더욱 살리고, 치기 어린 비판의식은 매끄럽게 다듬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솜씨를 자랑합니다. 캐스팅상의 아쉬움이 하나 있다면 자말 역의 데브 파텔이 아무리 봐도 빈민가 출신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아니나 다를까, 역시 영국 출신의 인도계 배우더군요), 뭐 영화의 흥행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에서 자말이 풀어가는 문제의 답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자말이 생존을 위해 현장에서 배운 것이라는 사실에 필요 이상으로 감동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짜 인생에서, 누군가 '내가 직접 경험을 통해 어렵게 배운 것들'만으로 통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겠죠. 자말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왔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판타지적 성격을 덮어 주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는 퀴즈 쇼와 조명을 이용한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혹시라도 이 영화에서 아카데미상이 그동안 편애해 왔던 묵직한 메시지를 기대했던 분이라면 미리 실망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려야 할 듯 합니다. 하지만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한 편의 재미있는 영화를 찾는 분이라면 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치 대중적인 영화입니다.
단 퀴즈 쇼 묘사에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야구 영화에서 야구 경기 묘사가 엉망인 것과 비슷한 비중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대다수 관객들에겐 그건 전혀 중요한 게 아니죠.^^
p.s. 문제의 답 중 하나인 인도의 톱스타 아미타브 바흐찬은 사실 인도판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의 오리지널 사회자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이슈와라 라이의 시아버지이며 자신, 아내, 아들, 며느리까지 모두 인도의 톱스타인 연예계 명문가의 가장이기도 합니다.
p.s. 2. 참, 이 장면에서 * 역으로 동원된 건 초콜릿과 땅콩 버터라는군요. 이 정도면 그리 심한(?) 아동 학대는 아니라고 봐도 되겠죠?
** 예전에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아역들에 대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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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열릴 예정이던 X-재팬의 내한공연이 또 연기됐습니다. 지난해 8월15일, 11월에 이어 세번째 바뀐 날짜가 또 연기라니, 정말 팬들의 입장에선 화가 날만도 합니다. 일본에서 흘러 들어 온 얘기로는 한국 공연만 그렇게 된 게 아니라니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하고.
이번 연기(사실상 취소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는 멤버간의 불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베이시스트 히스의 소속사와의 문제라는 얘기도 있어서 확실치는 않습니다. 물론 지난해 3월 도쿄돔에서 열린 10년만의 재결합 콘서트에서도 요시키가 중간에 실신하는 등 그룹의 핵인 요시키의 건강 문제는 항상 돌발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과의 인연이 계속 꼬이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악연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X-재팬의 열렬한 팬은 절대 아니었지만, 아쉬움 때문에 쓴 글입니다.
서태지라는 예명이 무슨 뜻인지 사람들이 궁금해 하던 시절, 그 이름이 일본 록 밴드 엑스 재팬의 베이시스트 타이지(Taiji)에게서 따 온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서태지도 한때 록 그룹 시나위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으므로 꽤 그럴싸한 얘기였지만 팬들은 엑스 재팬이라는 상징적인 이름 탓인지 "서태지를 일본 음악의 주구로 매도하려는 흠집내기"라며 격분했다. 결국 서태지 본인이 "그렇지 않다"고 공식 해명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그 엑스 재팬의 첫 내한공연이 또 연기됐다. 당초 3월21, 22일 양일간 서울에서 공연할 예정이던 이들은 돌연 13일 아침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일방적으로 공연 연기를 선언했다. 5월로 잡혔던 일본 공연까지도 환불에 들어갔다니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 일본 음악을 들을 수 없던 시절, 1985년 결성된 엑스 재팬은 '일본 음악을 개방하는 순간 한국 대중음악은 고사해 버릴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처럼 보였다.
그만치 당시 이들이 보여준 음악적 성과는 국내 음악과 수준차가 있었다. 이들의 히트곡 '엔들리스 레인'이나 '세이 애니싱'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왠지 익숙한 느낌을 준다. 1990년대 초반, 수많은 한국의 작곡가와 가수들이 이들의 노래를 번안하다시피 그냥 베껴 불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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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호풍환우(呼風喚雨)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어쩌면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의 김인식 감독은 그런 의혹을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1차전을 완패한 상황에서 지난 21일 내린 단비는 한화의 숨통을 터 줬고, 하루 연기돼 열린 2차전에서는 바람이 매 상황마다 한화에 유리하게 불었다. 1회말 삼성 조동찬의 홈런성 타구가 역풍에 꺾여 잡히는가 하면 기회 때마다 한화 타자들의 타구는 순풍을 탔다. 그야말로 제갈공명이 동남풍을 빌린 적벽대전같은 한판 승부였다. (이건 2007년 한국시리즈의 상황을 놓고 한 얘깁니다. 지금 상황과는 무관하지만, 이 자리에 최근 벌어진 WBC 멕시코전 상황을 대입하면 같은 결론이 됩니다. 더블스틸, 번트, 버스터, 좌-우 투수들의 정신 없는 계투, 여기에 때맞춰 터져 준 타자들의 장타... 그야말로 현란한 '야구의 모든 것'이었죠.)
아직 올해 한국시리즈의 최종 결과를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만약 김인식 감독의 이런 스토리가 실제상황이 아닌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흥행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감독이 무슨 마술사라도 되나. 세상에 저런 만화같은 스토리가 어디 있냐. 대본에 개연성이 없다"며 혹평을 퍼부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야구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면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이 불보듯 뻔하지만 극장에서 '영화같은 일'이 벌어지면 누구나 당연한 일로 여긴다. 즉 같은 사람이라도 야구장에 갈 때와 극장에 갈 때에는 기대하는 극적 감동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현실이 극적 상상력을 능가해 버리는 상황은 스포츠의 세계에선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흔히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중에는 의외로 히트작이 드물다. 야구를 국민적 여가(national pastime)라고 부르는 미국에서도 야구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중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소재로 한 코미디 <메이저 리그>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흥행작이 없다.
한국도 큰 차이는 없다. 이장호 감독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흥행 대박을 기록했을 뿐, 전설의 고교야구 영화 <자, 지금부터야>에서 <YMCA 야구단>, <슈퍼스타 감사용>에 이르기까지 '야구 영화'하면 내세울만한 작품이 딱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래 야구영화는 안된다고 말해 버리기엔 저변이 너무 아쉽다. 매년 야구장을 찾는 관중만도 300만. 이승엽이며 박찬호의 성공 스토리, 올 연초 WBC 4강에 열광했던 잠재적인 야구 팬들은 한둘이 아니다. 프로 야구가 등장한지도 24년이나 돼 기반도 성숙했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기 연예인들이 팀을 구성해 직접 공을 던지고 때리며 정규 리그를 치르고 이를 TV로 중계까지 하는 나라다. 개중에는 장진, 김상진 감독이 소속된 팀도 있고, 리그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야구단 플레이보이스에는 장동건 김승우 주진모 황정민 조인성 등 현역 최고의 톱스타들이 주전으로 뛰고 있다.
이 정도 저변이면 이제는 한국에도 '이런 야구 영화가 있다'고 말할만한 영화 한 편쯤이 나올 때가 된게 아닐까. 연예계 애구파(愛球派)들의 분발이 기대된다. (끝)
굳이 지금 이 글을 다시 올린 건 어제 올린 글이 너무 묻힌 데 대한 아쉬움입니다.
김인식 감독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긴데 이 분의 야구관에는 참 독특한 데가 있습니다.
김감독의 두산 재임 시절 한 선수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선수: 감독님은 땅볼 치는거 별로 안 좋아해요.
나: 왜?
선수: 사실 땅볼로 깔아 쳐도 각 잡아서 잘 갈라 치면 안타 나오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은 플라이로 날아가는 공 치라고 맨날 그러세요. 신인들이 땅볼 치면 물어봐요.
나: 뭐라고?
선수: 이렇게요.
(김감독): 야, 내야에 (수비가) 몇명 서 있냐?
(신인): 여섯명요.
(김감독): 그럼 외야엔 몇명 서 있냐?
(신인): 세명요.
(김감독): 그럼 내야가 더 넓어, 외야가 더 넓어?
(신인): ...외야요.
(김감독): 그럼 자식아, 내야로 쳐야 되냐, 외야로 쳐야 되냐?
(신인): ...외야요.
나: 음.... 맞는 말이잖아. ;
선수: 맞는 말이긴 해요.
뭐, 감독님의 유머였는지, 진지한 얘기였는지는 지금은 알 길이 없네요. 하여간 김인식 감독님, 같이 있으면 절대 심심하지 않은 특급 유머감각의 소유자셨습니다. 건강 때문에 좋아하시던 술도 못 드신다는데 참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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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중되는 업무로 짜증만 늘어가는 나날에 WBC 경기는 단비와도 같더군요. 초반에 류현진이 살짝 흔들릴 때만 해도 잠시 불안하더니, 여지없이 뒤집는 솜씨는 짜릿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본전 콜드게임패 이후 김인식 감독님을 비방하는 어처구니없는 찌질이들의 손질에 분개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이렇게 모든 걸 보여주시는 데 감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감독님의 '집안 칼' 들인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가 이렇게 펄펄 날아 주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나머지 7개 구단 팬들이 한화 팬들에게 점심이라도 사야 할 듯 합니다.
모처럼 이른 야구의 계절을 맞아 옛날 추억을 되살려 써 본 글입니다.
90년대 초. 처음 신문사에 들어가자 야구 담당을 시켰다. 워낙 야구를 좋아하던 터라 거리낄 건 없었지만 야구 담당 기자라는 건 알고 보니 장돌뱅이였다. 노트북과 속옷을 둘러메고 전국 산천을 유람하는게 일이었다.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된 어느 날, 한 야구단 직원과 여유있게 노닥거리고 있었다. 서로 야구관이 달라서(물론 팬과 경기인의 시각 차이였겠지만) 옥신각신하던 차에 살짝 흥분한 그 양반이 물었다. "그래서 송기자가 생각하기에 한국 최고의 감독은 누구요?"
아니 그렇게 쉬운 걸 묻다니. "그야 임권택 감독이지." 그 다음날부터 다른 구단 직원들의 눈길이 달라진 걸 느꼈다. 그 양반이 "되게 웃기는 기자가 들어왔다"고 소문을 냈다나.
야구에도 감독이 있고 영화계에도 감독이 있다. 한국에선 다 감독이지만 원산지에선 야구 감독은 매니저(manager)고 영화 감독은 디렉터(director)다. 야구 감독은 운영자고 영화 감독은 지시자인 거다.
지난 여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복장 김경문 감독이 거짓말같은 한점차의 명승부를 연발하며 8전 전승, 감동의 금메달로 전 국민을 오르가즘에 빠뜨렸다. 이때 메달권에도 들지 못한 일본 야구 팬들은 중얼거렸다. "두고 봐라. WBC가 있다." 나오는 스타들을 보자면 솔직히 그렇다. 올림픽이 선댄스라면 WBC는 오스카다.
WBC를 앞두고 한국엔 썩 좋지 않은 소식이 잇달아 들려왔다. 영화로 치자면 흥행이 보장된 톱스타 이승엽과 박찬호의 캐스팅이 잇달아 불발됐고, 김병현은 여권이 없어서 출연할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추신수는 깐깐한 소속사에서 액션 신은 촬영해선 안된다고 감시 매니저를 붙였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영화를 살리는 최고의 조연배우 박진만마저 만두를 먹다 체해서 촬영장에 나오지 못했다. 명장 중의 명장 김인식 감독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지만 스타 없는 영화는 소 없는 찐만두다(박진만씨, 죄송합니다).
반면 같은 날 개봉하는 경쟁작을 만드는 재팬 픽처스는 신바람이 났다. 다르빗슈, 오가사와라, 조지마 등 일본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출연 요청을 한데다 할리우드(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자카, 조지마, 이치로, 이와무라까지 참여를 선언했다. 그나마 뉴욕 양키스의 마쓰이가 빠져 1.00군이 아닌게 다행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개봉 첫주는 콜드게임으로 끝났다. 일본 작품은 작품성과 재미를 겸비했다는 극찬을 받은 반면 한국의 주인공 김광현은 "가서 다트 게임 CF나 더 찍으라"는 혹평을 받았다. 냄비같은 언론들이 또다시 '한국영화 위기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지의 한국은 패자부활전을 딛고 일어섰고, 결국 30만 달러의 추가 보너스가 걸린 1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제압했다. 김인식 감독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영화 감독과 야구 감독 얘기로 돌아간다. 두 감독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야구 감독은 선수와 똑같은 유니폼과 모자를 쓰지만(대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영화 감독이 배우처럼 입고 메이컵을 하면 스태프들이 수근거린다. 영화 감독은 배우의 동작이 마음에 안 들면 들때까지 다시 시킬 수 있지만 야구 감독에겐 한 번의 기회뿐이다. 즉 영화 감독은 각본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야구 감독은 각본 없이 드라마를 만든다. 배우 출신 영화감독은 그리 많지 않고 명감독으로 남는 경우도 별로 없지만(누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될 수는 없다)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 야구감독이 되는 경우는 아예 없다.
하지만 공통점도 많다. 두 사람 모두 수십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자기 일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며, 연패를 당하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성공해도 자기가 스타로 만들어 준 새파란 녀석들만큼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래도 양쪽 모두 현장에서 감독이 죽으라면 톱스타들도 죽는 척 해야 한다.
얘기가 갑자기 산으로 가는 것 같지만 아무튼 하고싶은 말은 이거다. 대한민국 최고의 덕장 김인식 감독님! 영국의 대니 보일이란 감독은 '공도 못 만져본' 인도 꼬마들을 데리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따냈습니다. 이번 한국 팀도 간판들이 빠져 김이 새지만 감독님을 믿습니다! 파이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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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고 장자연씨의 가족을 찾아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어려운 걸음이었지만 이번 사건 이후 한번도 언론과 마주 대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적이 없는 분들이어서 그만한 보람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로 그동안 유족들에게 쏟아졌던 오해나 어이없는 비방이 어느 정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유족들을 만나기 전까지 저도 속이 좀 탔습니다. 지난번 글, '장자연을 두번 죽인 KBS 보도'라는 글에 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다 읽어보지 않아도 90%가 욕설에 가까운 내용이었죠. 아주 노골적인 욕설은 몇개 삭제하기도 했지만, 부분 부분 포함된 욕설은 뭐 다 보이지도 않더군요.
욕설은 아니더라도 저주에 가까운 악플도 많았습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욕을 섞지 않으면 자기 뜻을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건 참 안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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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시스'라는 스페인 영화를 보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1996년작인 이 영화는 스너프(정사 뒤에 여자를 죽이는 포르노의 일종) 필름을 우연히 발견한 대학생들이 그 배후를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의 결말과 관계없이 마지막 장면은 TV 뉴스 화면입니다. 여성 앵커는 말합니다. "저희는 이 필름을 단독 입수하고, 공개할지 말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여러분의 볼 권리가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이 영상을 공개합니다." 미디어의 본질에 대한 아메나바르의 통렬한 '한방'입니다.
그리고 어젯밤 KBS에서 거의 비슷한 멘트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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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길 바라. 나보다 너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이 있을거야." 가끔 드라마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대사지만, 현실에서의 이 말은 주로 "이제 네가 지긋지긋해"라는 말의 '고운 말'로 사용되곤 합니다. "어딘가에 네 짝이 있겠지만 난 아니다"라는 뜻이죠.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첫번째 시사회는 다른 바쁜 일로 가지 못했습니다. 대신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반응을 체크했죠. 첫번째 사람에게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평소 영화를 냉철하게 보고, 특히 이런 멜러 영화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후배였죠. 그런데 "나쁘지 않다"는 의외의(!) 반응이 나왔습니다.
두번째 사람에게 물었을 때엔 놀랄만한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번 사람은 업계에 종사한지 10년이 넘은 노련한 여자 관계자. '어땠냐'고 묻자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끝나고 여자 화장실에 갔더니 여기자들이 눈이 벌겋더라. 몇몇은 그때까지도 훌쩍거리고, 내가 들어가니까 다들 민망해하면서 시선을 피하던 걸." 다른 여자 후배 기자도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나도 좀 찡하더라고."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뮤직비디오와는 많이 다릅니다)
케이(권상우)와 크림(이보영)은 고교시절부터 단짝처럼 지내던 사이. 서로 부모 형제 없이 외톨이인 둘은 케이의 부모가 남긴 집에서 남매처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다 케이는 라디오 PD가 되고, 크림은 작사가가 되죠. 두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를 사랑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케이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바로 옆 스튜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치과 의사 닥터 차(이범수)에게 크림이 관심을 보입니다. 하지만 닥터 차에게는 집안에 맺어준 약혼녀(정애연)가 있습니다. 케이는 약혼녀와 닥터 차를 헤어지게 해서라도 크림이 닥터 차와 결혼하게 해 주려고 애씁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매우 이상하게 여겨지는 줄거리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와 맺어주려고 애쓰는 남자? 물론 영화를 보지 않아도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당연히 남자가 불치병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겠죠. (물론 스포일러도 아닙니다. 둔한 분들도 영화를 10분만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불치병이라도 이런 진행은 지독하게 비현실적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성패는 자명합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스토리가 관객들에게 그럴법하게 여겨지게 포장되어 있다면 성공이고, 아니라면 지탄과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거겠죠. 과연 원태연 감독은 이 한편의 뮤직비디오같은 스토리를 어떻게 구성했을까요.
아마 영화를 보기 전의 기대는 다들 비슷할 겁니다. 권상우 주연의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내심 저의 첫번째 반응은 '이 뭥미?'였습니다. 영화가 원태연 시인의 영화 데뷔작이 될 거란 얘기를 들었을 때에는, '권상우가 또 가시밭길을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죠. 권상우가 '너는 내 운명'의 박진표 감독과 함께 영화를 찍을 기회가 무산된 직후라서 더욱 그랬을 겁니다. 검증된 4번 타자를 빼고 무명 신인을 대타로 내는 감독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원감독은 괜히 스타 시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인답지 않게 노련했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케이의 시선으로 사건의 진행을 죽 서술해준 다음, 이번엔 크림의 시선으로 같은 사건에서 케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정리해줍니다. 마무리는 닥터 차의 몫입니다.
케이의 시선으로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은 상당히 답답해합니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하지만 그 뒤로 크림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 왠지 이 이야기를 납득해야만 한다는 묘한 설득을 당하게 됩니다. 아, 그렇다고 말이 안 되던 스토리가 갑자기 말이 된다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말이 안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그걸 꼭 짚어내고 싶지 않은 심정이 되는 겁니다.
정리해서 말하면 원태연 시인, 아니 원감독의 설득력은 본 사람으로 하여금 '그래, 저런 스토리가 실제로도 가능할거야'라고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저런 얘기가 사실이었으면(혹은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라고 기대(또는 개입)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물론 안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죠.
일각에선 사랑이 뭐냐는 질문에 양치질이라고 답하는 권상우의 말("남들이 안 볼 때엔 양치질 안 하세요?" - 언제나 하고 있다는 뜻) 같은 감각적인 대사가 원감독의 장점이라고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그 이상의 기획력이 돋보입니다.
배우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동안 수많은 액션 느와르에 출연했지만 아직 권상우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이런 식의 감성적인 멜로드라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형편없는 진행과 플롯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천국의 계단'이 4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히트한 것은 결국 권상우의 얼굴이 그런 말도 안되는 스토리를 극복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보영도 어느새 늘어난 주름살이 좀 아쉬움을 남깁니다만 탄탄한 기본기를 이용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범수 역시 흠잡을 데는 하나 없지만 역할이 너무 축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뮤직비디오에서 더 큰 활약을 하더군요.
화이트데이에 저녁 식사 시간까지 함께 할 일이 필요한 연인들이라면 매우 좋은 선택이 될 듯 합니다. 40대 이상의 관객들이라면... 반응이 매우 궁금합니다.
p.s 주제가는... 빨리 연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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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가끔 주위 사람들이 "우리 애가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 소개시켜 줄 데 없느냐"는 질문을 해 오는 편입니다. 이럴 때 저의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웬만하면 클 때까진 시키지 마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역 이기는 성인 배우 없다는 건 TV 드라마 시장의 철칙 중 하나입니다. 뒤로 가면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는 드라마도 앞 부분, 아역들이 나오는 부분만큼은 어느 정도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트작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근 종영한 MBC TV '에덴의 동쪽'역시 장기간 히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송승헌의 아역으로 출연한 김범의 활약에 기댄 부분이 꽤 큽니다.
그럼 아역배우 본인의 삶은 어떨까요. 실제로 촬영장에 따라다니면서 본 결과, 아역배우들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환경이 문제일 수도 있고, 본질적으로 어린 나이에 생활 현장에 나와 있는 데서 오는 피로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런 생각과 관련된 글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의 관심이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한 것 같지는 않다. 이스마일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아들이 “피곤해 인터뷰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투정하자 보도진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때려 쓰러뜨렸다. (위 사진입니다.) 인도 정부는 이들에게 살 집을 주고, 제작진은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에 대비해 신탁기금을 마련했지만 부모들은 “지금 당장 돈을 달라”며 항의하고 있다.
어린 스타들과 돈에 눈먼 부모들의 문제는 할리우드 최초의 스타 아역 배우가 출현했을 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영화 '키드'(1921년)에서 찰리 채플린과 공연, 7세의 나이로 스타덤에 오른 재키 쿠건은 21세가 되자 그가 번 400만 달러를 탕진했다며 어머니와 계부를 고소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 쿠건이 되찾은 것은 12만 달러뿐이었다.
이 사건으로 아역 배우의 재산 보호에 대한 논쟁이 일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미성년 배우가 벌어들인 돈 중 최소 15%는 성년이 될 때까지 제3자가 신탁 관리해야 한다는 법규를 통과시켰다. 이 법은 지금도 '재키 쿠건 법'이라고 불린다. 이 법은 재산뿐만 아니라 교육과 촬영 시간 등 미성년 배우가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루 9시간30분 이상 촬영장에 머물 수 없었고, 그중 3시간은 영화사가 고용한 교사와 함께 공부를 해야 했다.
10대 스타들의 성공이 각광받으면서 '어릴 때부터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는 부모와 아이들로 연예 관련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지금, 재키 쿠건 법의 취지에 더 많은 관심이 모아져야 할 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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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테이너 어쩌고 하는 얘기가 유행하던게 벌써 오랜 옛날 일 같습니다. 애당초 별 의미가 없는 말이기도 했는데 이름을 지어 부추기다 보니 한때는 떠들썩 했습니다만, 지금은 싹 사라진 분위기입니다.
사실 최근 몇해 동안 아나운서들이 떴던 시절이 있었다지만, 따지고 보면 유명했던 건 훨씬 더 옛날의 아나운서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름을 대자면 숱하게 댈 수 있죠. 그런데 지난해 이후에는 그런 식으로라도 유명한 아나운서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왜 요즘은 아나운서들이 전처럼 활개를 치지 못할까요? 그런 저런 궁금증에 대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스타 아나운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김태희의 외모도, 김제동의 개인기도, 강호동의 우기기도 없이 마이크 하나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기며 온 국민을 사각 화면 앞으로 끌어모으던 왕년의 제왕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말을 듣고 '그러게. 한때 김성주, 강수정, 노현정이 방송을 다 하는 듯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더니 어떻게 된걸까'하는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아직 아마추어 시청자다. 그럼 아직도 가끔 화제에 오르는 황현정-황수경-황정민 '황 트리오'의 전성기 때 얘길까? 아니면 온 국민의 일요일 아침을 깨웠던 '열전! 달리는 일요일'의 최선규나 손범수 아나운서를 떠올려야 할까?
그 정도도 아직 멀었다. 진정한 스타 아나운서라면 왕년의 MBC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양분했던 '장학퀴즈'의 차인태, '명랑운동회'의 변웅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밖에 KBS를 대표했던 미스코리아 전담 MC 김동건, '장수만세'에서 팝 DJ까지 TBC를 개인 방송처럼 휘저었던 황인용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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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절끝에 이뤄진 WBC의 지상파 TV 생중계,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다행한 일입니다. 비록 14대2로 참패하는 굴욕도 있었지만 1대0의 짜릿한 대첩을 안방에서 지켜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방송사들은 절대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지상파와 중계권을 보유한 IB 스포츠의 줄다리기는 치열했습니다.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경제난으로 방송사 사정이 어렵다. 광고주들이 몸을 사려 적자가 예상된다'는 주장과, '이 기회에 IB 스포츠의 콧대를 꺾어야 한다'는 두 가지 명분으로 초강경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그 결과 2006년 중계료보다도 싼 150만달러(약 23억원)에 지상파 3사가 돌아가며 중계를 진행하게 됐습니다. IB가 요구한 금액의 절반 정도죠. 하지만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사실 KBS의 복이었던 것이, 96년 5승에 그쳤던 박찬호는 97년 KBS의 중계 기간 동안 14승을 올려 처음으로 두자리수 승리를 쌓으며 에이스로 부상합니다. 당연히 시청자의 관심과 광고가 폭주했습니다.
닭쫓던 개가 된 3사는 '외화 낭비'라며 갖은 저주를 퍼부었지만 박찬호는 경인방송의 중계 3년간 각각 15승, 13승, 18승을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경인방송의 봄날이었죠. 송월타올 광고의 인기가 치솟았던 것도 이 무렵입니다.
3년 계약이 끝나고 역시 3대 방송사는 공동 대처를 합의하지만 MBC가 한발 빨랐습니다. 몰래 독자 계약을 추진한 MBC는 경인방송이 감히 낼 수 없는 거액을 내고 4년간 메이저리그 중계를 따냅니다. 역시 KBS와 SBS의 저주는 이어진 수순이었고, 이들은 보복으로 MBC가 국내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길을 막아버립니다.
그러나 MBC가 새치기에 벌을 받았는지 박찬호는 계약 첫해인 2001년에만 15승을 올렸고, 2002년 텍사스로 이적한 뒤에는 9승, 1승, 4승으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재활에 투입합니다. 당연히 KBS와 경인방송이 누렸던 광고 특수는 없었습니다. 2002년 김병현이 36세이브를 올린게 유일한 위안이었죠.
역사는 반복됩니다. 2006년 시즌을 앞둔 당시, 3대 지상파 방송사는 IB 스포츠의 중계권 독점에 항의하는 뜻으로 연합 전선을 펴고 있었지만 KBS가 슬쩍 계약에 성공합니다. 최희섭의 선전과 박찬호의 부활이 기대되던 상황입니다.
즉시 다른 방송사들은 KBS의 신의 없음을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습니다(정해진 수순입니다). KBS는 당시 3사가 합의한 내용, 즉 'IB스포츠와 개별적으로 접촉하거나 구매를 의논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명백하게 어긴 것으므로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KBS의 역공은 입이 딱 벌어지게 했습니다. 이들은 "우리만 IB와 접촉한게 아니다. 다른 방송사도 이미 개별적으로 접촉하고 있었고 오히려 우리가 늦게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뒤로도 다른 방송사들이 그게 사실이니 아니니 한참 시끄러운 말이 오갔습니다. 어쨌든 KBS가 상대적으로 큰 돈을 낸 것도 사실이고, 합의를 깬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해 최희섭은 마이너리그로 강등돼 죽을 쒔고, 박찬호도 그닥 신통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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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도 온 세상이 기억하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리처드 닉슨. 그런 그에게 전혀 뜻밖의 인물로부터 인터뷰 제의가 들어옵니다. 인터뷰 제의를 해 온 사람은 장난스러운 토크쇼 진행으로 명성을 얻은 데이비드 프로스트(마이클 쉰이 연기합니다).
지구 최강국의 대통령으로서, 그 이전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래의 부통령으로 10여년간 세계 정세를 좌우했던 노 정객 닉슨(프랭크 란젤라)은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떳떳함을 국민들에게 해명하고, 재기의 기회를 얻으려는 욕심에 인터뷰를 수락합니다. 프로스트 정도의 풋내기는 충분히 가지고 놀 수 있다는 확신 또한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프로스트는 뒤늦게 이 인터뷰가 자신의 방송 인생을 좌우할 수 있음을 깨닫고 전력을 다해 닉슨을 인터뷰합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닉슨 또한 유감없는 관록으로 여기 맞서죠. 과연 두 사람의 커리어가 달린 이 인터뷰는 누구의 승리로 끝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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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의 어느날, 미국을 보호해온 히어로 집단 왓치맨 Watchmen의 일원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이 괴한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역시 왓치맨의 한 사람인 로어셰크(재키 얼 헤일리)는 이 사건 뒤에 만만찮은 음모가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하지만 이미 현역을 떠나 은퇴해 있던 나머지 멤버들은 그리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왓치맨의 대표격인 닥터 맨해튼(빌리 크루덥)은 구 소련의 군비 확장으로 인한 인류 말살의 위협을 막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어 세세한 인간사에 관심을 돌리려 하지 않죠. 또 전 사회적으로도 핵전쟁의 불안감이 세상을 휩쓸고 있었기 때문에 코미디언의 죽음은 쉽게 묻힙니다. 하지만 또 다른 멤버 오지맨디아스(매튜 굿)의 살해 시도 사건이 벌어지고, 결국 물러나 있던 와치맨 멤버들은 현역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연히 그렇듯, 음모의 규모는 엄청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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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2, 원작이 삼국지 맞아? (109) | 2009.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