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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탈 사이트에서 유명 인사의 이름을 검색하면 생몰 일자가 함께 뜹니다. 현재 인기 정상을 달리고 있는 유명인들은 대개 왼쪽, 출생일자만이 표기될 뿐이지만 이미 사망한 사람의 경우에는 사망한 날짜가 함께 뜨기 마련입니다.

최진영, 1970-2010. 바로 어제, 최진영이라는 이름 옆에도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가 함께 떴습니다. 이제 막 중년의 원숙함이라는 글자를 붙일 시기인 그가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건 참 한스러운 일입니다. 망자에게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주위 사람들에겐 청천벽력같이 안타까운 일일 뿐입니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수많은 작품들, 수많은 그의 흔적들을 돌이켜 보다가, 문득 그의 가수 데뷔 히트곡인 '영원'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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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당시 최진영은 이미 배우로서는 중견급의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데뷔작은 1990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되어 있지만 실제 CF 모델 활동은 그보다 훨씬 빨랐고 - 최진영이 늘 하던 얘기 중에 '누나보다 연예계 데뷔는 내가 더 빨랐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 1993년 MBC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죠. 이후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합니다.

하지만 최진영이 가수 활동의 꿈을 갖고 있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습니다. 언제나 동생의 일에 적극적이었던 최진실은 이 꿈을 이뤄주기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고, 마침내 두 남매는 함께 당시 최고의 음반 제작자 중 하나였던 강민 대표의 두손기획으로 이적합니다. 강민 대표는 김정민을 최고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려 놓은 실력있는 제작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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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 출연 당시의 최진영. 김찬우-장동건과 함께 당시에는 최고의 아이들 스타였습니다. 저때는 정말 어렸지만, 그 뒤에도 타고난 동안이었죠.)

물론 최진영이 이미 상당 수준의 인기를 갖고 있었지만 이것이 가수 데뷔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는 힘들 상황이었습니다. 이전까지도 류시원에서 장동건까지 수많은 배우들이 음반을 냈지만 김민종 외에는 양쪽 모두에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볼만한 사람이 그리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진영 가수 만들기 프로젝트는 과감하게 '얼굴 없는 가수'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최진영이란 이름 대신 SKY라는 예명을 쓰고, 가수에 대한 부분은 베일로 가려 놓은 채 노래와 뮤직비디오로 승부를 건 것이죠. 이 뮤직비디오는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될만한 대작이었습니다. 1년 전인 1998년 이병헌 김하늘 조민수 등이 출연한 대작 '투 헤븐'에 이어 차인표 장동건 김규리 정준호가 주연하고 미국에서 촬영된 작품이었죠.

무려 8분40초짜리 대작입니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의 김영찬 작가가 스토리를 쓴 뮤직비디오 '영원'은 어려서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인 형제가 서로를 모른 채 성장해 FBI와 범죄자로 대면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지만 이중 범죄자인 장동건의 패거리 중 하나로 이서진이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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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줄거리는 뒷날 '카인과 아벨'이란 제목으로 드라마화가 추진되기도 했는데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초기 아이디어가 여러번 뒤집혔고, 결국 정작 소지섭-신현준 주연으로 드라마화 됐을 때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메디컬 드라마가 됐었죠.

지금 다시 보면 지금보다 훨씬 앳되게 보이는 장동건의 모습, 그리고 갓 20대가 된 김규리의 파릇파릇한 모습이 색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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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뮤직비디오는 공개된 뒤 열광적인 성원을 얻습니다. 드라마틱한 줄거리의 뮤직비디오에 강렬한 록 비트, 그리고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랩과 발라드의 결합이 듣는 이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죠.

물론 관계자들은 SKY의 정체가 최진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반 대중들 사이에선 김정민이나 박상민, 조장혁을 후보로 놓고 열띤 대화가 오갔습니다. 심지어 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는 'SKY의 정체를 밝히겠다'며 카메라를 앞세우고 두손기획 사무실에 취재진을 파견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최진영이 SKY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인기는 더욱 치솟았습니다. 약간 왜소한 체구의 최진영은 늘 선글래스를 착용해 카리스마를 보충했고, '영원'이 수록된 최진영의 데뷔 앨범은 60만장 이상 판매됐습니다. 아마도 최진영이 데뷔 후 가장 빛났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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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뮤직비디오를 보다 보면 방황하던 장동건이 자살을 시도할 때 김규리가 등장해 그 손을 잡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불행히도 최진영에게는 그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일찍 갔지만 '영원'이란 노래는 여전히 남아 그를 기억하게 한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깝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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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법으로 고인을 추모하는게 제게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느껴집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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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이번 토리노 세계선수권에서 1등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타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시즌 전승의 기록을 세워도 좋았겠지만,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남아있는 가장 큰 목표였던 밴쿠버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이기 때문에 그 자신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대회가 보여준 것은 오히려 '김연아도 사람이었다'는 정도를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알려 준 것이 아닐까 합니다. 밴쿠버의 큰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가 기대 이상의 점수를 내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던 '대인배 김연아'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충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무대는 김연아도 언제든 실수할 수 있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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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큰 관심은 '김연아는 지금부터 뭘 할까'일 겁니다. 스무살 나이에 이만한 성취와 이만한 영광을 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김연아가 살아야 할 삶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1/4 정도를 지났다고 할까요? 일반인들 같으면 오랜 수험 준비를 마치고 명문대에 들어간 학생이 '이제 나도 인생에 대해 좀 알아야겠다'고 생각할 나이와 비슷합니다.

물론 저는 본인과 아는 사이도 아니고, 부모님의 측근도 아닙니다. 다만 '우상 김연아'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입장에서, 한번 생각난 바를 끄적여 봤습니다. 제목은 '김연아는 앞으로 뭘 하며 살까?' 였죠. 시점은 밴쿠버 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는데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어쨌든 3월 초 정도의 시점에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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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연아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1990년생 김연아. 마침내 세계 정상에 섰다. 어떤 영화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최상의 드라마가 밴쿠버의 얼음 위에서 펼쳐졌다. 김연아 스스로 “내가 꿈꾸던 것을 모두 이뤘다”고 했듯 1차적으로 피겨 스케이트 선수 김연아에게 더 이상 노릴 목표는 없는 셈이다. 물론 목표는 만들 수도 있다.

1930년대의 전설적인 스케이트 선수 소냐 헤니는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을 3연패했고, 지금도 사람들의 기억에 생생한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도 1984년과 1988년, 두 번에 걸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 스무 살에 불과한 김연아가 역대 세 번째 신화를 만들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과연 두 번째 금메달 도전이 현명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대세다.

헤니야 전 세계가 그의 독무대였던 시절이었고, 비트 역시 사회주의 동독 체제 하에서는 스케이팅 외에는 달리 할 게 없었다. 피겨 스케이팅 종목의 출전 선수들은 날로 어려지고 있어 스물네 살이면 충분히 노장급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금메달’을 얻는 것에 실패했을 때 잃을 것이 너무 커 보인다.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르디이른 스무 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의 목표로 삼아 도전할 성취를 거둔 이 천재 아가씨는 이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본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오지랖 넓게도 이 걱정을 하고 있다. 이미 ‘국보 김연아’를 남이 아니라 여기게 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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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떠오르는 것은 20세기 전반 최고의 아역 배우로 명성을 떨친 셜리 템플이다. 1928년생인 셜리 템플은 1930년대 어떤 성인 스타들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대공황이 한창이던 당시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어려운 시기에 극장에서 템플의 미소를 보며 어려움을 잊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치하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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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역 배우에겐 연령 제한이 있었다. 1940년대 이후 템플의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기 시작했고 1945년, 그녀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갑작스레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템플은 성인 배우로 활동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멸의 아역 스타’가 사라진 것을 아쉬워할 뿐이었다. 템플의 명성이 돌아온 것은 유방암 투병을 벌이면서도 직업 외교관으로 이름을 날린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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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되던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부임한 것은 그동안 가상 적국이었던 미국의 이미지를 우호적으로 바꿔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인생의 이른 시기에 최상의 성취를 이룬 조숙한 천재들은 대부분 그 분야에 매진해 명성을 이어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분야도 분명 있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나 아역 스타는 그런 면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물론 현재까지의 성공만으로도 김연아는 평생 윤택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성을 얻었다. 지금부터 여생(?)을 여유있게 보낸다 해도 그건 본인의 선택 사항일 뿐이다. 하지만 그 자신을 위해서든, 그를 사랑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든 제2의 인생을 위한 설계는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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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빙상 영웅 에릭 하이든 이야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1980년 동계올림픽에서 스물두 살의 나이로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미터부터 1만 미터까지 다섯 종목을 제패한 불멸의 스타 하이든은 스케이터로서의 전성기를 지났다고 판단하자 과감하게 스케이팅을 포기하고 사이클 선수로 변신했다. 동시에 학업에도 열을 올려 1991년 스탠퍼드대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최근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미국 선수단의 팀닥터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이든의 인생’이라는 대하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지 모르지만 그 드라마의 클라이맥스는 아직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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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이 미국 대표팀 팀닥터로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하이든입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말해 두지만, 이 글은 김연아보고 '앞으로 인생을 이러이러하게 살아라'라고 강요하는 글이 아닙니다. 인생의 초기에 상당히 많은 것을 이루고, 그 나머지 인생은 그냥 편안하게 놀면서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의 기반을 구축한 두 사람이 긴 여생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예시일 뿐입니다.

김연아가 이런 두 사람과 비슷한 삶을 살건, 아니면 좀 더 쉽고 편안한 삶을 살건, 그건 전적으로 김연아 자신의 선택일 뿐입니다. 김연아가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해 전업 주부의 삶을 살건,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하건, 지금부터 학업에 전념해 박사님이 되건, 올림픽을 2연패하건, 그냥 피겨 지도자로 제2의 김연아를 육성하며 살건, 거기에는 어느 하나가 우세한 것이라는 평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은 되고, 어느 것은 안 된다'고 감히 다른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강요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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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팬으로서, 혹은 좀 더 나이먹은 사람으로서 김연아에게 바라는 것은, 그중 어떤 선택을 한다고 해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한다는 것이고, 또 부디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실망에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탠다면, 늘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는 삶도 참 피곤하겠지만 반대로 늘 지나칠 정도로 쏟아지던 세상의 관심이 어느날 사라지더라도, 거기에 일희일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무엇을 선택해도 나중에 후회는 남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선택은 또 다른 후회를 낳을 수도 있었다는 점은 누구나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에릭 하이든의 삶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을 자아내지만 이 삶이 정답이라고 누가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라고 해서 '내가 정말 이짓을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이미 주목받아버린 사람의 삶이란 이래서 힘든 면이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김연아가 제목이 됐지만, 수많은 10대 아이들 스타들의 경우에도 분명 비슷한 면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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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월요일 아침인데도 늘지 않는 구조자 수와 떨어지지 않는 기침이 영 우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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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추노'가 드디어 끝을 맺었습니다. 중간 중간 너무 눈에 띄는 낚시가 있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드라마는 오랜만인 듯 합니다.

'추노'의 가장 큰 힘은 남자들의 아드레날린을 들끓게하는 짤막짝막한 대사 사이 사이에 적절한 유머로 긴장감을 풀어 주던 천성일 작가에게서 나온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치러진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추노'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각본상을 따낸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일 겁니다.

물론 '추노'의 설정에도 살짝 억지는 있습니다. 일단 배경을 인조 때로 잡아 소현세자와 원손 석견 이야기를 주요 테마로 잡고 여기에 주인들을 죽이러 다니는 노비 패거리 이야기를 덧붙인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그때라고 그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단언하긴 힘들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회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분명 실제 역사의 진행과는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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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에서 가장 큰 역설은 대길의 묘 위로 흐르는 송태하의 후일담 나레이션입니다. 여기서 송태하는 인조의 죽음과 효종의 즉위, 그리고 석견의 복권을 얘기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실제 역사와는 정 반대로 얘기한 부분이 있습니다.

"...인조가 승하하고 세자 봉림대군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효종이다. 효종 6년인 1655년을 끝으로 도망노비를 쫓는 노비추쇄는 중지되었다. 다음해, 석견은 귀양에서 풀려난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석견이 효종에 의해 귀양에서 풀려나고 왕족의 지위를 회복한다는 내용은 이미 지난번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1655년에 노비 추쇄가 끝난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정 반대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1655년은 노비 추쇄가 끝나는 해가 아니라, 효종이 노비 추쇄에 본격적으로 나선 해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그 이듬해에 석견이 귀양에서 풀려난 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그건 4년 뒤인 1659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1655년, 효종과 신하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보시겠습니다.


효종 14권, 6년(1655 을미 / 청 순치(順治) 12년) 1월 27일(임자) 1번째기사

(전략)상이 이르기를,
“어제 장례원(掌隷院)이 경기의 노비를 살펴 아뢴 것을 보니, 어린 것까지 모두 3백 구(口)뿐이었다. 시노비(寺奴婢)는 어찌 낳은 것이 없는가?”
하고, 또 하교하기를,
“경기 화량(花梁)을 옮겨 들여보내어 한 진을 만들고, 또 해서의 변보(邊堡)를 옮겨서 한 진을 만들고, 본부의 속오(束伍)로 한 진을 만들고, 시노(寺奴)로 한 진을 만들어, 모두 네 진을 만든다. 들어가기를 바라는 자는 들여보내고 바라지 않는 자는 베를 거두어서 모집하여 들여보내는 군졸에게 주면, 폐단이 없이 일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호조 판서 이시방이 아뢰기를,
“각사노비안(各司奴婢案)에 등록된 자는 19만인데 신공(身貢)을 거두는 수는 2만 7천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접때 영돈녕 김육(金堉)이 한가히 노는 사람들에게서 베를 거두려 하였다. 이 일은 참으로 어려운데도 또한 하려 하였다. 19만의 노비에게서는 어찌 그 신공을 죄다 거두어 군수(軍需)를 보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정이 으레 행해야 할 일을 행하지 못하여 나라의 형세가 날로 줄어드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따로 도감(都監)을 세워서 거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추쇄관(推刷官)을 정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추쇄관을 차정(差定)한 뒤에 꼴찌에 해당한 자는 사율(死律)로 논하라. 명나라 태조(太祖)는 뭇 신하 중에서 죄를 범한 자는 조금도 용서하지 않았다. 국가가 어찌 한낱 추쇄관을 죽이지 못하겠는가.”
하고, 또 이르기를,
“이제 어느 관원으로 추쇄를 맡게 할 것인가?”
하였다. 원두표가 아뢰기를,
“음관(蔭官) 또는 문관(文官)으로 하되 삼조(三曹)의 낭관(郞官)인 자로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심지원이 아뢰기를,
“장례원·형조가 맡되 이조를 시켜 극진히 가리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대사헌 김익희(金益熙)가 아뢰기를,
“신의 생각으로는 형조·장례원은 맡을 수 없겠습니다. 따로 도감을 설치하고 어사(御史)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빨리 결단해야 하고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람들이 경의 이 말을 비웃고 욕하겠으나, 이제 경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후련하다. 추쇄는 모두 대사헌의 말대로 시행하되 대신 한 사람이 통괄하여 살피는 것이 옳겠으니, 우상이 맡게 하고 어사는 명관(名官)을 차출하여 보내라. 국가에 이익이 있다면 내가 모발이나 피부같은 것을 아끼지 않겠다. 분의(分義)가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대사헌의 말은 자기를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명예를 바라는 것도 아니며 국가를 위한 것이다.”
하고, 이어서 이조 참판 홍명하(洪命夏)에게 이르기를,
“추쇄관은 명관을 차출하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조가 중벌을 받을 것이다. 사노비는 달아났거나 죽었거나 잡탈이거나를 막론하고 해원(該院)을 시켜 사실대로 초록(抄錄)하여 들이도록 하라. 또, 연미(燕尾)와 갑곶에는 첨사(僉使)를 두고 그 나머지 두 곳에는 만호(萬戶)를 두도록 하라.” (후략)


길고 복잡하다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655년은 북벌 사업에 매진했던 효종이 국가 재정과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문서상 기록된 19만의 공노비 가운데 사라진 자들을 찾아 오게 한 해인 것입니다. 또 이 일은 중요한 일이므로 기존 관서에서 다루기보다는 특별 기관을 설치하고, 중앙 관료를 뽑아 추쇄관으로 임명해 그 일을 독려하게 하고, 그중에 추노 실적이 가장 뒤지는 자는 사형으로 다스린다는 무시무시한 얘기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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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견을 살려낸 효종을 성군으로 묘사하려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노비 추쇄에 대한 한 효종은 결코 우호적이거나 진보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효종 이후의 왕들은 혹독한 노비 추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숙종은 추노 과정에서 노비를 함부로 죽인 관료를 엄벌했고, 영조 때에는 추쇄관의 폐해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고, 정조는 마침내 추쇄관을 혁파하기에 이릅니다. 물론 추쇄관이 없어졌다고 해서 추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정조가 남긴 기록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근대적인 평등관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썼던 글입니다.

제목: 추노

1684년 12월 13일의 조선왕조실록은 숙종의 진노를 전한다. 지평(持平)을 지낸 정제선(鄭濟先)이 살인죄로 사형 위기에 놓이자 신하들이 일제히 선처를 요구한 데 대한 분노였다. 사헌부의 정5품 벼슬인 지평은 품계는 그리 높지 않지만 정승도 탄핵할 수 있는 요직이었고, 정제선은 급제 3년 만에 이 자리에 오른 30대의 유망한 관료였다.

그런 정제선이 살인범으로 몰린 것은 도망친 노비를 잡아 주인에게 돌려주는 추노(推奴) 때문이었다. 정제선은 연행 사신단의 일원이던 1683년, 달아난 노비(叛奴) 2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다른 노비 2명과 양민 1명까지 잡아들였고 술에 취해 이들을 무리하게 곤장으로 다스리다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공권력 남용에 대한 논란이 벌어진 끝에 정제선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유배됐다.

하지만 숙종은 이때 정제선을 사형시키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24년 뒤인 1708년에도 숙종은 “정제선 뒤로도 양반 사대부 가운데 살인죄로 사형당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이는 사대부가 법을 두려워하여 죄를 짓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처벌하는 자들이 꺼렸기 때문인가?”라며 법 적용이 공평하지 않음을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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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TV 인기 드라마 '추노'가 25일 마지막 회를 맞았다. 드라마의 배경은 17세기 인조 때지만 실제 추노의 기록은 조선 500년 내내 끊이지 않았다. 도망친 노비의 체포와 환원이 당시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왜란과 호란을 잇따라 겪으며 신분제도에 혼란이 오자 효종 때에는 아예 추노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추쇄관이 등장한다.

그러나 추쇄관의 폐해가 심해지자 정조는 이를 혁파하고 노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파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가 이리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사람 축에 끼지 못하니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이 없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天之生人, 豈亶使然哉). 가련한 마음은 한이 없다.”(홍재전서)

추노와 관련된 기록을 살필수록 신분의 격차가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에도 인권과 법 적용의 형평성을 고민하던 깨인 통치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18세기 조선이 문물의 중흥기를 맞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끝)


마지막 부분 정조의 말은 홍재전서 12권에 나오는 '노비인(奴婢引)'이라는 글에서 따 온 것입니다. 조금 더 길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존재가 노비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기자의 팔조지교는 그것이 악을 징계하자는 일시적 조처에 불과했던 것인데, 역대로 그것을 변혁하지 않고 그대로 인습해 왔기 때문에 대를 물려 가면서 남의 천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식구와 나이를 헤아려서 사고팔고 하니 짐승이나 다를 바 없고, 아들 손자로 전해 가면서 이리 갈라지고 저리 갈라지니 토지나 매한가지며, 오랑캐 비슷하게 반드시 어미를 우선하고, 아비 성을 따르지 않고 종[奴]으로 성(姓)을 삼는다. 양반과는 혼인도 할 수가 없고 이웃에서도 사람 축에 끼워 주지 않으니, 높고 두꺼운 하늘과 땅 사이에 갈 곳 없는 자와 같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 그렇게 만들 이치가 있을 것인가. 약간의 인정을 베푼 열성조의 사랑으로 인해 비록 몸은 보존하고 살 곳 정해 살고는 있지만 그들에 대한 불쌍한 마음은 한이 없다.
내가 국정에 바쁜 여가를 이용하여 두 쪽 다 똑같이 편리한 방법이 없을까를 고심하다가, 우선 노비 규정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대신 고용(雇傭)의 법을 만들어서 대물림은 하지 않고 자신에게만 한하도록 조처를 취하고, 그에 관한 방략(方略)을 먼저 정하여 대금을 주고 드나들게 하는 데도 다 일정한 수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으로 뜻을 같이한 한두 신하들과 함께 그 영(令)을 발표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오로지 명분만을 숭상하는 편인데, 만약 양민과 천민을 한데 섞어서 반벌(班閥)이 분명하지 못할 경우 상대를 무시하고 덤빌 자가 틀림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어미는 남의 부림을 받는데 자식은 도리어 주인에게 항거한다거나, 작은 역(驛)과 보(堡)에 부릴 하인이 없다거나, 궁한 선비 집에 땔감을 마련할 길이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가지 폐단은 없어지지만 한 가지 폐단이 다시 생길 염려가 있으므로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추쇄관(推刷官)을 혁파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늘의 명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단지 작은 절목 내의 일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이 평민과 섞여 사는 것과 본분을 지키는 일이 어그러지지 않고 병행될 수만 있다면 단연코 결행할 것이다. 지금 공의 주고를 인하여 이와 같이 내 뜻을 약간 밝힌다.

생각할수록 정조는 참 대단한 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추노'의 마지막 나레이션은 좀 의문입니다. 아울러, 최고 권력자의 지성이 그 시대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숙-경-영 시대를 거치며 조선 후기의 문화가 꽃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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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허공의 활로 하늘의 해를 쏘는 대길의 엔딩은 참 멋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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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결국 이렇게 됐습니다. MBC TV '놀러와'에 출연한 탤런트 김바니가 자신의 IQ가 153이라면서 "멘사 회원 제의를 받았다"고 얘기한 것이 시작입니다. 그런데 멘사라는 곳은 회원이 부족해서 회원 확보를 위해 우수 영재를 영입하는 기관은 아닙니다. 지원자들을 테스트해서 그중 기준치가 넘는 지능을 가진 사람을 받아들이는 곳이죠.

아니나 다를까, 며칠 되지 않아 국제 조직인 멘사의 한국 지부인 멘사 코리아에서 공식 성명을 내놨더군요. "김바니에게 가입 제의를 한 적은 없다"고 말입니다. 여기에 김바니 측은 "아는 사람들로부터 가입해 보라는 권유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는데, 방송을 재생해 보면 분명 김바니가 한 말은 "멘사 회원 들어오라는 연락도 왔었어요"입니다. 이건 지인들이 "한번 지원해보라"고 권유했다는 말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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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해 전, 한국 사회는 학력 위조 파문으로 몸살을 겪었습니다. 특히 매일 TV에서 보는 유명인사들과 인기 연예인들 가운데에도 학력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부풀린 분들이 적지 않았죠. 물론 대부분 그 타격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그 여파를 겪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분들이 당초 생각보다 쉽게 용서받은 데에는 '나 같아도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사회 분위기가 상당히 작용한 듯 합니다. 누구나 유명해지고 싶고, 조명을 받으면 실제보다 뛰어나게 보이고 싶고 한 법이죠. 그러다 보니 사소한 부분에서 과장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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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문제가 됐던 것이 학력이고, 그 다음에 흔한 건 IQ죠. 학교 성적은 곧바로 검증이 될 수 있지만 IQ는 꽤 높다고 주장한다 해서 문제가 될 게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명문대 출신이라고 하면 '공부만 잘 하지 끼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지만 IQ가 높고 학교 성적이 그저 그렇다면 '뭔가 특이한 천재'의 이미지를 심어 줄 수도 있죠.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높은 IQ를 가졌다고 인정됐던 연예인 가운데 멘사 가입 같은 공식적인 인증 절차를 거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150이라고 하건, 170이라고 하건 사실 이걸 확인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IQ 테스트가 토플 토익 점수처럼 입학이나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IQ가 430이라는 분도 유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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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까지 높은 IQ를 가지고 있는 연예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지금 높은 IQ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연예인보다는 다른 직업을 택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사실이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다만 그게 홍보 요소가 된다는 게 참 씁쓸한 뿐입니다. 사실 방송에서 IQ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윤하가 IQ가 높아서 노래를 잘 한다거나, 타블로가 스탠포드를 나와서 랩을 잘 한다거나, 김태희가 서울대를 나와서 연기를 잘 한다거나, 이런 설명들이 모두 옳다고 말할 사람은 분명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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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이번 바니의 멘사 사건을 계기로, IQ 높은 연예인들을 띄워주는 이상한 풍조도 없어졌으면 합니다. 아울러 'IQ 높은 연예인 모듬'같은 기사나 쓰는 분들도 좀 자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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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마지막으로 우리의 86, MC몽 파이팅! (그래도 예능 IQ는 200인걸 세상이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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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예언자(Un Prophète)'를 봤습니다. 주인공의 옥중 생활을 그린 영화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현재는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 탈출'이 이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이지만 올드 팬들에게는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의 명연이 빛났던 '빠삐용'이 여전히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 밖에도 알란 파커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꼽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지독하게 건조한 영화 '알카트라즈 탈출'이나 임영동의 '감옥풍운' 역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 수많은 '감옥 영화' 가운데서 '예언자'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 작품일까요. 세계 여러 나라의 교도소와 다른 프랑스의 교도소를 소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만 특이한 영화일까요? 이 영화가 위에서 거론된 기라성같은 선배 영화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주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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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의 아랍계 프랑스인 말리크 엘 제베나(타하 라힘 Tahar Rahim)는 6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입감됩니다. 그 전에도 소년원은 수시로 들락거렸지만 성인 자격으로 교도소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죠. 가족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그에게 교도소를 지배하고 있는 코르시카 계 갱단의 두목 세자르 루치아니(닐스 아레스트럽)가 손을 뻗어 옵니다.

아직 '사람을 죽인 적은 없는' 말리크에게 청부 살인을 요구해 온 것이죠. 당연히 말리크는 소극적으로 반발을 시작하지만 이미 세자르 파의 손길은 간수들을 포함해 교도소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벗어날 길이 없죠. 마침내 말리크는 면도칼을 입에 물고 표적이 된 '그 남자'에게 다가갑니다.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신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건 이 긴 영화에서 도입부에 해당하는, 그냥 한가지 계기가 되는 사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그리고 나서 6년이라는 기간 동안 말리크라는 한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청년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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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할리우드식 '기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리우드의 상식에서 볼 때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대 이후 반영웅(anti-hero)도 하나의 조류로 자리했지만 원칙적으로 반영웅도 영웅의 기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교도소를 무대로 하는 경우, 죄수가 주인공이라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 죄수는 억울한 죄수여야 한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경우라야 그 안에서 주인공이 펼치는 갖가지 행동들이 합리화되고, 그것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어색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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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크는 사실 교도소 안에서도 천대받을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프랑스 안에서 아랍계 이민 자손들은 범죄의 온상 취급을 받곤 합니다. 마티유 카소피츠의 '증오' 같은 작품이 이런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입니다.  '예언자' 안에서도 아랍계 범죄자들은 교도소를 손에 꽉 쥔 코르시카계에게 완전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조직을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한 말리크도 종 취급을 계속합니다.

나폴레옹의 출생지로 유명한 코르시카는 프랑스의 한 주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이탈리아에 더 가까울 수도 있는 섬입니다. 지중해의 패권에 따라 수시로 주인이 바뀌었던 섬이기도 하죠. 최근에는 분리 독립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곳입니다.

이 섬 출신의 대표적인 범죄 조직은 시칠리아를 근거로 한 이탈리아 마피아에 비견되는 코르시칸 마피아라고 불리기도 하고, 유니오네 코르세(Unione Corse)라는 이름으로 한때 전 세계적인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미 오래 전 영화인 007 시리즈 '여왕폐하(조지 라젠비가 본드 역을 맡은 작품입니다)'에도 이 조직이 등장하죠. 또 진 해크먼 주연의 고전 수사극 '프렌치 커넥션'도 이 코르시칸 마피아와 경찰의 혈투를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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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장면을 싫어하는 분들에게 권하기는 힘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종류의 시선에서 한 범죄자의 성장 과정을 바라보고 싶은 분에게는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굳이 이 말을 여기 쓴 이유는, 이후의 내용은 상당히 스포일러 역할을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의 내용은 영화를 보신 뒤에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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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크에게 있어 교도소는 학교, 특히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합니다. 말리크가 죽이도록 되어 있던 죄수 레예브는 말리크가 그를 찾아갔을 때 "공부를 좀 해 보는게 어때?"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말리크에게는 태어나서 몇 번 들어보지 못한 '건설적인 제안'이었을 겁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레예브는 죽고 나서도 수시로 말리크에게 찾아와 조언자 역할을 합니다. 가끔 예리한 통찰을 주죠. 이 영화의 제목이 '예언자'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참 별난 유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같으면 '왜 나를 죽였어어어어어'하면서 악몽을 꾸게 할 원귀여야 정상인데 반대로 그를 계속 도와주니 말입니다. 죽은 사람의 지혜를 흡수하기 위해 시체의 골을 먹었다는 석기시대적인 발상인지...)

아무튼 말리크가 글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교도소 안의 학교를 찾아갔을 때, 많이 배운 죄수 리야드가 등장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무지=범죄, 지식=개과천선'이라는 구도에 입각해서 이 리야드는 '좋은 죄수' 캐릭터여야 하겠지만 이 영화에선 어림 없는 예측입니다. 리야드는 오히려 말리크가 진짜 거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어쨌든 19세의 말리크가 수년간 다양한 수업을 쌓고 졸업(출소?)을 향해 가는 과정은 대학 진학에 대한 패러디처럼 여겨집니다. 프랑스의 교도소가 과연 범죄자의 사회 적응을 위한 교도 기관인지, 범죄자로서의 성공을 위한 고등 교육기관인지를 정면으로 비꼬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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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오디아르 감독은 한때 교도소를 돌아보고 비인간적인 환경에 충격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시각으로 본다면 TV에 닌텐도 게임기, 심지어 담배까지 피우고 커피도 타 마시며 다른 죄수의 방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교도소가 비인간적이라는 데 의아해 할 만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 영화 속에 나오는 교도소 환경이 얼마나 실제에 가까운지 절대 확인할 일은 없어야겠지만, 영화 속 교도소를 무대로 펼쳐지는 생존 드라마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프리즌 브레이크' 보다 50배 정도는 설득력이 있다고 할까요.


P.S. 결론은 심지어 교도소 안도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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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타하 라힘. 영화 속과는 달리 상당히 인상 좋은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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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신작인 SBS TV '인생은 아름다워' 1,2회가 지난 주말 방송됐습니다. 격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첫 방송부터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더군요. 결코 적지 않은 인물들을 소개하느라 약간 나열식이 되긴 했지만 지난 수십년간 김 작가의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에게는 예전의 드라마와 새로운 드라마를 비교하는 게 짭짤한 재미를 줬을 듯 합니다. 하긴,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는데 아직 태섭(송창의)의 여자친구 채영 역을 맡은 유민은 예고편에서만 얼굴을 내밀더군요.

물론 배경이 제주도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예나 지금이나 3대 대가족이 함께 사는 홈 드라마라는 점은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지난번 '엄마가 뿔났다'에서 중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엄마'에 맞춰졌던 초점이 이번엔 83세의 시아버지(최정훈)와 80세의 시어머니(김용림) 커플, 그리고 장남인 병태(김영철)-민재(김해숙) 부부의 장남인 태섭(송창의)의 예사롭지 않은 애정 문제 쪽으로 옮겨 갈 듯 합니다.

아무래도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태섭과 채영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고, 태섭의 진짜 애인은 사진작가인 경수(이상우)라는 점이죠. 네. 이번엔 동성애 문제가 정조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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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그것도 트렌디풍의 드라마(곧 방송될 '개인의 취향'에서는 다소 코믹하게 동성애자 이야기를 등장시킬 전망입니다. 물론 '진짜 동성애자'도 아니고, '동성애자 흉내를 내는 젊은이'일 뿐입니다)가 아닌 홈 드라마에서 동성애 문제가 다뤄지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겁니다.

몇 차례 특집극이나 베스트셀러 극장 식의 단막극에서 다뤄진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화제가 되곤 했지만 이런 온 가족을 무대로 하는 드라마의 한 복판에서 동성애 문제가 조명된 적은 없었습니다. 세상이라는게 혼자 사는 게 아니다 보면, 이번엔 동성애의 문제가 결코 자신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정면으로 부각될 듯 합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태섭이 놓인 환경도 결코 만만찮습니다. 34세의 아들이 결혼하지 않고, 딱히 사귀는 여자도 없다면 대부분의 한국 부모들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겁니다. 더구나 태섭의 어머니인 민재는 친모가 아니라 계모입니다. 워낙에 살짝 극성스러운 성격인데다 남들이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신경쓰지 않는다고 할까봐" 민감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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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섭이 결혼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고 남자와 연인 관계라는 것이죠. 그 상대인 경수는 이미 한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뒤 스스로의 정체성 때문에 이혼한 뒤 혼자 살고 있는 상태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태섭에게도 "더 이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가족에게 밝히라"고 요구합니다.
 
과연 태섭이 부모에게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밝히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까요. "우리 어머니도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 전처 뿐이니 다시 새 여자 찾아 결혼하라고 한다"는 경수의 말은 한국 사회의 부모 세대들이 동성애자인 자녀에 대해 갖고 있는 의식의 평균 선을 대변합니다. 주인공인 민재라고 해서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만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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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예고편을 보면 태섭의 '명목적 연인'인 채영까지도 '뭐든 참아낼 수 있다'며 태섭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보면 이안 감독의 '결혼 피로연'에 나오는 2남1녀 커플의 가능성도 엿보입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구도지만, 어쨌든 정통적인 홈 드라마의 틀 안에서 예상되는 막대한 갈등이 어떻게 해소될지 궁금합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와 관련된 화제는 아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시할 선을 지났지만, 여전히 한국 TV는 그런 현실을 애써 무시해 왔습니다. 이런 보수적인 태도는 젊은 층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소재가 이제 정면으로 다뤄진다는 것만 해도 상당히 신선한 충격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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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작가의 사회적인 금기에 대한 도전은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일찌기 코믹 터치의 드라마 '사랑합시다'에서도 겹사둔이라는 '민법상 합법'인 관행을 다뤘고, '엄마 아빠 좋아'나 '모래성' 같은 드라마는 황혼 이혼이란 말이 나오기도 전부터 중년의 위기를 짚었습니다. 논쟁적인 이슈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는 것도 특기입니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의 불륜 문제,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엄마의 가출 등이 그렇습니다.

방송 출연 정지 상태였던 이승연, 학력 위조 파문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장미희,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방송에서 설 기회가 없었던 홍석천을 기용해 '재활' 시킨 것도 김수현 작가였습니다. '사실 별 이유 없이' 방송에서 외면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나는 쓴다'는 것이 일각으로부터는 '오만'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는 '용기'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의 손끝에서 해석되는 '동성애'는 어떤 색채를 띨까요? 지금껏 한국 안방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던 동성애라는 소재가(심지어 시트콤에서도 비유적인 의미나 공포의 대상으로나 여겨지던) 70을 맞은 노작가에 의해 연착륙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이 드라마의 줄거리가 그동안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에 열광했던 중/노년층 시청자들에게는 더 이상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극중에서 송창의와 이상우의 키스신 정도라도 방송된다면... 파장은 정말 만만찮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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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는 결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닙니다. 다섯 소실을 거느렸다가 80대의 나이에 본처에게로 돌아오겠다는 할아버지 커플, 30대의 나이에 각각 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재혼한 아버지 커플의 얘깃거리나 비중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커플의 이야기가 어떻게 서로 얽히고 설킬지는 지금부터 지켜 볼 일입니다.)

P.S. 많은 사람들이 '김수현의 드라마'라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게 이 노장 작가에게도 상당한 부담인 모양입니다. 그분의 트위터에도 "에고 김연아는 진짜 물건이네요. 어찌 견뎠을까요 ㅎㅎ"라는 말이 쓰여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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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를 소유하려는 무지막지한 아귀다툼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그토록 유명한 스님이 돌아가신 뒤로 저서가 잘 팔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여기에 "내가 남긴 책은 모두 절판하도록 하라"는 스님의 유언이 더해지면서 '무소유'는 한 권에 15만원씩에도 거래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다른 생각이 듭니다. 그럼 과연 그 책을 꼭 절판해야 할까? 오히려 책을 계속 내면서 다른 좋은 일에 쓸 수는 없을까? 그저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것만이 반드시 유언을 실현하는 길일까? 출판사에서 책 한권 절판하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 이런 식으로 상혼이 춤추고 '무소유'라는 책 제목과 전혀 걸맞지 않게 그 책을 '소유'하려드는 중생들이 넘쳐 난다면, 과연 그것이 스님의 유언을 제대로 따르는 길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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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무소유'라는 책의 홍보 문구에도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 있군요.^^ 스님이 이 책의 인세로 버신 돈만 해도 지금까지만 해도 상당한 액수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스님이 자신을 위해 축적한 재산은 하나도 없지만 말입니다.

스님을 알고 지내던 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난스럽게 '스님은 지갑을 갖고 다니십니까' 했더니 아래로 길게 늘어진 승복의 소맷자락을 툭툭 치면서 '여기가 내 지갑이지'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장난기가 더 나서 '스님, 용돈 좀 주세요' 했더니 보지도 않고 소매 안에서 잡히는 대로 수표 한 장을 툭 꺼내 주시더라는군요. '아니 뭘 이렇게 많이 주십니까?' 했더니 '뭐 그게 내거냐?' 하시더라는...

과연 15만원씩 내고 그 책을 가져간 사람(분명히 자신의 행동이 '무소유'와는 정 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는)이 그 책을 제대로 읽어 볼 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다 해도 그 의미를 깨달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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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님이 책을 절판하라고 하신 것은 분명 '그 책으로 돈벌이 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지 못하게 하라'고 하신 뜻은 아닐 거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이미 수십만권이 팔렸고, 온 천지의 도서관에 그 책이 있는데 이제 와서 그 책을 보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닐 테니까요. 만약 그런 뜻이라면 가능할지 모르지만 '내가 생전에 쓴 책은 보는 족족 태워 버리라'고 하시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그 책에 세상을 위한 좋은 말이 쓰여 있고, 그 책을 지금에라도 보고 가르침을 얻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책을 좀 더 많이 찍어 내서 그 돈을 좋은 일에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비록 유언 몇 자를 어긴다 해도 이것이 생전의 뜻을 더 충실히 잇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저 혼자 생각은 아닙니다. 이런 생각을 하신 분들은 저 말고도 많은 듯 합니다. 다음 기사도 한번 보실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17/2010031702115.html

그러고 보니 저도 스님이 입적하신 다음날, 신문에는, '유언을 충실히 이행하라'고 쓴 적이 있군요. 좀 민망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다음 글은 평소나 마찬가지로, 호기심 많은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대체 사리란 어떤 것인가 궁금하셨던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았습니다.

법정 스님은 유언으로 '사리 같은 건 찾지 말라'고 하셨죠. 옛날 어른들은 스님들이 절을 많이 하면 관절염이 생겨서 연골이 뭉쳐 사리가 된다고도 하고, 채식을 많이 하면 담석이 생겨서 사리가 된다고도 했습니다. 물론 다 속설이고, 사리라는 게 사람의 몸에서 나온다는 건 아무리 봐도 참 신기한 일인 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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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리

사리(舍利)란 본래 '몸'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샤리라(Sharira)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대로 음역해서 설리라(設利羅), 또는 뜻을 옮겨 영골(靈骨)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광명경'은 석가모니의 말을 빌려 '사리는 정혜(定慧)를 닦은 데서 나오므로 보기 드물고, 사리를 얻는 것은 상등의 복전(福田)을 얻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설에는 세존의 사리가 여덟 섬에 이른다고도 하고, 속세의 신도들은 고승일수록 입적할 때 사리가 많이 나온다고 믿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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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에 대한 신비로운 믿음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널리 퍼졌다. 중국 의약서 '본초강목'은 사리는 영양의 뿔(羚羊角)로만 깰 수 있을 뿐 망치로도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다. 실학자 이규경도 저서 '석전총설(釋典總說)'에서 사리는 극음의 산물이므로 극양의 재료인 코뿔소의 뿔이 닿으면 바로 녹는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이런 믿음을 틈타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일도 적지 않았던 듯싶다. '고려사절요'에는 효가(曉可)라는 요승이 등장한다. 그는 꿀물과 쌀가루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모두 내 몸에서 나온 감로사리(甘露舍利)”라고 주장하며 세를 불려 사기 행각을 벌이다 충선왕 5년(1313년) 처벌을 받았다.

또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사리는 옛날에도 얻기 힘들었다는데 지금은 조금만 이름이 있는 승려가 죽어도 반드시 사리가 나왔다며 부도(浮屠)를 세운다. 전에는 사리의 진위를 놓고 승려들이 소송을 하더니 부도를 허물고 진짜 사리인지 깨 보는 일도 있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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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사리는 인간의 신체 내부에 있던 물질이 화장 때의 열로 인해 변형된 것일 뿐 득도와는 무관하다는 주장도 있다. 회의론자들은 1995년 국제 법의학 저널에 인간의 넓적다리 뼈를 섭씨 14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할 때 수정 형태의 물질이 형성된다는 연구가 실렸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물론 사리를 보물로 만드는 것은 구슬의 가치나 성분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의 지극한 불심이다. 그저 사리의 개수를 따져 대덕(大德)의 법력을 가늠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경계할 일이다. 11일 열반에 든 법정 스님의 다비식이 13일 열린다. “절대 사리를 찾지 말고 탑도 세우지 말라”는 스님의 유언은 세간의 저속한 관심을 꾸짖는 지엄한 가르침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듯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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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전승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사리는 모두 8섬 4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엄청난 양이죠. 물론 이것도,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있다는 사리탑의 수와 사찰의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다고 볼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문득 이 대목에서 움베르토 에코가 쓴 '장미의 이름'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아드소가 스승 윌리엄에게 예수님이 못박혔던 십자가에서 잘라 낸 나뭇조각이 이 수도원에도 보물로 간직되어 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윌리엄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들이 다 진짜라면 예수님은 십자가가 아니라 큰 숲에 못박혀 돌아가신게 분명해."

종교의 종류를 막론하고 이런 식으로 '뭔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대상을 통해 믿음을 굳히고 싶은 생각은 만국 공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무소유'라는 책에 대한 일부의 집착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걸 좀 사회에 긍정적인 자산으로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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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MBC TV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의 마지막회 때문에 온통 난리 법석입니다. 흘낏 보니 '신세경 귀신설'까지 등장했군요. '하이킥'의 126회 종영을 다룬 기사마다 댓글에는 '최악의 엔딩'이라는 주장이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분노의 전제는 일단 두 사람이 공항으로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김병욱 감독에 대한 저주를 퍼붓고 있죠. 하지만 김병욱 감독은 마지막 장면의 처리에 대한 해석으로 "아무 것도 규정하지 않았다. 보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너무 늦은 사랑의 자각에 대해 그리고 싶었다"고만 얘기했습니다.

누가 봐도 둘이 교통사고가 나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데 대체 왜 이런 말이 필요할까요? 거기에 대한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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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앞뒤 생략하고, 병원에서 세경은 아슬아슬하게 지훈을 만나고, 지훈은 공항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합니다. 둘이 탄 차가 빗속에 길을 달리고, "서울 올때 맨 처음 만났던 사람이 아저씨였는데 떠날때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도 아저씨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라디오로 교통사고 소식을 알리는 뉴스 음향이 들려오고, '3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준혁과 정음이 등장합니다. 정음은 커리어 우먼이 되어 있고 준혁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이맘때였지...?'라며 정음이 이런 회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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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병원에 일이 생겨서 지훈씨가 나한테 오지 않았더라면, 오더라도 어디선가 1초라도 지체했더라면, 하필 세경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났어도 바래다 주지 않았더라면..."

후회 가득한 말들이지만 여기서 정음은 '둘이 죽지는 않았을텐데'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상복같은 검은 옷을 입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죽었다는 표현은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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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장면, '2010년 3월19일 오전 11시15분'이라는 자막과 함께 다시 빗길을 달리는 지훈의 차가 등장합니다. 이 차 안에서 세경은 그동안 지훈에게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차가 달리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지훈이 눈물을 흘리며 세경을 바라보고, 세경이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 다음 화면은 정지합니다.

당연히 상식적으로는 여기서 두 사람이 죽음을 맞았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네. 지금 500원짜리 제휴 동영상을 왔다갔다 다시 보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소식을 알린 라디오 뉴스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오늘 11시30분 공항로에서 빗길에 차들이 미끄러지면서 8중 추돌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4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했습니다."

백과사전에서 '공항로'를 검색해 봅니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동 양화대교(제2한강교) 남단에서 김포공항 정문까지 직접 연결되는 도로. 총연장 7.1km, 폭 40m이다. 강서구 등촌동·가양동·내발산동·공항동 등의 지역을 통과한다. 특히, 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도로일 뿐 아니라 서울-강화 간 국도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공항로는 '김포공항'으로 가는 길입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은 '인천공항고속도로'입니다. 일반인들이야 틀릴 수 있지만 뉴스에서 둘을 착각할 리는 없습니다.

타히티로 가는 비행기를 김포공항에서 탈 수도 없죠. 물론 지훈과 세경이 묘하게 코스를 선택해 공항로를 거쳐 김포공항 입구에서 인천공항 가는 길을 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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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과 세경이 탄 차가 잡힌 시점이 11시15분. 준혁과 세경의 대화(공항에 나오지 말라는)에서 알 수 있는 비행기 시간은 12시입니다. 사고 시간인 11시30분에 공항로라는 건 비행기 탑승을 기대하기 힘든 시간입니다. 너무 늦죠. 그래서 11시30분에 만약 사고가 났다면, 사고 지점은 공항로가 아니라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공항에 거의 도착한 어느 지점이어야 하는 겁니다.

(인천공항고속도로라도 물론 정상적인 탑승 시간보다는 늦은 시간이긴 합니다. 하지만 11시15분에 인천공항고속도로 위에 있다면 그건 아슬아슬하게라도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시간이죠. 더구나 미리 도착한 아빠가 짐가방을 부쳐 놓은 상태라면 탑승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겁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교통사고 뉴스'는 시청자의 주의를 한쪽으로 쏠리게 하는 교묘한 술책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라디오 뉴스와 무관하게 공항고속도로에서는 다른 사고가 났을 수도 있죠. 정음의 말만으론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문제의 사고로 아빠와 신애가 죽었을 수도 있고, 그 때문에 타히티에 갈 이유가 없어진 세경과 지훈이 맺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빠와 신애는 그대로 타히티로 떠나게 하고, 그대로 지훈과 세경은 차를 돌려 둘만의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음의 회한에 가득찬 말은 "그때 그렇게 둘이 (따로) 공항으로 차를 타고 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둘이 맺어지는 일은 없었을텐데..."라는 의미일 수도 있는 것이죠.

네. 물론 상당 부분 억지로 여겨질 수 있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혹시 둘이 죽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나온 한 가지 가능성일 뿐입니다. 그리고 사실 죽었느냐, 죽지 않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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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많은 시청자들은 '언니와 잘 됐으면 좋겠다'면서도 지훈에 대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세경, 반지를 싸들고 대전으로 내려가려다 세경의 고백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는 지훈을 싸잡아 '재수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얼마나 연약하고 걷잡을 수 없는 것인지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 시트콤 마지막회의 핵심은 세경을 바라보는 지훈의 눈길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눈빛은 그냥 세경을 향한 측은함일까요, 아니면 '내가 정말 사랑했던 건 이 아이였구나'하는 깨달음의 표현일까요. 정음에 대한 직접적인 애정 표현 외에도 지훈이 세경을 남다르게 생각했다는 건 지속적인 시청자들이면 다 알고 있는 얘기일 겁니다. 다만 왜 세경을 소개시켜주지 않느냐는 동료의 말에 '얘는 우리 집에서 식모살이 하는 불쌍한 애야'라고 말하듯, 스스로에게도 '얘를 좋아해도 나는 어쩔 수 없어'라고 다짐하면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하죠.

물론 이런 복잡다단한, 디테일 가득한 사람의 마음 속에 대한 묘사를 거부하고 '그런 게 어딨냐'고 떼를 쓰듯 '이지훈은 정말 개자식이었다' '세경이는 뭐냐'고 외치는 시청자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의 눈에는 전날 준혁과 입맞춤을 하고 다음날 지훈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제 이 나라를 떠나 다시는 못 볼 거란 사람에게 그 정도는 할 수 있는게 아닐까요.

그래도 마지막에 이런 순간이 오네요. 아저씨한테 맘에 담아뒀던 말들 한번 하고 싶었는데, 이뤄져서 행복해요.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늘 지금 이 순간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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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살았어도 그 뒤로 행복했는지, 저는 아무 것도 모르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에피소드에서 세경은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내 인생에도 이렇게 불이 환하게 밝혀진 날이 올까요?'라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그런 세경이, 마지막 몇분간이라도, '행복'이라는 것을 느꼈다는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그렇게 오래 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엔딩이 간절하기도 했지만, 가슴아픈 결말도 충분히 받아들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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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제작진과 출연진,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자매를 다시 볼 수 없다니, 대체 다음 주부턴 무슨 낙으로 살란 말인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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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추노'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초반 만큼의 인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혈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드라마인 것은 분명합니다. 드라마 속 오지호나 장혁의 인기 못지 않게 원손 석견 역을 연기하고 있는 김진우 어린이의 인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더군요.

이 원손 아기씨는 아시다시피 비명에 간 소현세자의 세 아들 중 막내인 석견(石堅)입니다. 아버지 소현세자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데 이어 어머니 강빈은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아 세 아들은 모두 고아가 된 상태에서 1647년, 제주로 귀양을 떠납니다. 당시 맏이 석철(石鐵)이 12세, 둘째 석린(石麟)이 8세, 그리고 막내 석견은 불과 4세입니다. 하지만 어린 이들 형제에게 유배 생활이 어찌나 고된 것이었는지 불과 1년만에 위로 두 형들은 죽고 석견 혼자 살아남습니다. 그 밖에 두 딸이 있었지만 이 시기의 기록은 없습니다.

'추노'는 바로 이 시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막내 석견은 과연 어떻게 될까요? 살아남아서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영의정 이경식(아마도 김자점을 형상화한 인물로 보이는)에 의해 송태하, 대길 등과 함께 죽음을 맞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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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석견은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 대신 왕위에 올라 효종이 된 숙부 봉림대군의 결단에 의한 것입니다.

이럴 때 가장 편리한 것은 조선왕조실록이죠. 핵심적인 기록만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먼저 1647년의 기록입니다.

인조 48권, 25년(1647 정해 / 청 순치(順治) 4년) 5월 13일(계축) 1번째기사
소현 세자의 세 아들을 제주에 유배시키다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세 아들인 이석철(李石鐵)·이석린(李石麟)·이석견(李石堅)을 제주에 유배하였다. 처음에 의금부가 석철은 제주에, 석린은 정의(旌義)에, 석견은 대정(大靜)에 유배하자고 청하였다. 당시 석철은 12세, 석린은 8세, 석견은 4세였다. 상이 하교하기를 “한 곳에 정배하여 서로 의지해서 살도록 하되, 내관(內官)과 별장(別將) 등을 교대로 지정해 보내 외부인들이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세 고을에 정배(定配)된 사대부는 모두 다른 섬으로 옮겨 정배하라.” 하였다. 이에 홍무적은 남해현(南海縣)으로, 신득연(申得淵)은 진도군(珍島郡)으로 이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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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중에 석견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후 1649년, 인조가 승하하고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릅니다(효종). 효종은 즉위 즉시 정권을 농단하고 있던 김자점의 무리를 처단하고 왕권을 강화합니다. 그런 효종도 즉위 10년이나 지나서야 석견을 유배 간 죄인에서 왕자의 자리로 복권시킬 수 있었습니다. 1659년의 기사입니다.

효종 21권, 10년(1659 기해 / 청 순치(順治) 16년) 윤3월 4일(갑자) 2번째기사
소현 세자의 아들과 딸들을 군과 군주에 봉하라고 하교하다 
 
상이 하교하였다.
“소현 세자의 1남 이백(李栢)은 경선군(慶善君)을 증(贈)하고, 3남 이회(李檜)는 경안군(慶安君)으로 하라. 그리고 1녀에게는 경숙 군주(慶淑郡主)를 증(贈)하고, 2녀는 경녕 군주(慶寧郡主)로 하고, 3녀는 경순 군주(慶順郡主)로 하라.”

이회가 바로 석견입니다. 지난주 '추노'에서 송태하가 짝귀에게 석견의 이름을 '회'라고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왜 10년이나 걸렸을까요. 당시의 정치 상황으로 볼 때 소현세자의 아들에 대한 입장은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남 대신 차남인 효종이 왕위에 있는데 장남의 아들 - 다시 말해 인조의 종손 - 이 살아 있다는 것은 후계구도를 복잡하게 하고, 효종의 왕권에 위협이 되기 때문입니다. 분명 여기저기에 소현세자의 복권을 명분으로 하는 반란의 위협이 있고, 그 위협이 존재하는 한 석견은 살아있는 것 자체가 역모에 가담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죠. (뒷날 효종이 죽고 현종때 벌어진 예송논쟁을 생각하면 당연한 얘깁니다.)

그런 상황에서 효종이 조카를 역적에서 다시 왕손으로 복권시킨 것은 대단한 용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효종은 역모에 휘말린 배다른 동생들을 용서했고, 여기에 하나 보태 석견까지 복권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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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석견, 즉 경안군은 1643년에 태어나 4세때인 1647년 귀양을 갔고, 12년간 귀양살이를 한 뒤 만 16세 때인 1659년에야 왕자로 복권됩니다. 장가도 가고,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리 장수하지는 못합니다.

현종 11권, 6년(1665 을사 / 청 강희(康熙) 4년) 9월 18일(신축) 4번째기사
경안군 이회의 졸기  
 
경안군(慶安君) 이회(李檜)가 졸(卒)하였다. 경안군은 곧 소현 세자(昭顯世子)의 아들이다. 소현의 자녀(子女)가 모두 죽었고 유독 경안군만이 살아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온천에 목욕하러 갔다가 병이 나서 실려 돌아와 죽었다. 상이 매우 애도하여 정원에 하교하기를,
“경안군의 상사(喪事)는 뜻밖에 나온 것이어서 내가 매우 비통하게 여기고 있다. 아, 선조(先朝) 때부터 돌보아 기르고 어루만져 보살펴 왔으니 진실로 후세 자손들은 의당 이를 본받아야 한다. 말과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눈물이 옷깃을 적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겠다.”

1643년에 태어나 1665년에 사망. 고작 만 22세에 숨을 거두고 마는 것입니다. 안된 일이긴 하지만 효종 시대의 중신들은 경안군의 죽음을 맞아 겨우 한숨을 내쉬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의 조정에서 경안군이라는 존재만큼 효종의 왕위를 불안하게 한 존재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경안군은 죽었지만 임창군 형제를 후사로 남깁니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적통'이라는 핏줄은 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숙종 8년(1679년), 서울 장안에 흉서가 나붙고, 그 흉서에는 '경안군의 아들 임창군이야말로 왕이 되어야 할 성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행히 숙종이 "반도들이 마음대로 임창군을 거론했을 뿐, 임창군이 연루된 증거가 없다"고 막아 임창군은 반란의 수괴로 지목되는 비운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임창군의 아들 밀풍군은 영조 초 이인좌의 난 때 반란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는 바람에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밀풍군이 직접 난에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왕권에 도전한 죄를 뒤집어쓸 상황이었고, 결국 밀풍군은 자결합니다. 이것이 소현세자의 후손들, 즉 왕이 되지 못한 왕손의 운명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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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살펴볼 때 효종의 결단은 인간적으로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효종대왕 행장에 보면 왕이 대신들에게 경안군의 복권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석견에게)작호(爵號)를 써서 내리도록 하겠다. 오늘 첨의(僉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매우 기쁘다. 내가 소현(昭顯)과 동시에 북행(北行)하여 험난한 이역 땅에서 어렵고 위험한 지경을 모두 겪었는데 늘 좌우에서 이끌어 주면서 주야로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동쪽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인사(人事)가 갑자기 덧없이 되어버리고 불량한 사람이 이어 변을 야기시켰다. 선조(先朝)의 성명(成命)을 경솔히 고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항상 아프게 여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영령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어찌 한스러움이 없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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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정리하면 인조가 죽고 왕이 바뀌기 전까지 석견은 귀양살이 도중이었지만 생명은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추노'의 상황으로 보면 석견이 살아남는 것은 송태하와 대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발판인 셈이죠.

물론 드라마의 장중한 마무리를 생각해보나, 이미 사람 많이 죽이는 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추노' 제작진을 보나 두 사람이 모두 살아남는 걸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 듯 합니다. 이제 두 남자 주인공 가운데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지, 혹은 둘 다 죽을지가 궁금해질 상황인 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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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의 지훈-정음 커플이 맺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것을 제작진은 이미 5개월 전에 시청자들에게 통보해 두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이별을 암시'하는 차원이 아니라, '이뤄질 수 없는 사이'라고 확인해 둔 상태였습니다. 단지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우리가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지훈-정음 커플의 운명은 5개월 전, 바로 지난해 10월9일 방송된 '지붕킥' 24회에서 이미 결정돼 있었습니다. 말이 안 된다구요? 5개월 전이면 '지붕킥' 상으로 두 사람이 서로 사귀기도 전의 일이라구요? 하지만 분명히 사실입니다. 두 사람은 이미 이뤄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게 규정되어 있었던 겁니다.

기억이 안 나시는 분들을 위해 재현해 드립니다. 갑자기 이 생각이 나서, 저도 다시 확인해 보느라 다운로드 받는데 500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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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상상 속에서는 결혼식도 올린 두 사람이지만, 이건 그냥 상상이었을 뿐이죠. '지붕킥'은 가끔씩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얼마 전 해리와 세호의 결혼 장면(15년 후)이 그랬고, 더 전에는 20년 후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지난해 10월9일에 방송된 24회는 두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하나는 해리의 간계 때문에 떡볶이를 먹고 혼자 떡볶이집에 남게 된 신애가 돈을 내지 못하고 언니 세경에게 구원을 청하면서 벌어지는 '유괴 소동' 에피소드(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슨 일에든 광수를 의심하는 자옥에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자옥은 식탁에서 발냄새가 나도 광수를 의심하고(나중에 다른 에피소드에도 나오지만 발냄새의 주인공은 줄리엔입니다), 냉장고에 넣어 둔 음식이 없어져도 광수를 의심합니다. 그러다 광수가 자신을 덮치려는 걸로 착각해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때려 기절시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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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에서 결말은 세월이 흐른 2029년, 자옥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광수가 문병을 온 장면입니다. 이미 백발의 할머니가 된 자옥 앞에 역시 중년의 광수가 나타납니다. (물론 20년 정도 지나 봐야 광수는 40대 중반일텐데 너무 노신사처럼 묘사된다는 흠이 있지만, 아무튼 이건 그냥 넘어갑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서도 자옥은 광수가 반가워 손을 잡자 몰래 손 세정기로 손을 소독합니다. 그리고 머리핀을 머리에 끼웠다는 사실을 잊고, 머리핀이 보이지 않자 광수가 가져간 것으로 판단하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얘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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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이야기가 왜 지훈-정음 커플의 미래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설명은 지금부터 들어갑니다. 자옥을 오랜만에 본 광수는 자옥에게 질문합니다.

광수: 정음이나 줄리엔하고도 연락하세요?
자옥: (손 세정기에 손을 닦으며) 걔들이랑 연락한지 오래됐다.

그렇습니다. 24회때처럼 자옥과 순재가 그냥 그런 사이일 때에는 아무 상관 없지만, 자옥과 순재가 결혼해 이미 한 집에 살고 있는 이상, 줄리엔은 몰라도 정음은 지훈과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면 모를 수가 없는 사이인 겁니다. 이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옥이 '정음이랑 연락한지 오래됐다'는 것은 지훈과 정음이 2029년에는 이미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 전 이별을 맞은 지훈과 정음이 다시 만나 사랑을 속삭이더라도, 결혼에는 이르지 못하거나 결혼하더라도 2029년 이전에는 갈라서게 된다는 얘기일수밖에 없습니다.

(제작진은 과연 내일 방송될 '지붕킥'의 엔딩을 만들 때 이 에피소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잊어버리고 있는 걸까요. 저도 사실 그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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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굳이 설명을 달자면 지훈과 정음이 결혼해 살고 있지만 자옥과의 사이가 벌어져서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자옥과 순재가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겨서 이혼한 사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자옥이 광수와 아무 얘기도 길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연락 안된다'고 말을 잘라 버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네. 물론 구차한 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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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냥 웃자는 얘기인 건 분명합니다. 다만 그냥 지훈-정음 커플이 다시 맺어지는 해피엔딩의 경우에는 5개월 전에 방송된 24회의 그 대사 한마디와 모순이 발생할 수 있다는 - 이런 걸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군요 - 가벼운 딴지일 뿐입니다. 뭐 그렇다 해도 어쩐지 해피엔딩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어쩔 수가 없군요. 부디 지훈이 정음의 가문을 다시 일으켜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가 나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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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억 방문자 돌파 기념으로 그냥 한번 만들어 봤습니다.

이쪽과 어떻게 줄을 그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뭐 만드는데 돈드는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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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지붕뚫고 하이킥'의 또 한 커플이 위태롭습니다. 바로 광수-인나 커플이죠. 광수(이광수)와 인나(유인나)는 김자옥의 하숙집에서 이미 한 방을 쓰던 사이입니다. 둘은 처음부터 함께 연예계로 진출하자고 굳게 약속한 사이지만, 오디션에서 인나는 발탁되고 광수는 떨어지죠. 결국 인나는 걸 그룹 스키니(사실은 현아 빠진 포미닛)로 데뷔하고,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지붕킥' 시청자들이면 다 아는 진행입니다.

여기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 벌어집니다. 걸 그룹 멤버가 된 인나와 광수의 관계가 위태로워진 것이죠. 당연히 인나는 사생활의 정리가 절실해지고, 핸드폰도 다른 사람(아마도 매니저)이 대신 받아 주다가 결국은 아무 사전 예고 없이 번호가 정지돼 버립니다. 광수의 생일 잔치에도 오지 못하고, 방송에선 "제 남자친구는... 저를 사랑해 주시는 모든 팬 여러분이죠"라는 멘트를 날리며 방글방글 웃습니다.

현실이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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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얘깁니다. 다만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현실의 걸 그룹 멤버들은 인나처럼 초 스피드로 발탁된지 몇달만에 데뷔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최소 1,2년은 훈련 기간을 갖죠.

그 기간 동안 소속사에서는 기존의 인간관계들을 대부분 정리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왜 그런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걸 그룹이든, 보이 밴드든 절대 다수의 팬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가 특정인에게 매여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 그룹 멤버들이 '애인은 없어요', 심지어 '연애 경험도 없어요'를 간판처럼 내세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사생활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등장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상당한 피해나 고전이 예상됩니다. 그런 걸 쫓아다니는 기자들이 문제...라고 하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이미 상황은 그 선을 넘어섰습니다. 어느 그룹 멤버가 '남자와 함께 모텔에 가서 찍은 사진'이라는 사진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과거사진'이라는 사진들이 인터넷에 등장하는 일도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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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면 지난해를 떠들썩하게 했던 '박재범 마이 스페이스 사건' 또한 네티즌들의 극성스러운 활약(?) 덕분이라는 걸 이제는 모를 사람이 없을 겁니다. 데뷔하기 훨씬 전, 철없는 소년이 친구에게 별 생각없이 던진 몇마디를 찾아내 사람을 죽이네 살리네 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되어 버린 겁니다.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놓고 '소속사의 관리가 부족했다'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네티즌들이 있는 한, 소속사에서 아이들 그룹 데뷔를 준비중인 연습생들의 사생활과 전화 통화, 미니홈피를 예의주시하는 걸 탓하기는 힘듭니다.

어쨌든 '지붕킥' 내용대로라면 인나는 연습한지 몇달만에 데뷔를 하게 됐습니다. 당연히 광수와의 감정은 전혀 정리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여러 해 준비한 연습생이라도 어쨌든 끔찍하게 사랑하는 남친(혹은 여친)이 데뷔때까지도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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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광수와 인나의 관계는 영화 '노팅 힐'을 연상시키는 기자회견장면을 연출해 냈습니다. 광수가 기자를 가장해 "인나씨의 팬으로서 앞으로 더욱 더 높이 올라가길 바란다"고 말하자 인나는 "정말 사랑하는 친구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역시 대답을 가장해 자기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곤 두 사람의 입모양 인사가 마무리였습니다.

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장면을 봤는데, 이 장면을 보신 분들은 '인나가 얄밉다' '광수가 불쌍하다' '아니다, 광수가 저렇게 찌질하게 있을 필요가 없다. 인나의 애정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보이더군요.

그런데 여기서 저는 여러분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한번 상황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지금부터 가상의 상황입니다.

여러분이 눈여겨 본 걸 그룹이 있습니다. 특히 걸 그룹의 한 멤버에 유난히 눈길이 갑니다. 그 멤버의 팬이 되는 바람에 그 그룹을 성원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멤버가 몇달 전까지만 해도 남자와 동거를 했다더라. 그 남자를 떨궈 버리고 데뷔를 하는 바람에 남자가 폐인이 될 지경이라더라'라는 소문을 듣습니다.

(혹은 소문의 내용을 바꿔 보겠습니다. '몇달전까지 동거를 했고, 지금도 그 남자가 &&를 잊지 못하고 숙소 주변을 맴돈다더라. 둘이 아직도 진한 관계고, &&는 남자 만나러 숙소 이탈했다가 매니저들한테 걸려서 호되게 혼난 적도 있다더라'는 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특히 후자의 경우, "쯧쯧, && 안됐네. 그 나이에 성공을 위해서 남자친구와 생이별을 하다니, 정말 가슴아프겠구나. 둘이 그냥 예쁘게 만나면서 활동하면 안될까?"라고 생각하실 분들은 과연 얼마나 됐을까요? (질문이 과거형인 것은 '광수와 인나의 사연'을 보기 전에는 어떻게 생각하셨느냐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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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일입니다. 한때 무척 잘 나갔던 여배우가 신인일 때의 얘기죠. 이 여배우가 막 화려한 조명을 받기 시작했을 무렵, 갑자기 이 여배우의 옛날 남자친구라는 남자가 자신의 존재를 만방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남자의 주장은 '군대 가기 전만 해도 ##(여자의 이름입니다)의 엄마가 나를 사위라고 불렀다. 제대하면 결혼하기로 했었는데 지금은 나를 아는 체도 안 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이었죠. 여배우는 여배우대로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니었는데 왜 이제 와서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의 인터뷰를 하곤 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이 터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여배우를 향해 '왕년에 놀았다더니... 남자도 버리고... 스타가 그렇게 좋은가'하며 혀를 끌끌 찼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은 대놓고 남자를 욕했습니다.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든간에 이미 여자의 마음이 떠났고, 그 어렵다는 톱스타의 길을 걷고 있는 왕년의 여자친구를 이런 식으로 다리를 걸어서 어쩌겠냐는 것이었죠. 아마 그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난 그런데 관심 없었다'는 분을 빼고 대략 비슷한 느낌을 가지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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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 상황을 '광수와 인나'에 대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인나가 성공을 위해 광수에게 결별을 선언하고(또는 선언이고 뭐고 없이 연락을 끊어 버리고), 광수가 인나를 잊지 못해 '인나는 내 여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팔베개를 하고 자던 여자다'라고 떠들고 다닌다면 어떻게 될까요. 만약 바로 위 사연의 주인공들이 '내가 아는 광수', '내가 아는 인나'라면 저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을까요?

네. 바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3월16일 방송된 '지붕뚫고 하이킥'의 광수와 인나 에피소드는 바로 그런 시선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쉽게 했던 아이들 그룹과 연예인들의 이야기. 바로 '내가 아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겠느냐는 것이죠. 혹시 전과는 좀 다른 눈으로 보게 되셨습니까?

광수가 인나를 쫓아다니는 스토커로 만들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언론의 보도도, 네티즌의 극성도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판단, 여러분의 심판이라는 걸 이젠 아시겠습니까?

<<< 이 글 속에 나오는 특정인들과 관련된 이름을 거론하는 댓글은 보는대로 모두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예 거론을 안 하시는게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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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킥'에서 오래 기억될만한 대사 하나가 나왔습니다. MBC TV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이번주면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복잡다단하게 진행됐던 네 젊은이의 러브라인도 정리될 전망입니다.

지난주 지훈(최다니엘)은 세경(신세경)이 왜 자신이 선물한 빨간 목도리를 잃어버렸을 때 그렇게 정신이 나간 듯 보였는지, 그리고 그동안 세경이 가끔씩 보였던 우울한 표정이 무슨 의미였는지, 세경이 왜 자신과 함께 갔던 LP 가게에 다시 갔는지를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있는 나라로 떠나겠다는 세경에게 '가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리고 15일 방송에서 지훈은 세경에게 "그런데 빨간 목도리를 잃어버렸을 때와는 달리 찾았을 때에는 왜 그렇게 담담했느냐"고 묻습니다. 세경은 대답합니다. "겨울이 다 갔으니까..."

참 함축적이면서도 여운이 남는 한마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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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의 서울 생활은 내내 겨울이었습니다(물론 방송된 기간 중 상당 부분이 실제로 겨울이기도 했죠).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생전 처음 해 보는 남의 집 살이에다 동생까지 돌봐야 했으니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지훈에게 말한 '겨울이 끝났다'는 말은, 그런 고생보다 더욱 자신을 힘들게 한 것이 짝사랑이었다는 것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끝났다'는 말(네, 3월이니 확실히 겨울이 끝나긴 했습니다)은 이제 지훈에 대한 짝사랑으로 가슴아프던 시절은 과거일 뿐이라는 걸 분명하게 해 주고 있습니다. 굳이 일부러 겨울로 자신이 돌아가지 않는 한 말입니다.

지난주 많은 시청자들이 '가지 말라'는 지훈의 말을 보고 새삼스레 지훈과 세경(흔히 '지세'라고 하죠)의 관계 부활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세경의 태도로 보아 그럴 가능성은 없을 듯 합니다. 스스로 그 시절이 겨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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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붕킥'의 세경에게 남은 문제는 그동안 긴 겨울 내내 따뜻한 아랫목 역할을 했던 준혁(윤시윤)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금 세경과 신애가 떠나면 가장 혼란을 겪을 사람은 준혁과 해리 남매일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출산을 앞둔 현경에게도 세경이 필요할 듯 하지만 자옥이 한 집으로 들어왔으니 오히려 세경을 내보낼 생각을 해야 할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결국 세경이 떠나고, 남은 준혁은 언젠가 어른이 되어 그 섬으로 찾아갈 것을 다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결말은 어찌 보면 '거침없이 하이킥'의 유미(박민영)과 민호(김혜성) 커플, 혹은 윤호(정일우)와 민정(서민정) 커플의 처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살짝 불안하기도 합니다(워낙 반복을 싫어하는 스텐레스 김 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더 성장하고, 그보다 살짝 연상인 소녀도 인생을 더 배워야 합니다. 첫사랑은 이뤄지기 힘들고, 그 기억은 남자를 어른으로 만드는 법이죠.

이런 식의 결말은 언젠가도 얘기한 적 있지만 흑백영화 시대, 줄리앙 뒤비비에 감독의 역작 '나의 청춘 마리안느(Marianne de ma jeunesse)'의 엔딩을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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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유럽. 규율이 엄격한 기숙학교 주변에 호수가 있고, 호수 한복판에는 음침한 고성이 있습니다. 어느날 소년은 우연한 모험 끝에 성에 사는 미녀 마리안느와 연인이 됩니다. 하지만 마리안느 곁에는 음침한 백작과 괴력을 가진 거구의 하인이 붙어 있습니다.

어느날  마리안느는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알고 있던 소년과 마리안느의 사랑이 현실이 아닌 환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소년은 마리안느가 있는 곳을 찾아 기숙학교를 떠납니다. 마리안느가 말한 단서인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곳에 있는 성"을 향해서. 소년의 친구인 작중화자는 말합니다. '그의 눈에 차 있는 확신을 본 순간, 그건 단순한 환상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고. 영화는 소년의 출발로 끝납니다. 소년이 마리안느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그건 이미 영화 밖에 있을 뿐입니다. (김병욱 감독님에게도 이 영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만, 이 영화를 보신 적은 없다고 합니다.)

준혁과 세경이 '지붕킥'이 끝난 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나머지 네 번의 방송에서 이들의 재회가 이뤄질지, 아닐지도 알 수 없습니다. 세경이 가야 할 나라가 남태평양의 어느 섬나라라는 것과, '겨울이 다 가서'라는 말은 묘한 울림을 남깁니다. 물론 간다고 해서 윤택한 생활이 보장될 리는 만무합니다. 과연 세경의 겨울은 끝났을까요. 끝났다면 그건 3월이 왔거나, 아버지의 초청장이 와서가 아니라 준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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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문득 준혁에게 있어 가장 끔찍한 결말은, 순재와 자옥 커플이 세경과 신애 자매를 입양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물론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게 아니라, '최악의 결말은 뭘까'를 상상해 본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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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Up in the air)'를 만든 제이슨 라이트먼이라는 감독의 이름은 아직 생소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고스트버스터즈'를 만든 이반 라이트먼의 아들이라고 해 봐야 그런데 어쨌다는 거냐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땡큐 포 스모킹'이나 '주노'를 보신 분이라면 '아' 할만한 감독입니다. 미국의 젊은 감독들 가운데서는 제가 가장 기대하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조지 클루니와 함께 또 한번 희한한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는데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영화 '인 디 에어'는 지난번 골든 글로브에서 각색상을 수상했고, 이번 아카데미에는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 한 부문도 수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기대는 부풀었지만 영화는 쉽게 볼 수 없었고, 마침내 국내에서도 개봉됐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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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라이언(조지 클루니)은 해고 통보자라는 희한한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회사를 대신해 '당신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전해 주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해 내는 직업입니다. 안 그래도 발에 불이 나게 돌아다니던 그는 미국 국내의 온갖 기업들이 금융 위기로 인한 불황으로 정리 해고에 들어간 이후 1년에 300일 이상을 여행하며 보낼 정도로 바빠집니다.

심지어 그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내에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가방 하나 이상의 짐은 필요 없다'는 내용으로 대중 강연을 할 정도의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유목민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친구나 연인 같은 기본적인 인간관계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1년에 한달도 머물지 않는 '집'은 그림을 떼넨 미술관 같은 분위기일 뿐입니다. 냉장고 안에도 있는 건 미니어처 술병 뿐입니다.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항공사 마일리지 모으기입니다.

그런 그에게 두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그냥 그런 일시적인 상대로 여겼던 커리어 우먼 알렉스(베라 파미가)와의 관계가 점점 깊어 가는 것, 그리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던 회사에서 갓 사회에 진출한 명문대 출신의 여사원 나탈리(애나 켄드릭)의 아이디어대로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화상 채팅으로 해고를 전달하는 시스템의 도입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됐다는 것입니다.두 방향에서 자신이 안정해 있던 세계에 위협을 받게 된 라이언은 과연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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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가 연기하는 주인공 라이언 빙엄은 말하자면 '인생의 비밀'을 일찌기 깨닫고 그걸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인생을 쓸데없이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수많은 변수(혹은 짐)들을 포기하지 않고 갖고 가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변수(혹은 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인생을 혼란시키는 것은 바로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그리고 친구와 지인들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들로부터 위안을 얻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빙엄은 과감하게 '관심 안 주고 안 받기'가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려 놓고 있습니다. 쓸데 없는 감정의 소모야말로 시간낭비라는 걸 이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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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그리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그어 놓은 경계선 내로 사람이 들어올 때 저절로 머리 속에선 비상 경보가 울립니다. 타고난 매력 덕분에 중년의 나이에도 잠자리 파트너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절대로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나 희망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잘라 버리는 데' 선수인 사람이죠.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두 명의 여인이 나타나 가치관을 혼란시키는 과정은 어쩐지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스크루지처럼 살아가고 있는(물론 모으는 것은 돈이 아니라 마일리지일 뿐이지만) 클루니에게 두 여자는 '당신의 삶에는 과연 어떤 가치가 있느냐'고 묻고, 결국 클루니는 장고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나 리얼하고 그럴싸해서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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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의 장편 영화는 이제 세편째입니다. 하지만 몇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영화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달변가들이라는 것입니다.

'땡큐 포 스모킹'의 주인공 닉 네일러는 각계로부터의 비난 여론에 맞서 담배 회사를 옹호하는 대변인 닉 네일러입니다. 말을 못 할 수가 없는 사람이죠. '주노'의 주인공 주노 역시 나이답지 않은 엉뚱한 논리로 어른들을 꼼짝못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 디 에어'의 라이언 빙엄 역시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인 만큼 말재주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라이트먼의 영화는 한결같이 아주 입심 좋고 산전수전 다 겪은 친구와 하룻밤 술자리에서 듣는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연상시킵니다. 때로는 이야기꾼 특유의 과장도 살짝 느껴지지만, 아무튼 잠시라도 다른 데 주의를 돌릴 수 없게 하는 세심하면서도 감칠맛나는 이야기 솜씨가 그야말로 발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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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라이트먼의 재능은 캐스팅에서 정말 무릎을 치게 합니다. 반생을 '캐주얼하게' 살아온, 매력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중년 남자 역을 조지 클루니보다 잘 할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하는 건 물론 시작에 불과합니다(각본가를 겸한 라이트먼도 '클루니가 안된다면 대본을 대폭 고쳐야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남자가 내 인생관에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매력적인 중년 여성 역의 베라 파미가, 그리고 얼굴에 '내가 사회 경험은 없을 지 모르지만 인생을 어떻게 사는 건지는 책으로 다 배웠어'라고 쓰여 있는 겉똑똑이 사회 초년병 역할의 애나 켄드릭은 정말 탁월한 캐스팅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트와일라잇'에서 여주인공의 진짜 인간 친구 4인방 중 하나일 때 애나 켄드릭을 본 사람이라면 놀라운 변신 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두 여배우가 모두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배우들 개인의 재능보다 라이트먼의 혜안이 빛난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다만 베라 파미가가 73년생이라는 건 좀 놀랍습니다.^^ 한 69, 70 정도면 적당할듯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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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영화에 대한 얘기가 좀 빠졌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가을을 맞은 사람들이라면 사전지식이고 이해고 아무 필요가 없는 영화입니다. 그냥 보는 즉시 '이건 내 얘기' 이거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얘기'일 수도 있고, 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내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얘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가슴에 콕콕 박히는 장면이 한둘이 아닙니다. 몇몇 장면에선 77년생인 라이트먼 감독이 어떻게 저런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수시로 떠올랐습니다. 그 부분에선 아마도 노련한 조지 클루니의 도움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일종의 교훈담이라고 친다면, 젊은이들도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과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나의 10년 후나 20년 후를 생각해 본다면 과연 어떤 중년, 어떤 장년이 나의 모습일지를 한번쯤 생각해 볼 나이에 꽤나 유용한 영화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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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빠른 분들이라면 아마 영화 중간 쯤에서 주인공 라이언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는 예기치 못한 반전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의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굳이 이 영화의 장르를 꼽는다면 블랙 코미디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지난 겨울 이후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이 웃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게 될 많은 다른 분들 가운데는 눈물 흘리는 분도 있을 듯 합니다. 특히 나이만 먹었지 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분들, 혹은 나이가 어리고 별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인생 뭐 있냐'며 세상 다 산 척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꼭 권해 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특히 클루니의 마지막 표정이 오래 오래 기억날 듯 합니다.

뭐 취향 탓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감히 걸작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P.S 아메리칸 에어를 비롯해 어느 항공사에도 1천만 마일을 기념하는 카드는 없다고 합니다. 단, 알렉스가 감동한 콘시어지 키 카드라는 건 실제로 존재한다는군요. 기업체의 정리 해고를 도와주는 사람은 실제로 '전직 상담 서비스(Career Transition Counseling Service)'라는 이름으로 성업중이라고 하는군요.

P.S.2. 어쩐지 아버지 이반 라이트먼의 라이벌이랄 수 있는 해롤드 레미스의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니콜라스 케이지의 '패밀리 맨'에 이어 '여자들보단 남자들이 좀 더 공감하는 영화의 전설' 반열에 들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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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받은 선물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먹은 걸 두 배로 토해내야 하는 시절이 돌아왔습니다. 네. 공포의 화이트데이 시즌입니다. 이미 2월14일이 발렌타인데이고 3월14일은 화이트데이라는게 있다며? 라는 식으로 얘기하다가는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시대가 된지 오래입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남성들(아마도 미혼일 겁니다)은 이번 화이트데이 선물값으로 8만2천원을 쓸 각오(?)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꽤 큰 돈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흥미로운 건 이들이 지난 발렌타인데이때 받은 선물의 평균 추정 가격이 4만1천원이라는 겁니다. 정확하게 두배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죠.

당연히 이 대목에서 황현희의 절규가 생각납니다. "니생일엔 명품백, 내생일엔 십자수냐!" 돈으로 바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불쌍한 남자들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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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 선물 비용이 딱 두배라는 기사는 이쪽입니다.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view.html?cateid=1038&newsid=20100312074007556&p=akn

그리고 한 홈쇼핑 회사의 조사 결과도 화이트데이 관련 상품의 매출이 거의 두배에 가깝다는군요. 쇼핑 현장에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렌타인데이보다 화이트데이가 더 큰 대목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14&aid=0002266300

그리고 결정적으로,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남자들의 경우 발렌타인 데이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1위 초콜릿, 2위가 상품권이란 응답이 나왔답니다. 반면 여자들은 마찬가지로 화이트데이에 받고 싶은 선물로 1위 가방, 2위 화장품, 3위 상품권이라고 응답했답니다.

그럼 화이트데이의 상징인 꽃과 사탕은? ‘가장 받기 싫은 선물’로 찍혔다는 겁니다.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9/02/11/200902110500023/200902110500023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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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충격을 받는 순진한 남자들도 있을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화이트데이에 꽃과 사탕을 안겨주면 환하게 웃던 여친이 속으로 '이게 다야? 딸랑 이거? 이 짠돌이 자식. 내년에도 내가 너랑 이날을 보내고 있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라고 이를 갈고 있었을 거란 얘깁니다. 작년에 그랬는데 올해도 여전히 여친과 잘 만나고 있다구요? ...아마도 여친의 친구들이 그리 쓸만한 소개팅을 해주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십쇼. 행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우울한 세상입니다. '쿨한 삶'이나 '세련된 생활'을 추구한다고 포장되어 있는 각종 월간지들을 보다 보면 페이지 사이의 이율배반이 너무도 선명합니다. 한쪽에서는 '돈보다는 역시 나의 꿈이 중요해' '문화와 교양이 풍부한 나는 얼마든지 무식한 너희를 비웃을 수 있어'라는 엘레강스한 기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반면 몇장 넘기면 '시계 말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본다고? 이런 원시인 같으니' '이 정도도 못 사면 너는 인간도 아니야. 어떻게 3년 전 스타일의 청바지를 입고 길에 나설 수가 있어?'라는 식의 돈쓰기 장려운동이 낯간지럽게 나타납니다. 남성지건 여성지건, 사실 아는 사람이 보면 전혀 교묘할 것 없지만, 출판사를 먹여살리는 광고주들에 대한 성의가 철철 넘친다고나 해야 할까요. 이런 메시지들에 중독되신 분들, 제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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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서 순진하게 꽃과 사탕만 안겨주면 우리 사랑이 영원할거라고 믿는 건 바보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넘겨다 본 광고의 카피는 '정말 사탕만 선물하려고?' 더군요. 여자들이 대놓고 '우린 안 보이는 마음 같은 건 몰라. 어서 네 마음이 잘 보이게 신용카드로 그려 봐'라고 말하는 세상. 한번 바꿔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보원'이 승승장구하고, 박성호와 황현희, 최효종의 인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거겠죠.

(우리 인간적으로, 왜 여자들만 갖고 그러냐고 뭐라 하지 맙시다. 남자들 솔직히 초콜렛만 받아도 감지덕지합니다. 간도 안 맞은 수제 초콜렛 받아도 맛있는척 감동하고 먹는게 남자들입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괜히 감동했어. 괜히 맛있다고 그랬어. 한입만 먹을걸 그랬어. ---- 다이어트.)

아무튼 화이트데이가 되어 또 한번 '개콘의 혜안'을 느낍니다. 얼마 전에 썼던 글을 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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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왜 '개콘'에서만 유행어가 나올까

지난 연말연시에 여기저기서 수많은 송년회와 신년 모임이 있었다. 모임의 자리에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은 적시 적소에 사용되는 유행어. 연말 모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냐’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었다면, 2월 초까지 이어지는 음력 신년 모임에서 애용되는 코멘트는 ‘니가 말한 ○○이 그 ○○은 아니겠지’다.

TV와 담쌓고 지내시는 분들은 대체 무슨 소린가 싶기도 할 것 같다. 위의 두 대사는 모두 KBS 2TV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에 나오는 유행어들이다. 앞의 것은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라는 코너에서 파출소에 끌려온 취객으로 등장하는 박성광이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멘트고, 뒤의 것은 ‘드라이 크리닝’이라는 코너에서 래퍼로 등장하는 김지호가 윤형빈과 함께 하는 말이다.

며칠 전 가졌던 모임에서도 이 분위기는 계속됐다. 그리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는데도, 요즘 뜨고 있는 신흥 유흥가 얘기가 오가는 동안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저희도 그 동에 살거든요” 같은 대화가 나오자,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니가 말한 그 동이 야동은 아니겠지?”를 합창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필자 주위의 사람들이 유난히 TV 예능 중독인 것은 아닐 듯했다.

연말연시, 평소 접하지 못하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된 것은 이제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젊은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거였다. 특히나 <개콘>은 중장년층까지 넓은 수용자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 하나로 순식간에 형성되는 공감대의 힘은 무서울 정도였다. 함께 미소를 짓는 가운데 ‘아, 개콘을 보시는군요?’ ‘네, 저도 그렇게 딱딱한 사람은 아닙니다’와 같은 정서가 교환되는 것을 보면서 코미디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됐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개콘> 유행어들의 특징은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거의 유행어들이 갖고 있던 특징이 변형이 쉽지 않고 원형 그대로 재생할 때 효과적인 것이었다면, 최근의 유행어들은 외부의 사용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개콘>의 또 다른 인기 코너인 ‘남성인권보장위원회’에서 박성호가 퍼뜨린 ‘괜히 ○○○ 했어, 괜히 ○○○ 했어, 나 어떡해’와 ‘우리 인간적으로 ○○○는 해 줍시다’는 사용자가 쓰고 싶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대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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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보원 선생님, 자꾸 성함을 거론해서 죄송합니다.)

또 이런 유행어들의 본고장이 코미디라는 것은 다양한 함의를 통해 언중유골의 효과를 낼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를테면 회식 자리에서 평소 쫀쫀하게 부하 직원들을 편애하던 상사를 향해 “고과 1등만 좋아하는 더러운 부장!”이라고 소리쳐도 어차피 코미디라며 도망갈 수 있다. 뭔가 뒷일이 켕기면 “나 같은 놈도 받아주는 아름다운 선배!”라는 식으로 슬쩍 물타기를 할 수도 있다. 문득 이런 유행어들이 왜 전부 <개콘>에서만 나오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한때 <개콘>과 천하를 다투던 SBS TV <웃음을 찾는 사람들>은 폐지설까지 나오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때 정성호 김미려 조원석 등이 활약하던 MBC TV <개그야>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요즘은 후속 <하땅사>가 재건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 한 자릿수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콘>의 경쟁자들은 왜 이렇게 인구에 회자될 만한 유행어를 낳지 못하는지 한 번쯤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언급된 <개콘>의 유행어들 속에는 세상 읽기가 감춰져 있다는 점을 그냥 지나치면 곤란하다. 듣는 사람이 ‘아, 저건 내 얘기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을 때 유머는 진정한 힘을 얻게 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제작진의 분발이 기대된다. “그런 유행어 하나 못 만들면 그건 개그 프로그램 아니잖아요. 그냥 쑈지 쑈.” (끝)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남성 여러분, 부디 화이트데이 주말의 위기를 다 잘 넘기시고, 다들 팔팔하게 월요일을 맞이하시길.^ 뭐 돈 굳었다고 좋아하시는 싱글들은 복 받은줄 아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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